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속 다섯 친구들은 고양이를 매개로 반목하기도 하고 연대의 온기를 나누기도 한다. 사진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DB
고양이 ‘묘(貓)’자 안에 싹 ‘묘(苗)’자가 들어 있는 이유는 고양이가 곡식의 싹을 해치는 쥐를 잡기 때문이라고 한다(‘埤雅·비아’). 한시 속 고양이도 대개 쥐를 잡는 쓸모 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고양이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담은 작품도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다음 시는 검은 고양이 새끼를 얻어 길들이는 과정을 생생하게 읊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漢詩 映畵로 읊다] 〈141〉 고양이를 부탁해
細細毛淺靑(세세모천청),
團團眼深綠(단단안심록).
보송보송한 털은 옅은 검푸른빛,
동글동글한 눈은 짙푸른색.
形堪比虎兒(형감비호아),
聲已懾家鹿(성이섭가록).
생김새는 호랑이 새끼에 견줄 만하고,
우는 소린 벌써 쥐를 겁주는구나.
承以紅絲纓(승이홍사영),
餌之黃雀肉(이지황작육).
붉은 실끈을 목에 둘러주고,
참새고기 먹이며 길렀다네.
奮爪初騰蹂(분조초등유),
搖尾漸馴服(요미점순복).
발톱 세우고 처음엔 화닥닥거리다가.
꼬리치며 차츰 길들어 따르는구나.
我昔恃家貧(아석시가빈),
中年不汝畜(중년불여축).
나 옛날엔 가나한 집에 의지하며,
중년까지 너를 양육하지 못했지.
衆鼠恣橫行(중서자횡행),
利吻工穴屋(리문공혈옥).
쥐 무리가 제멋대로 횡행하더니,
날카로운 입이 집에 구멍을 뚫었네.
齩齧箱中衣(교설상중의),
離離作短幅(리리작단폭).
상자 가운데 옷가지 씹어 깨물고,
가르고 떼어놔 폭을 짧게 만드네.
白日鬬几案(백일두궤안),
使我硯池覆(사아연지복).
대낮에 책상과 안석에서 싸우고,
나를 시켜 벼룻 물 엎지르게 했네.
我甚疾其狂(아심질기광),
欲具張湯獄(욕구장탕옥).
나는 심하게 그 미친짓이 괴로워,
장탕의 옥사를 갖추려 했었다네.
捷走不可捉(첩주불가착),
遶壁空追逐(요벽공추축).
빨리 달아나니 가히 잡지 못하고,
에워싼 벽 공연히 쫓을 뿐이었네.
自汝在吾家(자여재오가),
鼠輩已收縮(서배이수축).
자연히 너는 내 집에 있고부터는,
쥐들 무리는 이미 움츠러들었네.
豈唯垣墉完(기유원용완),
亦保升斗蓄(역보승두축).
어찌 다만 담장과 벽만 온전할까,
또한 한되와 한말도 모아 지켰네.
勸爾勿素餐(권이물소찬),
努力殲此族(노력섬차족).
네게 권하노니 공밥만 먹지 말고,
힘껏 노력하여 이 무리 섬멸하라.
―검은 고양이 새끼를 얻다(得黑貓兒) 『東國李相國後集』 卷第十 이규보(李奎報·高麗時代)
*淺靑[천청] : 짙은 옥색.
*馴服[순복] : 길이 들어서 잘 복종함.
*橫行[횡행] : 거리낌 없이 행동함.
*硯池[연지] : 물을 부어 괴이게 되는 벼루 앞쪽 먹물이 담기는 오목한 부분.
*張湯[장탕] : 漢 나라 때의 獄官[옥관].
*李奎報[이규보 : 1168-1241] : 자는 春卿[춘경], 호는 白雲居士[백운거사], 止軒[지헌].
시인은 보드라운 털과 짙푸른 눈동자, 호랑이 새끼 같은 생김새와 쥐를 두렵게 만드는 울음소리에 주목했다. 새끼 고양이가 도망이라도 갈까 붉은 실로 목줄을 매곤, 참새고기를 먹여 정성 들여 키웠다고 했다. 고양이를 키우고 길들이는 과정이 유달리 구체적인 것은 시인이 실제로 고양이를 키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의 뒷부분은 여전히 사랑스러움보다 쓸모에 치중했다. 시인은 이전엔 쥐 떼가 설쳐 집을 구멍 내고 살림살이를 축냈다며 고양이에게 쥐를 섬멸하라고 권면했다.
✺고양이를 부탁해(Take Care of My Cat) (2001) 재개봉 예고편:
https://youtu.be/1a6iVwbLkmw?si=AJPhqtYJgKF2WeEq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Take Care of My Cat)’(2001년)에서도 다리만 하얀 검정 새끼 고양이가 나온다. 영화는 인천의 여상을 졸업하고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스무 살 단짝 다섯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영은 길 잃은 새끼 고양이 티티를 혜주의 생일선물로 건네지만, 혜주는 형편상 고양이를 되돌려주고 지영은 상처를 받는다.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만 가난 때문에 좌절한 지영은 살던 집이 붕괴되어 남은 가족인 조부모마저 잃고 절망한다. 지영은 참고 진술 거부로 구치소에 갇히고, 태희가 대신 고양이를 보살피다가 비류와 온조에게 맡기고 출소한 지영과 함께 해외로 떠난다. 영화 속 고양이는 스무 살 여주인공들의 불안정한 삶의 은유이자 그녀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시인에게도 고양이는 자신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시인은 이 무렵 다른 이의 모함을 받고 뒤늦게 얻은 관직에서 파직되어 불우하게 지내고 있었다. 쥐를 소인에, 고양이를 군자에 빗대기도 하는데, 고양이가 쥐를 잡아줄 것이란 기대에는 세상이 바로잡히길 기대하는 자신의 바람도 얼마간 투영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 속 지영과 친구들이 고양이를 매개로 반목하기도 하고 연대의 온기를 나누기도 한다면, 한시에선 고양이가 시인에게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인간이 거두어 키운다지만 도리어 고양이로부터 각자의 처지에서 위안을 얻는다. 반려동물이란 말조차 없던 시절의 시이지만 고양이란 생명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지금과 다를 것이 없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漢詩를 映畵로 읊다(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6년 10월 01일(목)〉, Daum∙Naver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