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제주를 싫어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차로 달려 2시간을 채 넘지 않는 그 갇힌 공간이 싫었다.
사람들이 제주를 좋아하는 것에 커다란 의문을 품을 정도였다.
인생은 흐르기 마련이고 흐름의 소용돌이는 또 생기기 마련이며,
잠시 휘돌며 고였던 물은 어디론가 방향을 바뀌어 흐르기도 한다.
4년쯤 전에 제주를 유별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럴 수는 없을 거라는 그의 억울한 표현들에도 난 충분히 냉소적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지난 것에 대한 애달픈 형상은 뜻밖의 제주 방문을 맞게 했다.
지극히 아집이 강한 자아 스스로 제주를 향해 떠나게 된 것은 그저 충동이었다.
2003년 7월 30일 새벽.
밤새 뒤척이던 난 제주를 가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아침 일곱시에 사천 공항에 도착한 내 짐은 카메라 가방 단 한 개였다.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을 적었고 2시간 후엔 제주였다.
제주에 도착한 난
지도 한 장, 버스 안내서 한 장을 얻었다.
관광 안내소에서 버스가 파업 중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별히 무엇을 할거라거나, 어디를 관광해야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는 시간을 사용하는데는 느린 행동이 가장 효과적이기도 하기에 버스들이 내 앞을 상당히 지난 후에 동부 관광도로를 통과하는 버스를 탔고, 중문단지가 내 도착지였다.
그곳에서 다음의 것들에 대해 정리를 하며 중문단지를 걸을 생각이었으나 역시 결정된 것은 없었다. 제주 휴가 계획을 짜던 친구의 숙박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좀 짜증스런 문제에 직면한 나는, 성산으로 가야만 하는 문제가 있었다.
내 숙박 문제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늘 문젯거리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문젯거리는 사람들이 모이고자 하는 음모가 시작되는 시점부터이기 때문이다.
서귀포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30분을 걸었다.
그곳에서 동부 해안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탔고,
성산읍 이쪽에서 저 끝까지보다 더 많은 거리를 또 걸었다.
친구의 숙박 문제는 내가 풀어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숙소는 더러웠고, 비싸기만 했다.
그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더러운 곳에서 자거나,
아주 비싼 스위트룸을 사용하거나,
제주시내 중심가 여관을 사용하라는 말이 다였다.
이제 내 숙소를 위해 제주 시내를 향해 다시 버스를 탔고,
좀 더 버스를 타고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숙소를 찾기 위해 난 문화회관에서 하차를 했다.
다시 제주를 걷기 시작했다.
제주 시청 앞까지 걸은 후, 낡았지만 에어콘이 있고 청소가 잘 된 여관을 숙소로 잡았다.
일어나 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종일 내가 먹은 식사는 햄버거가 다 라는 생각을 했다.
파업 중인 버스 때문에 - 버스 터미널까지 간 후에 택시만이 해결 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 무려 3300원의 택시비를 지불해야 했지만,
좋은 식사를 위해 공항 뒤편 해변의 카페촌으로 향했다.
콘서트라는 카페에 가서 정식을 시켜 먹은 난 멋진 식사로 모든 게 완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벽의 시점은 아직 아니었다.
식사를 하며 생각해 낸 두모악 김용갑 갤러리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곳을 찾는 데 난 많은 시간으로 공을 들여야 했다.
초행은 늘 그런 것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성읍민속마을 근처 어디의 그 갤러리를 향해 출발을 했다.
그곳 사람들은 들어는 봤지만 그게 어디인지는 모른다고 했고,
결국 성읍에서 신풍리 어디라는 말 때문에 그곳으로 갔지만,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고,
표선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파업 중인 버스 탓에 다시 택시를 타고 그 근처 사는 할아버지와 함께 섬달리 (구)섬달국민학교 자리의 김용갑 갤러리에 도착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곳에 단박에 차를 타고 갔다면 그 사진의 깊이를 알 수 있었을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학교 마당을 보며 제주식의 정원을 처음으로 접한 내가 감탄할 때
그곳 주인장은 뜻밖에도 입구까지 나와서 내게 깊은 절로 환영을 해주었다.
그의 사진은 최고였다.
여태 내가 보아온 우리 나라 사진 작가들의 한심함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병으로 쇠약하고, 죽어가고 있었으며,
오래 말하고 싶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죄송스러웠다.
이제 더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 후로도 난 아주 많이 걸었지만 그의 사진, 순간에 머문 영원을 내 안에 되살리면서였다.
이글을 쓰게 된 것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보다 많은 분들이 그곳을 방문하였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다.
단지 나를 위한 거였다면 그 순간에 머문 영원에 대한 내 안의 성찰이 더 나았을 거다.
지난번 밀양에 사는 이윤택을 말한 적이 있지만, 제주에는 작가 김용갑이 살아 있었다.
걷고 있던 날 태워준 그곳 주민의 김용갑에 대한 감사의 말도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