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송현리 까지 밖에 모르고 기억나는건 송현리 산림지소 근처 박통시절
일괄적으로 지어준 똑같은집...
하지만 태어난 곳은 그보다더 깊은 산속이라하는데..... 흔적도 없는 초가집..
또한 박통시절 지은 집터도 지금 흔적도 없고 사람이 떠나면 더이상 사람유입을 막는 백두대간 보호구역으로 묶이는 곳이
제 고향이었더랬죠...
당시 정선 태백은 광산으로 인구유입.... 벌목이 한창이던때 삼척 도계로 엄청난 인구유입......
묵호항은 명태와 오징어로 특수를 누리던 강원도....
하지만 아버지는 벌목공 ....... 그래도 그게 제일 안전하단다.... 제무시 트럭위로 통나무를 네명이서 갈고리 걸어서
싣던때 .....
그렇게 아버지는 사는곳이 지겨웠는지 이유도 모른채 강릉시내로 이사를 와서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까지 벌목일을(가끔 어머니가 인부들 밥을 해주러 함께 따라가 산중이 같이 지내고 아직 4살 밖에 안된 막내딸
비닐하우스 숙소에 혼자 뒀다 뱀이 나타나 혼비백산 막내여동생기억이 없다는..)
그러다 아버지는 벌목은 그만두고 강릉시내 농수산물 시장에 하차 인부로 일자리를 갖게 되어.....
각산지에서 트럭에 실려 오는 농산물을 하차하는 일이었는데 팀으로 구성 새벽녁에 하차작업이 많을 경우
새벽부터 오전내내 10만원 , 어쩌다 일이 적은날은 2만원 이렇게... 매일 일당식으로.....그일을 약 10년간......
좋은 점은 집에 늘상 배추와 무우 수박 각종 채소가.. 넘쳐났다는 일을 마치고 매일 수박 한두통 배추 한두포기씩
자전거에 싣고 퇴근............
당시가 87년 ....부터....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수입이 그다지 나쁘진 않았던듯.......
당시 아버지 나이대..... 지금 내나이 하는 일은 비슷하군요..
아버지 처럼 살기 싫었지만 아버지과 닮은삶.....................
결국 강릉시내에 있던 농수산물 센터가 외곽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아버지는 그일을 그만 두셨답니다....
기억조차 하기 싫은 어린시절과 고향같지 않은 고향... 지금은 더욱 더 황량하고 알멩이 없는
화려함을 뒤로한 빛바랜 청담동에 살지만...
그어느곳도 마음둘곳이 없어 이렇게 비가 쳐내리는 날에 몇자 끄적입니다...
ps. 강릉에 이사를 와서도 지게를 지고 나무를 했고 메뚜기와 우렁을 잡으러 다니고.....
한때 여친이나 주변 지인은 전혀 못믿겠다는 어디 시간여행 다녀왔냐고 .........
첫댓글 우렁된장국이 먹고싶어요
남의 논에 우렁 눈치보며 잡아온걸 정말 맛있게
양이 적어서 ... 세월지나니 가슴아프네요
어쨋든 님은 청담동에서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입니다.
대리인생인뎅 ㅡㅡ;
18년전 회사생활시작 신사역 도산대로 시작점...리베라 호텔 근처 도산대로 끝점에도 회사
도산사거리에도 회사.. 그러다보니 여기 눌러 앉게 됬습니다
저도 한때 역삼동 교대 강남구청 그짝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직장생활했네요ㅋ
갈대숲 속의 여인 ...
사진 예술이네요..
사진감상 잘했습니다.
글도 재미있었습니다 ^^
나 역시도 자꾸 옛날이 그리워지는것은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인데...
현실은 옛날을 거부하니
테헤란로에서 한 회사를 13년 정도 다녔는데 가끔 피크때 강남에 있으면 회사에서 콜 뜨는게 보이곤 합니다 ㅎㅎ
밑에 사진은 사모님 이신가봐요?
아버지를 닮고싶지 않았으나, 40에 이해하고.. 50에 아버지를 넘지 못할것을 인정하게되니 60때가 암울할 뿐입니다....
큰것을 노리지 않았으나 작은것도 챙기지 못한에 후회가 되네요...
우렁각시들 !!!
맨날 맛있는 밥도 해주고~
맨날 ᆢ~
혹시 이쪽 어디 아니셨나요?
2007년 12월 에 찍은것이니
한참 모자라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흔적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여기 어디쯤 ?
혹시 여기??
제가 태어난 곳은 저런 기차도 안다니는 완전 두메산골 이랍니다
80년대 중반까지 비포장도로..
자전거에 수박을 싣고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는 무슨 상상을 하며 페달을 밟았을까.... 도윤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의자에 아버지 당신께서는 앉고싶어 앉았겠습니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