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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아홉을 잘하고 하나를 잘못 하는거나
하나를 잘하고 아흔아홉을 잘못 하는 거나
둘다 나쁜거다
이런 인성을 가지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많은 백성이 해(害) 입거나 당한다
나쁜사람들의 아우성을 보면 뭐 괜찮다
그만하면 上受다 한다 다 같은 모리배다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뜻으로,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我 : 나 아(戈/3)
是 : 옳을 시(日/5)
他 : 다를 타(亻/3)
非 : 아닐 비(非/0)
교수들이 뽑은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이른바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것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정치와 사회 전반에 소모적인 투쟁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교수신문은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588명이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아시타비'는 같은 사안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중잣대를 한자어로 옮긴 것으로, 사자성어보다는 신조어에 가깝다.
1990년대 정치권에서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관용구로 쓰이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최근 '내로남불'로 줄여 쓰이면서 '아시타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수들은 어느 사회든 나름의 갈등이 있지만, 올해 코로나19 확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도 정치와 사회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시타비'의 자세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정치권을 향해 "다수당 입장에서는 다수결 원칙에 따른 의사결정이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지만, 소수당 입장에서는 그것이 권력의 전횡이요, 독재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위 먹물깨나 먹고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의 어휘 속에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 상대를 위한 건설적 지혜와 따뜻한 충고, 그리고 상생의 소망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아시타비가 올해의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올 한해 유독 정치권이 여야 두 편으로 딱 갈려 사사건건 서로 공격하며, 잘못된 것은 기어코 남 탓으로 공방하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생각했다"며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진 이판사판의 소모적 투쟁은 이제 협업적이고 희망스러운 언행으로 치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타비(我是他非)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96명이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아시타비'와 같은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빗댄 '첩첩산중(疊疊山中)'은 4위에 꼽혔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류독감과 돼지열병까지 겹친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 아시타비(我是他非)
어느 시골에 사는 부모가 아들, 딸 남매를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나서 내외만 남아 살다가 하루는 내외가 딸네 집에 갔다가 보았더니 사위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을 하는 것이었다. 사위가 부지런히 음식도 만들어 나르고 하는데, 딸은 어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고 나서 딸의 어머니는 '우리 딸 시집 참 잘 갔구나'고 하면서 '좋은 남편을 만나 저렇게 사랑받고 아낌을 받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아들 집에 갔다. 가보니 아들이라는 것이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못마땅해서 오만상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저 며느리가 내 금쪽같은 아들을 부엌으로 들여보내 일을 시킨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꼭 같은 상황을 보았는데... 왜?
아시타비(我是他非)란 말인가? 아시타비(我是他非)란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뜻이다. 즉,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남은 비난하지만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위가 일하는 것은 좋게 보이고 아들이 일하는 것은 못마땅하다? 사위도 그 집안의 귀한 아들이며 아들 역시 사돈이 볼 때 사위인데... 절대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것은 엄연히 편견이요 죄악일 수도 있다. 그런 죄를 죄로 여기지 않으니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요즘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사자성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이 단어는 1990년대 정치권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는 말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 입니까? 혹시 자신도 모르게 '아시타비(我是他非)', '내로남불]'을 남발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다 볼 일이다.
◼ 신구자황(信口雌黃)과 아시타비(我是他非)
참으로 잘 생긴 한 사람이 살았다. 이 사람은 멋진 미남자로 한번 보면 그의 용모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외모도 출중할 뿐 아니라 말도 너무너무 잘했다.
머리도 좋은 그는 여기저기 강연를 초청받기도 하였는데 그의 강연을 들으면 바르고 옳은 그의 말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어떤 좌석에서든 좌중을 압도 했다.
그러니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높아져만 갔고 사람들은 그를 인격과 학식이 훌륭한 스승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선각자의 지위에 있다 보니 자연 벼슬도 얻게 되었다.
그는 남 부러울것 없는 지위까지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며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승상(丞相)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고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교육자이자, 최고의 공직자까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부터 그의 말을 자주 바꾸는 것이었다. 말실수를 하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그의 말을 수정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禍根)이 되었다.
그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 바꾸기와 괘변으로 일관하는 자기 합리화에 사람들은 그의 인격을 의심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곤경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기 덫에 걸려 패가망신(敗家亡身)을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그 바람에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말을 잘 하면서 자신이 한 말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바로 입에 지우개가 달렸다는 '신구자황(信口雌黃)'이다.
신구(信口)는 말은 입에 맡긴다는 뜻인데 다시 말하면 '함부로 입을 놀려 말을 한다'는 뜻이다. 자황(雌黃)은 붓글씨를 쓰고 정정할때 쓰던 지우개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는 말은 '입에서 나온 말을 함부로 바꾸거나 자신의 말을 형편에 따라 무책임하게 바꾸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되었다.
이 말의 주인공은 중국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때 왕연(王衍)이라는 사람이다. 왕연은 재능도 뛰어나고 미남자로 용모가 출중했으며 말 또한 달변이라 자신을 자공(子貢)이라는 공자의 제자에 비교하면서 명성이 당대를 뒤흔들었다.
그가 강연을 할때는 옥으로 만든 주미(麈尾; 깃털이 달린 총채 비슷한 것)를 들고 있었는데 손과 백옥 손잡이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피부도 고왔다고 한다.
왕연(王衍)은 현령 벼슬에서부터 승상의 자리에 이르기 까지 대성공을 하였지만 그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 때문에 결국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주역이 되었으며 적장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최후를 맞게 되었다.
이렇듯 옛날에는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요즘에는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잣대의 말인데, 이는 자신은 마치 도덕적인 사람이고 남은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비난하는 사람을 일컷는 말이다.
그러나 한자어에 보면 이와 비슷한 말이 또 있다. 바로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말인데 '내가 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면 그르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아테네 사람은 항상 옳고 변방의 사람들은 늘 그르다'는 잘못된 인식에 빠져 있었는데 그래서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개짓는 소리처럼 '바르바르'라 했으며 이에 따라 아테네 외의 변방 사람들을 바바로스(barbaros)라 했다고 하는데 이 단어가 영어의 야만인을 뜻하는 바바리안(barbarian)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고사성어는 또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즉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이고, 후안무치(厚顔無恥) 즉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확증편향'의 심리가 있다고 한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견강부회(牽强附會)처럼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합리화 시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옛말에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病從口入 禍從口出)"는 말이 있다. 이는 몸에 생기는 병은 입으로 먹은 음식 때문이고, 화를 입는 건 입으로 내뱉은 말 때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자신의 말과 그때그때 위기를 모면하려 말을 바꾸는 사람은 그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른다는 무서운 교훈을 주고 있다.
당장 힘이나 권세로 또는 궤변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일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誤算)이다. 거짓은 적은 수의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수는 있어도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수는 없다고 했다.
요즘같이 모든 것이 증거로 남는 SNS와 CCTV와 스마튼 폰과 매스 미디어 세상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어수선한 시절에 말을 얼마나 조심해서 할 것인지, 처신 또한 얼마나 정직하게 해야 할것인지 새삼 겁이 나기도 한다.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1. 개요
기혼자와 다른 사람이 서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간통 관계를 빗대 이중적인 태도를 비꼬는 용어다. 이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데, 줄여서 '내로남불'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자기가 사랑을 하면 불륜도 사랑이지만, 남이 하면 그건 불륜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주 위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TV나 공식 석상에서도 많이 쓰일 만큼 대중화된 단어다. 이걸 고사성어 혹은 사자성어로 잘못 아는 사람까지 있지만 정작 저 4글자 중에서 한자는 '不'(아니 불) 한 자 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실제 사자성어는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比)가 있다.
'내가 하면 합법, 남이 하면 불법(내합남불)'이라는 말도 있다. 맥락적으로는 논점이 갈리는 사안에 대하며 일관되지 못하게 논지가 오락가락하며 상황에 따라 자신이 유리한 쪽만 택하는 경우를 비판할 때 사용한다.
또한 같은 행동에 대하며 평가해도 자신이나 자신과 가깝거나 친한 쪽은 봐주는 사람들, 특정인들에 대해서 유독 저격을 하면서 그외의 타인들한텐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꼴 때 사용하기도 한다. 덧붙여, 남 또는 특정인들에게는 깐깐한데 자신이나 자신 편에게는 관대한 사람들을 비꼬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문구의 앞 뒤를 바꾸어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 하거나 역시 이를 줄여서 '남불내로'라고 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내로남불이 있고, 내로남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거나 자신도 깨끗하지 못한 주제에 타인 또는 특정인들한테 되도않는 수준으로 지적질을 해대면 주위의 눈쌀을 찌뿌리게 된다. 한 마디로 자기는 해도 괜찮지만 남은 안된다는 의미다. 이기주의의 끝판왕이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이런 행태를 자주 보여주며 그와 함께 타인을 정치 극단주의로 매도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보인다.
2. 유래
1984년 기독교사상 제28권 중에서 "요즘 학생들의 농담 중에 '로맨스와 스캔달의 차이는 무엇인가?'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내가 하는 연애는 로맨스이고 남이 하는 연애는 스캔달'이라는 것이다."
1987년 이문열의 '구로 아리랑' 중에서 "하기사 지가 하믄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또 남한테 안 들키면 로맨스고 들키믄 스캔달이라 카는 말도 있습디더마는 참말로 우리는 달라예."
이와 같은 표현은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 나온 잡지에 요즘 학생들의 농담이라고 소개되었고, 1987년 발표된 이문열의 단편 '구로 아리랑'에도 등장한다. 1993년에는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제목의 책도 발간되었다.
특히 1996년 6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이 사용해서 크게 히트했다.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부동산을 하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는 식"이라 말했다. 1996년, 여소야대 정국 하에서 정당의 '의원 빼내기'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내용이다.
박 대변인은 이것 말고도 '총체적 난국'이나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등의 유행어를 자주 인용하여 써먹은 걸로 유명하다. 총체적 난국은 이전부터 쓰이던 문구였으며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는 본래 이주일의 유행어 중 하나이며 폭탄주는 박희태가 검사 생활하던 때부터 상용화된 것이다.
물론 저걸 대변인 시절에 유행어로 밀어붙인 건 박희태 본인이 맞다. 이 문장을 박희태 버전으로 하자면 "내가 하면 딸 같아서 쓰다듬어 준 것, 남이 하면 성추행"이다. 박희태, 홀마다 성추행했다.
단, 이 문장을 내로남불이라고 축약해 사자성어처럼 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나중 일로, 2004년 4월 한 블로그에 이러한 용례가 보이며, 2004년 여름 출간된 씨네21에서도 쓰였다. 언론에서 본격 사용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 부터다.
3. 유의어
고사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내로남불을 한자어로 옮긴 것으로,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뜻이다. 단, 옛날부터 있던 고사성어는 아니고, 신조어이다. 202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수신문이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588명이 '아시타비'를 뽑았다. 신조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4. 주의점
내로남불의 핵심은 완벽히 동일한 기준 아래 동일한 처지의 행위자들 중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이중성을 비판하는 것에 있다.
내로남불이 필연적으로 가진 문제는 설령 남의 잘못에 대하여 적절한 지적을 하더라도 지적하는 사람이 같은 문제를 이미 저질렀기에 지적의 진정성에 타격을 받는다는 것으로, 자칫하면 마땅히 해야할 반성을 피해가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를 진흙탕 논리로 끌고가기 위해 둘러대는 궁여지책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피장파장의 오류에 해당한다.
또한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으로, 내로남불은 논리적으로는 아무 오류가 없다. A가 불륜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A는 B의 불륜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A가 B의 불륜을 지적했는데 A의 불륜이 밝혀졌다고 해서 B가 불륜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또한 적절한 이유가 있어 행동이 바뀌는 것도 내로남불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담배를 자주 피우던 사람이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이후에는 다른 사람이 버스에서 담배를 함부로 피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내로남불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이 아이를 가진 이후 다른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반대하게 되는 경우라면 내로남불이 아니라 갱생으로 봐야 한다. 당연하지만 이때는 자신이 담배를 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국제정세에서는 내로남불이 필수 항목이다. 받아먹을 거 받아먹고 치고 빠지는 처세가 굉장히 중요하다. 더불어 뉴스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비표준어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내로남불 만연한 세태에 필요한 시대정신 '존중'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라'는 뜻으로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篇)에서 연유된 말이다.
여기에는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돌아보라(治人不治反其智)'는 구절도 있다. 요즘 우리 정치의 세태를 꼬집기라도 하듯 한 경구다. 무엇에서든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를 경계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역지사지와 아전인수는 서로 대립되는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한 방송 프로에 유명세를 누리는 소위 셀럽이 출연해 과거를 회상하며 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이 자리(스타)에 안 왔으면 중국집 배달부가 됐거나 시장통에서 장사나 했을 테죠."
이렇듯 이른바 출세한 유명인사가 방송에 나와 이와 유사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종종 접한다. 대부분 무심코 넘겨 버리지만 그 언사는 직업의 귀천을 구별하는 편견을 나타내고 있다. 편견은 프랑스의 사상가였던 볼테르의 말처럼 '분별력 없는 견해'다.
그것은 그 유명인사가 역지사지의 생각이 부족한데다 편견과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한 마디로 자신의 위상만 생각하며 주위를 배려하지 않는 무감각의 소치다. 편견은 바로 아전인수와 같은 것으로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는 갈등과 대립과 분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어떤 공동체에서든 편견으로는 화합하고 컨센서스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일까. 프란시스 제프리는 "편견에 기반한 의견은 항상 최대의 폭력으로 지탱 된다"고 일갈했다.
우리 사회는 한 세대 정도에 걸친 산업 근대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세기적 변화를 겪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단기간 내 농축된 성장을 경험하다 보니 겉 모습과 달리 사회적 문화가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러면서 승자독식의 '출세주의'가 사회적 풍조가 돼 버렸다. 출세는 진정한 의미의 '성공가치'와는 결이 다르다. 출세는 남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경쟁의식과 세권을 누리려는 서열주의를 중요하게 여긴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를 지위경쟁 사회라고 규정하지 않았던가. 각 개인이 출세를 위한 지위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여기에 학벌이 사회적 지위 획득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돼 모든 사람들이 참교육을 추구하기보다 입시전쟁에서 이전투구를 벌인다. 이를 통해 신분을 향상시키려다 보니 우리 사회가 많은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어쨌든 출세는 상호 관계를 수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성공은 수평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사회적, 개인적 삶의 방식이다. 갈수록 우리는 돈, 권력, 명예라는 외면적 기준으로 사회적 위계가 결정돼 '갑'이 되는 출세를 한없이 꿈꾼다. 하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도 미래 목표가 단연 물질주의적이게 된 게 요즘 세태다.
잠재의식 속에 신분 우열의식과 출세 지향주위가 깊게 배어있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존중'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존중은 나와 너를 대등한 입장에서 소중하게 대해주는 자세다.
존중은 나에 대한 것만 소중하다는 편향성과 일방성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을 근간으로 한다. 상대방을 긍정적으로 배려하며 귀중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다. 그래서 존중을 보인다는 것은 인간 최고의 덕목이다.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규정짓는 정신이 존재하며 개인이 시대정신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지금 이 시점 우리의 새로운 시대정신은 존중이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리더와 셀럽이 앞장서야 한다.
지금까지 처럼 개인의 존엄성이나 자존감이 집단적 자아 속에 묻혀버리지 말아야 한다. 존중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사람만의 고유한 품격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가 역지사지의 자세로 서로를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심연이 성숙한 국민성이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 또는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꾀함을 이르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의 공평함을 이르는 말을 아심여칭(我心如秤), 자기네 편의 무위가 드날림을 이르는 말을 아무유양(我武維揚),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일컫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본디 내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뜻밖으로 얻었던 물건은 잃어 버려도 서운할 것이 없다는 말을 본비아물(本非我物),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자아도취(自我陶醉),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곡재아의(曲在我矣),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어떤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를 잊고 다른 사물을 돌아보지 않거나 한 가지에 열중하여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림을 일컫는 말을 무아몽중(無我夢中), 자기 때문에 남에게 해가 미치게 됨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유아지탄(由我之歎), 인신人身에는 항상 정하여져 있는 주제자 즉 아我가 없다는 말을 인아무상(人我無想),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이르는 말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일컫는 말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일컫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일컫는 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
▶️ 是(이 시/옳을 시)는 ❶회의문자로 昰(시)는 동자(同字)이다. 해(日)처럼 정확하고 바르다(正)는 뜻이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是자는 '옳다',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是자는 日(해 일)자와 正(바를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正자는 성(城)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바르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바르다'라는 뜻을 가진 正자와 日자가 결합한 是자는 '태양(日)은 올바른 주기로 움직인다(正)'는 뜻이다. 즉 是자는 태양은 일정한 주기로 뜨고 진다는 의미에서 '올바르다'와 '옳다'라는 뜻을 가지게 된 것으로 해석한다. 是자는 때로는 '이것'이나 '무릇'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是(시)는 (1)옳음. 옳은 것 (2)도리(道理)에 합당함 (3)이. 이것. 여기. 이곳 등의 뜻으로 ①이, 이것 ②여기 ③무릇 ④이에(접속사) ⑤옳다, 바르다 ⑥바르게 하다 ⑦옳다고 인정하다 ⑧바로잡다 ⑨다스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의(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불(不),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다. 용례로는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을 시비(是非), 옳다고 인정함을 시인(是認), 그릇된 것을 바로잡음을 시정(是正),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날을 시일(是日), 마찬가지로나 또한을 역시(亦是), 만일에 또는 가다가 더러를 혹시(或是), 도무지나 전혀를 도시(都是),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시(本是), 나라의 근본이 되는 주의와 방침을 국시(國是), 옳다고 여기에 확정되어 있는 그 정당의 방침을 당시(黨是), 회사나 결사의 경영 상의 방침 또는 주장을 사시(社是), 학교의 기본 교육 방침을 교시(校是), 민족 정신에 비추어 옳다고 여기는 주의와 방침을 민시(民是), 다른 것이 없이 곧을 변시(便是), 자기 의견만 옳게 여김을 자시(自是),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꼭 들어 맞음을 칭시(稱是), 시비를 가릴 줄 아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시비지심(是非之心),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한다는 뜻으로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이르는 말을 시시비비(是是非非), 옳고 그르고 굽고 곧음 또는 도리에 맞는 것과 어긋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시비곡직(是非曲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으로 부처를 밖으로 찾다가 하루아침에 대오大悟하면 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시심시불(是心是佛),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시야비야(是也非也),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름을 일컫는 말을 사시이비(似是而非), 오늘은 옳고 어제는 그르다는 뜻으로 과거의 잘못을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이르는 말을 금시작비(今是昨非), 어저께는 나쁘다고 생각한 것이 오늘은 좋다고 생각됨을 일컫는 말을 작비금시(昨非今是), 형체는 헛것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 형태가 있는 것은 모두 인연으로 생기는 것인데 그 본질은 본래 허무한 존재임을 이르는 말을 색즉시공(色卽是空), 말인즉 옳다는 뜻으로 말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언즉시야(言則是也), 제 뜻이 항상 옳은 줄로만 믿는 버릇이라는 뜻으로 편벽된 소견을 고집하는 버릇을 이르는 말을 자시지벽(自是之癖),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라는 뜻으로 줏대 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부언시용(婦言是用), 말로는 옳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르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구시심비(口是心非), 어떠한 일에 대하여 옳으니 그르니 하고 말함을 일컫는 말을 왈시왈비(曰是曰非),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분명하지 아니함 또는 누가 옳고 그른지 분별하기 어려울 때 하는 말을 일컫는 말을 숙시숙비(孰是孰非), 의리의 유무는 따지지 않고 이해 관계에만 관심을 가짐을 일컫는 말을 유리시시(惟利是視),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여 옳고 그른 것이 질정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혹시혹비(或是或非) 등에 쓰인다.
▶️ 他(다를 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뜻을 나타내는 也(야, 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它(타)의 옛날 자형(字形)은 사람의 발과 뱀으로 이루어졌다. 뱀이 무서운 짐승이므로 사고(事故), 별다른 일, 다른 것의 뜻으로 되었다. 他(타)는 후일 다시 사람인변(亻=人; 사람)部를 붙여 뱀과 구분되는 다른 사람, 다른 일의 뜻으로 쓰인다. ❷형성문자로 他자는 ‘다르다’나 ‘다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他자는 人(사람 인)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다르다’라는 뜻은 본래 佗(다를 타)자가 먼저 쓰였었다. 佗자에 쓰인 它(다를 타)자는 뱀의 형상을 본뜬 것으로 ‘다르다’나 ‘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佗자는 이렇게 ‘다르다’라는 뜻을 가진 它자에 人자를 더한 것으로 ‘다른(它) 사람(人)’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러나 소전에서의 它자와 也자가 혼동되었었는지 지금은 也자가 들어간 他자가 ‘다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他(타)는 (1)타인(他人)의 뜻을 나타냄 (2)어떤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다른의 뜻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다르다 ②간사하다(마음이 바르지 않다) ③겹치다 ④짐을 싣다 ⑤남, 다른 사람 ⑥다른 곳, 다른 데, 다른 방면(方面) ⑦딴 일 ⑧두 마음, 부정(不正) ⑨겹쳐 쌓이는 모양 ⑩그, 그 사람, 그이 ⑪누구 ⑫다른, 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별(別), 다를 차(差), 다를 수(殊), 다를 리(異),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스스로 자(自)이다. 용례로는 다른 나라를 타국(他國), 제 고장이 아닌 다른 고장을 타향(他鄕), 다른 사람 또는 자기 이외의 사람을 타인(他人), 타향의 달리 일컫는 말을 타관(他關), 남이 죽임 또는 남에게 당한 죽음을 타살(他殺), 동작이 다른 데에 미침을 타동(他動),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을 타자(他者), 다른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뜻을 타의(他意), 자기의 의사에 의하지 않고 남의 명령이나 속박에 따라 움직임을 타율(他律), 미래의 세계를 타세(他世), 남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타견(他見), 다른 까닭이나 사고를 타고(他故), 남의 영토 또는 영역을 타령(他領), 어떤 물건이나 장소 등의 다른 쪽을 타면(他面), 그것 외에 또 다른 것을 기타(其他), 남을 반대하여 내침을 배타(排他), 자기와 남을 자타(自他), 나머지 다른 것을 여타(餘他), 남에게 의지함을 의타(依他), 다른 이에게 이익을 주는 일을 이타(利他), 집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나감을 출타(出他), 다른 까닭이 아니거나 없음을 무타(無他), 남의 활을 당겨 쏘지 말라는 뜻으로 무익한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을 타궁막만(他弓莫輓), 다른 것은 말해 무엇 하랴는 뜻으로 한 가지 하는 일을 보면 다른 일은 보지도 않아도 미루어 헤아릴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타상하설(他尙何說), 바빠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음을 염불급타(念不及他),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아주 확실함을 보무타려(保無他慮), 남에게 더 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자기 것으로 넉넉함을 이르는 말을 불필타구(不必他求) 등에 쓰인다.
▶️ 非(아닐 비, 비방할 비)는 ❶상형문자로 새의 좌우로 벌린 날개 모양으로, 나중에 배반하다, ~은 아니다 따위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非자는 '아니다'나 '그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非자를 보면 새의 양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非자의 본래 의미는 '날다'였다. 하지만 후에 새의 날개가 서로 엇갈려 있는 모습에서 '등지다'라는 뜻이 파생되면서 지금은 '배반하다'나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飛(날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非(비)는 (1)잘못, 그름 (2)한자로 된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잘못, 아님, 그름 따위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그르다 ③나쁘다, 옳지 않다 ④등지다, 배반하다 ⑤어긋나다 ⑥벌(罰)하다 ⑦나무라다, 꾸짖다 ⑧비방(誹謗)하다 ⑨헐뜯다 ⑩아닌가, 아니한가 ⑪없다 ⑫원망(怨望)하다 ⑬숨다 ⑭거짓 ⑮허물, 잘못 ⑯사악(邪惡)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옳은 이치에 어그러짐을 비리(非理), 예사롭지 않고 특별함을 비상(非常), 부정의 뜻을 가진 문맥 속에서 다만 또는 오직의 뜻을 나타냄을 비단(非但),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보통이 아니고 아주 뛰어남을 비범(非凡), 법이나 도리에 어긋남을 비법(非法), 번을 설 차례가 아님을 비번(非番), 사람답지 아니한 사람을 비인(非人),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를 비행(非行), 불편함 또는 거북함을 비편(非便), 결정하지 아니함을 비결(非決), 사람으로서의 따뜻한 정이 없음을 비정(非情),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을 시비(是非), 옳음과 그름을 이비(理非), 간사하고 나쁨을 간비(姦非), 아닌게 아니라를 막비(莫非), 그릇된 것을 뉘우침을 회비(悔非), 이전에 저지른 잘못을 선비(先非), 교묘한 말과 수단으로 잘못을 얼버무리는 일을 식비(飾非), 음란하고 바르지 아니함을 음비(淫非), 같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님이란 뜻으로 한둘이 아님을 일컫는 말을 비일비재(非一非再),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라는 뜻으로 어중간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을 비승비속(非僧非俗), 꿈인지 생시인지 어렴풋한 상태를 일컫는 말을 비몽사몽(非夢似夢),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라는 말을 비례물시(非禮勿視), 모든 법의 실상은 있지도 없지도 아니함으로 유와 무의 중도를 일컫는 말을 비유비공(非有非空) 또는 비유비무(非有非無), 일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운수가 글러서 성공 못함을 탄식하는 말을 비전지죄(非戰之罪), 뜻밖의 재앙이나 사고 따위로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을 일컫는 말을 비명횡사(非命橫死),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도리를 일컫는 말을 비궁지절(非躬之節), 고기가 아니면 배가 부르지 않다는 뜻으로 나이가 든 노인의 쇠약해진 몸의 상태를 이르는 말을 비육불포(非肉不飽), 책잡아 나쁘게 말하여 공격함을 일컫는 말을 비난공격(非難攻擊), 비단옷을 입어야 따뜻하다는 뜻으로 노인의 쇠약해진 때를 이르는 말을 비백불난(非帛不煖),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늘 그러함을 일컫는 말을 비금비석(非今非昔),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을 일컫는 말을 비난지사(非難之事), 예가 아니면 행동으로 옮기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비례물동(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비례물언(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을 비례물청(非禮勿聽), 얼핏 보기에는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예에 어긋나는 예의를 이르는 말을 비례지례(非禮之禮), 들어서 말할 거리가 못됨을 일컫는 말을 비소가론(非所可論), 아무런 까닭도 없이 하는 책망을 일컫는 말을 비정지책(非情之責),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이르는 말을 비조즉석(非朝卽夕), 꼭 그것이라야만 될 것이라는 말을 비차막가(非此莫可), 제 분수에 넘치는 직책을 일컫는 말을 비분지직(非分之職), 아직 일에 숙달하지 못한 직공을 일컫는 말을 비숙련공(非熟練工), 제때가 아닌 때에 먹는 것을 금한 계율을 일컫는 말을 비시식계(非時食戒), 용이 때를 만나면 못을 벗어나 하늘로 오르듯이 영웅도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와 큰 뜻을 편다는 뜻으로 비범한 인물이나 장차 대성할 사람을 이르는 말을 비지중물(非池中物), 사물을 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이를 행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을 비지지간(非知之艱)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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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유 힘들다 ㅎㅎ
고생했다~고 한번 쯤은 읽어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거다~누이야
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