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번째 편지 - 일출 시간과 일몰 시간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일출 일몰 시간을 검색합니다. 일출과 일몰 시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침 산책 때문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일출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서울 일출 시간은 오전 7시이고 일몰은 오후 5시 30분입니다. 저는 대개 오전 5시에서 5시 30분 사이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30분간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우면산 무장애숲길을 1시간가량 산책합니다.
그런데 해가 뜨지 않으면 너무 깜깜해서 산책하기에 불편합니다. 그래서 해 뜨는 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같으면 아무리 빨라도 6시 50분까지는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일몰 시간은 저한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일몰과 크게 관계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6시 퇴근 때는 이미 일몰 시간이 지난 시각입니다. 일몰이 중요했을 때는 지방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방에서 근무할 때 특별히 저녁 약속이 없으면 바로 퇴근을 했습니다. 6시 퇴근이니 아무리 늦어도 6시 반에는 관사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6시 반에 도착했을 때 해가 남아 있으면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계절이면 6시 반에 도착하면 이미 해가 져서 깜깜하고 집에 들어가면 모든게 어둡습니다. 아무도 없죠. 약간 으슥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방마다 불을 죄다 켭니다.
저는 그 어둠의 몇 분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여름날 퇴근하면 여전히 해가 있어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여유가 너무 좋았는데 늦가을과 겨울에는 퇴근하면 이미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더욱이 혼자 사는 관사 생활은 쓸쓸하게 그지없었습니다. 일몰 시간은 그때 의미가 있었습니다. 가족과 같이 지내는 요즘 저에 일몰 시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일출과 일몰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으신가요?
일출과 일몰은 고대 사회에 종교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일출과 일몰이 종교와 사회 구조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Ra)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했고, 파라오는 라의 현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일출은 라의 부활과 생명의 탄생을 상징했고, 일몰은 그가 저승을 여행하는 과정을 나타냈습니다.
일본 신화에서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가 동생 스사노오의 장난에 화가 나 동굴에 숨어버리자 세계는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다른 신들은 그녀를 동굴 밖으로 유도하기 위해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 소란에 호기심을 느낀 아마테라스가 동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일출과 일몰은 화가들의 좋은 소재이기도 합니다.
일출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했습니다. 빠르게 떠오르는 태양이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항구의 풍경을 비추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며 예술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몰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윌리엄 터너(J.M.W. Turner)의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일 것입니다.
터너는 일몰의 극적인 색채와 대조를 이용하여 자연의 거대함과 장엄함을 강조했습니다. 일몰을 배경으로 은퇴한 전함이 마지막으로 강을 거슬러 가는 장면을 감성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도 일출과 일몰은 빠질 수 없는 소재입니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소설의 일출과 일몰 장면 중 묘사가 뛰어난 것을 소개해 봅니다.
먼저 일출의 묘사를 보겠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입니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한 빛줄기가 수평선을 타고 퍼져나갔고, 이내 바다는 진주빛 광채를 띠기 시작했다. 태양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 빛은 노인의 주름진 목덜미를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진주빛 광채'와 '목덜미'라는 표현에서 자연의 신 '일출'이 평생 바다에서 고생한 '노인'에게 그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진주목걸이'를 선사하는 장면이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다음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입니다. "사막의 새벽은 신의 붓칠 같았다. 처음에는 검은 하늘에 보랏빛이 스며들더니, 점차 짙은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을 때, 모래언덕들은 마치 황금빛 비단을 두른 것처럼 빛났다."
신은 붓칠의 명수입니다. 신은 일출을 통해 검정색을 보라색, 붉은색, 황금색으로 점차 바꿔 놓았습니다. 또 몇 시간 후면 일몰을 통해 황금색을 붉은색, 보라색, 검정색으로 바꿔 놓을 테지요.
이번에는 일몰의 묘사를 보겠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한 장면입니다. "서쪽 하늘은 마치 용광로처럼 붉게 타올랐다. 구름들은 황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고, 그 사이로 지는 해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파리의 지붕들은 이 장엄한 빛의 향연 속에서 붉게 물들어갔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1988년 출간되었고,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1862년 출간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126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가 본 하늘 빛이나 파울로 코엘료가 본 하늘 빛은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같았습니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는 다른 빛으로 일몰을 묘사했습니다. <폭풍의 언덕>의 한 장면입니다.
"황혼이 찾아오며 하늘은 점차 깊어지는 자주빛으로 물들었다. 들판 너머로 지는 해는 마치 녹아내리는 쇳물처럼 붉게 빛났고, 황무지의 히스꽃들은 마지막 빛을 받아 검붉게 타오르는 듯했다."
자주 빛, 쇳물 빛, 검붉은 빛. 여성 작가라 더 섬세한 것 같습니다.
일출과 일몰은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일출과 일몰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바로 전기 때문이지요.
저는 요즘 베스 켐프톤이 쓴 책 <WABI SABI>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어 표현 '이치요 오치테 텐카노 아키오 시루 (一葉落ちて天下の秋を知る)'는 "한 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뜻으로, 변화가 곧 다가옴을 알아차리는 의미로 쓰입니다. 일본인들은 계절을 우리 삶의 자연적 리듬을 상기시키는 이정표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현대 생활에서는 이런 자연의 리듬이 자주 방해받습니다. 강한 인공조명으로 하루를 길게 만들고, 전자 기기의 청색광이 민감한 생체 리듬을 어지럽히며, 단순히 평일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이 쉴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를 무시하고 그저 계속 밀어붙이기만 합니다."
이제 우리도 일출과 일몰이 주는 지혜에 귀 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11.4.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