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비아는 현재 시리아의 타드무르에 있었던 고대 도시인 팔미라를 다스렸던 여왕이었습니다. 원래 그녀는 팔미라의 국왕인 오데나투스의 왕비였으나, 연회장에서 남편이 조카인 마에오니우스한테 죽임을 당하자 마에오니우스를 죽이고 자신이 남편의 뒤를 이어 팔미라를 다스리는 왕위에 앉았습니다.
제노비아는 자신이 과거 이집트를 다스리며 로마에 맞섰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에 의하면, 제노비아는 검은 빛을 띈 피부에 진주처럼 하얀 이와 크고 검은 색의 눈동자를 지녔으며, 목소리는 매우 크면서도 듣기 좋았다고 전해집니다. 아울러 그녀는 동방의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배웠던 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말하고 들을 수 있었으며, 시리아어와 이집트어에 라틴어까지 모두 터득하는 등 교양도 풍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노비아는 사막에서 사자와 표범과 곰 같은 맹수들을 사냥하거나 말을 타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병사들과 함께 수 킬로미터의 행군을 할 만큼 강인한 체력을 가진 여장부이기도 했습니다.
267년 남편인 오데나투스가 죽자 곧바로 왕위에 오른 제노비아는 당시 팔미라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이 극심한 내분으로 혼란에 휩싸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틈을 노려 로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할 기회라고 여겨 본격적으로 반란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제노비아가 보낸 팔미라 군대는 동쪽의 페르시아(사산 왕조) 군대와 싸우느라 힘이 빠진 로마군을 손쉽게 제압했고, 북쪽으로 시리아와 소아시아(현재 터키)를 점령하고 남쪽으로 팔레스타인을 지나 로마 제국의 영토에서 가장 비옥한 곡창 지대였던 이집트마저 손에 넣었습니다.
순식간에 로마의 동방 영토 대부분은 팔미라의 수중에 들어왔고, 기고만장해진 제노비아는 자신과 죽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바발라투스(Vaballathus)를 가리켜 로마 황제를 뜻하는 말인 임페라토르라고 부르며 272년에는 그의 초상이 들어간 동전을 발행하는 등 팔마리가 로마에서 완전히 독립한 나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제노비아가 이렇게 로마에 대해 노골적으로 맞서는 태도로 나온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팔미라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계 무역으로 인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부를 군사력에 투자하여 상당히 강력한 군대를 갖추었습니다. 또한 팔미라의 군대는 로마인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페르시아의 군대를 모방하여 사람이 말이 모두 두꺼운 갑옷을 입고 3.65미터의 긴 창인 콘토스를 사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중무장 기병 부대인 클리바나리가 주력을 이루었고, 여기에 오랫동안 로마 군대에서 활을 쏘는 궁수 부대로 유명했던 시리아인들도 제노비아가 로마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자 모두 팔미라 군대에 붙어버렸습니다.
아울러 제노비아는 지리적인 위치상 팔미라가 로마의 강적인 페르시아를 막는 지점에 있으니, 로마가 자기들 대신 페르시아를 팔미라가 제압하도록 일부러 내버려 두었을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팔미라의 독립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272년, 로마의 새로운 황제 아우렐리아누스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팔미라를 정복하기 위한 원정에 나섰습니다. 팔미라군은 272년 임마(Immae 터키 남부 하타이)와 에메사(Emesa 시리아 홈스)에서 두 차례에 걸쳐 로마군과 일대 격전을 벌였습니다. 두 전투에서 클리바나리 부대는 로마군의 유인에 말려들었다가 포위당해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에메사 전투에 투입된 팔미라군의 숫자는 무려 7만 명이었는데, 거의 전멸을 당하는 바람에 팔미라의 군사력은 대부분 날아가 버렸습니다.
승리한 여세를 몰아 로마군은 팔미라를 포위하고, 물과 식량의 보급선을 끊어놓았습니다. 이에 제노비아는 페르시아한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혼자서 낙타를 타고 팔미라를 빠져 나갔다가, 로마군의 추격을 받아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여왕이 포로가 되자 팔미라인들은 사기를 잃었고, 얼마 후 팔미라는 로마군에게 함락 당했습니다(273년). 그 후 팔미라인들은 로마에 맞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분노한 아우렐리아누스의 명령을 받은 로마군에 의해 대량학살을 당했고 팔미라도 철저히 파괴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제노비아는 로마로 끌려가 개선식에서 구경거리가 되었고, 그녀의 딸들은 로마 귀족 집안과 결혼을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다만 그녀의 아들인 바발라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로마로 끌려가는 도중에 죽었다거나 아니면 어머니와 함께 로마로 끌려와 274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출처: 중동의 판타지 백과사전/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127~129쪽
첫댓글 로마가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군요 팔미라를 짓밟아 버렸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