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파파스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창립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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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중국유학을 결심하고 중국에 발을디딘후 장춘중의학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중
수많은 선천성 심장병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실습중에 보았습니다.
한국인...
만주에는 또다른 현시대의 독립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이곳의 한국인들이 중국인 들에게 매우 불쾌한 감정을 심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 사정이 조금 좋다고 중국인 들을 무시하는 태도는 그들로부터 한국인들을 싫어하게 했습니다.
현대의 독립 운동은 총칼로 싸우는 시대가 아님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졸업 전까지 한 아이의 생명이라도 살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학비와 약간의 추가된투자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도 많았지만 나는 분명히 해야할 일이라 생각했고,
한국인의 기업이 이곳에서 뿌리 내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파스(papa's)는 아빠들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장병 어린이들의 아빠가 되어 주는 한국인으로 남아 이곳에서의 독립 운동을 하기로 계획 했습니다.
중국 거대시장에 가장 적합한 투자를 연구했고 지금의 파파스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투자는 수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배신과 중국 정부와의 대립은 나를 더욱 강하게 했습니다.
96년까지 개업을 하고 무려 3년을 한국인들의 영업장 출입을 금지 했습니다.
영업장 에서의 고성방가와 고스톱 판을 벌리는 한국인들의 추태가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술에 취해 종업원 들에게 반말과 욕설은 매일보는 풍경은 거의 매일 보는일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인 ....이제는 정말 교양있고 겸손한 한국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우리 파파스에서 사용하는 식품의 재료는 한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합니다.
설탕까지도....
회사에는 600명이 넘는 직원이 있지만 이곳에는 한국인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오로지 저한사람 만이 한국인이죠.
이곳에서 단한사람 한국인 유학생이 현지인들과 만들어낸 자생기업 이란 사실을 아셨습니까?
따라서 한국에는 모체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도
우리 파파스는 한국에 모체가 없다는 이유로 직원의 출장이 불가능한 어려움을 겪으며 다른 통로를 통해
필요한 물품들을 수입합니다.
그래서
슬픈일 들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대사관의 버린자식 취급등은 나를 많이도 울렸습니다.
회사가 중국정부의 몇몇 사람들 욕심으로 인해 공중 분해되고 한국으로 강제 추방이 되는 상황까지 간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억울한 사건이었습니다.
중국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의 생명을 찾자고 만들어진 기업에
그들의 개인 욕심은 너무도 거세게 나를 때렸습니다.
나에 대한 죄목은 학생 신분으로 취업을 했다는 것이었죠.
분명 나는 취업자가 아닌 회사의 법인 대표로 투자자 였는데 말입니다.
취업과 분명한 구분이 지어져 있음을 대사관을 통해 밝히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슬펐습니다.
피땀으로 만들어 놓은 한국인의 독자기업.
나를 도와 줄 수 있는곳은 한국정부 뿐이라는 서글픈 착각을 하였습니다.
이때 한국 정부와 대사관의 도움은 묵묵대답 그것 뿐 이었습니다.
대사관에 보낸 수십번의 팩스와 청와대에 하소연도 수십번...
각곳 언론사에 까지 수차에 걸친 도움요청 서신에도 말입니다.
오히려 이런 사정은 한국정부 어느 권력 기관의 직원들에게 빌미를 주어
귀국때 마다 협박으로 돈을 주지 않으면 않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매차 입국때 마다 초죽음되어 있는 나는 그들의 밥값과 술값을 주어야 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이때는 한국인이 되기 싫었습니다.
저는 혼자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싸웠습니다. 주먹으로 치고 코피가 터지고 칼과 몽둥이, 권총의 협박뿐만 아니라
야밤에 방화로 목숨을 잃을뻔한 아슬아슬한 일들을 모두 경험해야 했습니다.
나는 취업자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 라는 사실을 알리기엔 나의 힘이 역부족 이었습니다.
국가 최고 인민정부에 가서 분신의 투쟁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나는 이겼습니다.
지금도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한국 출장은 한국에 모체가 없는 이유로(자생기업 이기에)
영사관의 푸대접과 뻔히 알면서도 내뱉는 비자거부등...
우리는 철없는 정부 직원들로 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는 슬픔 속에서도 굳세게 살아갑니다.
이런 글들을 써 올리는 우리들은 괴로움이 앞섭니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한국의 정신나간 정부직원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외국의 기업들이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일년 평균 400만 달러의 수출효과를 가져오는 자생독자기업...
정부 직원들이 이회사를 도운적은 1원의 가치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함께 군림하는 자들이 되어 남아있는 이곳 중국의 현실에
우리는 슬퍼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한국인 기업인들이 서러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발
우리 외로운 한국 기업들을 지켜 주십시요.
이글을 이곳에 등재하는 목적을 살펴 헤아리십시요.
한국인은 당신들을 믿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국민들은 당신들이 골프장에 처박혀 살아가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한국기업을 지키려는 노고에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양심을 재조명 해야 합니다.
지금은
파파스의 초대형 분점들이 각도시에 18개나 있습니다
대부분이 직영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식품가공 공장이 있으며 농장이 운영되어 돼지와 채소를 자체 공급 합니다.
청바지패션 시장에 새도전장을 내놓고 한국시장의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종합병원을 개원 그 사업의 확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파파스는 이곳 불모지에서 기적을 이루는 한국인의 혼으로 남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파파스는 쓰러지지 않는 기업 입니다.
단한푼의 빚이 없는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경영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복리는 중국 최고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우리 회사의 급여는 일반 중국인들 급여의 두배가 넘습니다.
오래된 근무자에게는 집을 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 여행을 시키기도 하고.
3년이 되는 직원에게는 중국여행을 시켜주기도 합니다.
숙식을 100%제공 합니다.
옷을 주고 이불을 제공하여 주며 퇴직금과 보너스가 단하루의 오차도 없이 지급됩니다.
우리 파파스는 모든 직원들의 웃음이 다릅니다.
그들은 한국인을 보고 좋은 사람들이라 말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28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영업 이익금으로 수술 하였는데,
두명의 실패가 있었고 26명의 생명을 찾아낸 우리 한국인의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방학이 되면 모두 회사에 돌아와 일을하고 장학금을 받아갑니다.
그들은 26명의 형제들과 우애를 가지며 성장합니다.
8개월된 어린아이 부터 25살까지 모두가 우리의 아들 딸들입니다.
이 생명찾기 사업은 중단없이 계속되어 더욱더 많은 생명을 찾을것입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의 기업을 사랑의 기업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독립운동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시대의 독립운동은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중의 연구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의 신분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내는 한국인이 되겠습니다.
가족을 떠나 홀로 남아있는 이곳이 때론 외롭기도 하지만 이곳의 직원들과의 사랑 나눔이 행복합니다.
이제
가장 튼튼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기업으로 남아 있겠습니다
영원히
......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중국 장춘 " 파파스 홈페이지 " 에서 ...
nag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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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1
03.11.06 14:1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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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이거 TV에도 -->한민족리포트 중국파파스에 대해서 나왔었어여~! 제가 그러건 안빼고 봅니다.
또하나의 유태인 이라고 하던가요. 우리 한민족은 어디서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