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전투기'가 전 세계 방산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T-50을 지난달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잇달아 수출한 것이다. 수출 규모만 3600억원에 달한다. 록히드마틴·보잉 등 해외 방산업체가 주름잡고 있는 전투기 시장에서 '가성비 갑(甲) 전투기'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덕분이다. T-50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첨단 전투기다. 2005년 개발 후 현재까지 총 72대를 수출했다. 향후 10년 안에는 500대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코로나19 팬데믹에도 T-50과 함께 해외를 누빈 사람이 있다. 이번 수출 계약을 이끈 주역 '30년 베테랑 전투기 마케터' 신동학 KAI 수출혁신센터 캠페인리더1 실장(54)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KAI 서울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캠페인리더'라는 직책이 생소하다.
▷원래는 미국·유럽·아시아·중동 등 지역별 담당 조직이 여럿 있었다. 그중 이미 우리의 고객이거나 향후 고객이 될 확률이 높은 국가를 꼽았고, 이들 국가에 전념하기 위해 '캠페인리더'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었다. 캠페인리더는 1팀과 2팀으로 구성돼 있고 내가 속한 1팀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2팀은 태국과 필리핀을 담당한다. 캠페인리더 출범 이후 여러 성과를 거두고 있어 특별 조직의 운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캠페인리더의 업무는 무엇인가.
▷캠페인리더 2개 팀은 마케팅, 사업관리 등 수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마케팅을 전담하는 직원은 팀당 10명씩 있다. 흔히 '전투기 마케터'로 불린다. 각자 담당하는 국가가 있다. 그 나라에서 전투기 구매 의사나 계획이 있는지, 구매 입찰에 앞서 어떤 조건들을 요구하는지 등을 파악한다. 사실 한 나라에서 전투기를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국방 운영 계획이나 예산 등과 다 연관돼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케팅 전략을 세운다.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상'이 연상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듯 전투기 마케터들은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닌다.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고급호텔이나 대형빌딩 사무실에서 고객과 만나 격식 있게 대화하고 계약하는 일이 다반사다. 전투기 구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뒷돈을 건넨다든지 각종 로비를 한다든지 등의 불법행위는 전혀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영화나 드라마이다 보니 재미를 위해 현실보다 부풀려진 면이 많은 것 같다.
―전투기 판매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전투기 판매 과정은 매우 길다. 이 때문에 특정 국가와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행해지는 사전 작업이 많다. 우선 전투기 수요가 있는 국가(국방부·공군 등)에 대한 조사부터 이뤄진다. 그다음 현지에서 제품 설명회 등을 열어 마케팅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다 그 국가에서 전투기 구매 사업이 결정되면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는 예산이 얼마나 확보됐는지, 예산이 있다면 입찰 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등을 평가·분석한다. 이후 제안서를 제출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최종 협상을 거쳐 구매 계약을 체결한다.
―이번에 수출한 전투기에 대해 소개해달라.
▷지난달 말 태국과 계약한 제품은 기존 T-50을 기반으로 태국 공군의 요구에 맞춰 별도 제작한 기종이다. 이 제품은 고등훈련과 전술입문, 경공격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미 태국 공군 전투 조종사 양성 체계의 핵심 기종이기도 하다. 2023년 11월까지 2대를 납품할 계획이다. 앞서 태국은 이 기종을 2015년에 4대, 2017년에 8대 구입했다. 또 얼마 전에는 인도네시아에 T-50 6대를 추가 수출했다.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가성비가 좋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 점이 통했던 것 같다. 특히 이들 국가는 기존에 한국산 전투기를 사용하면서 '애프터서비스(AS)'에 상당히 만족해했다.
―동남아시아 국가가 주요 고객인 것 같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산 전투기를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2001년에 최초로 KT-1 기본훈련기를 17대 구매했다. T-50은 2011년에 처음 16대를 구매했고, 이번에 추가로 샀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가 많다. 다른 제조사들은 전투기를 판매하고 난 뒤에 신경을 덜 쓰는 경향이 있는데, KAI는 AS와 같은 후속 지원에 많은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태국도 예산이 생길 때마다 추가 구매를 하고 있다. 필리핀도 2013년 5월에 FA-50 12대를 구매했다. 필리핀은 반군 진압에 실제 이 기종을 투입해 많은 효과를 봤다.
―이들 'VIP 고객' 맞춤형 마케팅이 있다면.
▷동남아 국가에서는 K팝 등 한국 문화의 인기가 상당하다. 실제로 동남아 국가의 의사결정권자를 만날 때 간혹 자녀들 주라고 방탄소년단(BTS) 브로마이드나 CD 등을 선물하는 경우가 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단, 선물할 때 한 가지 '규칙'이 있다. 해당 상품에 현지어가 보이면 안 된다. 한국에서 샀다는 게 드러나도록 한글만 적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동남아 출장을 앞두고 가끔 명동 지하상가를 들르거나 시간이 안 되면 온라인을 통해 K팝 관련 상품을 산다.
―본인만의 마케팅 전략은 무엇인가.
▷사업 특성상 '장기전'이 많다. 그만큼 미리 선점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전투기 구매 사업이 시작되고 나서 뛰어들면 이미 늦은 거다. 사전에 해당 국가에 대한 마케팅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고객을 '리딩'하는 마케팅이 없으면 승산도 없다.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 세 가지 부분을 체크한다. 첫째, 그 나라의 전투기 구매 예산이 현실적인가. 둘째, 전투기 구매를 위한 공식 절차가 있는가. 셋째, 전투기 구매를 위한 전담 조직이 있는가. 이 세 가지를 확인하고 평가한 뒤 완급 조절을 하면서 마케팅을 벌인다. 그렇게 해서 입찰 자격 요건 중 하나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필요하다면 정부와 팀을 이뤄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정부와 팀을 이룬 사례가 있는가.
▷전투기 구매 사업을 진행할 때 정부 간 거래(GtoG)를 원하는 국가가 있다. 이 경우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패키지 딜' 형태로 참여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방위사업청과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 등을 통해 국방부, 공군과 함께 입찰에 참여하는 전략을 세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필리핀 국방부에 경공격기 FA-50 12대를 수출한 건이다. 당시 선진국들과 치열한 경쟁이 있었는데, 정부의 세일즈 외교를 비롯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방위사업청, 공군 등 관련 기관들의 부단한 노력 덕에 계약이 성사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면.
▷2006년 아랍에미리트(UAE)를 상대로 마케팅을 한 적 있다. 당시 UAE 측 요구로 현지에 전투기 2대를 보냈다. 그러고선 현지에서 3주간 평가 비행을 50회 했다. 혹서기 평가도 요구했다. 한낮 땡볕에 전투기를 장시간 세워놓고 비행해서 문제 없는지를 체크했다. 얼마 지나서는 UAE 측 관계자들이 방한해 한국에서 평가 비행을 50회 더 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고위층을 수차례 찾아가 설득도 했다. 그러다 결국 우선협상대상자로 이탈리아산 전투기를 선정했다. 이것저것 요구를 다 들어줬는데 구매를 안 한 것이다. 참 아쉬운 경험이었다.
―해외 출장이 필수다. 팬데믹 기간에는 어떻게 했는가.
▷작년 초 해외에서 마케팅을 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결국 도시가 '셧다운' 됐고 사업 중단으로 귀국하게 됐다. 그 이후로는 한동안 일감이 없었다. 그러다 올해 3월 다시 해외 출장을 갔다. 코로나19 백신도 못 맞고 3개월 동안 나갔다 왔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입국해 7일간 격리하고 일을 보다가 인도네시아에서 전투기 구매 사업을 재개한다는 정보를 듣고 곧바로 넘어갔다. 가서 또 5일간 격리했다. 격리 중에는 호텔에서 꼼짝도 못하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격리 기간이 끝나도 현지 상황이 안 좋아 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현지 국방부나 공군 관계자들과의 만남도 제한됐다. 어려운 여건에도 열심히 마케팅을 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 당시 출장 기간 동안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만 10번 이상 했다.
―향후 마케팅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T-50의 100대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추후 동남아·남미 등에 집중하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향후 5년 내 200대, 10년 내 500대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전 세계 무기 시장의 주도권을 서방국가들이 쥐고 있는데, 최근에는 그들의 비싼 무기가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즉, 가성비에 대한 요구가 커진 셈이다. 그러면서 한국산 전투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T-50은 록히드마틴의 '베스트셀러'인 F-16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끊임없는 원가 혁신과 고객이 요구하는 성능 개량만 뒷받침된다면 F-16 DNA를 보유한 T-50도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동학 실장은…
1967년 부산 출생이다. 부산대 생산기계공학 학사와 경상대 항공기계공학 석사를 마치고 1992년 삼성항공(현 KAI)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입사 후 KFP(KF-16) 사업 기술팀과 T-50 개발엔지니어팀에서 근무했다. '전투기를 만든 사람이 판매도 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2006년 수출팀에 발탁됐다. 이후 2014년 수출기술팀장, 2019년 해외사업2실장을 거쳐 수출혁신센터 캠페인리더1 실장을 맡고 있다. 한국산 전투기의 최대 고객인 인도네시아를 전담하며 K방산 수출의 선봉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송광섭 기자]
"국산 전투기 팔 때 BTS 음반 챙겨가면 반응 폭발"..신동학 전투기 마케터 (daum.net)
첫댓글 보라매때문에 미끼상품이라 그나마 주목받는걸 뭘또 금칠을 해대
같은 값이면 f16을 사지 미쳣다고 f50을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