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6.5.31) 말씀/ 빌립보서 3:12-17 큰 목표 작은 실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우리 신앙인은 현실 세계를 살아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그의 인생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였는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읽으려고 하는 이민규 교수의 하루 1% 변화를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change big, try small. 큰 변화, 작은 시도. 스티브 잡스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점들의 연속이다. 우리가 찍는 그 점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미래로 연결 된다.“ 점이란 것이 정말 하찮고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한 점, 한 점 찍다보면 어느새 거대한 꿈을 이룬 미래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꾸준한 작은 노력이나 실천이 사실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된 사람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님께 뒷 발질하던 그가 이제는 도리어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선교까지 도전했습니다. 구원을 받고 이정도까지 변화되었으면 정말 잘 한 것입니다. 칭찬할만합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도 잘 했지만 계속 성장 목표 도전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웅리도 성장 목표를 놓아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잘 한 것도 아직 된 것이 없고, 이룬 것이 없습니다. 다 미완성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우리는 계속 더 나은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자 하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바울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목표와 각오는 이 땅에서의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닙니다. 1억 고액 연봉자가 되고, 고급 아파크 빌라 마련하고, 불타는 벤츠 자동차를 굴리는 것이나, 승진해서 장 자리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번 삼성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려는 목표 성과급이 얼마인가 보니 개인당 6억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평생 만져보지 못할 액수에 파업의 목표로 걸었습니다. 세상의 목표는 거의 돈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가 최고 목표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좇아간다고 의지를 표현하였습니다(빌 3:12).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 완전히 잡히고, 삶의 목표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장 12절을 참조해 볼 때 잡힌바 된 그것은 구원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얻고 주님을 완전히 닮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온 천하를 얻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6억을 얻으면 뭐합니까? 이 땅에서 수고하며 성공한다 하여도 구원의 열매가 없다면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것을 성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목표의 방향성입니다. 그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죄와 싸우고, 구원뿐 아니라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부활의 영광이란 고상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신앙의 경주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3,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그의 목표점은 구원을 넘어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심의 상이었습니다. 즉 구원에 자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인정과 상을 받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과 소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신앙의 푯대를 바라보고 줄기차게 신앙의 경주를 하고자 각오를 했습니다. 그럴 때 현실의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분명한 목표, 구원의 완성,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것, 부르심의 상!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바울은 어떤 경주자의 자세를 가졌습니까? 그로 배울 수 있는 경주자의 자세 첫째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자존감이나 실패감 염려 두려움 등은 우리를 땅에 붙들어 매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대로 달리는 경주가가 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이루어놓은 업적이나 과거 실패의식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근본 안일을 사랑하는 죄악 된 본성이 있다면 버려야 하고, 습관으로 젖어 안주하려는 일정한 틀이나 형식도 버려야할 뒤에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은 신앙의 생명력뿐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의 의욕도 잃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 뒤로 물러서려는 마음 그것도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0:39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둘째는 앞으로만 나아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뒤엣 것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달려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육체는 후패 하나 우리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하였습니다(고후 4:16). 아멘. 육체는 늙고 썩고 쇠합니다. 그러나 정신이나 우리 영혼은 갈수록 새로워집니다. 늘 천춘처럼 살아야 합니다. 배움을 놓아서도 안되고 정신줄을 놓아서도 안됩니다. 하루 하루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경주자의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의 완성이란 푯대에 이를 수 있을까요? 거창한 목표가 있다면 구체적인 싱행 계획이 피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루 1%> 책에 보면 표지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change big? try small! ‘곁에 두고 읽는 책 괴테’ 책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생각은 크게, 실천은 작은 것부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크고 고상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큰 민족을 일으키시고 구속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단 한 사람. 그 다음에 이삭, 다음에 열 왕을 세우기 위해서 야곱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다음에 야곱의 열두 아들들,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애굽애서 민족을 키우셨습니다. 어떤 기자가 머더 데레사에게 어떻게 이렇게 큰 일을 하실 수 있으셨나요? 물으니 한 사람을 사랑으로 끓어 안지 않았으면 오늘날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 사랑으로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주교회를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그냥 구호를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작은 한 사람이 우주를 이루는 하나의 원소입니다. 작은 실천이 큰 목표를 이루는 비결입니다. 아멘! 꾸준한 작은 실천이 우리가 배워야할 지혜입니다.
1984년,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한 무명의 마라토너 야마다 혼이치(山田本一)가 우승컵을 차지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밀라노에서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그는 또다시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기자들이 비결을 묻자 그는 2년 전과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머리로 달렸습니다” 도대체 머리로 달리다니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비밀은 10년 뒤 선수생활을 은퇴한 그가 출간한 자서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출발선을 나서면 선수들의 목표는 40km 밖의 결승선에 걸린 깃발 이었습니다. 길고 긴 거리를 달리면서 선수들의 흥분과 긴장은 점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10km를 달리고 나면 이미 지쳐서 자신도 모르게 속도가 늦추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야마다 혼이치도 고민을 하였습니다. 머리를 썼습니다. 목표는 크지만 실천은 작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표점을 작게 나눈 것입니다. 주변 도로, 건물, 상표, 나무 등등, 한 코스 한코스를 목표로 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전력해서 달릴 수 있었고, 40km까지 마침내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재능 있는 선수도 아닌데 그가 1등을 한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점은 분명히 저 천국 맞습니다. 위로부터 부르심의 상은 최고의 목표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목표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목표는 크지만 실천은 작게 잡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어떤 일을 할 때 이 원리를 적용합니다. 특히 두꺼운 책을 읽을 때 20페이지, 40페이지 매일 하루치 분량만 정하고, 이렇게 꾸준히 하루 분량만 읽습니다. 그러면 몇 달 혹은 1년으로 결국 다 읽게 됩니다. 처음에는 답답한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어느새 두꺼운 책들도 끝이 보입니다. onr point 큐티도 하루 한 편씩만 연구하여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전권을 작성하는데 2년 반이 걸렸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이런 인내와 성실이 있었는가 의아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루에 점 하나씩만 찍으면 나중에 점들이 샇여서 긴 선이 되는 것입니다. 적금도 한 달 10만원씩 붙다 보면 금방 10년이 지나고 금방 13,00만원이 됩니다. 평생에 선심 한번 쓸 수 있습니다. 꾸준함은 비범함이 아니라 성실한 시간 싸움입니다.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과거에 비범하지 못한 것에 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 자식들은 비범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세 명이 태어났지만 아무도 비범한 아이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평범했습니다. 시골에서 다 3년제, 2년제 전문대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엘리가 저를 조금 닮은 점이 조금 있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편이었습니다. 3년제 간호전문대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친구들이 한 둘 한 둘 주변 병원에 취업해서 일을 시작 할 때 엘리는 새벽 전철을타고 3교대 중대 병원을 다녔습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생기가 발랄하고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돈은 벌어도 이렇게 살면 아무것도 아니겠다 싶어 사직서를 내고 아산병원 연구센타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시 퇴근을 서울의 4년제 애간 대학을 편입해서 주경야독을 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졸업 후 울산 전문 간호대학원을 들어가 전문을 더 넓혔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가다 보니 대학원에서 강의도 해달라고 요청이 오고, 일본, 호주, 뉴질랜드 세미나까지 다니게 되고, 틈틈이 공부한 일어 덕에 원장 통역까지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열 명의 후배 간호사를 지도하는 매니져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일을 잘했는지 인정을 받아서 올해는 또 보건 복지부상까지 받았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너 참 대단하다, 목포 과학대를 나와서 개천에서 용났다. 그렇습니다. 평범해도 꾸준히 하나씩 하나씩 도전하고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change big? try small! 본문 예화 속의 마라톤 선수 혼이치도 다른 마라톤 선수들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선수였지만 큰 목표를 작은 구간으로 잘라서 실천하여 성공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만약 처음부터 결승지점을 염두에 두고 달렸다면 금방 피로를 느꼈거나 아예 자신감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목표설정이나 이를 실천하는 비법이 그리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그저 평범하지 않습니까? 세상적으로 대단하지 않지만 인생의 큰 목표점 푯대만큼은 위대하고도 자랑스럽습니다. 그 푯대는 하늘입니다. 위로부터의 부르심 하늘의 상,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이 목표 설정만으로도 이미 대박 인생입니다. 다만 큰 목표도 구체적인 작은 실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믿음의 자세, 분명한 푯대와 뒤로 물러서지 않는 자세 그리고 평범한 마라토너 혼이치가 실천했던 방법, 괴테가 우리에게 주는 충고! 생각은 크게 실천은 작은 것부터! 배울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꾸준히만 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우리의 지향하는 푯대를 너무 멀리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너무 높고 멀면 놓쳐버리고 현실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첫 사랑의 감격과 은혜 속에 시간이 점점 흘러가다 보면 하나님 나라는 너무 먼 것처럼 생각되고, 주님의 재림이 무척 더딘 것처럼 느껴집니다. 롯의 처와 같이 뒤돌아보게 됩니다. 데마와 디도처럼 사역을 떠나 세상 길로 가는 사람도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표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그 목표를 현실로 가져와서 잘게 자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카톨릭 평신도 단체 레지오 마리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제시한 39단계 실천론이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계단도 한꺼번에 꼭대기에 이를 수 없지만 계단을 통해 하나씩 오르면 마침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출애굽의 역사를 보면 60만 대군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얼마나 감격하였습니까? 그들은 가나안을 향하여 희망찬 진군을 하였습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에게는 하늘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광야의 길이 길어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점점 현실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불평불만이 생기고 가나안은 이들의 마음과 눈에서 멀리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으니 목표도 흔들렸습니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나안에 도착하기도 전에 중도에서 넘어지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훈련하신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날마다 하루치 일용할 양식 큐티를 거두는 훈련이었습니다. 이틀 치도 아닙니다. 이틀 치를 거두면 썩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막연히 먼 목표만 바라보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사는 현실의 목표를 설정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훈련을 받으며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번 재중집사님이 고백하였지 않습니까? 매일의 하루 큐티 말씀을 새기고 댓글을 쓰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그것이 하루 하루 목표 달성입니다. 우주교회는 그냥 거대한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 사랑으로부터 시작돕니다. 천만인을 먹이는 것도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 오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으로 걷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워도 마침내 저 천성 목표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의 경주자입니다.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닙니다. 마침내 사도 바울처럼 경주를 마치고 승리자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디모데 후서 4:7-8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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