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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온 몸을 은빛 솜털로 치장하며 솟아 오르는 꽃 붉은 루비의 꽃잎과 노란 꽃술... 그러나 피어서 미안하다는듯 고개 숙여 피는 꽃. 그토록 아름다우면서도 부끄러워하며 얼굴 들지 않는 꽃. 할미꽃을 보려면 바쁜 마음 멈춰야 되고, 무릎을 굽혀 쪼그리고 앉아야 하고, 훌쩍이는 아이의 얼굴을 보듯 가볍게 꽃의 턱을 받쳐 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손 끝 하나 대지 않고 할미꽃 눈높이에 내 눈을 맞추려면 화분에 옮겨 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화분은 계단 위나 높은 곳일수록 좋고, 화분의 키는 클수록 좋겠죠. 모든 야생화가 거의 다 그렇지만 그중에도 할미꽃은 정말 화분에 키우기 어려운 꽃입니다. 워낙 끔찍하게 물을 싫어하는데다가 그늘하고는 거의 상극입니다. 땅에도 심어보고, 분에도 심어보고... 거의 해마다 할미꽃을 심어 봤지만 꽃만 겨우 피워내고는 이듬해 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봄이 오면 그 어떤 꽃 보다 보고 싶은 할미꽃... 백화사 능선길 무덤가에서 김감독이 보았다는 할미꽃... 아직도 나오려면 한 달이나 남았는데 보고 싶은 마음에 야생화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미꽃을 찾아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고 다니는데 그 중 한 집에서 할미꽃 있다면서 나를 안내 했습니다. 뒤뜰로 따라가 확인해 보니, 뾰록하게 올라온 꽃잎이 토종하고는 확연히 다른 개량종 할미꽃이었습니다. 이건 토종이 아니고 개량종인데... 하자, 아유, 아자씨! 이것도 꽃 나오면 무쟈게 이뻐요 했습니다. 에이...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안이쁜게 어딨어. 아줌마도 여자니까 이쁘다고 우기시지...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발걸음을 돌려 나왔습니다. 속칭 개량종이라는 것들... 하나같이 왜 그렇게 천박한지 모르겠습니다. 꽃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하느님이 점지해 주신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손에 의해서 합성되어진 유전자 조작은 틀려먹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의 섭리를 거슬리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안 나왔을 거라는거 뻔히 알면서 단골 야생화집 <풍전>에 들렸습니다. 지금은 없는데 며칠만 시간주면 구해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나하고는 7,8년 야생화 단골인 풍전 아줌마... 항상 웃는 얼굴에 막걸리 잘 마시고 사람 참 좋습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작년에 본 손주놈의 사진을 핸드폰 액정화면에 넣어 다니며 지난번에 보여 줬는데도 요놈이 우리 손주에요. 이쁘죠? 이쁘죠? 하십니다. 얼핏 보면 시골 촌 아낙 같지만, 겪어보면 전혀 딴판이십니다. 서울 진명여고 응원단장 출신의 끼순이인 데다가 노래또한 절창입니다. 언젠가 아줌마하고 비오는 날 가게에서 서울 막걸리를 홀짝거리다 발동이 걸려 이웃의 야생화집 아줌마들하고 노래방을 갔었는데... 와,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를수 있는지... 부르스 추는데도 착착 감겨오고... 이건 놀아도 보통 놀아본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가끔 간장절인 고추도 손 크게 비닐 봉지에 담아주시고, 김치도 갖다 먹으라 그러시고... 장사 수완도 별로 없으시고, 그저 꽃이 좋아 꽃하고 사시는 분입니다. 도저히 장사가 안돼서 강원도 봉평에 야생화 농장터를 구입하여 올해 그쪽으로 이사를 가신다고 했을때 어찌그리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어차피 뜰에 봄단장도 할겸 기왕이면 아줌마네 꽃을 팔아줄 심산으로 화원 비닐하우스 안쪽까지 구석구석 살펴 보았니만 딱히 고를 만한 꽃은 없었습니다. 아줌마 역시 팔아주고 싶은 내 눈빛을 읽은 듯, “봉평 농장에 싣고 가느라 화분이 많이 빠졌어요. 봄꽃은 너무 일러서 안 갖다 놨구요. 옆집에 가 보세요 ” 하셨습니다. <풍전>을 나와 그 옆에 붙어있는 <지혜 장미원>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대문 옆 큰 함지박 화분에 심을 꽃을 몇 판을 고른 후, 나가다가 화원 입구쪽에 세워놓은 하얀 꽃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뭐냐고 물었더니 명자나무라나... 아니 명자도 이렇게 하얀 꽃 피우는 년이 있습니까? 예... 고년은 고렇게 하얗게 피어요. 다른 꽃나무들은 모두가 요놈 저놈인데 명자만 요년 조년입니다. 선뜻 흥정을 끝내고 2만 5천원에 명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삽질한번 거하게 했습니다. 대문옆에 있던 능소화 두 그루를 뽑아 버리고 하얀 명자를 심었습니다. 심다보니 이왕 심는거 명자 한그루를 더 심고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풍전>쪽에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아주머니 집에 명자 있어요? 예, 있어요! 아주 빨간건데 종자도 좋고 이뻐요! 아줌마가 자신있게 좋다고 하면 좋은 것입니다. 잘 됐다. 뽑힌 능소화는 아줌마 갖다 드리고... 대충 손을 씻고 능소화 두그루를 집사람 차에 싣고 다시 꽃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잔뜩 기대했던 <풍전>에 있는 명자는 키 큰 명자가 아니라 거의 분재에 가까운 키 작은 명자였습니다. 아... 이거 아닌데... 울타리 옆에 심을건데... 움마... 나는 화분에 심는거 찾으시는 줄 알고... 미안해서 어떡해요. 약간 김이 새서 돌아서 나오려다가, 키 작은 명자면 어때? 키는 곧 클건데... 그리고 무엇보다 달려있는 꽃이 종래에 보던 명자하고는 확연하게 달리 이뻤습니다. 허구헌날 이랬다, 저랬다하는 이 마음... 키 작은 명자를 가지고 와서 적당한 간격을 두고 키 큰 하얀 명자 옆에 심었습니다. 내친 김에 겨우내 쌓여있던 빈 화분들을 털고, 씻고... 화분들을 나래비로 도열시켜 놓고, 어떤 화분에 어떤 꽃을 심을까 심사숙고 했습니다. 10여년 꽃 삽질 끝에 깨달은 나름대로의 철학. 멋쟁이는 구두를 잘 신어야하고, 꽃은 화분을 잘 만나야한다. 꽃 색깔에 맞춰 화분들을 골라 심기 시작했습니다. 화분을 물로 깨끗이 씻고, 마사토를 깔고, 분재용 거름을 흙과 비례하여 넣고, 이른 봄날 기분좋은 꽃 삽질... 목조각가 신명덕이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 큰 나무를 깍다보면 작은 조각들이 남잖아요. 밤에 어떨때 소주한잔 마시고 그 나무조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나무조각들이 이렇게 얘기 하는것 같아요. 이대로 쓰레기로 버려지는건 싫어요. 저도 좀 깍아 주세요. 뭐든지 그럴듯한 나로 만들어 주세요! 깍아줘요... 저도! 저도... 겨우내 할 일 없었던 빈 화분들이 내 귓전에서 웅성거렸습니다. 나도 꽃 심어 줘요! 나도 예쁜 꽃 심어줘요! 오냐 알았다... 차례대로 기다리렴아... 그렇게 대문 옆에서 꽃을 심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중년의 사내와 중년의 여자 두사람이 내렸습니다. 꽃이 너무 예뻐서 구경 좀 하겠다며 이웃에 이사온지 얼마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옆에 서 있는 남편을 핀잔주듯 당신 저렇게 꽃 예쁘게 심을수 있어? 하니까... 아... 내가 어떻게 저렇게 해! 전문가신데...하는 말에 우쭐했습니다. 그래서 심다 남은 포트의 꽃 두송이를 선물하고 점잖게 이렇게 훈계조로 얘기 했죠. 나도 소시쩍에 아파트 생활 할 때는 오늘 저녁엔 어느 소문난 집에 가서 맛있는 개고기를 띁을까에만 관심 있었고 꽃 같은것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근데 단독주택으로 이사오고 손바닥만한 뜰이 생기니까 관심이 가져지드라. 꽃 심는거 별거 아니다. 거꾸로만 안 박으면 된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어쩌구 하면서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 날... 마음잡고 원고를 쓰면서도 간간히 쨈쨈히 조금이라도 안 풀리거나 막히기라도 하면 눈앞에 할미꽃이 흔들거렸습니다. <풍전>에서 할미꽃 구했다는 연락은 없었습니다. 전화해서 닦달하기도 그렇고... 대충 오늘의 작업량을 마무리 해 놓고 옷 챙겨 입고 할미꽃 구하러 이번엔 서오능에 쪽에있는 야생화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집이건 할미꽃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때되면 나오겠지 안달할게 무에 있냐... 발걸음을 집 쪽으로 돌리려다가 문득 작년에 <천보식물원> 옆집, <옛터>라는 야생화집에서 보았던 화분에 담겨져 있던 동강할미꽃이 떠올랐습니다. <옛터> 아줌마는 남편은 사진작가고 열무김치 담그는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언젠가는 인근 밭에서 열무를 밭떨이 한다길래 열무 값은 내가 내고, 양념 넣어서 담그는건 아줌마가 하고... 열무김치를 담아서 유호 선생님께 갖다 드린적도 있습니다. 그 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오다가 작년에 이곳에서 친견 할 수 있었던 동강할미 꽃! 아직도 살아 있으려나... 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야리야리 하다는 표현을 잘 쓰는 옛터 아줌마... 동강할미 있어요? 있죠! 어디 있어요? 아줌마가 가리키는 손 끝에서 동강 할미꽃은 쌩쌩 살아 있었습니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예쁘고 넓은 토화분에 담긴 채 내가 한동안 잊고 있던 그 곳, 그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꽃이 피려면 멀었습니다. 전설의 꽃 푸른 양귀비를 닮은 그 짙푸른 꽃 잎... 동강 할미꽃! 너무 귀한 꽃이라 감히 팔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꽃! 그것은 동강할미를 욕되게 하는 말... 또 팔라고 해서 팔 아줌마도 아닙니다. 나보다 열배는 더 동강할미를 사랑하는 아줌마니까.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내가 딱해 보였는지 한 말씀 하셨습니다. 동강할미 쟤가 씨로 내리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얼마전에 보니까 새끼를 쳤드라구요. 조기 동강할미 발 끝 보세요. 새끼하나 생겼죠? 아줌마가 가리키는 손 끝을 보니 동강할미의 치맛자락 앞에 어린 동강할미가 자라 오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 새끼 한촉 파 드릴테니까 한번 키워 보실래요? 끔찍하게 나를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 잠시 머릿속이 혼미해지는것 같았습니다. 그냥 할미도 아닌 동강할미가 내 수중에 들어오다니! 그러나 꽃도 못 보고 죽일거 뻔한데... 나는 곧 정신을 차렸습니다. 남들 다 들 잘 살리는 할미꽃도 해마다 쥑이는 주제에 내가 무슨 용빼는 재주로 그 까다로운 동강할미를 살린담? 에이... 포기다.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련다. 됐어요... 가져가도 저는 도저히 살릴 자신이 없어요... 아줌마는 두 번 다시 권유하지 않았습니다. <옛터>를 나오면서 아줌마... 밥도 한 숟가락 달랑 퍼주면 정 없어유. 두 번은 얘기해 보셔야지유... 하는 아쉬운 마음 감추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강할미 피는 날 전화 주세요. 꼭 보러 올게요. 꼭요! 강릉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친한 친구가 면회 한번 와 달라 그렇게 애원해도 이 핑게 저 핑게 바쁘다고 생전 면회 한 번 안가는 놈이... 친구야 미안하구나. 집에 오는 길에 풍전 아줌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미꽃 구했다고! 파주에서 야생화 농장하는 아줌마 친구가 노지에서 키운 할미라고 했습니다. 한 10여촉 될려나... 내가 키워 본 할미꽃 중에서는 가장 건강해 보이고 튼튼해 보였습니다. 만원만 달라는거 2만원 쥐어드리고 나왔습니다. 할미꽃에는 딸네 집에 와서 기저귀 빨래에 설거지... 온갖 궂은 일 다하고 가는 구부정한 허리의 친정엄마 얼굴이 깃들어있습니다. 그 애잔하고 처연함의 미학... 할미꽃 새 순은 왜 이리도 억장이 무너지는 자주빛인지... 행여 불면 꺼질까 올라온 새싹들이 진무르지 않게 조심스레 화분에 옮겨 담았습니다. 고개 숙여 더욱 더 아름다운 꽃, 할미 꽃! 정성을 다 할테니 부디 만수무강 하소서! * TV 드라마 『황금사과』의 김운경(북극여우) 님 *
첫댓글 희망찬 사월의 봄이 활짝~ 벙개님. 싱그러운 봄날에 좋은 일들이 가득 하시고 희망찬 한달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벌써 사월의 첫날이군요 봄의 기쁜 소식을 나눠주시는 황아타나시오 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기쁘고 싱그러운 봄날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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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