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바래봉 철쭉 산행기 (2009.5.10)
1. 남행길의 아침은 부산스럽고 소란했다.
전날 밤 늦게 지승일 총무로부터 문자가 왔다. 버스가 신도림역에서 6시에 출발하므로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에서 승차하라고… 그래서 5월 10일 아침 일찍 출발해 나가 기다렸으나 우리의 대절버스는 예정보다 25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그래도 지총무 능력이 대단하다. 밤사이에 계약했던 금성관광 대신 초정관광으로 차량을 바꾸어서 수배하고, 보험도 바꾸고 안내지도에 넣은 운전기사 전화번호까지 다 바꾸어서 준비를 해왔으니 말이다.
어쨌든 집결장소인 양재역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을 태우고 예정보다 약간 늦은 7시 10분경에 출발하였으며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에 닿아서 1명을 더 태운 뒤, 죽전에서 기다리는 4명을 더 태우기로 했다. 톨게이트에서 우리 일행은 한국도로공사 사무실의 화장실을 단체시찰(?)하고 승차하였다.
그런데 모처럼 만난 친구들끼리의 인사와 여러 가지 이야기, 총무의 진행상황 체크 등의 소란에 취하여 눈 깜짝하는 사이에 버스가 ‘죽전버스정거장’을 쭈~욱 지나쳐 버렸다.
죽전정거장에서 기다리는 염영철과 명진호 등 4명을 호출하여 사정을 전하고, 녹십자연구소 부근의 보쉬건물 앞으로 오라고 했으나 ‘조금만 걸어오라’, ‘택시타고 오라’, ‘고속도로를 걸어서 오라니 큰일 날 소리다.’ ‘빈 택시가 없다’, ‘자가용이라도 얻어 타고 와라’ 등등 난리가 났다.
기다리다 못하여 최현용이 자가용을 잡아타고 거꾸로 출발했으나 그 사이에 4명은 다른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반가운 인사 끝에 “야, 이거 난리치며 오는 통에 오렌지박스를 하나를 택시에 놓고 내렸잖아? ” 염사장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날 간식시간에는 반으로 줄어버린 20개의 오렌지로 반쪽식 나누어 친구의 우정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ㅎㅎㅎ )
죽전으로 마중을 갔던 최현용은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혼자서 돌아왔다. 비록 길이 어긋나 허탕을 치고 시간이 더 걸리기는 했지만 이 얼마나 따뜻한 우정이더냐?
이렇게 소동을 겪으며 30분정도 시간을 지체한 까닭에 미안해 진 기사는 속력을 더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내 달렸고 집행부에서 준비한 따끈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조용하게 잠이 들어서 어디쯤을 가는지도 몰랐지만 버스는 금산휴게소(인삼랜드)에 도착하여 화장을 고치게 했다.
그 후에도 버스는 조용한 가운데 흔히 ‘대통령고속도로’라고들 하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거쳐 함양JC에서 연결된 88올림픽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아영을 지나 ‘지리산IC’를 빠져 나와 인월을 지나는데 멀리 지리산의 연봉이 뚜렷하여 가슴이 뿌듯하였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골 마을이라 아영이나 인월에서는 벌써 이른 모내기가 끝난 상태였다. 이앙기를 이용하여 깨끗하게 마무리한 논들에는 물이 들어 밝은 햇살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2. 정령치에서 바래봉을 향해 나아가다
운봉고원은 해발고도가 400~500m에 이르는 고랭지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인 지리산 국립공원의 서북쪽 접근로이다. 운봉읍을 가로 지른 뒤, 가파른 가운데 굴곡이 심한 고갯길인 정령치(1172m)를 내려오는 대형버스를 조심스럽게 비켜가며 올라 11:50경에 정령치휴게소에 닿았다.
[ 정령치휴게소에서의 스트래칭 ]
길게 줄을 서서 화장을 고치고 나니 12시가 넘었는데 이종율 전 회장의 지도로 10분간 스트래칭을 하고, 지리산 연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박은 뒤, 12시 25분에 트래킹을 출발했다. 선두 대장은 이종율, 후미는 염영철이 수고하기로 하고 각각 워키토키 주파수를 맞추었다.
[ 정령치에서 지리연봉을 배경으로 찍은 단체 사진]
이날, 하늘은 청명하고 녹음이 점점 더해 가는 산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러웠다. 고리봉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육덕이 좋은 르노와르의 여체처럼 풍성한 만복대(1433m)와 그 산허리를 지나는 찻길이 뚜렷하다. 시선을 옆으로 옮겨 송신안테나가 뚜렷한 노고단(1507m)을 확인하고 그 앞에 우뚝한 반야봉을 살펴보니 이건 뭐 거대한 육산인 지리산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다.
밝은 5월의 태양 아래 신록으로 치장한 반야봉과 중봉, 삼도봉이 나란하고 그 아래로 많은 침식곡들이 빨래판의 주름처럼 줄무늬를 이루고 있으니 참으로 장관이다. 소소한 여러 계곡을 아우르면서 깊이 침식한 달궁계곡이 그 아래로 형성되어 있는데 산이 높고 큰 까닭에 아래의 계곡은 끝까지 시선이 닿지 않으니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
[ 반야봉과 중봉 뒤로 첩첩이 겹쳐진 지리산의 연봉들 ]
고개를 돌려서 능선의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조금 전에 차를 타고 지나 온 운봉고원의 너른 들판에는 물을 댄 논이거나 비닐하우스로 덮힌 농경지가 온통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덕산저수지 뒤로 수정봉이 눈에 들어오며 그 너머로 다시 장수군의 팔공산, 장안산, 백운산 등 육십령 쪽으로 이어지는 남덕유산 줄기의 산들이 겹겹이 이어져 그야말로 첩첩 산중을 이루면서 아스라하다.
[ 운봉고원과 장수쪽의 덕유연봉 ]
3. 지리연봉의 장관으로 눈이 호강하다
산죽이 가슴 높이까지 자란 좁은 능선 길을 벗어나니 좌우로 떨어지는 사면과 그 아래의 계곡, 그리고 그 건너로 펼쳐지는 또 다른 산줄기와 계곡들을 훑어보면서 고리봉(1304m)에 오르게 되었다. 고리봉에서 한숨 돌리며 지리산 줄기들을 살펴보면서 기념사진들을 찍었는데 남쪽으로 달궁 계곡 건너 산너머로 깊이 패인 줄기가 뱀사골계곡임을 확인하였다.
[ 맨 뒤의 줄기가 천왕봉에서 동서방향의 지리산 연봉 ]
뱀사골 뒤로부터 하늘 끝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니, 서쪽의 노고단으로부터 삼도봉, 명선봉(1586m)이며 벽소령, 칠선봉, 영신봉, 세석평전, 연하봉, 장터목을 거쳐 동쪽의 천왕봉(1915m)에 이르는 지리연봉(智異連峰)이 뚜렷하기도 하다. 아~ 이런 장쾌한 경관을 눈에 담고 가슴으로 즐기기 위하여 이곳 지리산자락을 찾는 것이다.
고리봉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오늘의 목적지 바래봉은 정말 바리(놋쇠로 만든 밥그릇)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그 앞의 분홍색 융단이 바로 팔량치 철쭉밭이라고 지승일과 김경배가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런데 “바로 저기야. 이제 금방이야.” “길도 평탄하니 얼마나 좋아.” “이건 고속도로야. 고속도로”를 입에 달고 선도하던 지승일은, 이날 늦은 하산 길에 바래봉 하늘에 화살처럼 떠돌던 무수한 비난의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을 것이다.
[ 멀리 능선 끝의 바래봉을 바라보다 ]
[ 팔량치와 바래봉 근접 사진 ]
세걸산으로 가는 능선길의 북사면에서는 꽃잎이 뒤집혀진 까닭에 시선을 끄는 얼레지 군락이 자주 눈에 띄었다. 자주색 꽃이 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얼레지는 산의 기름진 곳에 자생하는 것이라 이곳의 토질과 생태계가 양호한 것을 말해 주는 셈이다.
[ 얼레지 꽃 ]
[ 산죽과 얼레지 군락 ]
세걸산(1216m)에 가까워지면서 오른쪽 발아래로 떨어지는 시선에 오룡대 아래의 반선마을에 있는 덕동초교 부근 곡류부가 빠끔하게 보였다. 모처럼 달궁계곡이 그 바닥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뱀사골에서 명선봉쪽으로 침식한 와운골의 산 중턱 마을인 와운마을도 뚜렷하게 보였다. 시선이 닿는 곳은 온통 산으로, 산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 사는 마을 형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강하게 시선을 끄는 것이다. 그러니 6․25때도 이곳 오지로 숨어든 빨지산의 활동이 오래 지속되었다던 곳이 아닌가?
[ 지리연봉 아래, 달궁계곡의 바닥인 반선 마을이 보인다 ]
세걸산 가까운 능선에서 만난 괴목은 약 1m 높이의 T자형 굵은 고목 위에 다시 여러 개의 줄기가 곧게 솟아 마치 삼지창이나 포크를 세워 놓은 듯하여 두팔을 치켜 든 괴력의 헤라클래스를 떠오르게 했다. 이곳 지리산의 마천이 무대인 변강쇠의 화신인가?
[ 눈길을 끄는 괴목 ]
그때 햇살이 부담스러운 여성회원이 빨간 양산을 들고 바위틈이거나 좁은 숲길을 막고 앞에 서 가니 뒷사람 눈을 찌를까봐 걱정도 되고 쳐다 보기에도 거추장스러워 보였는데 얼마 후에 앞으로 나서더니 금새 사라졌다가 다시 그 앞 능선에 나타났다. 그때 들리는 악~ 소리의 주인공은 이창민인데 “으악~ 저 아줌마는 양산이 아니라 낙하산을 타고 가는구나. 저렇게 금새 봉우리를 건너뛰는 것을 좀 봐…”
정령치에서 3.8km를 왔고 앞으로 바래봉까지는 5,6km가 남았다는 세걸산 표지판에서 고윤영 일행이 앞서 나갔다. 세걸산에서도 웅혼한 지리산 줄기의 산악미를 즐기면서 사진기에 담기에 바빴다. 앞으로는 바래봉이, 뒤로는 정령치에서 성삼재로 이어지는 만복대의 찻길이 아스라했다.
4. 간식 겸 점심으로 입을 즐겁게 하다
신입 멤버 김병수는 진작에 버스 태워 바래봉으로 보냈지만 이종찬을 비롯하여 산길이 서툰 친구들이 있어서 아직 반도 못 왔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고 출출하니 세동치와 부운치의 중간에서 나무 그늘이 진 넓은 곳을 찾아 점심 겸 간식을 먹기로 했다.
이날도 친구들을 위하여 준비한 다양한 음식들이 선보였다. 김밥은 물론 떡복이, 도토리묵 요리, 쑥버무리 떡, 매운 낙지볶음, 빵과 사과, 포도, 참외, 방울토마토, 오렌지 등의 과일들이 소주와 복분자주, 막걸리와 함께 돌고 돌았다.
[ 장쾌한 지리산. 좁은 계곡에 발달한 하부운 마을이 보인다.]
[ 산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철쭉 터널 ]
[ 곳곳에 나타나는 산죽의 터널 ]
세동치 아래 능선에서는 무성한 활엽수림의 수관이 몽실몽실하여 마치 정글을 내려다보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부운치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우측 사면 아래에 하부운 마을이 뚜렷하게 보였다.
5. 이창민의 너스레가 귀를 즐겁게 하다.
“애들아, 우리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공부는 안했지만 그래도 지적수준이 럭비선수들 보다는 훨씬 나았다니까... 하하하” , “ 럭비 하는 아이들은 한자로 자기 이름도 못 썼다니까 글쎄~ ㅎㅎㅎ ” “야 ○○야 솔직히 너는 50등 했지 않냐~ ?”, “우리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좋은 친구 만나서 이렇게 편하게 하루를 즐길 수 있겠나? ” 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구수한 이야기들 ... 지승일이 총무 일을 맡아 바쁘다 보니까, 넉살좋고 입심좋은 이 창민이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지 모두들 웃느라고 지루한 줄을 모르고 걸었다.
[ 특유의 너스레로 산길을 간지럽히던 친구 ]
6. 산상의 화원에서 선남선녀가 되어 노닐다.
이곳 능선의 우거진 관목 길은 마치 터널과 같았는데 밀생하는 철쭉의 희끗희끗한 잔가지가 얼마나 무성한지 하얀 철쭉 줄기가 빼곡하여 5~10m 앞이 보이지가 않았다. 달걀모양의 철쭉 잎은 아직 다 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 우거진 관목터널은 마치 열대해안의 맹그로브숲을 연상시킨다. ]
그런가 하면 조리를 만드는 재료라 하여 조릿대라고 부르는 산죽이 터널을 이루고 있기도 하였는데 이곳을 벗어나 팔랑치(1010m)에 이르자 확 트인 시계(視界)에 군락을 이룬 철쭉과 산철쭉 꽃이 활짝 피어 산상 화원을 이루어 놓았다.
팔량치 전망대에서는 하얀 철쭉과 진홍색의 산철쭉 꽃무더기를 배경으로 나이를 잊고, 선남 선녀가 되어 사진들을 찍고 찍히면서 늦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저녁 6시가 다 되었으니 언제 내려가서 저녁을 먹고 상경할 것인가? 식당을 예약한 버스 기사는 재촉 전화를 계속해 대고… 시간 차질이 많아지자 걱정이 된 선두대장이 배낭을 벗어 놓고 가던 길을 되돌아 와 재촉을 했다.
7. 참꽃과 개꽃 이야기
얼마 전에는 심한 봄 가뭄으로 전국이 가물어서 한참 걱정이 컸었다. 그런데 어렵게 살았던 예전에는 가을에 갈무리해 두었던 곡식이 떨어지는 봄에 들에 돋아나는 씀바귀나 쑥과 같은 나물이나 송구 같은 나무껍질을 먹거나 술 찌개미를 얻어먹었던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흔히 말하던 보랫고개를 넘으면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이어가던 어려웠던 이른 봄에 산에 피는 진달래 꽃은 허기진 시골 아이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또한 진달래 꽃은 술을 담아 마시기도 하며 화전놀이의 화전(花煎) 재료가 바로 이 꽃이었다. 민간에서 강장, 이뇨, 건위 등에 약으로 쓰인다. 그렇게 좋은 꽃이라서 '참꽃'으로 불렀다.
[ 산철쭉 꽃밭이 펼쳐진 산상의 향연 ]
그러나 철쭉의 경우, 꽃잎에 진달래에 없는 찐득 찐득한 점액질이 나오는데 이를 먹으면 점액질이 소화를 교란시키고, 설사를 계속하게 되어 탈수를 유발, 목숨이 위험하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식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이 있는 철쭉을 ‘개꽃’이라고 불렀다.
8. 운봉고원의 면양목장과 철쭉군락
축산장려책을 썼던 박대통령의 지시로 일찍이 1970년대에 운봉고원에서 면양을 사육했던 적이 있다. 대관령 부근의 삼정평고원에서는 소를 사육하였고... 그래서 대관령에는 대관령축산고등학교가 있고 이곳 운봉에는 운봉축산고등학교가 있다. 해발고도가 높은 이곳 운봉고원은 여름에도 서늘하여 모기가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면양을 방목하기 위하여 벌목(伐木)을 하고 초지를 조성하였는데 이곳에 방목되었던 양들도 철쭉에 강한 독성이 있음을 알고 먹지 않아서, 철쭉 군락이 우점종(優占種)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까닭에 늦은 봄에 철쭉이 개화하면 해발 500m부터 정상부까지 고도에 따라 시차를 두고 피기 시작하여 거의 한 달간 장관을 이루는 까닭에 철쭉제를 개최할 수 있는 것이다.
[ 낙조의 역광이 비치는 운봉고원 ]
바래봉 삼거리에서 하산 길로 접어들었는데 발아래 운봉읍 용산리에는 옛 축산기술연구소 운봉면양시험장 부근에 바래봉철쭉축제 행사장이 꾸며져 있었다. 하산길에 내려다 보이는 운봉고원의 남천 건너편으로 성산(537m)의 자태가 아름다운데 그 뒤편으로는 통인재와 KT고남인중계소가 보이고 검붉은 낙조(落照)와 함께 겹겹의 덕유산 줄기가 짙어가는 해그름에 잠기고 있었다.
9. 늦은 출발에 의도하지 않은 '1박 2일'
근무지인 울산에서 올라와서도 한달에 한번 있는 백등회 산행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이재찬은 대구에서 온 등반팀 차량을 수배하여 그들과 함께 내려갔다고 했다. 저런 식사도 못하고…
출발시간이 늦었으니 저녁을 먹지 말고 그냥 올라가다가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식사를 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저녁 먹고 천천히 출발하는 쪽이 더 좋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 운봉고원의 바닥면이 가까와 진 하산길 풍경 ]
늦어진 하산 길은 7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흑돼지요리가 특징인 유미네식당에 도착하였다. 지리산 흑돼지고기를 덤성덤성 썰어 넣은 김치찌개로 저녁 식사를 하고 소주로 입을 가시고 8시가 넘어서야 출발하였다.
대전을 지나서부터 길이 지체되더니 천안부근에서는 더욱 밀려, 운전기사가 입장IC에서 국도로 내려섰다. 그러나 국도라고 뭐 그리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차도 많지만 곳곳에 신호등이 막고 있으니 말이다. 오산부근의 주유소휴게소에 들러 맥주를 1박스 보충한 뒤에 출발한 버스는 오산IC에서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가 이번에는 막힘없이 달렸지만 자정이 넘은 12시 반쯤 서울(양재)에 닿았다.
길이 막혀서 도착시간은 늦어졌지만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웅혼한 산세로 눈과 가슴을 씻고 돌아 왔다는 충만감과 중간 중간에 지정 가수와 함께 일반 지원자로 섞어서 가무를 들려 주며 놀았기 때문에 비교적 지루하지 않게 올 수 있었다.
캔맥주 박스를 제공했던 김건혁, 이종찬, 운영비를 지원해 준 고윤영과 황재원 회장, 알뜰하게 진행한 지승일 총무, 친구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준 너스레의 주인공 이창민, 안전산행을 이끌어 준 이종율, 염영철 등등
총무가 걱정하던 “택시비 100만원”의 공갈이 현실화되어 자정 넘어 심야할증료까지 감당해 가면서 함께 했던 백등회 친구들아 모두 고맙고 또 고맙구나.
10. Now & Here 냐? No Where 냐?
“이번 산행코스는 해발고도 1000m 지점인 정령치까지 버스로 다 올라가서 계속 평지길을 걷는 거니까 거저야 거저~ 날로 먹는 등산이라고~ ” “바로 저기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우리가 가는 바래봉이야. 이건 얼마나 쉬워 보이냐?”
출발하기 전부터 현장의 능선에서 까지 이어지는 지승일의 큰 소리에 순진하게 속아서(?) 바로 저기 보이는 산이라고 우습게 알고 따라 나섰던 일부 초보 산꾼들이, 빼꼭히 들어선 키 큰 관목숲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8시간에 걸쳐서 10km 이상을 걷자니,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하여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야, 이거 사기(詐欺)아냐? 시골 할아버지들에게 길을 물어 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가도 가도 빤히 보이기만 하고 끝이 없는 거야?” “아 글쎄, 그 사이에 누가 또 바래봉을 저 만큼 뒤로 옮겨 놓았지?
그러나 친구들아! 비록 감언이설에 속아서라도 산행을 따라 나왔으니까 이렇게 시리도록 맑은 하늘 아래,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의 주맥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고, 곳곳의 철쭉과 진홍색 산철쭉으로 눈요기를 하는 것은 물론, 고산지대에 형성된 조릿대(山竹) 숲도 걸어보는 것 아니겠나?
지금 여기서 바로(Now & Here) 하지 않으면, 그런 기회는 어디에도 없는 것(No Where)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다음 달 산행에서도 다시 보자고...
첫댓글 ㅎㅎㅎㅎㅎ 정말 자세하게도 재미있게 쓰셨군요...ㅎㅎㅎ 백등회의 산행기를 읽다보면 우정의 깊이와 산행의 연륜이 느껴집니다...재미있게 읽고 바래봉을 3년 만에 다시간 느낌입니다...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산행기를 작성해 올리는 까닭에 제가 맡아서 쓴 글을 올린 것입니다. 139회의 산행에 대한 산행기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작성되었다는 것도 대단한 기록입니다.
산행후기를 요렇게 자세하게 재미있게 쓸수있을가 ? 나도 함게 바래봉을 다녀온것 같구려.
선배님 건강하시지요? 사진과 함께 재미있게 읽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