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동안 썼던 몇편의 글중에서 전쟁영화와 관련된 몇가지 글들을 옮겨 왔습니다.아울러 본인이 즐겨듣는 영화음악도 같이 링크해놓았으니 편안하게 감상하십시오
1940년 노르웨이가 독일군에 함락된 이후 노르웨이는 독일의 병참기지로서 활용되었으며 깊은 산악지대와 피요르드 곳곳에 군수물자 생산공장이 만들어졌습니다.
1942년 초 영국의 정보부는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로부터 긴급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오슬로 서쪽 TELEMARK지방의 VERMOK에 있는 Rjukan마을 인근에 있는NORSK HYDRO 공장에서 독일군의 경비가 강화되고 있고 아마 중수(HEAVY WATER)
를 생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정보였습니다.
원래 NORSK HYDRO공장은 깊은 계곡에 위치하여 수력에 의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역할을 하는 공장이었으며 이러한 설비를 이용하여 독일은 은밀히 원자폭탄 및원자로생산에 필수적인 중수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중수,중수라고? 과연 거기서 생산되고 있는게 사실인가?"
영국의 정보부는 그 정보를 확인하기위해 부산하게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와 접촉하였고 결국1942년 가을 NORSK HYDRO공장에서 중수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최종 확인하게 됩니다. 이미 독일의 원자탄 개발 연구소가 있던 페네문데를 공습하여독일의 원자탄 개발계획을 거의 저지시킨 줄로만 알고 있던 영국 정보부는 결국노르웨이의 중수생산 공장에 대한 파괴공작을 세우고 영국 제1 공수사단에서 31명의 병사를 선발하여 그 공장을 폭파하기로 결정합니다.
1942년 11월20일 OPERATION FRESHMEN이라 명명된 작전명하에 두대의 핼리팩스기는31명의 병사가 탄 글라이더를 견인하여 노르웨이로 날아갔고 목표인 중수공장 인근에 도달하였으나 구름이 너무 많이 끼고 목표물을 발견키 어려워 상공을 배회하다강하예정지점으로부터 30KM 덜어진 곳에서 글라이더를 견인하던 로프가 끊어지게
되고 결국 글라이더는 산악지대의 언덕에 충돌하여 탑승자17명중 9명만 생존하게됩니다.
이들은 곧 독일군에게 발각되었고 4명의 중상자는 독일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들은 스파이로 취급되어 모두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독일군은 이들에게 혈관에 공기를 주사하여 모두 사망하게 되고 나머지 5명 역시 총살당합니다.
다른 글라이더에 탔던 14명의 병사들도 처음 추락한 글라이더 인근에 착륙하였으나이들 역시 독일군에 포위되어 생포되었고 모두 수용소에서 처형당하였습니다.
첫번째 작전이 실패하자 그 임무는 영국의 SOE(SECRET OPERTION EXECUTIVE)가 담당하게 되었고 SOE는 ROYAL ENGINEER AIRBORNE COMMANDO에서 훈련받은 노르웨이 저항세력의 구성원들을 투입하여 다시 NORSK HYDRO 중수공장 폭파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OPERATION GUNNERSIDE로 명명된 작전명하에 암호명 Grouse로 불리는 4인의 특공대는노르웨이군 출신의 Claus Helberg를 대장으로 하여 1943년 2월 27일 저녁 중수공장인근으로 침투하였고 이들은 인근 약속지점에서 암호명 Gunnerside로 불리우는 5명의 특공대와 접선하였고 이들은 Knut haukleid가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산악지대 곳곳에 매설한 지뢰를 피해 이들은 야간에 은밀히 철로를 따라공장이 위치한 VERMOK로 이동하였고 마침내 공장이 위치한 VERMOK의 RJUKAN에서깍아지른듯한 절벽위에 위치한 공장후면으로의 침투를 개시,절벽을 올라 갔습니다.
공장에 침투하기 전 이들은 이미 1차로 생산된 중수가 인근 호수에서 선박에 실려독일로 수송예정이라는 정보를 전달받았고 이에 특공대의 GUNNERSIDE팀의 지휘관Knut Hauklid는 급히 2명의 병사와 함께 그 선박이 정박하고 있다는 호수로 달려갑니다.
당시 그 공장의 초소 및 내부에는 30명의 독일군이 경계중이었으며 바로 옆에 독일군300명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특공대6명은 공장으로 들키지 않고 공장내부로 침투하였고 중수생산설비에 폭약을 장치하고 다시 공장외부로 빠져 나옵니다.
이윽고 폭탄이 폭발하자 특공대는 로프를 절벽아래로 던져 내려갔고 독일군은곧 이들의 추격에 나섭니다. Claus Helberg와 특공대원들은 스웨덴쪽으로 탈출하기시작하였고 독일군은 3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설원에서 대추격전이 벌어 집니다.
스키를 이용하여 탈출하던 특공대는 1943년 2월28일 오전이 되자 뿔뿔이 흩어지게되고 claus는 독일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미리 정해놓았던 산악지대의 오두막에도달하나 거기서 독일군에게 생포됩니다.
한편 작전 다음날 오전 KNUT HAUKLEID외 2명의 특공대원들은 중수수송이 예정된호수의 부두에 도착,중수수송 예상선박에 폭탄을 장착하게 됩니다.이때 이들은그 배에 노르웨이 민간인들도 약간 탑승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망설이게 되나 결국시한폭탄을 장착하게 됩니다.
결국 중수를 싣고 호수를 출발 피요르드를 따라 항해하던 선박은 폭탄이 폭발하여중수와 함께 깊은 물속으로 침몰하였고 KNUT와 특공대원들은 무사히 탈출하게 됩니다.
생포된 CLAUS는 독일군에 의해 오슬로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거기서 또 다시탈출을 감행하여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와 합류, 전쟁이 끝날때까지 독일군과싸우게 됩니다.그와 같이 탈출을 시도했던 특공대원들중 4명은 실종또는 전사하였습니다.
KNUT HAUKLELID는 전후 노르웨이의 영웅이 되었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은 그에게많은 훈장을 수여하였으며 전후에도 KNUT 는 노르웨이군에 남아 근무하다 준장으로
예편합니다.
OPERATION GUNNERSIDE는 1965년 허리우드에 의해 HEROES OF TELEMARK라는 제목으로영화화 하였고 KNUT역은 커크 더글라스가 맡아 열연하였습니다.또한위 사진은현재의 NORSK HYDRO공장의 모습으로 기념관으로 변모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영화 텔레마크의 영웅들은 실제 내용과 약간 차이나기도 하나 비교적 사실에 근접하게제작된 전쟁영화로 국내에서 오래전에 여러번 방영되었습니다.
특공대원들은 설원에서 스키를 이용하여 탈출하기 시작하였고 독일군 역시 스키를 이용 이들을 추격,마치 007 영화속과 같은 설원에서의 대추격전이 벌어졌고 특공대원들은 뒤쫓아 오는 독일군을 향해 기관총을 쏘면서 탈출하는 영화같은 장면들이 전개되었으며 독일군마저작전의 대담성에 놀란 작전이었기에 더욱 영화소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전이었죠.
당시 노르웨이 특공대의 이 용감한 작전에 의해 독일의 원자탄 개발계획은 좌절되었기에 OPERATION GUNNERSIDE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 작전이었습니다.1942년에 있었던체코총독 하이드리히 암살작전이었던 OPERATION DAYBREAK와 함께 잘 알려진 작전으로 OPERATION DAYBREAK역시 잘 아시다시피 영화화 되어 국내엔 새벽의7인이라는제목으로 소개되었죠.
작전당시까지 독일의 원폭개발 능력은 아직 초기수준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지만 어쨌든 그들은 최선을 다한 용감한 사나이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