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0월현재 지리산을 192회 가보았지만 지금도 지리산에 갈려고 배낭을
꾸릴때는 언제나 신이나고 설레이고 즐거운 미소가 지어진 답니다
2000년초 영등포역에서 밤에 기차를타고 남원이나 구례구역에 갈때는 별것도 아닌데
왜그리 신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당시에는 이현우님 송동선 김수훈님등 함께가는 일행이 있을때도 좋았지만 일행이
없을때에도 즐겁기만 했답니다
특히 새벽에 구례구역에 내려서 구례로 들어가는 버스를 탈때는 옛날 뉴스나 TV에서
가끔씩 보았던 6.25때 보따리를멘체 흥남부두나 함흥철수 작전모습이 생각이 났답니다
지리산가는 묵직한 배낭을멘체 구례구역에서 (순천 승주땅) 구례읍내로 10여분간정도
타고가는 버스를 서로먼져 탈려고 한참동안 난리를들 쳐댓습니다
등산객들은 모두들 구례 공용터미널에서 근한시간쯤 기다리면서 아침밥도먹고 김밥을
사가지고 노고단입구인 성삼재에가는 버스를 탄답니다
40여분 올라가는 성삼재의 구비구비 비탈진 66개의 고갯길을 앉아서 가겠다고 나란히선
줄을 어떤者 하나가 끼어들면 질서를 지키고 줄을선 사람들만 바보가 된답니다
구례구 역앞에서 30000 만원을주고 4명이 합승해서 성삼재로 가기도 한답니다
구례구역은 순천땅 이기에 순천택시들만 구례구역 앞에서 대기할수 있기에 구례택시들과
다툼도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성삼재 정류장에 내려서면 캄캄한 새벽이기에 렌턴을켜고 스틱을 조정하고 모두들
아주 바쁘답니다
그리고 터미널에서 스틱을 안갖고왔네 김밥을 의자에 놓고왔네 소리도 들린답니다
스틱 김밥 물등 소지품은 언제나 배낭에 묶어두든가 배낭속에 넣어야 안전하답니다
기차가 곡성을 지나면서 구례구역에 가까워지면 배낭을메고 출구쪽을 향해서
바쁘게 나가는 사람들이 여럿이 보이기도 한답니다
프렛트 홈에서 뻘리가서 구례로가는 버스를먼저 타겠다고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그좋은
등산복 바지가 찢어져 버리고 무릅에서 피가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어린이날이나 8.15때나 추석연휴나 크리스마스때 같은때는 구례구 역에서
구례읍내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3대까지도 간다고 하였습니다
서로먼져 탈려고 몸싸움을 하듯이하는 사람들과 어렵게 버스를타고 한참을
가던중 어떤 젊은이가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 스톱 스토옵 기사님차좀 세워주세요 "
급하게 버스를 타면서 쌀과반찬이든 코펠 보따리를 안가지고 탔다고 했습니다
하기야 나도 2002년 6월에 월드컵 기간중에 작은누나네 큰아들 송재종과 지리산을
종주를 한다고 정읍 - 광주 - 구례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내리면서 그당시 최고급 코오롱 코펠가방을 차에두고 내려버린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재종이가 갖고올줄 알았고 재종이는 내가갖고 오는줄 알았습니다
다행히 우리들의 뒤에앉았던 키도크고 잘생긴 젊은이가 갖고내려서 뒤에서
" 아저씨 지리산에 가시지요 이것없으면 밥못해먹어요 "
하였습니다
" 참으로 고맙습니다 깜박했네요 배낭속에 넣었어야 하는데 그랬네요 "
하면서 고마운 악수를 하였습니다
O. 제가 지리산에 가장많이 다닌코스는
1.함양 마천 백무동 - 장터목산장 - 천왕봉 - 중산리나 대원사
2.구례구역 - 성삼재 - 노고단 - 뱀사골산장 - 연하천산장 - 벽소령산장 - 세석산장 -
장터목산장 - 천왕봉 - 중산리나 대원사
화엄사 - 노고단 - 지리산 주능선
3. 남원역 - 인월 - 뱀사골(반선) - 화개재
인월 - 실상사 - 7암자
인월 - 삼정 - 삼각고지 - 연하천산장
인월 - 삼정 - 벽소령산장
4.진주역 - 원지 - 덕산 - 중산리 - 법계사 - 천왕봉
거림 - 세석산장 - 장터목산장 - 천왕봉 - 중산리나 대원사
5. 구례구역 - 피아골 - 임걸령 - 반야봉 - 뱀사골산장 - 벽소령산장 - 세석산장 -
장터목산장 - 중산리나 대원사
화개장터 - 쌍계사 - 의신마을 - 삼정마을 - 이현상격전지 - 벽소령산장
원대성 - 대성골 - 남부능선 - 음양수 - 세석산장
피아골 삼거리 - 연곡사 - 직전마을 - 화개재
쌍계사 - 불일평전 - 불일폭포 - 상불재 - 삼성궁 - 청학동
악양소상공원 - 고소산성 - 활공장 - 상불재 - 삼신봉 - 세석산장
등을 주로많이 다녔습니다
그외에도 빨치산들이 가장짧은 시간에 가장많이 몰살된 대성골 - 영신대 - 세석산장
추성리 - 칠선계곡 (우리나라 3대계곡 2위:설악산 천불동계곡 3위: 한라산 탐라계곡)
벽송사 (6.25때 빨치산 야전병원) - 선녀굴 - 안락문
쌍계사 - 칠불사 - 토끼봉
쌍계사 - 범왕 - 연동골 - 화개재
쌍계사 - 의신 - 빗점골 - 토끼봉
대원사 - 윗새재 - 청이당터 - 천왕봉
유평 - 치밭목 - 중봉 - 천왕봉
피아골 - 질매재 - 문수대 - 노고단
싸리샘 - 왕시루봉
금서 - 구형왕릉 - 유의태약수 - 왕산 - 필봉
덕산 - 달뜨기능선 - 웅석봉 - 밤머리재
밤머리재 - 왕등재습지 - 청이당터 - 천왕봉 등등 수없이 많답니다
O. 제가 잠잣던 산장들 (대피소)
1. 장터목산장 : 30 여회 (오문근 이현우님 오희근 오광덕 김광석님)
저는장터목 산장에 10 회정도만 돈을냇고 20여회는
늦게 도착했기에 잠자는 공단직원을 깨울수가 없었기에
여름에는 제침낭카바 겨울에는 제침낭으로 공짜로 잣답니다)
2. 세석산장 : 10 여회 (송재종 김남일 송동선 이현우님)
3. 뱀사골산장 : 8회 (송재종 이현우님 오문근)
3. 연하천산장 : 7회 (김남일 심상환 김진수 박중재)
4. 벽소령산장 : 6회 (오희근 심상환 송동선 오문근 이현우님)
5. 치밭목산장 : 5회 ( 김남일 이영진님 공용철님 김수훈님 배민형부부)
6.피아골산장 : 3회 ( 송동선부부 김수훈님)
7. 노고단산장 : 2회 (오은경엄마 김연주 교수등 오프넷회원 20여명)
8.로타리산장 : 0회 (중산리 등산로 초입이기에 내게는 숙박이 불필요)
O. 제가 지리산에서 텐트를 쳤던곳들
1. 백무동 야영장 3회 (오프넷모임 오점수님 )
2. 세석평전 1회 (오점수님)
3. 장터목산장 3회 (오점수님)
4. 밤머리재 2회 (태극종주와 사전답사)
5. 성삼재 1회 (태극종주)
6. 만복대 2회 (심상환 이영진님 김진수)
7. 뱀사골 2회 (단독)
8. 자빠진골 1회 (심상환 박중재)
9. 선비샘 2회 (단독)
10. 연하천 5회 (김남일 심상환 박중재 김진수 )
11. 달궁야영장 1회 (이영진님)
12. 덕두산 1회 (심상환)
13. 연동골능선 1회 (이영진님 공용철님 김진수)
14. 청학동 10회 (박형배총재네 호수산장 숙박24회)
15. 형제봉활공장 1회 (단독)
16. 빗점골 1회 (이영진님 공용철님 김진수 故김성진)
17. 영신대 1회 (이영진님 공용철님 김진수 조규필 정봉기)
조만간에 꼭 텐트를 쳐보고싶은곳은 (토끼봉제외 비지정등로)
18. 영랑대
19. 토끼봉
20. 반야중봉
21. 청학연못 (동절기 얼음판위에서)
O. 저를 따라서 지리산에 갔던사람들
송재종 : 1회 2박3일 지리산종주 (작은누나 큰아들)
오문근 : 1회 3박4일 지리산종주 (친척조카)
오희근 : 1회 2박3일 지리산종주 (아들 2003년 27사단 중위때)
이현우님 : 3박4일 지리산종주등 7회 (연습장 친지)
김광석님 : 장터목1박 (이현우님 후배)
심상환 : 지리산 남북종주등 14회 (군동기생)
송동선부부 : 중산리 1박등 5회 (소성 항골 후배)
오광덕부부 : 나의 지리산100회 행사등 2회 (큰집조카)
정한영 : 송정분교행사등 2회 (직장후배 순창)
이선미 : 장당골등 2회 (직장후배)
오점수님 : 나의지리산 100회등 4회 (친척아저씨)
오영임 : 나의 지리산 100회 1회 (친척조카)
김남일 : 나의 지리산 100회등 2회 (작은사위 화대종주)
조문환 : 나의 지리산 100회 1회 (軍중대원)
김교관님 : 나의 지리산 100회 1회 (청우산악회 회장님)
지용준님 : 청학연못 등2회 (부천성주산)
정기창 : 청학연못 1회 (부천성주산)
박찬호 : 장당골 1회 (부천성주산)
김진수 : 남북종주등 7회 (녹두산악회총무)
박중재 : 남북종주등 2회 (신후 오프넷 후배)
권영문 : 송정분교행사 1회 (강화도 삼성야구투수 권오준 부친)
유승의 : 송정분교행사 1회 (강화도 권영문 친구)
배민형부부 : 치밭목등 1회 (오프넷 회원)
강화도 나들길회원5명 : 1회 (오점수 아저씨 부탁)
고심봉 : 천왕봉 산청 중산리 1회 (고교동창 구례)
고재석 : 천왕봉 산청 중산리 1회 (고심봉친구 구례)
유종철 : 장터목 산청중산리 1회 (호중동창 춘수리)
이준동목사님 : 천왕봉 산청 중산리 1회 (목사님 고양출신 2000.1.양쪽신장이 망가져서
죽음을앞둔 3남매의 엄마에게 외쪽신장 하나를 떼어주신 훌륭한 목사님 입니다
그엄마는 이목사님네 교회신도도 아니었답니다 45년생인 이준동 목사님은 저를따라서
북한산 도봉산등 서울근교와 강화도 철원등 32개의산을 함께 올랐습니다)
나의 지리산 선생님 두분
이영진님 : 나의 지리산 100회등 약50여회 (나의 지리산 선생님) 전북 장수 농협전무역임
(21세때부터 2020년까지 지리산 900여회 등정)
덕유산아래 장수군 계북면 출신인데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남원에가서 기차를 구경했다고
하였습니다
1남5녀중 장남인데 장수 장계중 장계고에서 1등을한 수재였으나 아버지가 안계셔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은 꿈도못꾸고 고교졸업후 농협시험에 응시하여 우수한성적으로 합격하였답니다
농협에서받은 월급덕에 여동생넷을 대학교에보낸 훌륭한 오빠이기도 합니다
계북 초등학교때 이영진님때문에 항상2등을 하였던 친구는 서울법대를 나와서 판사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진도 사진작가 수준이고 군대를 안갔다왔어도 독도법도 혼자터득한 수재였습니다
전국의 유명한산은 거의다 몇번씩 올라가본 대단한 산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리산이 좋아서 오프넷덕에 온라인에서 만났지만 초등동창 이상으로 절친하답니다
2004년 가을부터는 전주에가서 아중리의 오케스트라라는 찜질방 에가서자면 언제나 새벽에
이영진님의 차를가지고 찜질방앞으로 왔답니다
이영진 전무님의 차를타고 지리산의 곳곳과 덕유산 황석산 거망산 금원산 기백산 등등 남쪽으
많은산을 100번도넘게 타고다지만 언제나 휴발유가 가득찻다고해서 기름을 한번도 못넣어
주었답니다
그런말씀을 할려면 지리산에 오지세요라고 하였습니다
어쩔때는 당일치기로 올라가는게 서운한 눈치가 보이면 이전무님은 자기는 찻속에서자고
나에게는 자기차 트렁크에든 텐트를 쳐주어서 텐트속에서 자기도 하였답니다
어떤때는 오케스트라 찜질방에서 2-3일씩자고 지리산이나 덕유산 또는 장수나 무주 진안의
여러산도 연달아서 데리고 다니기도 여러번 하였습니다
아래 공용철님과는 호흡이 아주 잘맞는 둘이는 좌파성향 이기에 정치적인 문제는 저와는 서로
정반대편 이지만 산행에서는 호흡이 잘맞는 아주 이상적이고 낭만적인팀을 이루고 있답니다
공용철님 : 나의 지리산 100회등 약30 여회 (나의 지리산 선생님) 의사 삼천포 한마음 요양병원장
(22세때부터 2020년까지 지리산 1000여회 등정 83년도에 수능340점만점때 309점
내신성적 1등급으로 서울대의대에 합격하였으나 부산대에서 데모하다가 집시법으로
19개월간 부산교도소에 복역한전과 때문에 불합격처리 되었답니다
그래서 서울대 총장님을 찾아가서 항의하였더니 그당시에 최고의 권력기관이던 보안사와
안기부의 지시로 불합격 처리했다고 하드랍니다
공용철님은 교도소에서는 데모하다 왔다고 다른수형자들에 비해서 많이봐 주었기에 할일이
없기에 교과서와 참고서를 가지고 19개월간 공부만 열심히 하였드랍니다
그후 지리산 곳곳에서 방황하다가 고향인 양산군청에서 9급공무원을 하다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은후 35세에 부산고신대 의대에 입학한 참으로 대단한 중봉 공용철님 입니다 )
중봉 공원장님도 제가 지리산이나 남쪽어느 산에서 야영을한후 남쪽에 내려온후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지 안는다는걸 알기에 지리산 어느곳으로 갈려느냐고 물으면서 50-60km를
자기차로 태워다 준답니다
2009년에는 26만원짜리 미제 에어메트를 2017년에는 32만원짜리 켐프라인 등산화를 택배로
보내주면서 최소한 85세까지는 자기들과 함께다니자고 하였답니다
저는 어쩌다가 지리산에서 이영진님과 공용철님을 만낫는가 모르겠답니다
녹두산악회가 산정상에서 야영하는날은 언제나 박경리의소설 토지에 나오는 가난했던
그시절의 풍경과 내어린시절에 어머니나 아버지를 따라서 잔칫집에 갔던것 같답니다
(그리고 텐트 침낭 코펠 께스 물이든 무거운 배낭을 배웅나와서 짊어다주는 박찬선 원장님
김종목 계장님 정봉기 주임님과 송동선 아우에게 한없이 감사드린 답니다
몇년전 지리산 왕시루봉 계곡에서 내배낭을 5번이나 메어다준 박찬선님 참으로 고맙답니다
허리가넘는 낙옆과 발등높이의 계곡물에 지칠데로지친 그날은 지리산에 197번을 다니면서
그런 고생은 처음이었 드랍니다)
그외 2006년 태극종주때 (산청 덕산 사리 - 남원 인월 흥부골까지 98Km) 격려해주신 54분들과
하해님 (오프넷 주인) 정진원님 (오프넷 운영자) 故오영희님 (섬호정 워싱턴) 선경님 (토론토)
故최화수님(부산 국제신문) 김창현님(김현거사 진주) 김태성님(솔메거사 부안) 위동량(부도옹 동탄)
박찬선 故김성준 서인석 우제언 유형창님부자 김종목 정봉기 조규필 황소영(검은별) 신혜림(진천)
김연주님(능선샘교수) 김용규님(삼천포교장) 석재규부부님(공수 쌍재) 정연기 (슬기난) 서상일(진로)
자유부인님(광진엄마) 이혜영(해연 서울대 독문과 지리산 둘레길작가 光州) 아낙네S 여인(서울) 강미성(안동)
안나프르나님 (光州) 얄루 (부산 동훈엄마) 들꽃님 (위상엄마) 카오스님 (서울) 이안님 (서울) 소주한잔(예천)
군자봉님 (부천) 정해성(성남소방) 전군(천안) 막사발님 (부산) 이봉신님 (부천) 두레네집 (토지) 더레드님 (미국)
산유화님 (서울) 볼프강님 산사나이 서한태 님 (순천소방) 북창님 김종광 구름모자님(전주) 故이철언님(만복대)
故한상첱님 (서울) 강희창님 (때까치) 에코님 (전주) 카오스(서울) 박용희님(서울) 정진도님(15기 군후배 서울)
타타타 (서울) 닭과계란 (이천) 등등 다수의 여러분들께 심심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20년넘게 아쉽고 궁금것은 오프넷 1년사용료 70만원을 한번지불 하겠다니 마음만 받겠다는 목포가
고향이라는 안개속의 하해 오용민이 대단히 궁금하답니다
정진원님은 전화로는 여러번 통화했지만 오용민님은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게 신비롭답니다
이책이 나오면 받을곳을 전처럼 메일로 묻겠습니다
정진원님은 순천이든 선암사든 언제든지 오프넷을 초대해 주시면 제일로 어른이신 김현거사님까지
모시고 갈께요
녹두산악회가 야영하듯 백무동 야영장에서 제회갑 잔치를 하듯이 부담을 안드릴것 이니까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그때는 하해 오용민님도 참석해 주시면 아주 좋겠습니다
오프네 모두가 궁금해하고 보고싶은 얼굴이니까요
기억을 다못해서 오프넷의 빠진분들께서는 해량 바랍니다)
O.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등 숙박하는산에 갈때에는 (준비물)
1. 배낭이 넉넉해야 좋습니다
모든 휴대품을 전부배낭속에 넣어야 분실될 우려가 없습니다
것옷 수건 카메라 등
2. 필수 구급약과 하절기 벌레퇴치제 비닐로된 접이식부채
3. 꼭 필요한것 만으로 배낭을 꾸리세요
4. 충전기 보조밧테리
5. 커피 사탕 물티슈 휴지등은 넉넉히 갖고가세요
산행중에 만나는 사람들과 친밀감유대를 위해서 입니다
6. 2박 이나 3박을 한다면 거기에맞게 먹을것을 준비하세요
미리 종이에 품목을 적어두고 여러번 살펴보고 그품목데로 배낭을 꾸리세요
쌀은 종이컵 8할 정도에 한끼로 계산해서 챙기세요
가을 겨울 초봄 이라면 쌀을씻어서 채반에 받혀서 물기를뺀후 갖고가면
편리하고 밥도 더맛있답니다
집에서 한두번 코펠로 밥짓는 연습을 해보는것도 좋을것 입니다
산에서 먹을때는 햇반과는 비교가 안되게 맛있을겁니다
7. 감자나 양파 마늘도 마른수건으로 흙만잘닦고 그냥갖고 가세요
씻어갖고 껍질을 벗겨가지고가면 상한답니다
8.간장 각종기름등은 쓰고난 프라스틱 약병등에넣고 비닐로 두번정도 감싸세요
넘어져도 깨지지 안거든요
9. 사과 배 참외 포도 귤등은 무거우니까 잘생각 하세요
급경사길은 나오지 배낭은 무겁지 아까워서 버릴수도없고 난처하답니다
10. 우천에 대비해서 우의와 배낭카바 100리터의 쓰레기봉투 한개는 꼭갖고 가세요
저는 배낭마다 우의와 100리터 쓰레기 봉투가 들어있답니다
큰산에서는 일기예보에는 비가안온다고 했는데도 비를자주 만난답니다
11. 휴대품 식량 반찬등식재료 과자 견과류 육포 커피등 A-4 용지에 적어놨다가
지우면서 체크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무거우면 힘드니까 알아서 최대한 가볍게 꾸리세요
(기타 더궁금한 것이나 미비점은 다른사람들의 산행기를 보시고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될것 입니다 그리고 더알고 싶은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010-7680-1915.
저한테 전화해 주시면 성실하게 응답해 드리겠습니다)
O. 지리산 덕유산 설악산등 산행에절과 에피소드
1. 서울근교 산이나 집근처 동내산에서는 서로인사를 거의안하고 지나다니지만
지리산등 큰산에 올라가서는 깊은산속의 등산로에서는 전혀모르는 사람을
만나드라도 서로가 반갑기에
"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
등등의 인사를 하는게 예의일것 같습니다
더러 100에 한사람 정도는 인사를해도 아뭇소리도 안하고 지나가는 솔차니 이상한
저혼자잘난 돈키호테도 더러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간식도 나누면서
" 어디까지 가세요 오늘잠잘 대피소는요 집은 어디세요 "
이런정도의 가벼운 이야기도 나누기도 한답니다
2. 대피소 취사장에서
" 감자한개만 주세요 양파한개만 주세요 소금좀 주세요 커피 한개만 주세요 "
등은 안하도록 사전에 준비를해갖고 가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3.10수년전에 세석산장 취사장에서 신혼부부인 젊은커풀이 코펠이 한개뿐이라고
찌게를 끓인다고 코펠을 빌려달라기에 빌려주었더니 꼭지를 잔반통에 빠트렸다기에
잔반통에 가봤더니 온통후벼놨기에 냄새만나고 코펠손잡이 꼭지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박지로 대충손잡이를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그후 잠실백화점 코오롱 장비점에 A/S를 맞겼더니 3일만에 찾아가라고 문자가 왔드군요
무료였습니다
코오롱이 옷이나 등산화도 다른업체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아주 좋기에 선호하고 있습니다
부천에살때 2000. 8. 23. 담배를 끈고난후 산에 다니겠다고하니 우리집사람이 부천의LG
백화점에 데리고가더니 옷 등산화 양말 코펠 스틱 최고급 쏘니비디오 카메라까지 사주어서
지금도 잘쓰고 있습니다
그때산 19만원짜리 밝은회색 바지는 구식이라 통은좀 넓지만 지금도 거의A급 입니다
등산장비는 꼭 돈을조금 더주고라도 소문이난 메이커것을 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옷같은 경우도 질기고 폼도나고 A/S가 잘된답니다
덕유산에서 노스페이스 패팅잠바 소매가 버너불에 붕어빵 크기정도로 탔는데 A/S를
맞겼더니 10000원 을받고 감쪽같이 수리해 주었습니다
한동안은 K2 등산용품을 많이 애용했으나 45000원짜리 새장갑의 A/S문제로 K2와는
단절을 하였습니다
K2가 불량풀을 사용해서 벌어진부분 2.5Cm를 한짝당 3000원씩을 요구해서 제가 검은실로
궤메서 10수년간을 잘사용하고 있답니다
제게는 K2 등산화2컬레 16만원짜리 벙어리장갑 45000 과 40000원의 손장갑 2컬레 쟘바
바람막이 티 등 100만원이 훨씬넘는 것들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 산에서 누가
K2제품을 물으면 A/S가 아주 별로니 권하고 싶지안다고 대답을하고 있답니다
4. 15년전쯤봄에 안내산악회를 (영업목적 산악회) 따라서 소백산에 갔을때 이야기입니다
소백산을 여러번 가봤기에 비로봉에서 철쭉밭을 구경하면서 연화봉에와서 다른사람들의
사진도 찍어주면서 쉬고있는데 나보다는 7-8세 덜먹어보이는 키도크고 풍채도좋은 사람이
죽는시늉을 하면서 여자둘에게 의지하면서 다리를 질질끌면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남의일이니 놔두어도 되겠지만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DNA 탓으로 그사람에게 물었더니
거의 죽어가는 시늉을 하면서
" 나는 조기축구도 한번씩 나가고 한달에 두세번 정도는 필드도 (골프) 나가네요 그래서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우측종아리에 쥐가나서 죽것네요 큰일 이그만요 "
하기에
" 내가 의사는 아니어도 쥐난것은 응급처치를 할줄아니 바지를벗고 엎드려 보세요 "
했더니 반신반의 하면서 옷을 벗었습니다
엎드리라고하고 종아리를 주먹으로 살살 누르면서 어느곳이 제일아프냐를 파악한후 맨소레담을
듬북붓고 내주먹으로 쥐어박듯이 솔차니 아프게 문지르니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땀을흘리면서
죽는소리를 하였습니다
" 근육이 아주많이 뭉친것 같으니 더쎄게 문질러야 얼른풀리는데 엄살을 너무부리니 나는 시간을
맞추어서 산악회버스를 타야하기에 바쁜데 큰일이네요 "
하였더니
그의 부인이
" 저하고 고모가 양쪽에서 팔을잡을께 힘껏좀 문질러 주세요 "
하기에 좀더문질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오구렸다 폈다를 해보라고 하였더니 이제는 풀린것같고 아주시원하고 살것같다고
하였습니다
" 그러지말고 사모님이 등산화와 양말을벗고 양손에 내스틱을짚고 허벅지로 올라가서 밟아보세요 "
하였더니 한손은 여동생이잡고 한손은 내가준스틱 두개를 쥐고 허벅지를 밟았습니다
" 어이 아이고 아이고 나죽것네 내려가서 한발로만 살살 해보소이 아이고 아이고 나죽것네이 "
한참후에 앉아보라고하고 조금전처럼 오구렸다 폈다를 시켰더니 쥐난것이 거의풀린것 같다고
하면서 아주 고마워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 사장님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명함한장 주세요 "
하기에 산에나 다니는 영감이 무슨명함이 있답니까 하였습니다
" 그러면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주세요 언제든지 여수오시면 제가 잘모실께요 "
하였습니다
전화번호는 그의 부인과 여동생이 핸드폰에 담아갔으나 그후로는 소식이 한번도 없었답니다
박사장님은 57년생이고 여수에사는데 대전에사는 여동생이 오빠네 부부에게 소백산의
철쭉꽃을 구경시켜 준다고해서 올라왔드랍니다
어젯밤에 여동생이 대전 자기집에서 갖고온 좋은술에다가 고깃집에서 소갈비살과함께
그술한병을 거으다 먹은것이 탈이었던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배낭에서 주방용 비닐장갑을 꺼내서 맨소래담을 2/3정도를 덜어주면서 될수있으면
천천히걷고 쥐날려고하면 맨소래담을 또바르고 자기가 무조건 아푸게 문지를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까처럼 못견디게 아프면 119로 전화해서 헬기를타라고 했더니 빙긋이 웃었습니다
다리나 허리가 골절된사람은 공짜지만 박사장님 같은분은 헬기타는 값으로 공정가격인
기본요금 200만원을 내야한다고 했더니 3사람은 죽는다고 웃었습니다
그분들과 악수를하고 오는데 박사장님 부인이 20000원을 주기에 거절했더니 바지주머니가
찢어질것 같아서 10000원만 받겠다고 하면서 받아갖고 왔습니다
4000원짜리 맨소레담을 가지고 아주크게 남는장사를 한것같았습니다
그분들 세사람은 만면에 웃음을띠고 셋이다 절을 몇번을 씩을하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그만 하시라고 손을 흔들면서 허리를 숙여서 응대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지리산이나 덕유산이나 설악산이나 어느곳에서나 절을만나면 내형편데로 3000원이나
5000원을 시주함에넣고 꼭 부처님께 3배를 드린답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젊어서부터 평생토록 받들던 불교이기에 어머님에대한 조고만 효도로
생각되어서 입니다
희방사에와서 양초와 쌀을판매하는 보살님께 그돈10000원 짜리를 1000원짜리로 바꾸어갖고
나오는데 해올산악회 관광버스를 함께타고온 젊은이 두사람이
" 사장님 아까 그사람들한테는 치료비로 20만원을 달라고해도 되것데요 그여동생 이란분이
사장님께 줄려고 5만원짜리 2장을쥐고 있었어요 그런돈을 받어다가 버스속에서 맥주한켄씩
돌렸으면 좋았을 것인데 참으로 아까웠네요
원세상에 주는돈을 안받는 사람은 사장님을 처음봤네요 "
하기에
" 그러면 내가 연화봉에 다시한번 올라갔다 올까요 "
하면서 우리는 서로쳐다 보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집에와서 쥐난사람한테 맨소래담 발라서 주물러주고 10000원 벌어서 3000원은 희방사
부처님께 시주해 드리고 남은돈 이라고 7000원을 집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우리집사람은 웃으면서
" 내일 약국에가서 맨소래담을 서너개 사다줄께 배낭에 넣고가서 산에서 쥐난사람이 있는가
찾아서 발라주고 돈을한번 벌어보면 쓰겠네이 "
하여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답니다
5. 2010년경 초봄에 해올사악회를 따라서 강화도 보문사에 가다가 낙가산 초입에서 일기예보에
없었던비가 내리기에 약간경사진 퍽큰바위밑에 배낭을벗고 비닐우의를 꺼내입고 배낭에메단
의자를 풀어서앉아 비가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뒤에서 따라오던 엄마 아빠와 대학생딸과 외삼촌등 4명이 비가내리니 비를피해 내가있는
바위옆으로 왔습니다
대학생딸은
" 자기들은 두툼한 겨울옷을입고 나는샤쓰까지 다졌었어 안간다니 가자고 가자고해서 이게뭐야 "
하면서 추워서 덜덜 떨었습니다
강화도 보문사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좋은절이고 절아래 맛있는 맛집에서 제일로 맛있는
것들을 사주기로한 아버지와 엄마를 딸이책망 하면서 다그쳤습니다
안올려고 했는데 유명한 보문사를 구경하고 맛있는것을 사준다고 했다며공격 하였습니다
내뒤에서 100여m 떨어져서오던 그들은 소나기를 맞은듯 옷이다 젖어버렸습니다
그집 대학생딸이 추위에 덜덜떨기에 내가 따뜻하게 불을피워 줄테니 불도쬐고 옷도말리게
젖은나무를 줏어오라고 했더니 반신반의 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나를쳐다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재차 얼른나무를좀 줏어오라고 했더니 멍하니 쳐다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배낭에서 둥근께스와 버너를 꺼내서 불을붙인후 바위주위의 비맞은 나뭇가지들을
줏어서 불을붙이니 그때서야 비를맞으면서 4명이모두 나무가지들을 한다발씩 줏어왔습니다
한번 불이붙으니 젖은나무도 활활 잘도탔습니다
조금있으니 비가좀 덜내리고 옷도거의 마르니 모두들 좋아서 얼굴이활짝 펴졌습니다
그래서 강화도 보문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이야기를 간단히 해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본부인 김호남 이란분이 박재옥이라는 (박대통령이 사단장시절 전속부관인
한병기중위 와결혼 후에 케나다대사와 공화당 국회이원역임) 딸을하나를낳고 박대통령한테
이혼당하고 보문사에와서 여승으로 20몇년을 살고있다는것을 육영수 여사님이 중앙정보부를
통해서 그사연을 알았드랍니다
육영수 여사님은 박대통령의 전부인인 김호남님을 위해서 여러 장관들과 국회의원들 도지사들
그리고 육해공군의 고위 장군들한테 시주를 받아서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큰범종도 만들어
주었드랍니다
그범종에는 그시대를 풍미하던 정일권 국무총리등 거창한 거물들의 이름들이 크게새겨져 있답니다
육영수 여사님께서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보문사를 많이지원 하여주었다고 했더니 그집 가족들은
내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그집 아빠는 처음듣는 이야기라면서 제일로 좋아했습니다
육영수 여사님의 지원덕에 조계종의 높은스님들과 경기도지사 강화군수 강화경찰서장도 보문사에와서
김호남 스님을 찾아뵙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분들께 산에올때는 언제나 가벼운 비닐우의 라이타 누룽지같은 비상식량을 배낭속에 꼭넣고 다녀야
한다고 제나름 데로의 상식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몇년전 방배동에서 고등학교동창인 고심봉 친구가준 서초구의 영업용 100리터의 두툼한 쓰레기
봉투를 (4000원짜리) 머리만 들어가게 칼로 잘잘라서 대학2학년이란 그집딸에게 쓰워주었더니
아주좋아 했습니다
양쪽손이 나오게 칼로구멍을 내준다고 했더니 그냥 이데로가 더좋다고 하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발로 춤을추면서 좋아했습니다
그집 엄마는 강화도에와서 참으로좋은 은인을 만났다고 좋아했습니다
옷도거으 마르고 비도조금밖에 안오기에 더쉬었다가 오라고하면서 나는먼저 간다고하니
그집 아빠가 내배낭에 달려있는 해올산악회 표지기를 보고는
" 같은 해올산악회 버스로 왔으니 갈때도 함께가야 하니까 오늘점심은 제가 잘모실테니
우리랑 함께 다니시게요 "
하였습니다
나는 김밥을 사가지고 왔다고 했으나 그집식구 4명이모두 나를 못가게 했습니다
엄마와 대학생딸은 내팔을 붙잡으면서 못가게 하였습니다
그집 식구들과 어울려서 근2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보문사 절위의 눈섭위에오니
비가완전히 개었습니다
함께오면서 그들은 4명이 모두다 내가 나무를줏어 오라고하니 비에젖은 나무로불을 피워줄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집 식구들은 보문사 범종에쓰인 이름들을 읽어보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전에도 여러번 와봤지만 보문사 구경도 잘하고 늦은 점심으로 꽃게탕도 잘얻어 먹었습니다
강화도길은 평상시에도 정체가 심한데 주말이라 많이밀려서 쉬엄쉬엄오는 버스속에서
막걸리와 맥주등을 많이마신 사람들이
" 기사님 오줌보가 터지것어요 차에다가 싸것어요 "
하면서 여러사람들이 해올산악회 산행대장에게 여기저기서 항의 하면서 조져댔습니다
해올산악회 버스는 큰길에서 우측으로 조금들어가 김포 고촌의 초등학교앞에 차를세웠습니다
술먹은 사람들덕에 학교에 들어가서 소변을보고 차에오르니 내자리에 검은비닐 봉다리가 있어서
의아해 했는데 그집 외삼촌이 내자리로 오더니
" 가시면서 목마려울때 잡수세요 "
하면서 웃었습니다
비닐봉지 안에는 내가좋아하는 것들인 양갱 켄사이다 단팥빵 두개가 들어있었습니다
6. 2000년 봄에 작은누나네 큰아들 재종이와 각각 김밥한줄씩과 0.5리터 삼다수 한병씩만
등산복 상의에 넣고서 내장산에 갔습니다
내장 저수지위 사슴목장 에서부터 올라가는데 무지하게 힘이들었습니다
땀을 흘리면서 한참을 오르는데 등산로 옆에서 어떤젊은 사람이 코펠로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무심코쳐다 보았더니 라면을 끓이다말고 일어서더니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전혀모르는 사람이기에 누구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우리동내옆 동내인 마골사는
박누구라고 하였습니다
재종이보다는 5살을 더먹었다기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라면을 조금먹고 가라고 하기에 먹은것이나 다름없다고 인사하고 왔습니다
써레봉과 불출봉 3거리에서 써레봉을 갔다오자고하니 재종이가 힘도들고 종주를 할려면
갈길이머니 써레봉은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기에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러기로 했습니다
둘이다 땀을많이도 흘리면서 불출봉 망해봉 먹뱅이재 까치봉 신선봉 문필봉 연자봉 까지
걸었습니다
내장산 종주는 써레봉아래 월영봉부터 연자봉아래 장군봉까지 10개의 봉우리를 올라서
걸어야 종주입니다
오늘 우리는 3개의 봉우리를 빼먹은 나이롱 종주를 하는것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정통 종주를 할려면 김밥도 3줄은 배낭에 넣어야하고 물도 2리터짜리 한병은 갖고가야
하는데 나이롱 종주라고 배낭도없이 김밥한줄과 물한병만 각자의 포켓트에넣고 가볍게
대충 준비해서 가다가 배고프고 목이말라서 아주 혼이났습니다
그런데 연자봉에서 구세주를 만났습니다
재종이와나는 배고프고 목도마렵고 지쳐서 헐렐레하고 앉아서 쉬고있는데 누가뒤에서
" 오빠 오빠 오빠아 "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5남매중 막내이고 여동생이 없기에 누가나를 오빠라고 부를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팔을 뒤로짚고 멍하니 앉아서 쉬고있는데 누가내등을 가볍게 때리면서
" 오빠 부르는데 왜대답을 안하세요 "
하기에 뒤를돌아보니 부천 내동에서 갈비집을하는 오순임 사장님 이었습니다
" 자네가 내장산까지 왠일이단가 운동화신고 여기를 어떻게 올라왔단가 "
" 예 저희는 요아래까지 케이블카를 타고왔어요 우리 언니네 둘째가 작년부터 정읍으로
전근와서 정읍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달전부터 지엄마와나랑 외숙모
두분을 초대서 오늘와봤어요 "
하였습니다
나는 20여m 걸어가서 그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음료수 물 과일 떡 빵등을 얻어갖고와서
재종이와 둘이서 배부르게 잘먹었습니다
광주가 고향인 오순임사장은 4남매중 막내인데 남편과 사별후 대학생딸 중고생 아들둘등
3남매를 기르는 대단한 여장부 엄마입니다
5-6년전에 내가 형사반장을할때 무슨일로 경찰서에 왔다가 자기동내인 내동파출소에서
목포사람인 배순경이 나한테한번 인사도하고 가보라고 했다면서 같은 오가라고 나를찾아 왔기에
해주오씨 족보를 따져봤더니 여자라 족보는 잘모르기에 그냥오씨라고 절친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리식구들이 가끔외식 할때는 언제나 잘해주는 그갈비집에도 여러번 갔었습니다
오사장님네딸은 인하대 미대에 다니기에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의 조고만 사진을 갖다주면서
부탁을 하였더니 사진과 똑같은 큰초상화를 아주 마음에 쏙들게 잘그려 주었습니다
그초상화는 부모님탄신 100주년때인 1999.12.22.과 2005.6.10. 고향마을 부안촌 산소에도
두번씩 가봤고 언제나 우리집 거실에 잘모시고 있답니다
이초상화를 보는사람들은 형님들이나 누나들도 우리부모님의 살아계실때 모습과 똑같다고들
하였습니다
7. 2003년 5월중순에 구례 토지면 송정분교를 임대해서 살고있는 두레네집에서 오프넷
모임을 갖는다고 오프넷 홈페이지에 떳습니다
지리산의 역사와 빨치산들의 전설 등산 사진등 오프넷 홈페이지의 주인인 오용민님 (하해) 과
운영자인 정진원님 (Movon) 이 앞에 나서서 리딩을 해야하는데 신비롭게 숨어서 댓글로만
격려를 하였습니다
유일하게 김수훈님과 故섬호정님(오영희님 초등교사로 정년퇴임 하동) 께서 축하를 겯들인
격려를 해주시고 김수훈님은 밥을하게 코펠과 버너를 갖고와라 놀다가 술이떨어지면 안되니
술을많이 갖고와라 쌀 라면 마른술안주등의 이야기가 전부였습니다
저는 큰딸 은경이한테 선물받은 양주한병과 송월타올 50장과 취사도구만 준비했습니다
기념타올에는 2003.봄 OfOf.net 두레네집모임 이라고 새겼습니다
직장 후배인 정한영 아우를 데리고 새벽에 지리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바래봉에 들려서 철쭉꽃을 구경하고 오후늦게 토지면 송정분교로 갔습니다
컴퓨터속 온라인 으로만 정담을 나누면서 지내던 분들과 얼굴을 보면서 악수를 해보니
초중고 동창들과의 만남하고는 격이다른 새로운만남 이었습니다
그날 두레네집에는 부산사람들의 모임도 겹쳤기에 중봉님도 만나보고 김수훈님 솔메거사님
슬기난아우부부 자유부인님등 나와절친한 여러분들을 반갑게 만났습니다
밤늦게까지 큰모닥불을피운 학교운동장에서 전국 각지에서모인 20대의 전군커풀부터
60대의 남자여자 여러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잘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을먹고 기념촬영을한후 정한영 아우와나는 쌍계사 화엄사 천은사 청매실농원을
거쳐서 순천 선암사근처 여관에서자고 선암사 낙안읍성 송광사를 가보기로 하였기에 솔차니
바쁜일정 이었습니다
화엄사에가서 보물이라는 각황전 사진을 찍는데 누가 반갑게
" 오소장님 화엄사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
하면서 공손하게 머리를깊게 숙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부천에서 소삼 파출소장을할때 한신아파트 부녀회장님을 하시던 L여사님 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해군출신 군인가족들 이었습니다
" 저분은 몇기여 "
" 저분은 육군 출신이여 "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있다가 L 여사님의 남편이 오더니 또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 오소장님 조만간에 남서울이나 덕평으로 한번 모실께요 "
하였습니다
저는 그부부덕에 화엄사에서 갑자기 육군 2스타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를 깍듯이 따라다니면서 보디가드 역할을하는 풍체좋은 정한영의 역할도 한목을 했습니다
그부부와는 그집 아들들의 결혼식에 두번다 참석해 주었기에 고마워하는 처지였습니다
자기남편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생들이 부부동반으로 관광버스를 전세내어서 2박3일간 남쪽으로
여행을 왔다고 했습니다
부녀회장을 할때는 남편이 현역 해군대령 이었기에 곧별을 단다면서 목에 힘을주고 지내면서
아파트내의 노는땅에 파출소를 짓는문제로 서울대출신 홍성현 경찰서장님이 만나서 이야기좀
하자고해도 안만나주던 대단한 부녀회장님 이었습니다
그당시에 한신아파트에 전세들어살던 김문수 국회의원도 파출소가 들어오는걸 아주 좋은일
이라고 반가워 했었습니다
소사동과 역곡 일대에서는 가장큰단지 였기에 아파트안에 파출소가 있으면 주민들에게는
아파트값도 올라가고 아주 좋았을 것인데 부녀회장인 L여사가 반대했다고 자치회장님과
아파트 주민들한테서 모가지에 힘만준다고 욕도많이 얻어먹었다고 했습니다
8. 10수년전에 가을에 내장산 써레봉에 올라갔습니다
두팀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분들이 나도 불출봉을 향해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나는 벽련암과 내장사를 내려다보면서 구경을 하는데 벽련암쪽에서 여자두사람이 힘들게올라
오는게 언듯 보였습니다
두여자중 나이든 여자가
" 아이고 오선생님을 여기서 만났네요 "
하였습니다
정읍샘골산악회 회원인 K여사님 이었습니다
자기딸이 서울 G대학교 4학년인데 내장산을 못올라가 봤다고해서 등산훈련도 시킬겸 딸과둘이서
올라왔다고 하면서 생각지도 안한곳에서 나를만났다고 반가워했습니다
샘골산악회에 산행기를 올리는 나에게 자기의 실명은 빼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저는 몇년전부터 고향마을 친척동생인 명수아우덕에 정읍샘골 산악회를 따라서 백령도 거문도 가야산
한라산 지리산등을 따라가 보았고 샘골산악회 홈페이지에 항상 산행기를 올렸기에 그산악회 회원들을
거의절반은 알고지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리산이나 덕유산 금원산등 남쪽의 산에가서 야영을하고 올때는 거의 고향마을 부모님산소에
들려서 텐트를치고 통상 3박또는 4박이나 5박을 하고옵니다
그럴때는 고향마을 동생들과 내장산이나 입암산 선운산 두승산등을 가본답니다
함께가는 산행친구는 권태국동생 이선용동생 이명수동생 부부 입니다
9.10 수년전 어느해 구정후 부모님의 산소에서 텐트를치고 숙영을하면서 퍽추울때인데
내장저수지위 사슴목장에서 써래봉에 올라가니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불출봉부터 장군봉까지 천천히 훝어보고 벽련암쪽으로 내려갈려고 하는데 엄마와아들
두사람이 올라왔습니다
키도크고 아주 잘생긴 젊은이에게 불출봉 방향으로 사진촬영을 부탁해서 찍었습니다
그엄마와 아들도 내가섯던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사진을찍고 나더니 그엄마가 나에게 어디서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 집은 서울인데 고향은 소성면 이네요 "
" 소성면 무슨 동내세요 "
" 부안촌인데 부안촌을 아세요 "
" 예 부안촌요 제친정이 부안촌 인데요 부안촌 누구세요 나이는 몇살이세요 "
하였습니다
" 내이름은 오해봉이고 예순넷인데 부안촌 누구세요 "
" 오빠 저명순이여요 후수오빠동생 명순이요 "
나보다 두살덜먹은 진외갓집 친척동생인 명순이 동생을 본지가 50년이 다되어가니
전혀알수가 없었는데 어렴풋이 어릴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저는 아들만 셋인데 이애가 막둥이여요 "
하였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들이랑 반가운 악수를 하였습니다
10. 또 10수년전에 부천 성주산팀 6명을 안내해서 봉고차를타고 고창 선운사에 갔습니다
모두가 산을잘타는 사람들이기에 벌봉부터 수리봉 국사봉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배멘바위
청룡산 투구바위까지 선운산을 종주할것인가
아니면 선운사 진흥굴 도솔암 내원궁 용문굴로해서 투구바위까지 조금편하게 할것인가를
결정하라고 했더니 나보다 다섯살 더잡수신 심춘식 형님께서 편하게 하자고 하셨습니다
번개인 김동섭 아우는 나에게 눈을 껌벅이면서 정통종주를 하자고 했습니다
나는 원망듣는짓은 안할것이니 내말에 순응하라고 하면서 손을들라고 했더니 4:2로 선운사를
구경하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도솔암 내원궁을 구경하고 내려오면서 모두들 아주좋은 선택을 했다고 통일이 되었습니다
배멘바위 근처의 아주좁은 등산로에서 앞에서오는 젊은부부들을 먼저가라고 길을양보해주고
서있는데 지나가던 예쁘게생긴 여자가 내팔뚝을잡고 흔들었습니다
이게 무슨일인가 멍하고 쳐다보고 있으니
" 오빠 나 경란이여요 경란이 "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보니까 웃집에살던 경란이의 어릴때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애아빠 친구부부랑 해리에서 청룡산으로 올라왔어요 모자를썼어도 저는 금방알아 보겠는데
오빠는 저를 그렇게도 몰라보세요 "
하면서 신랑을 소개했습니다
" 고향마을 이웃집에살던 친동생이나 다름없으니 경란이동생 신랑에게 말을놓겠네이 "
하였더니
"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래야 정도 더들지요 "
하면서 쾌히 받아들이는 아주 시원 시원한 성품이여서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경란이동생 남편인 이종구 선생님은 몇년전에 정읍 학산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11. 10여년전 22kg의 무거운 야영배낭을메고 대둔산으로 야영을 가던때 이야기 입니다
케이브카를타고 내려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거의 70도정도의 사다리같은 높은철계단을
올라가면 개척탑이 나오는코스 입니다
2016. 12. 28 일 장안산에서 하늘로간 故김성준이 제일로 앞장서고 이영진전무님 중봉님
박찬선님 순으로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누가 내팔을 붙잡았습니다
고개를들고 쳐다보니 초등학교 여자 동창인 유정남 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웃으면서
" 죄짓고는 못살것네이 어쩌다가 이깊은 산속에서 이렇게 만난단가 "
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이랑 셋이서 왔는데 남편과 자기가 겁이나서 무서운 철계단을 못올라갈것
같아서 포기하고 다른곳으로 갈려고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유정남의 남편과 아들이랑 반가운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유정남 친구는 나와는 특수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부안 출신인 유정남의 어머니가 구상리 6촌형인 해룡형님께 재가해 오면서 데리고온
딸입니다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키도크고 예쁘고 참으로 착했던 유정남 이었습니다
그때만났던 유정남의 남편도 재작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12. 부천에살때 성주산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성주산 체력단련장에서 50대초반의 아주머니가 베드민턴장에서 나오더니 술을먹어서 얼굴이
빨간한체로 아주 급한말투로
" 화장실에 휴지가 하나도 없어요 누가 휴지좀 주세요 휴지좀요 "
아무도 휴지를 갖은사람이 없었던지 멍하니 쳐다만드 보고있기에 내가얼른 뒷포켓에서 휴지가든
비닐봉지를 꺼내주면서 쓰고남으면 갖다주세요 하였습니다
한참후 용변을 마치고 남은휴지를 가지와서 고맙다는 인사를하고 헤어진일이 있었습니다
그후 두달쯤 되어서 성주산 배드민턴팀들의 초청으로 부천농협 대절버스를타고 지리산 바래봉에
가는데 1호차인 그버스에 나한테 그때휴지로 신세를졌던 그아주머니가 타고있었습니다
나는 농협회원이 아니기에 맨뒷줄에 앉아있는데 망향휴게소에서 그아주머니가 쮸쮸바와 박카스를
한병갖고와서 인사를하면서 성주산 화장지 이야기를 하여서 악수를 하면서 둘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내가 장경석 부천농협 조합장님과 악수를 하면서 버스에타는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장경석 조합장님은 내가 중동 파출소장을할때 방범위원 이었습니다)
부천 농협에서는 해마다봄에 버스3대를 대절하여서 농협회원들에게 관광을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각버스에는 잘잘라서 먹기좋게삶은 개한마리 양념치킨 20마리 소주 맥주 막걸리 마른안주와
어러가지 과자와 사탕등이 실린다고 하였습니다
농협회원이고 롯데아파트에 산다는 그아주머니가 1호차의 고기와 술등을 관리하는 책임자 였습니다
내가탄 1호차에서는 참으로 민망하고 불미스러운일이 발생되었습니다
50대초반의 통통하고 힘께나 쓰게생긴 사람이 언제부터 먹은술인지 술에취해서
운전수 아저씨에게 서너차례나 반말을하면서 운전을 좆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앞차가 급정거 하니까 뒷차도 급부레이크를 밟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말도안하고 급부레이크를 밟았다고
" 에이씨팔 운전좀 똑바로혀 애기떨어 지겠네C벌 내일은 병원에가서 진단받고
입원해 버려야겠네 "
참으로 피곤한者 였습니다
다른사람들은 모두들 모처럼의 나들이라 마이크를잡고 돌아가면서 노래를하고
춤을추면서 즐거워 하는데 노래를 잘하네 못하네 하면서 혼자서 개지X을 하였습니다
그者와 함께앉은 나이든 아주머니가 쥐어박기도하고 입을막기도 하였습니다
운봉고개에서는 롯데아파트에 산다는 1호차의 실세인 아주머니와도 한바탕동안
입다툼을 하다가 여러사람들한테 핀찬을 들었습니다
그황가란者와 옆자리 아주머니는 함평사람들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평사람 망신은 상동시장 황사장이 다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송내역 앞에서부터 여러차례 욕을해대는 황가란 者에게 기사님은 사정하는 말투로
" 내가 손자가 네살이네요 제발 함부로 욕좀하지 마세요 "
하니까
" 나는 손자가 열살이여 좆같소리 하지말고 운전이나 잘혀C발 "
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몰상식한 황가란者 이었습니다
옆에앉은 나이먹은 여자가 황가를 밀면서
" 아이고 그놈의술을 멀라고 그렇게 몽땅퍼먹고 장사하는 사람이 넘도 안부끄렁가 "
하였습니다
바래봉아래 주차장에서 버스운전사와 그황가란者가 입다툼을 하다가 몸싸움으로
번져서 나이도 더먹고 왜소한 기사님이 시멘트도랑 밑으로깔려 있었습니다
황가가 위에서 목을조르니 숨을 헐떡이면서
" 왜이려 왜이러냐고 아이고 나죽것네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 왜이려 아이고 아이고 "
하였습니다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모두들 싸움을 말리지안고 구경만들하고 있었습니다
배낭에서 스틱을빼서 조정하던내가 남의일 이지만 너무나 화가나서 말리는척 하면서
고의적으로 넘어지면서 힘을주어서 그者의 종아리를 등산화 뒤쿰지로 디지라고 힘껏밟아
버렸습니다
" 아이고 아이고 나죽네 누가이려 누구여 누구여 C발 "
하면서 황가란者는 죽는소리를 했습니다
나는 모른체하고 뜯어말리면서 황가의 우측 갈빗대를 힘을주어서 주먹쥔 내엄지로 간지럼
먹이듯 힘껏 긁어대면서 기사님의팔을 서너번 잡아당겨서 기사님을 위로올려놔 버렸습니다
기사님은 밑에갈린 황가란者가 잠바자락을 움켜잡고 안놔주니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누가 싸움났다고 연락을 했는지 2호차 기사라는 키가큰사람이 뛰어오더니 술취한 황사장
이란者의 멱살을잡고 두손으로 흔들며 큰소리로 악을쓰면서 주먹으로 때릴려고 하였습니다
" 술취한사람을 무릅으로차면 장파열도 날수있고 큰일나니 말로하세요이 멱살잡고 흔들어
대는것도 폭력이니 남의일에 전과올라가고 벌금이 나오니 참으세요이 "
하였더니 멱살을잡고 서너번 흔들기만하고 무릅으로 위협만했지 차지는 안했습니다
황가란者는 눈깔을 솔차니 무섭게 부릅뜨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 아까 내다리를 콱밟고 나를밑으로 뒤집어서 깔아버린놈이 누구여응 어떤 C벌놈이여 "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