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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아홉 살 노인이 아이스크림 수레를 끌다
— 미국의 복지와 '세계 최고령 아이스크림 장수'가 던지는 문명사 질문
1. 아이스크림 수레를 끄는 89세 노인
2016년 늦여름, 미국 시카고 리틀 빌리지의 거칠고 가난한 골목에서 허리가 기역 자로 꺾인 채 힘겹게 아이스크림 수레를 미는 노인의 뒷모습이 한 시민의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당시 89세이던 피덴시오 산체스(Fidencio Sanchez) 할아버지다.
산체스는 2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팔아온 행상 출신이다. 나이가 너무 들어 일을 그만둔 지 불과 두 달 만에 유일한 혈육이던 외동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 장사하던 아내마저 충격으로 앓아누웠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어린 손주들을 부양하기 위해, 89세의 늙은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놓았던 수레를 다시 잡았다. 아침 일찍부터 밤 8시까지 거친 아스팔트를 걸었다. 은퇴했지만 그의 평생 일터나 다름없는 거리를 손주들을 위해 또다시 수레를 쥐고 나선 것이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식당 주인 조엘 세르반테스는 아이스크림 스무 개를 사고 50달러를 쥐여준 뒤, 온라인 모금 사이트에 노인의 사진과 사연을 올렸다. 목표액은 소박하게 3천 달러였다.
그러나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 자본주의자들"이라 손가락질받던 미국의 시민사회가 보여준 응답은 기적에 가까웠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목표액을 넘기더니, 17,000여 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지갑을 열어 며칠 만에 38만 달러(약 4억 2천만 원)라는 큰돈이 모였다.
이 큰돈을 전달받았을 때 산체스 노인은 깊이 감사하면서도, 자신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잊지 않았다. 그는 먼저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고, 손주들과 형편이 어려운 조카들의 교육비를 마련한 뒤 명예롭게 은퇴했다.
이것이 미국 시민사회가 노동과 복지를 바라보는 살아 있는 시각이다.
국가더러 공짜 돈을 내놓으라고 붉은 머리띠를 매고, 커다린 깃발을 휘두르면서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89세의 나이에도 손주를 먹여 살리겠다고 묵묵히 수레를 미는 한 인간의 '당당한 노동 윤리' 앞에, 국가 권력이 아닌 평범한 이웃들이 자발적 온정으로 화답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냉혹한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미국 땅에서 일어난 진짜 현실이다.
2. 인간은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그런 미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대낮의 뒷골목에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유령처럼 떠돌지만, 그 냉혹한 경쟁의 밑바닥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생명력이 화산처럼 솟구친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의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에 모여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회사 하나가 웬만한 나라의 GDP 수준이고, 한 회사의 주식 가치가 하루 만에도 국가급 GDP 액수만큼 일어났다 가라앉기도 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상대 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은 17~18% 안팎으로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다. 복지 제도를 통한 빈곤 감소 효과는 서구 유럽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것이 시장 자본주의의 날것 그대로의 민낯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불교 청규에도 있는 말이다)"는 준엄한 메시지이며, 국가 스스로 거지를 길러내지 않겠다는 서슬 퍼런 엄격함이다.
* 여기서 잠깐! 미국 전체 인구(전 연령층)' 대상 상대 빈곤율은 17~18%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빈곤율이 약 14~15%로, 미국보다는 조금 낫다. 하지만 65세 인구 빈곤율로 들어가면 사정이 딴판이다. 미국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 기준)은 약 22%~23%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무려 38~40%다. 거의 배에 가까운 놀라운 수치다. 심지어 OECD에서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에 이어 노인 빈곤율 최상위권이다.
그러나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1990년에 제정된 '미국장애인법(ADA)'은 건축물 접근성, 대중교통 편의, 고용 차별 금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물리적 환경을 구축했다. 휠체어 경사로와 저상버스 인프라는 복지천국이라는 유럽을 훌쩍 넘어선다.
유럽 복지국가가 국가 예산으로 간병 인력과 활동지원사를 융숭하게 지원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메디케이드 홈케어는 승인을 받기까지 수년씩 기다려야 해 가족이 돌봄을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에게 국가가 생계를 통째로 품어주는 '사회적 그물망'은 선진국 중 가장 작고 얇다. 그러나 장애인만은 그들의 자립을 돕는 법적 장벽 제거, 그리고 민간 자선단체와 기부 문화의 규모 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도 흉내 낼 수 없는 거대한 민간 역량을 발휘한다. 미국의 복지는 정부의 배급이 아니라 민간의 자발적 동행에 가깝다.
이 차가운 단면만 보고 미국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며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있다. 입으로는 반미와 미군 철수를 외치고 사회주의를 찬양하면서, 뒤로는 국민의 세금과 지자체 예산을 털어먹는 위선자들이 주로 내뱉는 말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의 사회주의 이상은 옳은가?
약자를 제도로 구제하는 것은 문명국이라면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공산(共産)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중증 장애인은 대체 어디서 함께 생산을 감당할 것이며, 모두가 똑같이 먹고 입고 거주하자는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과연 인류 역사상 단 한 번이라도 실현된 적이 있었던가?
3. 국가 예산의 절반을 털어먹는 유럽의 말기암
유럽은 한때 지상낙원이었다. 대학 등록금은 물론 기숙사비까지 대주고,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돈과 물품을 쏟아부었다. 그걸 흉내 내는 한국의 무책임한 정치 모리배들은 생리대를 흔들어대며 무상 생리대를 외치고, 무상 급식을 외치고, 숱한 무상 시리즈를 쏟아냈다. 걸핏하면 기본소득이라며 15만 원, 30만 원, 50만 원씩 나랏돈을 뿌려댄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막강한 부를 누리던 시절 시작된 이 사회민주주의 실험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감당할 수 없는 파산 청구서가 되어 돌아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이 57%를 넘나드는 프랑스는 국가부채가 3조 2,000억 유로(GDP 대비 111%)를 넘어섰고, 연간 재정적자는 EU 상한선(3%)의 두 배인 5.5%대에 달한다. 빚이 빚을 낳아 한 해 국채 이자 비용이 국방 예산을 앞질렀다. 외적을 막는 일보다 빚더미 복지를 지탱하는 일이 더 버거워진 꼴이다. 연금 개혁을 시도하면 나라 전체가 불타오르고, 극단으로 갈라진 의회는 증세도 긴축도 하지 못하는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졌다.
영국 역시 전 국민 무상 의료(NHS)의 수렁에 빠져 부채 비율이 100%에 이르렀다. 수백만 명이 진료 대기 줄에서 신음하지만 고령화로 투입해야 할 돈은 끝없이 불어난다.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다. 한 번 공짜 무상 시리즈에 중독된 국민은 스스로 이것을 끊어낼 힘을 잃어버린다.
독일 또한 복지 지출의 경직성과 헌법상 '부채 브레이크'에 발목이 잡혀 필수 인프라와 미래 투자를 전면 동결하며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해 이 복지, 저 복지를 마구 발굴해 현금으로 퍼주던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저출산·고령화 앞에서 파산을 선고받았다. 혜택은 깎을 수 없고 세금은 더 올릴 수 없는 '재정의 외통수'에 갇혀, 미래 세대의 피를 빨아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오늘날 유럽의 쓸쓸한 자화상이다.
4. 국가 배급이 아닌 '민간의 자발적 보시(布施)'가 움직이는 사회
미국은 왜 유럽처럼 국가가 거리를 깨끗이 치워주지 않아 뒷골목마다 마약과 노숙자가 넘쳐나면서도,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들이 줄지어 탄생하고 세계 경제를 호령하는가?
미국의 진짜 힘은 국가의 배급이 아니라 민간의 자발적 기부에 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의 진짜 저력이다.
유럽이 과도한 세금을 쥐어짜 관료의 손으로 나눠주다 재정 파탄과 국가 빚더미에 갇혀 허덕일 때, 미국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스스로 번 돈을 사회에 내놓는 자발적 민간 기부로 거대한 사회 안전망을 세웠다. 그것이 미국만이 갖고 있는 '자선사업(Philanthropy)'의 전통이다.
"부유한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2,500개의 도서관을 세워 가난한 청년들이 스스로 배울 길을 열어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0755, Andrew Carnegie, 1835.11.25), 감정적 자선을 배제하고 의학연구소와 시카고대를 세워 전염병 퇴치와 현대 의학의 기틀을 닦은 석유왕 존 D. 록펠러(1135-, John D. Rockefeller, 1839.07.08), 당대 최고의 유통 재산을 털어 빈곤 퇴치와 인권 증진에 바친 포드 재단의 에드셀 포드(0555+, Edsel Ford, 1893.11.06), 그리고 고등교육의 요람을 일군 릴랜드 스탠퍼드와 존스 홉킨스(0325, Johns Hopkins, 1795.05.19)가 그 튼튼한 뿌리다.
이 전통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거대해졌다.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선언하고 소아마비와 말라리아 퇴치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 수억 명의 어린이를 살린 빌 게이츠(0750, Bill Gates, 1955.10.28)와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0440, Melinda French Gates, 1964.08.15), 평생 모은 주식의 대부분을 내놓으며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함께 출범시킨 투자의 현인 워런 버핏(0640, Warren Buffett, 1930.08.30), 지분의 99%를 미래 세대 질병 퇴치를 위해 기부한 마크 저커버그(1225, Mark Zuckerberg, 1984.05.14)와 프리실라 챈(0110, Priscilla Chan, 1985.02.24) 부부가 그 뒤를 잇는다.
여기에 아마존의 결실을 교육과 빈민 구호에 조건 없이 수십억 달러씩 쾌척하는 매켄지 스콧(1020, MacKenzie Scott, 1970.04.07), 전 재산 80억 달러를 살아생전 비밀리에 모두 기부해 '빈털터리 억만장자'로 불린 듀프리 면세점의 척 피니(0720, Chuck Feeney, 1931.04.23), 의학 발전과 빈곤 해소에 천문학적 유산을 남긴 데이비드 코크(0420, David Koch, 1940.05.03)와 마이클 블룸버그(0610, Michael Bloomberg, 1942.02.14)까지, 미국을 움직이는 거인들은 하나같이 국가에 기대지 않고 제 손으로 사회의 결핍을 메워왔다.
미국 정부는 기부하는 기업인에게 강력한 세제 혜택과 명예를 부여하고, 기업인은 정부와 관료가 결코 해내지 못하는 거대한 난제를 민간의 효율성으로 풀어낸다. 부를 탐욕스럽게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의 공공 도구로 재배치하는 이 시스템이야말로, 졸부들이 넘쳐나는 여타 신흥국에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미국의 진짜 저력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가?
스스로의 피땀으로 일군 재산을 내놓기는커녕, '시민사회'와 '복지'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내걸고 국가 예산과 지자체 공모사업 보조금을 곶감 빼먹듯 탕진한다. 수천억 원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진흙탕 파행으로 국가 망신을 산 새만금 잼버리나, 눈먼 보조금 카르텔에 기생해 트럭 한 대 빌려놓고 낯부끄러운 뱃노래나 부르는 관제 행사들이 바로 그 민낯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회의 중에 코인 거래를 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표를 얻기 위해 파업 현장을 기웃거리며 '국고 털어 나눠먹기'에 혈안이 된 집단이 거리를 차지하고 앉아 떼를 쓰는 현실, 이것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회주의인가?
5.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서 있는가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 먹여줄 테니 입만 벌리고 있으라, 노동도 3일만 하라, 3.5일만 하라는 사회주의의 달콤한 사탕발림은 결국 국가 파산과 전체주의 독재라는 지옥문으로 끝났다.
"내 돈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며 남의 주머니와 국고를 털어먹으려는 시위대의 고함 속에서, 우리는 문명사를 향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의 존엄이 국가의 비굴한 배급선에 서 있는가?”
아니면 89세의 나이에도 스스로 수레를 미는 자립의 땀방울과, 이를 자발적으로 부축하는 위대한 민간의 박애에 서 있는가?
하루하루 공짜에 길들여져 가는 당신에게, 인류 사회가 진정 나아가야 할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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