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하는 특별전은 답사객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기회이다. 수장고에 있는 보물들이 나오기 때문인데
순천대에서 선암사 특별전을 열어 수장고에 있는 문화유산을 볼 수있는 기회가 있었다.
선암사 박물관은 10년전 인지 아니면 그 전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는 박물관을 문을 열었는데
그 뒤로 박물관이 문이 잠겨 있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가장 보고 싶은 것는 비로자나불과 관음보살 이었는데 순천대에서 특별전을 연다기에 부랴 부랴 다녀왔다.
여러 문화유산이 많지만 그 중에 눈에 들어 오는것은 보고 싶은 비로자나불과 관음보살이다.
먼저 관음보살을 찬찬히 쳐다보며 마음이 착 가라 앉는다.
화불(化佛)이 표현된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당당한 어깨와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다. 머리에 쓴 커다란 삼산관(三山冠) 정면 중앙에 가슴에서 양손을 맞잡은 화불이 조각되어 있다. 보관 하단에는 두 줄의 연주문(連珠文)을 둘렀고, 반원형의 머리카락이 좌우대칭으로 표현되었다. 정수리 부분에는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묶었으며, 머리 뒷부분은 가는 선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상호는 둥근 계란형으로, 가늘게 뜬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오뚝한 콧날과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을 가지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고, 귀에는 연주문을 두른 커다란 둥근 귀걸이를 차고 있다. 목 바로 아래 세 줄로 이루어진 연주문 목걸이를 두르고, 그 밑으로 좌우대칭으로 양 가슴까지 길게 U자형의 영락 장식이 늘어져 있다. 이러한 연주문 장신구는 팔목, 팔꿈치, 발목에 걸쳐서 화려함을 나타내고 있다.
벗은 상반신의 양쪽 어깨에 천의를 걸쳐 팔 뒤쪽으로 날리고, 등 뒤에는 두꺼운 천의 자락이 늘어져 있으며, 하반신에 치마를 입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자연스럽게 무릎에 늘어져 있지만, 결가부좌한 다리 앞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치맛자락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제작 시기에 대한 단서를 알려주고 있다. 수인은 왼손을 가슴 앞에 대고, 오른손을 우측 무릎 위에 살며시 내려놓아 아미타구품인 가운데 하품하생인(下品下生印)을 취하였다.
대좌는 앙복련(仰伏蓮)이 중대 없이 바로 연결된 연접 형식이다. 대좌의 상·하단에는 19엽의 단판연화문이 장식되었고, 상·하단의 연화문 외곽에 연주문을 둘렀다. 이러한 앙복련의 연접형 대좌는 중국 원대 이후에 제작된 여래상과 보살상의 대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불상의 크기는 소형에 속한다. 전체높이가 16.8cm이기에 그렇다.
선암사 천불전 서까래 수리 할때 발견이 되었다.
처음에는 관리가 되지 않아 검게거을렸지만 개금을 하여 본 모습을 보이고 잇다고 생각된다.
금동보살은 삼산관에 화려하고 복바한 문양이 장식되어 조선시대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실재로 처음보는 관음보살은 조선시대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고려시대에 남아 있는 관세음보살은 대부분 불화에 남아 있는데 대부분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선암사 관세음 보살은 무서운 얼굴에 먼저 보인다.
시대를 보니 고려시대 이다.
고려는 밀교가성행 했던 시대이고 고려후기는 원 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선암사 관세음 보살은 원나라 영향을 받은 라마식 관세음보살로 생각된다.
그리고 머리에 보이는 관은 삼산관인데 이러한 보살이 남아 있는 것은 고령에 있다.
개포동 마애보살은 보관은 삼산관이다. 고려 성종 시기에 만든것으로 선암사 관음보살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내가 보고 싶었던 보살을 보니 이제까지 답사를 하면서 막혔던 가슴이 뚤리는 기분이다.
관세음 보살은 인자 한 얼굴만 알 고 있다가 라마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는 것이 알았으니 답사는
끝이 없는 것이다.
더 많은 관세음보살을 친견 하기를 기원 하며...
옥산 이희득
첫댓글 귀한 관세음보살님을 볼수 있게 해주신 동광님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