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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가톨릭 문화원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이 글을 접하셨던 분은 복습,
처음 보시는 분은 꼭
읽어 봐야 할 연아양 옛날 얘기입니다.
지금이야 각광받는 연아양이지만
어떻게 힘든 과정을 거쳐 오늘이 있게 되었는가...
진정한 팬이었던 글쓴이의 여운있는 필치로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아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꼼꼼이 읽어 보세요^^^
이하 <김연아팬카페 Nue누에님>의 펌글을 재펌하였습니다^^^
연아양 주니어시절 부터 지켜본 어느 팬의 그 당시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 연아양이 역경을 극복하고 피겨여왕이 되었죠..
최근 연아양 팬이 되신 분들은
주니어시절에 대해 잘 모르실지도 몰라서 데려왔습니다.
얼마나 힘겨웠는지 간략하게라도 알 수 있습니다.
올드팬들도 복습해BoA요~
글과 함께 경기영상도 있으니 좋은 자료가 되실듯합니다.
주니어시절 뛰어난 선수들도
시니어에 올라오며 얼마나 사라져갔는지..
모든걸 극복하고 이렇게 우리에게 자랑이 되었네요.
아래 글은 2007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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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김연아갤러리 무잡님]
1. 2003/2004
연아는 7살 때, 집 주변에 새로 생긴
아이스 링크에 우연히 가족과 함께 놀러갔다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비범한 재능을 가졌으니
선수를 시켜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코치의 권유가 있었다.
이후로 참가하는 국내 대회를 모조리 휩쓸며 피겨
신동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
12살 무렵에는 5종의 트리플 점프를 모두 마스터 했다.
이미 국내에는 더이상 경쟁 상대가 없었다.
연아의 선수 생활이 항상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점프 연습 도중 오른발 인대 부상을 입는다.
이 부상은 고된 훈련을 하면 다시 재발하곤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아 선수를 괴롭혔다.
그리고 연아에게도 어김없이 사춘기는 찾아왔다.
부상으로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보여줄 수 없었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체와 함께
사춘기의 정신적인 공황이 더해졌다.
스케이팅이 너무도 하기 싫었다고 고백하는 시절이다.
"사춘기 때 아이 성격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할 정도로
크게 싸워본 적도 많았어요.
그때는 진짜 아이만을 위해 그만 둬버릴까 생각도 했었어요."
(연아 어머니)
아마도 이 시기 연아 선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고된 훈련이라기보다 일종의 답답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내가 왜 스케이팅을 하는 것인지
그것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가 없는 것 말이다.
부상과 신체의 변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최상의 스케이팅을 보여줄 수 없음을 그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회에서 몇번을 넘어지든,
최상의 경기가 아니어도 우승은 그녀 차지였다.
미래는 불확실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에게
해답을 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스케이트를 타다가 남들처럼
대학에 들어가면 그만이 되버리는 건지...
왜 온갖 부상을 안고, 추운 링크장에서 밤늦도록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전에 성적 안 나고 국내 대회에만 출전했을 때는
빨리 대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언니들이 대학가면 대부분 운동을 그만두더라구요.
너무 너무 힘들 때, 나도 대학 가서
빨리 운동을 그만뒀음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죠.
운동 그만두면 다른 학생들처럼
대학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거잖아요."
현재 이 시기의 그녀를 볼 수 있는 영상은
2004년 2월의 종합선수권이 유일하다.
LP의 음악은 비제의 카르멘.
경기 내내 그녀의 표정은 말그대로 '-_-' 이렇다.
하지만 재능을 숨기기는 못한다.
안무에서의 본능적인 시선 처리,
깔끔하고 아름다운 동작들은 이때도 여전하다.
이 시기의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일부러 도도하고 새초롬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독특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대회 후,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홀림분들은 실망이 컸나 보다.
(게시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 김연아 선수 부상탓인지 슬럼프 탓인지
그 두개의 복합인지 지난 8월말 대회보다 확실히 부진합니다.
못본 동안 점프이외 스케이팅이 많이 좋아졌으면 했는데
제가 너무 기대가 컸는지 부상이 정말 많이 심각했는지 안타깝습니다.
점프를 pop하는 것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Warm up때 점프도 질이 많이 떨어져보였어요.
현재로서는 Consistent 하고 질이 좋은 점프가
유일한 무기인 선수인걸 감안하면 걱정도 좀 됩니다.
세계무대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는거 아닌가 싶어서.
지난시즌과 올해 clean short 와 6-triple프리를 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어제 관전 후에 좀 우울했어요,
그러고 보니까 지난해 종합도 시즌경기중에서는
가장 최악이었던거 같긴 하네요.
스피드, 스핀, 스텝, 스파이럴등도
세계주니어 무대서 확실히 두각을 드러내려면
많이 보강되야 될거 같더라구요.
내년에 혹시라도 COP 적용이 확대된다면 더더욱.
프리젠테이션은 확실히 좋아졌는데 그래도 여전히
이 아가씨는 얼음위에서 행복한 것 같진 않아요.
재능과 열정이 항상 함께 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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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시니어 1위 김연아 선수는
지난 시즌 한창 잘할 때보다 확실히 기량이 떨어지네요.
로드 말을 빌리자면 "김연아가 점프를 뛸 때는
도약하자마자 저건 성공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는데
요즘은 보면서 아슬아슬하다"고.
표현력은 좀 늘은 것 같구요, 체형이 많이 변했어요
- 키가 많이 컸어요. 기대치가 높으니 실망도 크네요,
에구구.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변화가 있을 시기인데
페이스 조절하면서 꾸준히 발전했음 좋겠네요.
김연아 선수, 좀 웃어요 웃어~
아니다, 스케이트 타면서
웃음이 절로 나오도록 즐겁게 탔으면 해요...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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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
동영상으로 스케이팅 보면서 '실력도 좋고 각도 딱 잡혀 있고
몸매도 얼굴도 이쁜 아가씨가
표정이 저래서 어쨰!!' 란 생각 밖에 안들던데 ...
그렇게 피겨 하는 게 싫어요? ;ㅁ;
좀 섭섭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
하여간 싫어도 어차피 계속 할 거라면
옥사나 바이울을 벤치하든, 헐리우드 스타들이
어떤 스캔들의 와중에서도 웃는 걸 따라하든
어쨌든 간에 억지로라도 웃어봐요.
이왕 할거 웃는 게 좋잖아요.
웃으며 하다 보면 좋아질지도 모르고.....
(라고 여기에 말한다고 김연아 선수가 볼 건 아니겠지만, 쿨럭) 』
연아 선수는 '-_-' 이런 얼굴로
가슴속 답답함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을 터였다.
항상 그래왔듯이, 결국은 그녀 스스로 이겨내야 할 것이었다.
종합 선수권이 끝난 뒤 몇 주 후,
전북 무주에서는 85회 동계 체육 대회가 열렸다.
당시의 짤막한 신문 기사.
『 O...여자피겨스케이팅의 기대주 김연아(도장중)가
잦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승했으나
자신의 경기 내용에 만족치 못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김연아는 18일 전주 화산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여중부 경기에서
점프를 시도하다 세차례나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종합점수 1.5점으로 최지은(잠신중.3.0점)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김연아는 경기 뒤 "교체한 스케이트가 발에 맞지 않아 실수를 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며 눈물을 흘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
2. 2004/2005
2-1. 2차 JGP
그해 여름, 연아는 캐나다 토론토의 마리포사로
짧은 전지 훈련을 다녀 온다.
뒤늦게 팬질을 시작한 나로서는
캐나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자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 LP를 'Papa can you hear me?'로 바꿨고,
제프리 버틀이라는 현역 선수가
70만원이라는 가격에 안무를 짜주었다고 한다.
제프리 버틀이 현재 탁월한 음악성과 예술성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인연이다.
전지 훈련에서 돌아온 뒤 9월 초,
연아는 처음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동안은 나이제한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
첫 출전이었기에 연아는 5위 내 입상을 목표로 잡았다.
연아도 그렇고 국내 빙상 관계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연아가 국제 경기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연기에서의 표현력이 일본의 사와다 아키,
전년도 주니어 월드 3위 입상자인
미국의 케이티 테일러 등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SP는 전 해 것을 그대로 사용한 'Snow Storm',
LP는 70만원을 주고 받아온 'Papa can you hear me?'.
예상을 뒤엎고 연아는
첫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성인과 주니어를 통틀어 한국의 피겨 선수가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조성만 피겨 후보선수단 감독은
"남녀 통틀어 국내 피겨선수가 100여명도 안되는 현실에서
김연아가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우승 후 한 신문 기사에서 연아는,
그동안 "힘들때마다 엄마한테 달려가
스케이트를 안타겠다고 떼를 썼다",
"제일 고생하는 엄마한테 항상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랑프리 피겨대회는 처음이라 기대도 안했어요.
그냥 실수만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점프가 너무 잘되더라고요.
금메달 따고나니 엄마가 제일 보고 싶었어요.”
<2차 JGP 우승 후 공항에서>
1년새, 연아는 148cm/35kg 에서 156cm/38kg으로 자랐다.
그리고 연아의 사춘기는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2-2. JGPF
연아는 주니어 그랑프리 4차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고,
그랑프리 파이널에 나갈 자격을 얻는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은 그랑프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상위 선수들만 참가하는 대회다.
쟁쟁한 선수들이 나오는 큰 대회인 만큼
연아도 많이 긴장했었나 보다.
출국하던 날 지현정 코치는
"연아는 기술적인 면에선 경쟁 선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심리적으로 불안해 해
자신감을 심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 연아는 처음으로 마오를 만나게 된다.
마오는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 등장한 이후로
예선과 SP, LP을 통틀어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는 선수였다.
이토 미도리 이후로 한동안 대가 끊겼던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선수로 주목 받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다운 발랄함과
귀여움이 묻어나는 연기로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후에 연아는 마오를 이렇게 평한다.
"아사다는 점프가 안정감이 있고
실수를 잘 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실수가 많은 편이에요"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 무대에서 우승을 했지만
연아에게는 여전히
표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따라 다녔다.
사실 그동안 줄곧 텅빈 관중석만 보고
연기해 오던 연아로서는, 자신의 스케이팅이
누구를 향한 표현인지,
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을 거다.
연아는 표현의 대상을 가져보지 못했고,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제가 공주과가 아니라서
예쁜 척하는 표정을 못 짓겠어요(웃음).
선생님은 제가 더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시는데
워낙 쑥스러움을 잘 타서요.”
첫째날 쇼트 프로그램,
연아는 마오의 바로 앞순서로 연기했다.
점프와 스핀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지만
무난한 연기로 마오에 이어 2위를 한다.
< SP "Snow Storm" TSN방송>
(이 영상은 본문에 없던 것을 삽입한 것임)
둘째날 프리 스케이팅.
연기 순서는 쇼트때와 같았지만,
연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몸이 많이 굳어 있었고,
점프에서 여러번의 실수를 한다.
최종 결과는 쇼트 2위, 프리 3위,
총점 137.75으로 2위.
마오는 프리에서 트리플 악셀을 포함,
모든 점프를 실수없이 소화해 내며
쇼트1위, 프리 1위,
총점 172.83점으로 1위를 차지한다.
마오와 다른 선수들과의 차이는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연아는 프리 연기가 끝나자 마자
두손을 양 무릎위에 올리고는 허리를 굽혔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연아의 모습을 보고 해외 포럼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TSN 아나운서의 멘트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 연아양의 소식은 기쁘지만,
해설자 멘트를 들으니 가슴이 아프네요.
정확히 들은 건 아니지만,
연습을 방과 후 레크레이션용 링크에서
사람들이 없는 저녁 여덟시 이후에나 하는
아주 불쌍한 아가씨로 묘사되더군요.
사실인 건 알지만ㅠㅠ 듣다보니
우리 나라의 피겨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하다는 걸
느낄 수 있더라구요.
하긴 선수들이 연습할 만한
전용 링크장 하나 없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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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연아양은 웃는 걸
거의 볼 수가 없는데
마오는 항상 웃고 다닌다면서 좋아하더군요..
사실 웃는 사람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만
연아양이 무뚝뚝하다고 평가받는 게 슬퍼요 ㅠ.ㅜ 』
(홀림 게시판에서)
귀국 때, 연아는 기자들의 인터뷰에도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분명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2위는 굉장한 성적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한국 피겨 선수로는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한국의 피겨 선수로서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었기에,
연아가 걸어가는 길은 하나하나가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가 어찌됐든,
연아는 자신의 연기가 불만족스러웠고
매우 속상해 하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연아는 '좀 쉬고 싶다'고 했다.
<JGPF 귀국 사진>
2-3. JR. World
해가 바뀌었다.
매일 매일이 훈련인 연아나 어머니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일테다.
연아는 전 년 이래로 3-3 컴비네이션을 연습하고 있었다.
1월 초에 종합선수권 대회가 열렸고,
연아는 3년 연속으로 우승을 한다.
그런데 우승을 했다는 사실보다
연아를 더 행복하게 만든 건,
그동안 연습해 왔던 3-3 컴비네이션을
공식 대회에서 성공시켰다는 사실이었다.
"대회 3연패를 했다는 것보다
트리플-트리플을 실수없이 잘 해냈다는 게
너무 기뻐요."
경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연아는 환하게 웃었다.
연아가 경기를 마치고서
웃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생긴 것 말고도,
연아는 지난해의 경험으로부터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지난 해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것이 큰 힘이 됐어요.
외국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자극을 받은 게
더욱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리고 3월, 캐나다 키치너에서는
연아의 주니어 첫시즌 마지막 대회,
주니어 월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쇼트 프로그램.
연아는 숨을 한번 내쉬고는 준비 자세에 들어갔다.
얼굴엔 약간의 긴장이 있었지만,
분명히 전 해 그랑프리 파이널 때와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연기 중 트리플 룹에서 크게 넘어지는 바람에
순위가 6위로 밀리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연아는 지난 그랑프리 파이널 때보다
경쾌하고 과감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점수가 발표되는 순간, 연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프리 스케이팅.
연아 앞에는 선수로서 한단계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시험이 남아 있었다.
지난 해의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
그리고 자기 내면에 있는
본래의 강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긴장감과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내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 스핀이 끝나고 연아는
숨을 몰아 쉬면서 기도하듯
두손을 모아 꼭 잡는다.
나는 프리 연기가 끝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으로 기뻐하는
연아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4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2005 주니어 월드 LP후의 연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라고 생각한다.
대개 사람의 성장은 이렇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다가
한 순간의 도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후 갈라 연기를 하러 나온
그녀의 얼굴은 분명 무표정한게 아니었다.
반쯤 내리 감은 눈은 고요함과 편안함을 담고,
그윽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Ben' 의 리듬 뿐만 아니라
강약과 질감까지 완벽하게 표현해 내고 있었다.
비로소 연아는
자기 내면의 에너지와 맞닿은 것이다.
그녀는 의식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팬들은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첫사랑을 안겨 주었다.
전 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의
순위와 마찬가지로, 최종 결과는
마오가 우승, 연아가 준우승이었다.
연아는 귀국 인터뷰에서
주니어 월드 준우승의 소감을 짧게 밝혔다.
"주니어 부문에선 가장 큰 대회라 많이 떨었지만,
좋은 성적을 내서 기분 좋아요."
연아가 준우승에 기뻐한 것은 단지
보다 권위있는 대회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연아는 자신의 뒷순서로 나온 마오가
어떤 연기를 했든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이 아니라
쿼드를 두번 뛰었다고 해도 연아의 기쁨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연아는 자기의 길을 가는 법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니어 월드에 국제 심판으로 참가해,
연아의 준우승 장면을 직접 지켜본
빙상 연맹 이지희 이사.................
“태극기가 시상대에서 올라가는데
연아는 태연하고 저만 마구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다른 나라 심판들한테 울면서 자랑을 했죠.
100년이라고...
저 아이가 나오기까지
우리 빙상이 100년을 기다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