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을 거룩하게 변화시킴으로써(라벨링 효과)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센터
비타민이 많아 건강해질 것 같은 음료 ‘비타 500’, 아주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e-편한 세상’ 아파트, 배달이 보편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배달의 민족’ 앱, 비록 술이지만 맑은 정신을 유지해줄 듯한 ‘참이슬’ 소주. 이런 상품들은 이름과 같은 특성을 떠올리게 하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 매출을 높이고자 한다. 실제로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스 코퍼레이션(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이라는 회사는, 이름을 다르게 표기함으로써 이미지 쇄신 뿐 아니라 매출까지 상승시켰다. 바로 IBM이다.
뿐만 아니라 ‘이름 함부로 짓지마라’ ‘이름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등의 말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고,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이름으로 성격을 짐작할 수도 있으니,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거나 가리켜 말하는 행위’인 ‘이르다’의 명사형인 ‘이름’은 중요하다. 나아가 역사적 사건들 또한 시대에 따라 다르게 명명되기도 하는데, 4.19의거는 4.19혁명으로, 5.16혁명은 5.16 군사정변으로 표기되고, 그 당시 광주사태라고 보도되던 사건은 5.18민주화 운동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이처럼 이름에는 평가도 포함되어 있다.
‘라벨링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이 붙여놓은 라벨(표식)에 따라 자기 개념과 행동 경향이 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라벨을 붙여주면 그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그러니 라벨링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꽤 유용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라벨이 부정적인 경우는 ‘낙인’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타인이 자기에게 라벨을 붙여주면 그대로 행동하는 경향 ‘라벨링 효과’
미국의 심리학자 앨리스 티부(Alice Tybout)와 리처트 옐치(Richard Yelch) 연구팀은 유권자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하여 라벨링 방법을 썼고, 실제로 그 효과도 검증했다. 그들은 많은 유권자를 인터뷰한 후에, 무작위로 둘로 나누어 한 집단에게는 “사람들의 응답을 바탕으로 한 결과, 당신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입니다.”라고 하고, 다른 집단에게는 똑같은 말과 함께 “투표할 가능성이 평균적인 수준의 시민”이라는 말을 했다. 일주일 후 선거가 치러졌는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투표할 가능성이 높은 시민”이라는 말을 들은 집단이, “평균적인 수준의 시민”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보다 투표율이 15% 높았다고 한다.
라벨링 효과를 우리가 실제로 느껴볼 수도 있다. 한 낯선 남자가 있는데 이 사람의 몸무게를 추측한다고 해보자. 그 남자의 직업이 ‘트럭 운전사’라면 보통 남자들의 몸무게 보다 어떠할 것 같은가? 그리고 만약 그 남자의 직업이 ‘댄서’라면? 많은 경우는 트럭 운전사일 때가 댄서일 때보다 몸무게가 더 나갈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남자의 몸무게가 몸집으로 추측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라는 정보가 라벨링 되어 추측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실험에서도 증명이 된 바 있으니 우리 모두 라벨링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대상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언어에 따라서 정보를 조직하고 그것이 생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꾸리아 단장이자 주변 사람들의 멘토로 유명한 B형제는, 퇴직을 앞두고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열심히 살아오긴 했지만 퇴직이라는 시점에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되어 참된 삶을 고민하던 중에 친구의 권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예비자일 때부터 성모님을 특별히 좋아하였는데, 교리 시간에 성모님을 ‘바다의 별’이라고 칭하는 것 때문이었다. 삶의 무의미 속에서 헤매는 자신의 상황이 마치 암흑 속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듯 암담했는데, 방향을 가르쳐 주는 별이 바로 성모님이라니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례 후 성모님이 가장 잘 드러나는 레지오 입단을 권유받았지만 군대라는 명칭 때문에 좀 망설였다. 그러다 자신이 좋아하는 ‘바다의 별’이라는 이름의 모임(쁘레시디움)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입단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제가 레지오 단원이 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인생의 참 가치를 몰랐지만, 주님과 함께 성모님을 알고 난 지금은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제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저의 나침반으로 어려움에 함께 하시며 제 삶에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 후배나 동료들에게 삶의 지혜를 이야기해 줄 때도 이런 성모님을 소개하는 것이 저의 비법이기도 합니다.”
완덕을 향한 길의 특별한 장치, Pr.이나 평의회의 명칭
교본에 “레지오 단원은 오로지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자란 점을 보충하고 순화하며 완덕을 위해 노력하고 인간 본성을 거룩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63쪽)고 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인들의 목표는 완덕을 이루는 것이다. 완덕을 향한 길에 레지오는 특별한 장치로 도움을 준다. 바로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의 명칭이다.
‘자비의 모후’, ‘기쁨의 샘’처럼 성모님의 칭호나,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승천(하늘에 올림 받으신 모후)’과 같이 성모님의 특전을 드러내거나, 또는 ‘엘리사벳을 찾아보심’ ‘파티마의 성모’처럼 성모님의 행적을 기리는 데에서 따온 명칭들 말이다. 이런 명칭들은 구별의 기능을 넘어 각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에 라벨링 된다. 그리하여 그 속에 몸담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고유의 성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하나의 덕을 가지고 있고 다른 덕들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은 모든 덕을 갖게 됩니다.”라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그러니 비록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 명칭이 일컫는 한 개의 덕이라도 마리아의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안에서 완성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덕에 이를 수 있다.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의 명칭을 기억하고 자주 부르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명칭에 맞갖은 모습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이며, 어느 순간 성모님을 닮아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의 완덕이란 믿음, 성모님께 대한 사랑, 대담성, 자기희생, 형제적 우애, 기도하는 마음, 신중, 인내, 복종, 겸손, 기쁨, 그리고 사도적 정신이다.”(교본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