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짓날인데도 의외로 포근합니다.
오전 10시, 앞산 큰골(케이블카) 공영주차장에 25명의 회원이 모였습니다.
앞산 자락길 산행을 위해서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나왔습니다.
앞산공원 관리사무소 뒷편으로 해서 대성사를 지나 오른쪽 사잇길로 빠져나갑니다.
이 길로 쭉 가면 충혼탑, 대덕문화회관 윗쪽으로 해서 안지랑골, 골안골, 매자골로 갑니다.
앞산의 2부 자락쯤 되는 길을 가로질러 가는 셈입니다.
산행이 아름다움의 탐구라면 겨울 산행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까요?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뼈만 남은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가슴 시린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나에게도 올 죽음을 미리 밟아보고 미리 바라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슈베르트는 말했습니다.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마음속에 품고....나는 먼길을 돌아다녔다.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슈베르트의 멜로디는 바람을 타고 우리들을 울리며 형언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립니다.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고
찬 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않았네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 저곳 헤매도
아직도 속삭이는 소리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이 노래를 우리는 음악 시간에 배웠고, 놀러 가서 흥겹게 불렀던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혹시 아셨나요?
이 노래는 죽음을 속삭이는 노래라는 것을.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마지막 장면은 클라이맥스에 <보리수>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가 필시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 <보리수>를 흥얼거립니다.
등산화로 낙엽을 밟으면 낙엽은 <보리수>처럼 죽음을 흥얼거리는 듯이 바스락거립니다.
산을 걸을 때보다 이렇게 쉬면서 산속에 있을 때가 마냥 즐겁습니다.
등산의 즐거움은 산을 오르는 행위보다는 산을 구경하는데 있지 않을까요.
산을 오를 때는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속도로 올라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둘러 올라갔다가 서둘러 내려온다면 거기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신광사를 지나 안지랑골로 들어갑니다.
아무리 산자락길이라 해도 거기에는 끝없는 동물적인 움직임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머리에서 내려와 문자그대로 다리로, 발로, 땅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어디 쯤에서인가, 나는 갑자기 새소리를 듣고 깜짝 놀랍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새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며 살고 있거든요.
내 귀에는 메이에르병과 구관씨염이 있어서 어지럼증과 이명과 난청이 있으니까요.
발길을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이자 계속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음, 산속에 들어와서 내 귀가 예민해진 걸까요.
나는 야쿠시마에 살면서 산길을 수도 없이 걸었던 야마오 산세이 선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만든 길을 1미터만 벗어나도 사람의 생리는 싹 바뀐다."
산속을 계속 걸어서 내가 사람이라는 이름의 조용하고 예민한 동물로 돌아간 걸까요.
산세이 선생에 의하면 숲속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들어가면 청각이 예민해진답니다.
음, 책으로 만난 사이이지만 이럴 때는 산세이 선생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기분입니다.
야생에서 예민해지는 것이 어떻게 청각뿐이겠어요.
야생으로 들어가면 내 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행정부에서 산길을 모조리 "~길"화하는 데 반대합니다.
부직포를 깔고 가드레일을 설치하는 것은 철저히 야생을 차단하는 일이니까요.
걷다가 쉬다가 2시간 만에 송현동에 있는 천연애 오리불고기 식당에 도착합니다.
식당으로 온 2명의 회원과 함께 모두 27명이 오리 불고기로 점심 식사를 합니다.
정회원 16명의 부부별 월별 출석 상황과 연수입 400여 만원의 수입, 지출이 공개됩니다.
박영호 원장님, 1년간 수고 많으셨구요, 신임 이현우 국장님, 1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왔던 길을 거슬러 갑니다.
산에 올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산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줍니다.
행복을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산에 오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산길을 걸으면 과잉 생각이 사라지면서 명상과 비슷한 경지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숨을 헐떡거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오늘 걸은 거리는 16,000보였습니다.
아득하게 먼 곳을 향해, 죽음을 향해, 죽음 너머의 추상을 향해 걸어가 보았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