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나이(시편 16:1-11)21.12.12.주일낮설교
여러분! 조폭을 아십니까? 조직폭력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폭들은 자기들의 보스에게 형님이라고 하면서 그 형님의 말에 무조건 복종합니다. 형님에게 인사도 90도로 숙이며 인사합니다.
형님이 시키는 일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복종합니다. 그들의 주인은 바로 ‘형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구약적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표현하면 ‘아도나이’입니다.
본문 2절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아도나이)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의 주라고 번역된 단어가 바로 ‘아도나이’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 약 340여회 등장하는데,
이 뜻은 ‘우리 인생의 절대적인 주재자이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절대적인 주인님이십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주님, 주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첫째로, 우리 행복의 주인이십니다(2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행복의 반대어는 불행입니다.
우는 모두 불행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구합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복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대문에도, 집의 기둥에도, 장농에도, 이불이나 천이나 베게에도,
수저에까지福자를 새겨서 온통 福자 투성이 입니다.
새해에 인사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유난히 복을 사용한 언어가 많습니다.
‘복이 들어온다. 복 나간다. 복을 타고났다. 먹을 복이 있다. 복 터진다.
복스럽게 생겼다. 굴러 들어온 복을 차버린다 등입니다.’
옛날 분들의 이름에도 ‘복동이, 복실이, 복길이, 복순이 등이 많습니다.
그리고 복덕방, 복권, 복 주머니, 복 덩이 등의 표현을 잘 사용합니다.
사람들이 복을 묘사할 때도 ‘건강의 복, 물질의 복, 자식 복, 인복, 아내 복, 남편 복, 여복 등의 표현을 씁니다.
불교 사찰에는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 이 세 건물이 있습니다.
대웅전은 부처를 예배하는 곳이고, 명부전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제사하는 곳이며, 삼성각은 삼신 즉 칠성신, 산신, 독성신을 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불교인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는 곳이 삼성각입니다. 그들은
그 삼신들에게 장사 잘되게 해주십시오, 자식 잘되게 해주십시오,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불교에는 삼성각이란 것이 없습니다.
삼성각은 무당종교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은 완전히 불교 고유의 것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복을 받고 싶어하는 불교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4절을 보면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했습니다.
복을 사모하고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누가 주십니까?
이방 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편 기자는 1절에서 모든 불행과 죽음의 위협에서 피할 곳은 주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그리고 2절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모든 선과 행복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 “나의 주님이신 ‘아도나이’ 당신을 떠나서는 나에게 행복이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모든 복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과 조너선 그루버 교수는
[교회 다니면 '부'도 따른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의 내용은 "마음의 평안과 구원을 얻으려 교회에 가는 행위가 부차적으로 경제적 풍요로움까지 뒤따르게 한다는 연구결과" 입니다.
또 그는 논문에서교회 참석 빈도가 배가되면 가계소득이 9.1% 증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신앙심이 강해질수록 일상의 문제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줄어들기 때문에 교회에 자주 가는 사람은 노동시장과 결혼시장에서 성공하기 쉽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복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행복의 주인이십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첫째로, 우리 행복의 주인이십니다(2절).
둘째로, 우리 기업의 주인이십니다(5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역대상 29:11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주님은 우리 기업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주인 되시는 주님은 모든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능력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의 역경의 열매에 실린 적이 있는 참존화장품의 대표 김광석장로님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참 신앙생활을 잘하는 분입니다.
엄청난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지만 성공 자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며 기업을 운영하는 장로님입니다.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십일조는 십의 이조를 드리는 장로님입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부터는 십의 2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2002년도에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도 수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 기업에 복을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요즘은 젖소우유를 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젖소우유보다 모유가 최고랍니다.
울면 또 무엇을 줍니까? 빈 젖꼭지를 줍니다.
아무리 빨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사기 당합니다.
여러분! 두 번 비벼서 꾹꾹짜서 아이에게 줘야 아이가 건강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산업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에게 어머니가 자식에게 젖을 주듯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도나이 되시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기업에 주인이시며 그 기업을 책임지시고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첫째로, 우리 행복의 주인이십니다(2절).
둘째로, 우리 기업의 주인이십니다(5절).
셋째로, 우리의 평생 주인이십니다(6-11).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도나이 하나님이 우리 평생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6절에서 우리의 살 곳을 기업으로 주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8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9절에서 우리의 마음과 육체를 지키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 마침내 우리가 인생의 길을 다가고 무덤으로 갈 때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11절에서는 주인 되신 주님, 아도나이 하나님이 평생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하 기쁨이 잇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복이란 '좋은 운수, 큰 행복'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으로는 복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 도대체 복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왕이 되었으니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건강했습니다.
다윗은 누릴 것을 다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을 정도로 존경과 영광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나의 복입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사람이 그 권력이 복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던 그가 물질이 복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건강이 복이 있다고 장수가 복이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놀라운 성공도 복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주 밖에는 복이 아예 없다고 다윗은 분명하게 잘라 말합니다.
진나라의 진시왕은 B.C. 246년 그의 나이 13세에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훗날 그는 세력이 가장 미약했던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서 조나라와 위나라 그리고 초나라와 연나라와 산동 반도의 제나라를 무너뜨리고, B.C. 221년, 39세에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중국의 문자를 통일하고 아방궁에서 3,000명의 후궁들을 거느렸으며 중국의 만리장성을 완공하였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비 460여명을 생매장한 잔인하고 악한 폭군이었습니다.
도술과 연금술에 흠뻑 빠진 그는 죽지 않는 신선이 되는 꿈에 젖어 불로초를 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신하 서복을 시켜 동남동녀 500명을 데리고 항해하여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을 내립니다.
전설에 의하면 서복이 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가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념하여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서귀포시에 후진타오 주석이 다녀간 서복 전시관이 세워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선이 되기를 소원했던 진시황제는 BC 210년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천하의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우리 행복의 주인이십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우리 기업의 주인이십니다.
아도나이 되시는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은 우리 평생의 주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