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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14.
하나님의 껌딱지가 되라
260830낮 (신4:3-4)
<3)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4)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아멘
4절을 보십시오.
<4)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여기서 “붙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קבדַ, dābaq)입니다.
단순히 잠깐 접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밀착하다, 달라붙다, 매달리다는 뜻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의지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아이들보면 유달리 엄마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요즘말로 <껌딱지>라고 부릅니다.
다바크/ 하나님께 붙어 있어 떠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즘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껌딱지>였던 것입니다.
바알브올 사건 때, 하나님의 껌딱지가 되어 하나님께 끝까지 붙어 떠나지 않은 자들은 오늘까지 살아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하나님의 껌딱지가 되라>고 정했습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설교를 하면서 지난 광야에서 있었던 우상숭배사건을 상기시키고 있는데...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스라엘에게 “무엇이 너희를 무너뜨리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쉽게 무너트리고, 그 댓가가 얼마나 무서웠던가를 상기시키는 영적인 경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바알브올이란 무슨 뜻일까요?
‘브올이라는 곳에서 섬기던 바알’이란 뜻입니다.
바알(Baal)은 가나안 지역에서 풍요·농경·생식과 관련된 신으로 숭배되었던 우상입니다.
바알브올 사건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민2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모압 평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모압의 신 바알에게 제사하고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지게 했습니다.
민수기 25:1-3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평지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모압 여인들과 이스라엘 남자들이 음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남자들을 청해서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의 꾐에 결국은 바알신에게 절을 하게 된 사건입니다.
민수기 25장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던 백성인데 가나안 종교의 신에게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한 이 우상숭배사건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우상숭배에 가담한 자를 전염병으로 24,000명을 죽이셨습니다.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민25:9)
하나님은 왜 모세를 통하여 이 사건을 다시 상기 시키실까요?
신명기 4:3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여 똑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말고 더 나아가 미래의 순종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곳에는 우상숭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너희를 무너뜨리는 것은 강한 가나안 군대만이 아니다.
너희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는 것이 진짜 위험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아모리 족속도 아니었고, 가나안의 성벽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나는 것이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위기는 밖에서 오는 핍박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세상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가져오는 것,
작은 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지도자가 영적으로 무너지는 것,
예배보다 세상의 즐거움을 더 사랑하는 것,
이런 것들이 교회와 성도를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의 핵심은
3절, 바알브올에 붙은 사람은 하나님이 멸망시키셔서 다 죽었고,
4절,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았던 너희들은 지금까지 살아 있다 입니다.
이 말씀으로 은혜 받기를 축원합니다.
1. 여호와께 붙어 있는 사람은 살았습니다.
4절을 다시 봅시다.
<4)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여기서 “붙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דָּבַק, dābaq)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단순히 잠깐 접촉한다는 뜻이 아니라 밀착하다, 달라붙다, 매달리다는 뜻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의지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려고 애썼다는 사실을 말씀해 줍니다.
쉽게 하나님에게서 떠나 바알에게 붙은 사람들이 2만4천명이나 되었지만, 지금 생존해 있는 너희는 그러한 유혹과 분위기 속에서도 너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과거 우상 앞에서 믿음을 지켰던 그 믿음을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갖아야할 믿음임을 명백하게 주지 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유혹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신앙은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세상이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라고 할 때,
“나는 하나님을 선택하겠습니다.”
세상이 정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세상이 성공을 위해 신앙을 조금 내려놓으라고 할 때,
“나는 성공보다 하나님을 붙들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말하는 신앙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과 적당히 관계를 유지하라.” 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밀착하여 살아라.”
세상에 한 발, 하나님께 한 발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무엇을 붙잡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빈손으로 살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붙잡습니다. 그것이 본성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보면 손을 꼭 움켜쥐고 태어납니다. 속에 뭐가 들었는지 그 고사리손을 펴볼려면 잘 안 펴집니다. 그 펴진 손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면 꼭 쥐고 안 놔줍니다. 날 때부터 무엇인가를 붙잡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붙잡느냐?입니다.
우리가 정말 혼동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부산물) 붙잡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그림자를 붙잡고 그것이 하나님을 붙잡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하는 복이 주어지지 않으면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께 끝까지 붙어 있지 못하고 바알에게 절하고 그 우상을 숭배할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부산물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알이 풍요와 다산을 주는 신이라니까 그 신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붙잡으면 세상이 흔들릴 때 함께 흔들립니다.
사람을 붙잡으면 사람이 떠날 때 함께 무너집니다.
돈을 붙잡으면 돈이 사라질 때 절망합니다.
명예를 붙잡으면 명예가 사라질 때 자신의 존재까지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잡으면 상황이 흔들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8)내가 항상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16:8)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프로그램에 붙어 있으면 프로그램이 사라질 때 흔들립니다.
사람에게 붙어 있으면 사람이 떠날 때 흔들립니다.
재정에 붙어 있으면 재정이 어려워질 때 흔들립니다.
건물에 붙어 있으면 건물이 흔들릴 때 흔들립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으면 세상이 흔들려도 교회는 다시 일어납니다.
교회의 생명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능력은 돈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교회의 기준은 세상의 유행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는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붙어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하나님 여호와께!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2. 왜일까요? 붙어 있는 대상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 말라가기 시작합니다.
가지가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에 붙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의 핵심은 내가 얼마나 강한가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에게 붙어 있는가? 입니다.
내가 능력이 많아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성경을 많이 알아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잘해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껌딱지>처럼 하나님께 꼭 붙어 떠나지 않는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바알브올은 오늘날에도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바알이라는 이름의 신상을 섬기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알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돈이 바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인정이 바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가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자녀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과 명예가 하나님보다 중요해지면, 성공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봉사와 사역도 하나님보다 앞서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반드시 나무나 돌로 만든 신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요 바알브올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히, 콜 하이쉬”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각 사람의 행위에 대한 것이었음을 암시합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죄에 대해 개별적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 길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4절)는 말씀대로 끝까지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는 믿음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껌딱지>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지옥 불에 떨어뜨리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할 것입니다. 강제적으로 핍박을 통하여, 고난을 통하여, 실패를 통하여, 의심을 통하여, 질병을 통하여,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때로는 이간질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떼어 내려고 온갖 수작을 부릴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께 찰싹 달라붙는 껌딱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성공했느냐?”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인정하느냐?”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붙어 있는가?”입니다.
오늘 우리의 손을 다시 예수님의 손에 올려놓읍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시다. 따라합니다.
<“주님, 세상이 흔들려도 주님께 붙어 있게 하옵소서.
사람이 떠나도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형편이 어려워도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형편이 좋아져도 주님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끝까지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바알브올이 아니라 여호와께,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붙어 있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세상이 흔들려도 주님께 붙어 있게 하옵소서.
사람이 떠나도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형편이 어려워도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형편이 좋아져도 주님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끝까지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바알브올이 아니라 여호와께,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껌딱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