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침해의 보이지 않는 손
CIA의 공작 정치를 걷어내야 한다
2026. 1. 5
이경렬 전 외교관
1월 3일 새벽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기습해 반미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생포해 미국으로 압송한다. 번개 작전의 성공은 미 CIA의 사전 공작으로 마두로 정권 내 인사들이 미군에 협조했기 때문이다. “CIA에 신고하자.” 2024년 12월 3일 내란사태가 발발한 후 극우세력은 윤석열의 탄핵을 지지하는 연예인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 달라며 CIA 홈페이지에 메일을 폭주시켰다. 극우세력의 왜곡된 세계관에는 CIA란 반미 종북 세력으로부터 한국을 구해줄 ‘전지전능한 해결사’다. 한국의 구석구석에 CIA의 손길이 뻗치고 있음은 사실이다. 2015년 3월 우리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할 할 때 안 된다면서 으름장을 놓은 것도 그들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에이전시)이 공작한 외국의 쿠데타가 한둘이 아니다. 박정희의 5·16도 에이전시가 개입한 결과였다는 ‘설’이 강력하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에이전시 국장을 지낸 앨런 덜레스가 1964년 5월 BBC와 인터뷰하면서 5·16을 “가장 성공적인 해외 비밀공작”의 사례로 꼽았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인터뷰 녹취록은 없다. 5·16 공작설이 사실이라 해도 그 구체적인 작업 과정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국 정부는 1961년 4월 12일부터 5월 15일까지의 외교문서에 대한 비밀을 지금도 해제하지 않고 있다.
5월 16일 새벽 3시경 쿠데타가 시작되었다.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은 자신의 직권으로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쿠데타를 진압해달라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요구를 거절했다. 케네디 정부는 장면 정부가 전복되기를 원했다. 1960년 전후 한국을 강력한 반공 보루로 만들려한 미국의 눈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1976년 가을에 박동선 사건이 난다. 박정희의 지시로 박동선이 미 의원들한테 뇌물을 먹였다. 에이전시가 도청해 작성한 녹취록을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해 보도했다. 외무장관 박동진이 주한 미국대사 리처드 스나이더를 장관실로 초치해 손이 발이 되게 빈다. 앞으로도 죽 들여다보아도 좋으니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것만은 언론에 확인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주권보다는 체면이 먼저였다. 이러니 미국이 한국을 멸시한다.
2023년 4월 초 뉴욕타임스가 한국 대통령실을 에이전시가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했을 때 안보실 차장 김태효는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프리즘(PRISM)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이 미국 정부에 항의하고 있을 때 한국 외무부는 미국 정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고만 밝혔다. 미국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에이전시는 한국 정부의 고위급 인사에도 수시로 간여한다. 2006년 12월 송민순 안보실장이 외무장관으로 임명된다. 에이전시를 포함한 미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송실장의 장관 임명을 포기시키려고 집요하게 작업했다. 두 달 전 송실장이 “21세기 동북아 미래포럼”에서 미국이 인류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라고 언급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로 트집 잡았다. 앞뒤를 자른 보도였다. 노대통령은 미국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송실장을 장관에 임명한다. 한국이 미국의 압력을 거부한 몇 안 되는 사례였다.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2023년 3월 중순 경 에이전시가 안보실장 김성한과 그의 비서관이 한국의 포탄을 폴란드에 제공하는데 유보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요지였다. 3월 말 김실장은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하면서 사퇴한다. 언론은 블랙핑크와 관련된 일이 경질의 배경이라 추측했지만, 에이전시의 배후압력이 강력히 의심된다.
2024년 4월 총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가장 앞쪽 순번의 비례대표 의원 후보로 A씨가 내정된다. 그런데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후보 A가 느닷없이 B씨로 뒤바뀐다. A는 이것이 에이전시가 압력을 행사한 결과라고 믿는다. B는 미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인사였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한편 A는 진보 정당의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는 술을 주문할 때 이렇게 말한다.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보드카 마티니, 흔들어서, 젓지 말고.) 칵테일을 흔들어 만들면 술 농도는 약해지는 대신 더 청량해진다. 중의적인 의미도 있다. 본드 자신이 어려운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마음은 차분하지만(not stirred) 감정적으로는 흔들리고 있다는(shaken) 뜻이다. “007”은 대체로 스파이를 미화하고 있다. 상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성가시지 않다.
한국에서는 에이전시 요원들을 성가시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백색이든 흑색이든 마찬가지다. 전자는 대사관에 소속된 외교관 신분을 갖고 있다. 흑색은 암약하는 존재다. 한국만큼 에이전시가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가 거의 없다. 일본 정도다. 환경이 좋다는 말은 일거리가 많고 수용성이 좋다는 뜻이다. 에이전시가 고용하는 질 좋은 현지 끄나풀도 풍부하고 그 나라 정부에서 건드리는 경우도 없다는 말이다. 1960년대 초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에이전시의 요원이었다.
그런 일본을 한국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한국의 역대 총리와 장관 중에 에이전시의 자금을 받고 미국에 부역한 자가 한둘이 아니다.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의 한미 합동 902정보대 A-23팀에서 일했던 ‘흑금성’ 박채서는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정보대 근무 시 알게 되었다면서, 미국에 포섭된 한국인 요원이 386명으로 대부분 고위 인사라고 밝힌 바 있다.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은 에이전시의 요원이라고 의심되었던 유명인사다. 의혹의 핵심은 2000년대 초반 그가 리차드 롤리스 당시 미 국방부 부차관보에게 자신이 한국의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 수집한 고급정보를 넘겨주어 왔다는 것이었다. 롤리스는 15년 동안 에이전시의 윌리엄 케이시 국장 특보로 근무했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롤리스는 국방부 부차관보로서 용산기지 이전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해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위협했던 장본인이다.
「신동아」 2007년 5월호에는 반기문 외무장관이 당시 부시 대통령 일가와 가까운 관계에 있던 백회장을 2006년 10월 2일에 만나 곧 다가올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2008년 4월 대통령 이명박은 캠프데이비드에서 부시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때 이명박이 한미관계 복원을 강조하자 부시는 백회장과 롤리스의 스파이 혐의를 한국정부가 아직까지 풀지 못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한국 내에 에이전시와 연결된 한국인 끄나풀이 최소한 수십만 명이라는 말이 있다. 단순한 정보원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하는 ‘신념형 자발적 협력자’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조선의 인구가 2천만 명이었던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경찰 등 적극적인 부역자만 잡아 최소 10만 명이었다. 인구가 5천만이 넘고 80년 가까이 에이전시가 작업하고 있는 지금, 강제적 식민지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스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발적 종속’이 더 심각하다.
에이전시는 숭미의 진(gene)과 밈(meme)을 생성하고 확산한다. 우리 두뇌를 지배해 미국 앞에 무릎을 꿇린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개인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인지전쟁(Cognitive Warfare)도 벌인다. 에이전시는 또 숭미의 진과 밈이 쉽게 파고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한국인들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분열을 획책하는 것이다. 그들은 보드카 마티니(한국)를 젓고 또 흔들어서 마셔버린다. “Vodka martini, stirred and shaken.”이다. 극우세력은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은 미국뿐”이라고 말하면서 미국 국가를 부른다.
이제 에이전시의 사회교란 행위는 하나씩 파헤치고 제거해 나아가야 한다. 젓고 흔들(stir and shake)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숭미 극우파들의 준동이요, 에이전시의 암약이며, 한국 끄나풀들의 매국행위다. 외국의 정보기관을 통째로 추방할 수는 없다. 요는 그들의 불법행위와 인지전쟁 내지 공작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파이가 설치고 다녀도 수수방관한다면 나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에이전시의 천국이다. 사회교란 불법공작과 도청 및 도촬 그리고 인사개입을 포함한 내정간섭 모두 철저히 몰아내야 한다. 그것 역시 진짜 대한민국의 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