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오래되면 불편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아파트가 노후화됐을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제는 누수와 결로. 집안 곳곳이 축축해지고 곰팡이가 펴 입주민의 건강을 위협한다. 단열 성능이 저하되면서 난방 효율이 떨어져 에너지 낭비도 심해진다.
또한 세대 내부는 물론 아파트 외벽까지 크고 작은 균열이 발생해 외관상 보기 좋지 않고 건축물 안전까지 위협한다. 이 외에도 오래된 아파트이다 보니 주차장이 부족하고, 요즘 새 아파트가 가진 피트니스센터나 녹지 등 쾌적한 환경이 부럽기도 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같은 영화 속 환상의 이야기처럼, 아파트에도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마법과 같은 방법이 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가 이제 막 준공한 새 아파트로 환골탈태하는 방법은 바로 ‘리모델링’이다.
노후화 억제와 기능 향상이 목적
아파트의 리모델링이 뜨고 있다.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1기 신도시들이 올해 서른을 맞이하면서 노후화된 아파트의 리모델링에 대해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것이다. (사)한국리모델링협회는 3월 말 현재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는 60여 곳, 4만5천여 세대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견 건설사들의 활동무대였던 리모델링 시장에 대형 건설사들이 잇달아 뛰어들어 리모델링 수주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아파트의 노후화로 인한 주거환경의 질적 저하를 막고 입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아파트의 리모델링은 앞으로 더욱 크게 부각될 전망이다.
리모델링이란 기존 낡은 건축물을 구조적, 기능적 성능을 개선하여 쾌적성과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건축법』에서는 리모델링을 건축물의 노후화를 억제하거나 기능 향상 등을 위하여 ‘대수선’하거나 ‘일부 증축’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대수선(大修繕)이란 건축물의 기둥, 보, 내력벽, 주계단 등의 구조나 형태의 수선, 변경 또는 증설하는 대규모 수선을 말한다. 증축(增築)이란 건축물의 건축면적, 연면적, 층수 또는 높이를 늘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건축법은 리모델링 목적으로 노후화 억제와 함께 기능 향상을 명시하고 있다. 최근 리모델링의 가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물리적 노후화에 대응하여 건축물을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단순한 유지 보수의 개념을 넘어 사회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건축물의 성능이나 기능을 적극적으로 향상하는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기 신도시 아파트 가운데 처음으로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이 나왔다. 대형 건설사들이 잇달아 참전하면서 리모델링 수주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 포스코건설·쌍용건설 컨소시엄
오래된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바꾸는 방법에는 리모델링 외에 재건축이 있어 서로 자주 비교된다. 리모델링은 노후 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기존 구조를 활용하여 고쳐 짓는 방식이지만 재건축은 낡은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그 땅에 새로 짓는 방식이다.
리모델링은 준공연한이나 안전진단, 추진 절차 등이 재건축보다 덜 까다롭다. 리모델링은 15년 이상 된 아파트로 안전진단이 B등급 이상이면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재건축은 30년 이상 된 아파트로, 안전진단이 D 또는 E등급이어야 가능하다.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비용이 더 저렴하고, 공사 기간도 더 짧으며, 국가 경제적 낭비나 환경에 대한 부담이 더 적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용적률 규제가 없던 시절 지어진 아파트는 재건축하면 용적률 제한이 적용돼 바닥면적을 줄여야 하는데, 리모델링은 건축 심의만 통과하면 법정 용적률 초과도 가능하다.
하지만 재건축은 모두 허물고 완전히 새롭게 아파트를 꾸밀 수 있는데 비해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내력벽이나 기둥을 건드리기 어려워 집안 구조를 바꾸는데 제한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또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 난도가 높으며, 재건축보다는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한다.
수직과 수평 증축을 통한 공간 창출
리모델링은 건축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조직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과거 만들어진 건축물에 대해 현재 상태를 면밀히 파악한 후, 미래 수요를 고려하여 리모델링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건축물은 해체와 재배치, 추가의 과정을 거쳐 공간을 전면 재창출하게 된다. 건축물의 해체와 재배치, 추가는 기존 건축물의 구조적인 안전성을 바탕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기존보다 공간을 넓히는 추가다. 공간의 추가 확장 없이 해체와 재배치만 진행하면 아무리 공간의 짜임새가 좋아지더라도 한계가 크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통한 공간의 추가와 관련하여 『주택법』에서는 주거전용면적의 10분의 3이내(85㎡ 미만일 경우 10분의 4)에서 증축이 가능하고, 기존 세대수의 100분의 15 이내로 세대수 증가가 가능하며, 수직증축은 14층 이하는 최대 2개층, 15층 이상은 최대 3개층 증축이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수평증축은 아파트를 전후좌우로 늘려 가구당 주거면적을 넓히는 방법으로, 안전진단 C등급 이상만 충족하면 추진할 수 있다. 보수보강비가 수직 증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인허가도 수월한 편이라 공간의 확장을 위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수직증축은 골조 등 구조의 안전성이 보장돼야 추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안전진단 B등급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증가하는 세대를 분양해 사업비 조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데 안전성 때문에 수평증축보다 훨씬 추진하기 까다롭다.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과 건폐율에 여유가 있다면 아예 건물로 별개로 짓는 별동증축이 더 나을 수 있다. 별동증축 역시 증가 세대 분양으로 사업비 조달이 가능하나 새로 생기는 건물로 인해 기존 건물에 조망권 간섭 등이 발생하는 단점이 존재한다.
리모델링 전(위쪽)과 후(아래쪽)의 비교 모습. 공간의 확장을 위해 수평증측과 수직증축을 동시에 진행하고 지하주차장을 설치했다. ⓒ 삼성물산
공간의 확장을 위한 리모델링 증축에서는 건축물의 기존 구조체에 신설 구조체를 튼튼하게 연결하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골조 접합 공법을 통해 철근을 서로 연결하고 콘크리트 신구 면을 탄탄히 접합해 물리적 부착 성능을 확보하고 화학적으로도 결합하도록 한다. 기존에 건물이 완공됐던 시점보다 리모델링을 통한 공간 추가로 하중이 증가하기 때문에 슬래브와 기둥, 기초에 대한 보강도 진행해 내진 성능이 기존보다 더 향상되도록 한다.
리모델링 증축이 구조적으로 안전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에 새로운 코어(중심)를 부가하거나 확장해야 한다. 새로운 코어는 후면에 부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경제적이다. 코어를 전면에 추가 배치하면 채광 폭이 감소한다는 단점이 있다.
새로운 코어를 아파트의 두 세대 사이 중앙에 배치할 수도 있는데, 전·후면 채광 폭을 최대화할 수 있지만 평면계획상 세대 중앙에 긴 복도가 필연적으로 생기게 된다. 또 1층 주동 출입구 배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거주자를 위한 증축공간 활용법
아파트 리모델링에서 수평증축을 통해 세대 내 공간을 추가 확장할 때 전·후면 확장이 가장 일반적이다. 기존 발코니나 복도를 실내화한 다음에 전면 또는 후면에 새로운 발코니 공간 등을 붙여 증축하는 방식으로 평면을 확장한다. 전·후면 확장은 단위 세대에서 가로폭은 똑같은데 지나치게 깊어지는 단점이 발생한다. 세장비(깊이/앞 너비)의 증가로 인해 채광과 통풍에 불리하게 되는데, 이는 리모델링 평면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단위 세대를 옆으로 크기를 키우는 측면 확장도 가능하다. 세대 평면의 증가에 비례해 외기에 접하는 가로폭이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세장비가 증가하는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의 경우 옆으로 서로 붙어있어 전 세대의 측면 확장이 불가능하고 일부 세대에만 적용할 경우 세대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아파트 전면 폭이 좁은 경우 리모델링을 할 때 아예 2세대를 1세대로, 3세대를 2세대로 통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채광과 통풍 등 고려시 세대 통합으로 합리적인 단위 세대 평면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세대 수가 기존보다 감소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 않다.
리모델링으로 공간을 확장한 후 세대 평면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전면에 배치되는 공간은 채광과 통풍 등에 유리한데, 일반적인 3베이(전면 발코니를 기준으로 벽과 벽 사이의 한 구획) 아파트의 평면처럼 안방-거실-방을 배치하지만 리모델링 특성으로 인해 안방-거실-주방이 위치하는 사례도 많이 등장한다. 주방에는 김치냉장고 등 수납을 위해 보조주방 및 다용도실로 쓸 수 있는 발코니가 붙어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30% 가까이 증가한 면적을 어떻게 활용하지는 바로 입주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보통 침실이 3개보다 적은 소형 평형에서 침실 개수를 늘리며, 침실 개수가 원래 3개 이상인 대형 평형에서는 침실 면적을 증가시킨다. 옛날 아파트에서는 없었던 드레스룸을 안방에 보조적으로 설치하는 사례가 많다.
화장실이 1개인 세대는 부부욕실을 추가해 화장실을 2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 침실보다 조금 작지만, 입주민 기호에 맞게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알파룸을 만드는 경우도 늘고 있다.
발코니를 실내화한 후 수평증축으로 전·후면을 확장한 리모델링 사례. 면적은 대폭 증가해 리모델링을 통한 공간 확장 효과는 상당하나 세장비는 커졌다. ⓒ 최재필 외, 『노후 공동주택 리모델링의 평면확장 유형과 특성에 관한 연구』
아파트 주동 차원에서는 리모델링을 진행하면 1층을 필로티로 처리하고 최상층을 증축하는 사례가 많다. 급·배수관 교체는 필수적으로 중요하며, 고장이 많은 낡은 엘리베이터도 대부분 교체한다. 최신 아파트처럼 바깥에서 보기 좋도록 외피 개선도 많이 진행한다.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 리모델링은 보행자 중심의 동선체계 구축, 휴식시설과 운동시설 설치 등 외부공간 개선을 진행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하주차장 또는 데크 주차장의 신·증축이다.
옛날 아파트들은 주차대수가 매우 부족해 리모델링 할 때는 세대당 1.3대 내외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하주차장을 지하 3층까지 깊이 파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아파트 건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지하주차장 설치는 매우 까다로운 일로, 확장방식과 기존구조 존치 여부, 굴토(땅파기) 공법, 흙막이 공법, 주동 진입방식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구조안전성은 물론 시공성, 경제성, 편의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지하공간 확장은 먼저 흙막이벽을 설치해 공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 후 기존 기둥 아래로 마이크로 파일(말뚝)을 시공해 굴토 작업 동안 기존 기초 대신 지반에 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다. 기둥이 옆으로 휘는 좌굴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보강재를 설치하여 트러스를 구축하고 벨트프레임을 이용해 기존 기둥과 연결한다.
기초면까지 굴토가 완료되면 기둥과 외벽을 시공하고. 차례로 신설 기둥과 보를 기존 기둥까지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가로로 지탱하던 트러스를 제거하면 지하주차장 공간이 완성된다.
새로 건설하는 아파트와 달리 리모델링은 거주자가 이미 명확하게 결정되어 있어서 거주자의 의견을 충분히, 정확하게 반영하여 진행할 수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단순한 노후화 억제를 넘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아파트의 리모델링은 더욱 광범위하게, 더욱 혁신적으로 추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