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걸음의 등불-평생의 빛(시119:105-128)
갈등
1. 1911년 12월, 세상에서 가장 춥고 가장 거친 땅, 남극.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은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이르는 도전을 하였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새하얀 눈뿐입니다. 길도-표지판도 없습니다. 산과 들의 경계도 보이지 않습니다. 조금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얼음 틈으로 떨어질 수 있고, 눈보라는 그치지 않고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아문센은 신기할 만큼 침착했어요. 그는 동행한 대원들에게“오늘 우리의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눈 앞에 보이는 저 지점까지만 가보자.”그리고 또 다음 지점. 이어서 다음 지점. 그렇게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향해 걸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칠 때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요.
그 한 걸음들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하는 역사를 이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묻습니다.“하나님, 제 인생을 모두 보여 주세요.”하나님은 우리의 평생을 한 번에 보여 주시지 않아요. 오늘 걸어야 할 한 걸음을 비추어 주십니다. 오늘 시인은 이 이야기를 노래해줍니다. 시인의 노래 시작은 105절,“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등불은 산 너머까지 비추지 못합니다. 내 발 앞, 넘어지지 않을 만큼만 비춰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한 걸음을 따라 걷는 사람의 인생 전체를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2. 우리는 등불보다 탐조등-강력한 서치라이트를 원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을, 내일보다 십 년 후를 알기 원해요. 취업-결혼-건강-자녀의 미래-교회의 앞날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안개 낀 새벽과 같습니다. 자동차 전조등은 수 킬로미터 앞까지 비추지 못합니다. 불과 몇십 미터 앞만 비춥니다. 우리는 그 빛만 따라 계속 달려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등불을 주십니다. 그 등 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인은,“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시인은,‘주의 말씀은 내 인생의 빛'이라고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발은 오늘 디뎌야 할 곳입니다. 등은 넘어지지 않도록 비추는 빛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의 모든 결과보다, 오늘 우리의 순종을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그 등불을 들고도 자꾸 다른 빛을 찾아갑니다. 세상의 화려한 빛이 더 밝아 보여요. 돈이 내 미래를 보장해 주고-사람들의 인정이 내 길을 밝혀 줄 것 같습니다. 내 경험과 계산이 가장 안전한 지도처럼 믿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말씀보다 세상 불빛을 더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화려한 네온사인은 길을 안내하지 못합니다.
3. 길을 알려 주는 것은 화려한 불빛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등불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겠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93절,“내가 주의 법도들-말씀을 영원히 잊지 아니한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인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다른 빛을 따라가게 될까요? 왜 말씀을 손에 들고도 두려워하고, 흔들리고, 방황할까요?
갈등 심화
4. 깊은 밤 산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 불빛 하나가 보입니다. 마을이 보이며, 이제 다 내려왔다고 안심합니다. 지리산이나 한라산 같은 곳은 등반 시간이 오래 걸려, 아침 일찍 올라가도 내려올 때는 밤이 됩니다.(랜턴을 지참해야) 반가운 마음에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집이 아닙니다. 공사장의 조명이었습니다. 또 다른 불빛을 따라갑니다. 이번에는 자동차 전조등입니다. 잠시 환해졌다가 금세 사라집니다. 불빛은 많았지만 길은 찾지 못했어요. 빛처럼 보인다고 모두 길을 안내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빛과 사람을 속이는 빛은 다릅니다. 오늘 시인은 그 싸움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113절,“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두 마음은 하나님도 붙들고 세상도 붙드는 마음입니다. 말씀도 의지하고, 내 계산도 의지합니다. 하나님도 믿지만, 돈도-사람도-내 경험도 붙들고 살아갑니다. 등불은 손에 들고 있는데, 눈이 자꾸 다른 불빛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우리의 걸음이 흔들립니다. 믿음도-마음도 흔들립니다. 시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114절,“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등불은 길을 비추고, 방패는 화살을 막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향만 알려 주고, 또 우리의 삶을 지켜 주는 울타리입니다. 우리는 자꾸 그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5. 울타리 밖의 불빛이 더 화려해 보입니다. 세상의 성공은 눈부십니다. 빠른 길은 더 쉬워 보이고-타협은 더 편안해 보입니다. 거짓이 진실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인은 115절,“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시인이 사람을 미워한다는 노래가 아닙니다.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유혹을 끊겠다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한순간 반짝이는 불꽃과 같습니다. 밤하늘을 가르는 폭죽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순간은 눈부십니다. 하지만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등불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작습니다. 멀리 비추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꺼지지 않고 길을 밝혀 줍니다. 시인은 그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불빛은 눈을 사로잡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을 살립니다. 128절,“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인은 이제 무엇이 화려한가를 보지 않았어요. 무엇이 참된 빛인가를 분별하였습니다. 우리도 매일 수많은 불빛 앞에 서 있습니다. 세상은 더 빠른 길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더 쉬운 길-더 화려한 길을 따라오라고 손짓합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은 참된 등불입니까? 아니면 잠시 반짝이다 사라질 불빛입니까?
실마리
6. 등불-랜턴을 들고 걸어보면, 답답할 만큼 조금만 비춰줍니다.“서치라이트처럼 조금 더 멀리 비춰 주면 좋을 텐데. 산 너머까지 보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이 듭니다. 만약 등불이 산 너머까지 환하게 비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지금 발밑의 돌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기보다, 멀리만 바라보다가 눈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답답하게 하려고 한 걸음만 비추시지 않습니다. 한 걸음씩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아기가 처음 걸음을 배울 때, 부모는 아이를 안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않습니다. 두 손을 벌리고 한 걸음 오라고 기다립니다.
아이는 다리가 떨리며 한 걸음 내딛습니다. 비틀거립니다. 그러다 넘어집니다. 이렇게 하면서 한 걸음이 또 한 걸음을 낳고, 아이는 스스로 걷게 됩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평생을 대신 걸어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한 걸음을 함께 걸어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경험 가운데 시인이,“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노래했어요. 내 발은 오늘 내가 디뎌야 할 자리-순종해야 할 자리-믿음으로 걸어야 할 자리를 하나님께서 비추신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속 믿음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걸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다 알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7. 모세는 홍해를 다 건넌 뒤에 지팡이를 들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그대로 있는 순간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도 요단강이 모두 마른 뒤 발을 디디지 않았습니다. 물이 흐르는 강으로 먼저 발을 내디뎠어요. 믿음은 언제나 한 걸음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 인생 전체를 보여 주시지 않는다고 답답해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길을 숨기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손을 놓으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손을 잡고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옛날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들에게는 오늘처럼 GPS도, 전자해도도 없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파도가 높아지면 바다는 온통 검은 세상이 됩니다.
그때 선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항구의 불빛이 아니라 북극성이었습니다. 파도도 배도-사람의 마음도 흔들립니다. 북극성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폭풍우 속에서도 끝내 항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날마다 기준을 바꿉니다. 어제는 성공이 행복이라고 말하다가, 오늘은 돈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내일은 또 다른 것을 붙잡으라고 합니다. 유행도 바뀌고-가치관도-사람들의 평가도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파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이것을 붙들었습니다. 시인은,“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본다.”고 선언했어요.
8. 그는 이제 세상의 박수갈채를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길이 먼저 바뀐 것이 아닙니다. 길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어요. 세상이 화려하다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순종의 길이 가장 안전한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등불은 여전히 작았습니다. 오늘도 겨우 한 걸음만 비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을 비추는 등불의 기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인은 참된 빛을 발견하고 기뻐했습니다.
복음 제시
9. 오늘 시인은 우리에게 등불을 노래해줍니다.“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분을 보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요8:12,“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멀리 보기를 원합니다. 내 인생의 끝을 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지도를 먼저 내미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길을 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십자가는 가장 깊은 어둠이었습니다. 죄의 어둠-죽음과 절망의 어둠이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아버지를 신뢰하며 순종의 한 걸음을 내디디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 세상은 꺼지지 않는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의 선교를 통해서“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기대
10. 오늘 시인은 우리에게 놀라운 노래를 불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가 아닌 오늘 걸어야 할 한 걸음을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미래가 보이지 않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모두 아는 사람보다, 오늘 말씀을 따라 한 걸음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어 가십니다. 깊은 밤 등불 하나를 들고 걷는 사람은 멀리 보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습니다. 한 걸음 내딛으면 또 한 걸음이 보이고, 또 한 걸음을 내딛으면 길은 조금씩 앞으로 열립니다. 그렇게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는 순간, 비로소 깨닫습니다.“하나님께서 내 평생을 인도하고 계셨구나.”(우리 교회 선교도)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더 화려한 불빛을 따라오라고 유혹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 주는 것은 잠시 반짝이는 불빛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입니다. 또 그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한 걸음을 믿음으로 걸어가십시오. 말씀 앞에서 한 걸음을 순종하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며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그 한 걸음이 또 한 걸음을 낳고, 그 순종이 또 다른 순종을 낳아 어느 날, 뒤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전체를 가장 선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하셨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한 걸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생의 빛이 되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