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25신]어머니의 다른 이름, 우리 이모姨母
친애하는 우리 전주 이모께.
살다보니 이모께 편지를 쓰는 날도 있네요. 흐흐,
올 시한(겨울)은 작년과 달리 눈도 많이 오고 날씨도 많이 춥네요.
나날이 잘 계시지요?
따져보니 이제 해 넘어 아흔 살이 되셨군요.
그제도 95세 아버지와 전화하셨다구요.
세상을 살아도 한참 많이 사신 '늙은 형부와 늙은 처제'가
종종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 참 좋더이다.
큰 외가집 큰형님이 일곱 고모에게 보내주었다는 ‘칠공주 사진’을 들여다 봅니다.
외할머니 회갑잔치때 외가집 마당에서 찍었다지요.
이런 기념비적인 흑백사진은 이제 보기 힘들겠지요.
모두 하나같이 ‘조선朝鮮 여인’들 같이 생기셨어요.
우리 어머니는 세 번째 딸이고, 이모는 네 번째.
외할머니가 아들 둘에 딸 일곱을 낳아 딸부자집이라고 불렀다지요.
그 많은 이모 중에도 우리집과 가장 친하게 지낸 분은
바로바로 전주 이모뿐이었지요.
지금도 가끔 전화를 드리거나 찾아뵈면 어찌나 살갑게 대해주시는지,
그 ‘따뜻한 맛’ 때문에 어머니가 생각나면 이모가 보고 싶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우리 형제들이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틈만 나면 이모집을 찾아 끼니를 해결했던 게 무릇 기하였던가요?
큰형, 작은형, 셋째형, 큰동생, 작은동생, 저까지 여섯 명이 찾아갈 곳은
이무럽기(친하기)가 한량없는 이모집 밖에 없었던 것같아요.
‘빨간 고기’라 부르던, 둠성둠성 크게 자른 돼지고기와
새파란 무청을 몽땅 넣고 오래오래 끓여주시던 찌개이자 국이
지금도 종종 생각나니 어찌 그 기막힌 맛을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것 하나만 해도 이모의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모는 언제까지나 이모라 불러야 제 맛입니다.
연로하셨다고 ‘이모님’이라고 하면 ‘느낌’이 안옵니다.
두어 달 전에 오수의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정말로 이모를 판박이처럼 닮아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얘기를 하다보니 저와 동갑이어서
그 자리에서 ‘친구’하기로 했답니다.
이모 ‘여사친’이라는 신조어를 모르시지요?
‘여자사람친구’의 준말이라는데, 이성관계가 아니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친구를 뜻한다네요.
그러니까 제 여사친이 생겼습니다.
제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눈곱만큼도 질투하지 않더군요. 흐흐.
요즘 거의 날마다 십리길 자전거를 타고 가서 잠깐 얘기도 나누고 오는 사이가 되었지요.
그때마다 이모를 닮았기에 이모를 생각합니다.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반찬도 모두 깊은 맛이 있어 이모 생각이 또 절로 납니다.
어제는 고추짱아찌를 좀 얻어 왔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요.
간장조차도 아까워 밥을 비벼먹어도 그만입니다.
아무튼 참 재밌는 일입니다.
언제 모셔서 김치찌개라도 사드리고 싶습니다.
엄마는 평생 흙만 파고 사시다 돌아가셨지만,
이모는 전형적인 중소도시의 중산층 주부이셨지요.
‘고진’(법 없이도 살 선한 분을 일컬음)인 이모부와 함께 사시면서
5남2녀(쌍둥이형님들을 포함해)를 낳아 기르고 가르치는 가운데에도
큰집 조카 네 명이 전주로 유학을 와 한 집에서 데리고 사셨지요.
말하자면 조카들을 포함해 11명의 뒷바라지에 얼마나 힘들게 고생을 하셨을까요?
거기에 바로 윗 언니의 조카들까지 자주 들락날락 귀찮게 했으니,
밥해대는 ‘밥순이’가 따로 없는 셈이었을 것같아요.
어머니는 농촌 무지랭이 할머니였지만,
이모는 지금도 자태가 고우신 것을 보면
‘도시주부’답게 세련되고 곱게 늙으셨어요.
저는 무엇보다 성격적으로 쿨하신 게 너무 좋아요.
우리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도 금세 해주셨으니까요.
게다가 기억력이 어찌나 좋으신지,
지금도 그 많은 자식과 조카들이 어디 중학교, 어디 고등학교를 나왔는지를
환하게 꿰뚫고 계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모의 마음에 아직도' 총생들'이 가득 들어있으니 그러시겠지요.
이모, 내일모레면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지 만으로 2년입니다.
그날 큰딸인 큰동생과 함께
간소한 주과포酒果脯를 마련, 산소에 인사드리러 갈 것입니다.
어머니가 보고싶으면 이모께 달려갈 터이니,
언제까지 전주 태평동 그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그 전화, 그 목소리를 들으면 한 시름 놓이겠지요.
세상에 어느 할머니가 65살이나 된 조카의 얼굴을 쓰다듬고
'영뢱아, 영뢱아'하면서 손을 어루만지며 놓기 싫어하는 분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딱 한 분, 우리 전주이모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한 우리 이모,
오래오래 건강하시어 우리 아버지와 함께 백수하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일간 꼭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지내소서.
1월 19일 새벽
임실 고향에서 조카 절합니다
첫댓글 2014.3.23일 새벽
이모 영정앞에
잠이 들다 깨다
깜짝놀라 바라보니
환한 얼굴로 나의 얼굴을
날 쓰다듬는 이모의 손길.
이승에서의 세상사
쉽게 마치는데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살이
잠깐왔다 가는 세상
왠 놈의 수속이 복잡하단 말입니까?
먼저 태어나신 분
먼저 보내드리는
입장이면 안됩니까?
목련꽃 살구꽃피는 봄날에
훨 훨 떠나가는 우리 이모
나의 몸 식을 그 날까지
고이 기억하게 하소서.
가슴맺힌 이승의 아쉬움
쉽게 놓으시고
새장속을 벗어난 새처럼
훨훨 날아가소서.
자식.손자들의 미련일랑
당신 몸 타오를 불꽃속에
마지막 눈물로 잊으소서.
89년 세상살이
이남례 이모님
수고하셨습니다.
새장속을 벗어나는
새처럼 멀리 날아가소서
부처님의 사랑찾아
훨훨 날아가소서.
조그만 화분의 꽃
좋아하셨던 사랑.
이승의 끈나풀 쉽게놓으시고
꽃피는 봄날
자식의 사랑 잊지말고
쉽게 떠나가소서.
당신의 크신 사랑
길이 남게하소서.
당신의 넓은 마음
이 세상 덮게하소서.
좋은 세상찾아 먼저가신
부모형제 만나
복락을 이루며
남겨주신 당신 사랑
길이 빛나게 해주소서
우리 막내이모 마지막 가시는 날
시신을 지키며 썻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