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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광포 원점의 땅 덴마크
2023년 5월 31일
교육대국을 비추는 인간혁명의 대광
덴마크(Denmark) 아스코에 있는 민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얀 모라 씨는 기숙사 룸메이트로부터 불법(佛法)의 이야기를 들었다. 창가학회(創價學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1968년 5월 31일 일본을 방문한다. 다음 날인 6월 1일, 도쿄 타이토체육관(당시)에서 열린 남자부간부회에. 인생에서 처음 참가하는 학회(學會)의 회합(會合)이었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직 이름밖에 몰랐다.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55년 전의 감동
남자부간부회에 참석한 이케다 선생님은 장내에서 금발의 외국인 청년을 발견했다.
인사말의 서두에 “오늘 외국인 동지가 와있으니 대표로 염주(念珠)를 드리고 싶은데 어떨까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의 제안에 회장이 떠들썩해졌다. 해외의 벗이 일본의 회합에 참석하는 일이 아직 드문 시대였다.
얀 모라 씨는 선생님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줄 몰라 주위가 손짓으로 전했다. 1만 명이 넘는 참석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모라 씨는 회장의 연단으로 서둘러 향했다.
연단 아래까지 달려온 모라 씨에게, 선생님은 “단상에서 인사하는 형태가 되어 버려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어본존(御本尊)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니까요.”라며 굳은 악수를 나눴다.
이때의 일을, 모라 씨는 “선생님께서 ‘빅·하트(큰 마음)’를 건네주신 그 감동은, 5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라고 되돌아본다.
모라 씨가, 일본 방문까지 하며 창가학회에 대해 알고 싶었던 계기 중 하나가, 민중고등학교의 수업이었다.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 등이 소재였다.
그 수업을 담당했던 교사가 “프랑스혁명은 정치혁명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경제혁명이었습니다. 만약 다음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간의 내적혁명’입니다.”라고 말했다.
교사의 말에 놀랐다. 기숙사 룸메이트가 얘기하던 창가학회의 사상이 인간혁명(人間革命)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7년 12월, 모라 씨는 신심(信心)을 시작했다.
일본에 체류한 반년 동안 많은 좌담회에 참석했다.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해 내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장소나 밝고 생동감이 넘쳤다. 그 좌담회의 모습 자체가 “이 신앙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는 귀국 후 코펜하겐대학에 들어가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서(御書)를 연찬하며 동지의 격려에 분주. 2002년부터 17년간 덴마크SGI의 이사장을 맡아 덴마크 광포(廣布)를 크게 신장시켰다.
이상(理想) 실현을 위해 싸우는 최고의 동지
덴마크는 ‘유럽 광포 원점의 땅’이다. 1961년 10월 5일, 유럽을 처음 방문한 이케다 선생님이 그 제일보를 새긴 것이 이 나라였다.
덴마크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牧口) 선생님, 제2대 회장 도다(戶田) 선생님이 깊이 경애한 교육 강국이기도 하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저서 『창가교육학체계(創價敎育學體系)』의 서언(序言, 서문)에서 이 나라의 교육자 니콜라스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 1783~1872)의 사상을, 제자 크리스텐 미켈센 콜드(Christen Mikkelsen Kold, 1816~1870)가 넓힌 사실을 언급하고, 그 사제의 모습에 자신과 도다 선생님을 비추어(중첩해) “창가교육학(創價敎育學)의 전도(前途)에 한 점의 광명(光明)을 인지했다.”라고 적었다.
19세기 중반, 덴마크는 두 차례에 걸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해 국토를 빼앗기고 인구도 감소했다. 사람들은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되찾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조국 부흥의 발걸음을 추진했다.
그리고 패전 8년 만에 50개가 넘는 학교가 탄생한다. 이들은 ‘민중(民衆)의 대학’을 의미하는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로 불리며 민중고등학교로 번역됐다. 그 설립에 자신의 일체를 바친 것이 그룬트비와 콜드였다.
민중고등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공동생활을 하며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배워가는 전에 없던 형태의 학교였다. 이 교육이 바탕이 되어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이 뿌리내렸다고도 한다. 복지대국 덴마크의 원류에는 그룬트비와 콜드라는 사제(師弟)의 존재가 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 나라의 아스코민중고등학교의 한스·헤닝센(Hans Henningsen) 전(前) 교장과 대담집을 엮었다. 선생님은 그룬트비와 콜드의 사제의 교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상(理想)이 위대할수록 한 세대(世代)에서 모든 것을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難事)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로의 계승이 필요합니다. 세대에서 세대로 착실하게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만이 빛을 더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제(師弟)’란 똑같은 이상을 함께 나누고 그 실현을 위해 싸우는 최고의 동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말에 전 교장은 깊이 찬동했다.
세계에 공통된 불변(不變)의 방정식
21세기가 개막하고 첫 학회 창립기념일인 2001년 11월 18일, 덴마크에서 한 식전(式典)이 열렸다.
아스코민중고등학교의 정면에는 기원전부터 존재한다는 연못이 있다. 그해 10월, 아스코 주민평의회는 이케다 선생님의 국제교류 노력과 교육 공헌을 기려 그 연못을 ‘이케다 연못’으로 명명할 것을 결의. 학회 창립일에 명명식이 개최되었다.
2009년 3월에는 덴마크 남(南)대학에서 이케다 선생님에게 ‘명예박사학위’가 수여됐다. 소렌 뱅 라스무센 총장은 식전에서 말했다.
“덴마크 남대학은 희유(稀有)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제1호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교육의 목적을 깊이 이해하고 국제적 시야에 서서 인간주의와 국경을 초월한 상호 이해를 추진해 복지(福祉)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덴마크 국내에서 넓혀지는 SGI에 대한 공감의 고리. 그것은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시민으로서 신뢰를 넓혀왔다는 증거다.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큰 마디가 된 회합이 있다. 1989년 6월, 이케다 선생님이 참석한 가운데 스웨덴에서 개최된 제1차 SGI 북유럽총회다.
석상에서, 선생님은 강조했다.
“불법(佛法)의 확대도 승리한 한 사람에서 시작됩니다. 인원수가 아닙니다. 진실한 한 사람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불변의 방정식이었습니다. 일본, 미국, 브라질, 동남아시아…. 북유럽의 땅도 절대 예외는 아닙니다.”
스승의 격려를 가슴에 품고 덴마크 벗은 자신의 발밑에서부터 우정을 넓혀나아갔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덴마크SGI는 7500명의 대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선생님의 유럽 첫 방문 60주년이 되는 같은 해 10월, 목표를 웃도는 8700명의 확대를 달성. 지난해에는 3만 명에 대한 대화를 이루어냈고 올해는 5만 명 확대에 도전하고 있다.
덴마크의 계관시인 에스더 그레이스 씨는 이케다 선생님께 드리는 증시(贈詩)에 읊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 인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 인간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리고 모두가 / 자신을 변혁(變革)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 세계의 변혁을 향해 나아가라!”
매일 자타 함께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친구와의 대화를 넓히는 덴마크SGI의 벗. 인간혁명(人間革命)의 대광이 교육대국을 비추고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