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슐러 목사의 '번영 신학'은 한때 교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인간의 죄성과 회심 대신 '성공'을 외치며 수정교회를 초대형교회로 성장시켰다.
슐러 목사가 수정교회에서 설교하던 모습.로버트 슐러 목사는 항상 '꿈'을 좇았다.
그의 닉네임이 '드리머(dreamer)'였던 이유다.
슐러 목사는 매주 방영됐던 TV프로그램 '능력의 시간(Hour of Power)'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이 프로그램은 무려 40여년간 방송됐다. 매주 수백만 명이 그의 메시지를 들었다.
1955년 슐러 목사는 오렌지카운티에 '가든그로브 커뮤니티 교회'를 세웠다.
그는 '드라이브-인' 야외 극장에 교회를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다소 무거운 주제인 인간의 죄성과 회심만 전했던 그 무렵 목사들과는 달리 슐러 목사는
꿈과 성공을 외쳤다. 그의 달콤한 메시지는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가주 지역의 랜드마크인 '수정교회' 건물은 1980년 완공됐다. 당시 최고의 건축가였던
필립 존스가 설계했다. 공사비로만 무려 2000만 달러가 투입됐다.
건물 외벽은 대형유리(1만664장)로 장식됐고, 세계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됐다.
규모 8의 지진이 와도 견딜 수 있게 지어졌다.
'수정교회'란 이름은 건물이 완공되면서 붙여졌다. 슐러 목사가 당시 가톨릭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난 자리에서, 교회 사진들을 보여주며 한껏 자랑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영향력은 컸다. 1990년대 들어 교계에서는 '슐러 목사 따라하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부동산 붐과 함께 '메가 처치(mega church)'가 속속 생겨났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널드를 빗댄 '맥처치(McChurch)'란 신조어와,
대형교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도 이때쯤이다.
슐러 목사는 '번영 신학'의 대표 인물로 여겨졌다. 존 파이퍼, 존 맥아더 등 개혁주의권
목회자들은 그가 외쳐온 '성공'의 의미가 "성경과 다르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목회 인생 말년은 초라했다. 슐러 목사는 지난 2006년 담임 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논란이 일자 교인들이 흔들렸다. 목회직 계승을 두고 자녀간의 불화도 시작됐다.
교세가 줄고, 헌금이 감소하면서 수정교회는 결국 파산신청을 하게 된다. ( 지난 2010년 )
얼마 후 가톨릭 오렌지카운티 교구가 5700만 달러에 수정교회 건물을 인수했다.
이 사건은 교계의 경종을 울렸다. 혹자는 '번영신학의 말로'라는 평가까지 내렸다.
영원히 좇을 것만 같던 꿈도 종착역은 있었다. 2015년 4월2일.
슐러 목사는 그렇게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