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의 실정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에 성공하여 왕 되었지만,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던 반정공신들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켜 공주로 도망가는 볼썽 사나운 일을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재위 5년에는 숭덕제 홍 타이지로 부터 습격을 받아
이번에는 강화로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도 정신을 못 차린 왕은 8년 후에 또다시
홍 타이지의 습격을 받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합니다.
어디 피신만 잘한 왕인가요.
청 태종 홍 타이지가 자신의 아들을 인질로 데려가 9년 만에
돌아왔지만 두 달만에 죽은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아비로써 의심을 받는 임금.
미운 짓은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들 소현세자의 빈 며느리 강 씨마저
사약으로 죽여버리죠. 손자 들은 귀향 보내고.
그리고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왕으로 앉혀
예송논쟁까지 불러오게 하여 죽어서도 문제를 일으켰던 인조.
조선 27명 왕 중에 무능함과 미운 짓에 일 순위지만
그는 역시 왕이었기에 평범한 우리와는 생각이 달랐다고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우리에게 변명합니다.
"조정이 가난하여 너희들의 추위를 덮어주지 못하니 나의
부덕이다. 너희들이 이 외로운 산속에서 얇은 옷에 떨고 거친 밥에 주리며,
살이 얼어 터지고 발가락이 빠지는 추위에 알몸을 드러낸 채 성을 지키고 있으니,
나는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듯 아프다"(남한산성 말 먼지 198쪽)
자 이쯤 되면 우리와는 생각이 확연히 다른 거죠.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십 년 만에 숙제를 하듯 남한산성을 보았습니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청의 용골대가 기습적 습격으로 인조는 강화로 피신을 하지 못하고
1635년 12월 14일(음력)부터 1637년 2월 2일까지 남한산성 행궁에 있으면서
신료들과 군병들 그리고 민초들이 엄동설한을 어떻게 버텼으며
무너졌는지를 장엄한 대서사시로 절창을 합니다.
인조가 창덕궁을 떠나야 하는 '눈보라'부터 용골대와 칸(청 태종)을
아들 소현세자와 함께 보내고 김상헌도 집으로 가고 대장장이 서날쇠는
농사를 짓기 위해 맑은 똥물을 밭에 뿌리는 '성 안의 봄'까지
총 4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송파나루에서 뱃사공의 안내를 받으며
얼어붙은 강을 건너면서 물어봅니다.
청병이 오는데 왜 피난을 가지 않았냐고
어린 딸도 있고, 어디 가도 마찬가지니까 청병이 오면
이렇게 길 안내를 하면서 끼니를 해결할 거라고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죠.
어제 새벽에 임금님의 어가 길 안내를 했는데 좁쌀 한 줌도
주지 않았다고. 김상헌이 같이 가자고 하자 싫다고 합니다.
언강을 다 건너온 김상헌은 사공을 자신의 칼로 목을 벱니다.
그것이 평생 트라우마가 될지라도.
남한산성은 예판 김상헌이 이야기를 주로 끌고 갑니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자신의 열다섯 살 쌍둥이 아들과 아내를
산성 밖 처가 조안으로 피난을 보냅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김상헌은 도롱이를 걸치고
군병들이 있는 성첩을 순찰합니다.
김상헌이 입었던 도롱이에 흘러내리던 빗물은 고드름으로 변하고.
성첩에 군병들은 밤새 맞은 비로 손가락 마디가 빠져서 창을 쥘 수가 없고
언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라고 임금에게 고합니다.
임금은 종친, 사대부, 사찰의 승려, 민촌의 백성들에게서 여벌의 옷, 귀마개, 버선을 거두어
성첩에서 밤새 비 맞은 군병에게 주라고 어명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는 젖은 땅에 꿇어앉아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자신의 죄가 크다고.
말먹이 마른풀을 성 밖에서 구하던 군졸들이 청병의 창에 죽었으며,
성 밖에 마른풀은 청장 용골대의 지시로 불 질러서 사흘 동안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성 안에 있던 마초들은 열흘만에 없어지고 민촌의
초가지붕 지푸라기가 말먹이를 대신하게 됩니다.
이제는 말들이 먼저 아사되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 한채 죽어갔습니다.
엄동설한을 견딜 재간이 없어 성안에 있는 가마니가 모두
동원이 되어 성첩에 올라갔지만 그나마 군병들에게 충분히 돌아가지가 않았어요.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밤에만 얼음장 땅에 깔아 잠깐잠깐 사용하고
낮에는 햇볕에 뽀송하게 말기를 거듭했지만 말먹이가 없어
군병들의 신줏단지 가마니 요를 빼앗으려 합니다.
예판 김상헌은 나누어주기는 쉬워도 빼앗기는 쉽지 않다고
군병들의 인심을 걱정하며 반대하고 있어요.
결국 군병들의 가마니 요는 말들의 먹이가 되고 말었지만,
성안에 들어올 때 삼백 마리의 말은 칠십 마리로 줄었습니다.
성 밖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청장 용골대가 드디어 문서를 보냅니다.
"내가 군마를 이끌고 의주에서 성까지 왔는데 춥고 궁벽한
토굴 속으로 들어가 한사코 웅크리고 내다보지 않으니 답답하다"(웃으면서 곡하기 140쪽)
답답하다 하니 어떡할 건지 해결책을 임금은 고민합니다.
이조판서 최명길은 길을 닦아 화친을 하자고 하고
예조판서 김상헌은 화친을 하여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싸우고 맞서야 화친의 길이 열린다 고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예판 김상헌이 맞지만 현실은 이판 최명길이
맞아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결국 울면서 노래하고 웃으면서
곡을 하는 화친으로 선택의 길을 닦습니다.
이판 최명길이 세습 노비였지만 천대를 견디지 못해
청으로 도망처 출세를 하였던 정명수의 안내로 청장 용골대를 만났어요.
용골대는 세자와 대신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보내 칸(홍 타이지)의 조칙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남한산성에서는 칸이 삼전도에 올 때까지 예판 김상헌의 주도로
싸우면서 화친의 길을 열어갑니다.
이미 성안에 개도 닭도 모두가 호구지책으로 없어지고
밴댕이젓 한 독을 우연히 발견해 어떻게 하면 행궁과 성 안에 사람들이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지를 임금이 고민해야 하는 상황 속에 신료들은 각서를 꾸밉니다.
성 밖으로 보내는 각서는 하고많은 당상, 당하 신료들도 아니요
군장이나 군병들도 아니요 예판 김상헌과 인연이 깊은
대장장이 서날쇠가 갖고 떠났어요.
그리고 김상헌의 조언으로 온조왕 사당에서 임금과 신료들이 모여 제를 지냅니다.
이쯤 하면 그런대로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있는 거죠.
설날 칸은 망월봉에 오고 칸의 군장들은 성을 박살 내자고
하지만 칸은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황제의 존호가 빛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칸이 왔다는 것을 조정에게 알리고 문서를 보냅니다. 아주 거만하게.
"돌구멍에 처 막혀 있지 말고 살고 싶으면 성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와,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을 해라 내가 다 들어주겠다 두려워 말고"
자 이쯤 되면 남한산성 행궁에 있는 인조 임금을 비롯하여
당상, 당하 신료들이 이른 아침 대나무 숲에 수다쟁이 참새들같이
구수회의가 잔칫집 분위기였나요?
아닙니다 모두가 침묵했고 뻔한 답서를 누가 쓰느냐로
예판 김상헌과 이판 최명길의 입씨름만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조선 포로들이 죽음으로 길을 닦았던 망월봉 정상에 있는
홍이포가 행궁 앞마당에 포탄을 떨어뜨리고 산성 벽을 허물며
칸은 더 이상 지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강화 감찰사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은 배를 타고 도망가고
예판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성첩을 지휘했지만 청병들은 군병들을 청소를 하듯 죽였고
김상용은 화약더미에 불을 붙여 산화합니다. 아들에게 '너는 목숨을 귀하게 여겨 몸을
상하게 하지 말고, 너희들의 생명에 칼질을 하지 말며 고향에 조용히 엎드려
세상에 나오지 말라'는 유서와 함께.
청병은 피신하여 있던 두 명의 왕자와 빈궁, 숙의, 사녀가 삼전도로 붙잡어왔어요.
그리고... 이제는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칸이 원하는 대로 우리가 이미 역사시간에 배웠던 대로 삼전도 굴욕을 치르게 됩니다.
물론 소설이기에 소설가의 상상력이 쓴 글은 맞지만
사실에 중점을 두고 쓴 소설도 맞다는 전제하에 잠시
개인적인 의견도 제시하고 싶어요.
역사하면 우리는 흔히 'E.H. 카'의 '역사란 무언인가'에 나오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김훈 작가님은 남한산성에서 예판 김상헌을 통해 어차피 화친을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있는 것은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같습니다.
강물이 풀려 칸도 서둘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 성 밖에서
조선군이 힘을 합쳐 청병과 싸웠더라면 삼전도 굴욕까지는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 간 후로 도원수 김자점이
끔쩍도 안했다고하니 인조반정의 한계가 거기까지 인 것 같았습니다.
2022년 12월 5일
NaMu
첫댓글 이렇게 인터넷상에 장문이 올라오면
민폐예요 그~쵸ㅠㅠ
시간 나 실 때 큰맘 먹고 함 보세요.
블랙코메디같이 재미도 있어요.
특히나 봉사방에 어울리는 글도 아닌데
봉사방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이해는 하시는거죠.^^
독서 후감이
핵심 줄거리가 하나 걸림이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게 되네요
지난번 연탄봉사 후기도
참 글맛난다 했는데
이 글도 그러 합니다
조선의 못난 두 왕
인조와 선조
선조 다음 광해군이 없었다면 더 우스웠을까요
그나마 광해군이 있어
나라라도 건지고 있었을까요
제가 알기로 도망의 절대고수 인조가 삼전도 전에 청이 되기전 후금때 정묘호란때도 또
도망갔었죠 그때가. 강화인데
그걸 안 청이 강화도 길목을 먼저 지키니 남한산성으로........
하여튼 쪼다 왕입니다
외교정책의 실패가 삼전도까지 간 것일수 있습니다ㆍ
픽션과 사실을 잘 섞은
올빼미 영화도 인조와 소현세자 이야기 입니다
찌질한 정,야사를 많이도 남긴 인조
비평가의 두터운 필력을 보고 갑니다
감사~~~~~
우~와
댓글이 본문보다 훨씬 역사적 사실을 잘 진단
하신 것같아요.👍
아직은 많이 서투른데 잘 봐주셔서
넘넘 감사합니다.
글의 서술이
처음부터 끝까지
질서정연하고 생생하게
전달되어 지네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듯 합니다
나무님의 냉철한 필력에
감탄과 박수를 보냅니다 ^~^
타임머신 호에 같이 갈 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이 서투른데 잘 봐주셔서요.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역사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합니다
깊어 지는 밤이네요
고운 꿈나라 되세요~~~
그러게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죠.
여러가지로 감사드려요 총무님^^
많은 공부함에 감사드리며
언제나 건강 건필 행복하소서 나무님^^
애~궁 공부까지요^^
많이 서투른데 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호 나무언니는 성품도 글도 참 단정하신거 같아요
시간내서 다시 정독해야겠어요
오늘도 따듯한 하루되세요~^^
장문은 민폐인데요.
시간 나심 큰맘 먹고 나중에
함 보세요^^
시간될때 다시금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