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廉恥) 없는 정치
본국은 수해로 고통받는데, 해외서 대통령 부인 명품쇼핑
이는 국민들 조롱한 것 '안된다' 조언하는 이도 없어
여왕의 한국 방문
1999년 4월, 얼마 전 서거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뒤 서울 인사동을 방문했으며, 자신의 73회 생일날에는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가 조촐한 잔칫상을 받았다. 여왕은 인사동에서 필방(筆房), 도자기점, 한복점 등을 방문했고, 당시 서울시장은 그에게 우리 전통 기법으로 만든 노리개와 쟁반을 선물했다. 여왕이 자기 돈 내고 산 물건은 없었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알려진 장소들을 방문함으로써, 거꾸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영국의 이미지를 한국인들에게 판매했다. 여왕은 한국의 최상류층이 이용하는 ‘명품 판매장’은 방문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방한한 외국 정상 부부가 한 둘이 아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뿐 아니라 그 누구도 한국에 있는 ‘명품 판매장’을 방문한 적은 없다. 자기 나라를 대표해 방한한 사람이, 빡빡한 일정 중에, 굳이 어느 도시에나 있는 ‘명품 판매장’을 찾아가 물건을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며, 자기가 그 나라의 ‘이미지’를 표상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를 방문한 어느 나라 대통령 부인이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청담동 명품 판매장을 기웃거리는 장면을 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역시 귀부인은 다르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일국의 대통령 부인이 너무 천박하다고 생각할까? 게다가 그 나라에 폭우가 내려 대규모 재난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내관 김처선의 간언
모 정치인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을 두고 "지적 수준과 상식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대통령 부인의 ‘지적 수준’이 아니다. 조선 전기 내관이었던 김처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연산군이 궁중에서 처용희(處容戱)라는 음탕한 놀이를 벌이자, 그는 “제가 4대 임금을 섬겼는데, 이제껏 이토록 문란한 임금은 없었습니다”라고 간(諫)했다. 그 말에 화가 난 연산군은 그를 활로 쏘아 쓰러뜨리고 다리를 자른 다음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김처선은 “임금께서는 다리가 잘려도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고 반문했다. 연산군은 그의 혀를 자르고 칼로 배를 갈라 창자를 헤쳐 죽였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의 시체를 호랑이에게 먹이게 하고 그의 부모 묘를 파 없애게 했으며, 그의 고향 집을 허물어 연못으로 만들게 했다. 또 그의 이름에 들어간 ‘처(處)’ 자는 못 쓰게 했다. 그 뒤로 연산군 주변에서 충언하는 사람은 영영 사라지고, 오직 아첨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무슨 짓을 해도 아첨하는 사람들만 곁에 남았으니, 왕의 포악과 방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통령과 그 부인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했다가 김처선처럼 참변을 당한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부인에게 “국내에서는 폭우가 쏟아진다는데 국민의 혈세로 외국에 나와 명품 쇼핑을 하면 국민들이 이해하겠는가”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그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만약 있었는데도 그 조언을 무시했다면 이건 ‘지적 수준’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 사실이 대통령 일행을 따라간 국내 언론사들이 아니라 현지 언론을 통해 처음 보도됐다는 사실도 어처구니가 없다. 대통령 수행 기자단은 ‘대통령의 일행’이 아니라 대통령 부부의 일정과 언행을 세세히 확인해 알리라고 국민이 세금을 들여 파견한 ‘국민의 대리인’이다. 그런데 이들은 10여 명의 경호원을 동반한 대통령 부인의 ‘명품 쇼핑 행사’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았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리더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왕조시대에는 ‘제왕무치(帝王無恥)’라는 말이 통용됐다. “제왕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제왕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군주정치의 원칙’이었다. 중국 역대의 황제 중에는 자기 아버지의 후궁을 첩으로 맞아들이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제왕무치’를 들어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물리친 자들이 있었다. 다만 여기에는 ‘좌동우언(左動右言)’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제왕의 뒤에는 두 명의 사관(史官)이 늘 붙어 서서, 왼쪽 사관은 행동을 기록하고 오른쪽 사관은 말을 기록한다”는 뜻이다. 자기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 영원히, 또는 아주 오랫동안 남는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제왕은 어떤 일에든 스스로 삼가야 했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좌동우언(左動右言)’이 빠진 ‘제왕무치(帝王無恥)’의 정치 현실이 아무 부끄러움없이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과 그 부인의 일정을 조율하고 언행을 신중히 하도록 조언하키는커녕, 그들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괴변으로 뒷처리하는 일이나 하고 있다. 대통령실뿐 아니라 장관급 인사들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첨에만 여념이 없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다”, “교육 전문가인 나도 입시와 관련해 대통령께 많이 배운다”, “양평고속도로 변경 노선 종점 부근에 대통령 처가 땅이 있는 줄 몰랐다”에 이어 “대통령 부인이 명품 판매장에 들어간 건 호객 행위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염치없는 정치는 폭정이다
이쯤 되면 국민 ‘기만’을 넘어 ‘조롱’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동안 대통령실 ‘해명’ 중에 거짓말이 아닌 게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국민의 대리인’이어야 할 자기 책무를 외면하고 받아쓰기나 하는 한심한 기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대통령실이 어떤 ‘조롱’을 하든 그에 맞장구치는 걸 ‘국민의 책무’로 아는 얼빠진 국민들이 아무리 많아도, 민주정(民主政)이 지켜야 할 선을 한참 넘었다.
조언이나 간언(諫言)은 하지 않고 괴변으로 뒷수습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는 대통령실, 권력자의 부끄러운 언행을 보고 들은 뒤에도 기록하지 않는 기자들, 이런 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가 세상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역사적 경험’은 두텁게 쌓여 있다. 그렇기에 제 나라에 물난리가 나서 수십 명이 사망했는데도 귀국 일정을 미루고 남의 나라 전쟁에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최고 권력자의 모습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아첨 밖에 할 줄 모르는 자들이 이루는 것은 최고 권력자에게서 ‘염치(廉恥)’를 빼앗는 것뿐이다. ‘염치 없는 정치’가 바로 ‘폭정(暴政)’이다.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2298
내가 사과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첫댓글 천박...직절한 단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