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압축성장 대한민국, 압축소멸의 길로 들어서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3.07.06 00:52
대한민국 최중심 문제, 인구 ①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물질지표만 보면 화려한 성과
출산율 등 인간지표에선 최악
다윈 ‘종의 멸절’ 통찰 참고해야
인구문제는 결국 정치의 문제
식물도 인간도 나라도 웃자라면 안 된다. 인류의 긴 경험과 통찰을 응축한 종교와 신화, 서사와 문학을 보면 ‘벼락 출세’한 사람들의 ‘벼락 몰락’에 대한 언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지혜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근대를 막론한다. 즉 시간과 장소를 불문한다. 분야와 영역도 불문한다. 물론 개인과 집단도 모두 포괄한다. 서양과 동양의 어떤 깊은 지혜들은 벼락 성공과 벼락 멸망의 문제를, 발을 디딜 수 없는 허공과 웃자란 작물에 비유하여 깊은 깨달음을 준 바 있다.
종교와 예술과 학문을 넘는 여러 분야에 걸친 통찰들에 비추어 ‘벼락 출세’와 ‘벼락 몰락’, ‘벼락 성공’과 ‘벼락 멸망’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를 상징하는 문학과 예술의 주인공들이나, 실증적으로 분석한 철학·심리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들도 종종 접하게 된다. 몇몇 작가는 이를 탁월하게 형상화하여 세계적 문학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고, 어떤 일급 사상가는 이를 통해 한 인간집단의 생멸과 궤적을 설득력 있게 해석한 바 있다.
벼락 성공과 벼락 몰락의 상관관계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여기에 다다르면 인간 문제는 시간과 장소를 넘어 어떤 높은 일관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전고대 시대부터 벼락 성공과 벼락 소멸을 드러내는 언어와 표현, 사례와 예화들이 존재했던 걸로 봐서, 개인과 집단과 나라를 막론하고 내적 탄탄함이 갖추어지지 않은 너무 빠른 외적 성공의 결과는 거의 예정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니, 적어도 그 미래에 대한 우려는 유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은 현대 인류사에서 ‘압축 성장’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다. 실제 대한민국은 오늘날 물질적 성공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제와 국방, 기술과 상품, 이른바 ‘부국강병’에 가장 성공한 나라의 하나다. 국가발전의 요체인 그 분야들의 세계 순위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주 강조하였듯, 자살과 저출산을 포함하여 인간지표들은 세계 최악수준이다. 물질지표와 인간지표의 극적인 모순을 말한다. 출산과 인구문제의 인류사 최악의 지표와 흐름은 이 공동체가 인구소멸과 공동체 절멸의 단계에 진입하였고, 그것이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압축 성장’과 ‘압축 발전’에 조응한 ‘압축 소멸’ ‘압축 멸절’ 단계에의 진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간지표를 생명·인간성·정신·문화·윤리·공동체로 보든, 물질지표를 상품·문명·성장·발전·산업·기술로 보든, 후자만의 독주는 이미 전자의 소멸을 내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요컨대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질지표의 벼락 발전’에 ‘인간지표의 벼락 악화’의 요인이 숨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공동체가 후자를 낳는 전자의 최고 성취만을 끝없이 고수하고 집착한다는 데에 있다. 사람이 급속히 사라지는 발전을 더욱더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 압축 소멸과 벼락 소멸의 최고 중심문제가 출산문제를 포함한 인구문제라는 점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주장과 이론, 역사와 사례를 몇 차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인구문제의 역사와 해법, 궤적과 현실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선현들의 앞선 진단과 주장을 들어보기로 한다.
인구문제에 대한 근대 최초의 본격 담론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에 의해 제기되었다. 영향에 못지않게 논란과 비판도 많이 받은 주장이다. 그는 “인구증가에 어떠한 억제도 가해지지 않는다면 세계인구는 25년마다 2배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확실하다”고 말한다. 반면 “생존자원은 인간이 일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조차도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상이한 증가율이 가져올 필연적 결과는 대단히 충격적일 것”이라면서 영국과 세계를 사례로 기하급수적 증가와 산술급수적 증가를 대비한다.
맬서스와 다윈의 문제의식
세계의 경우 “인구 총수는 1→ 2→ 4→8→16→32→64→128→256으로 늘어날 것이지만 생존자원은 1→ 2→ 3→4→5→6→7→8→9로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인구에 대한 궁극적 억제요인은 식량부족이다. 그러나 직접적 억제요인은 생존자원 부족으로 야기되는 타락한 풍습과 질병, 그리고 생존자원과는 무관한 인간을 약화하고 파괴하는 정신적 물질적 문제들이다. 일단 후자에 대한 그의 진단은 주목을 요한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맬서스를 직접 언명하는 동시에 생물 진화 문제의 한 전거로 삼는다. 그는 모든 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생존 경쟁을 ‘맬서스의 원칙’이라고 부르며, 이를 “모든 동물계와 식물계에 훨씬 강력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 쌍의 생물에서 유래된 자손들이 지구를 모두 덮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느리게 번식하는 인간조차도 25년 만에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날 것” “이러한 비율이라면 불과 몇 천 년 만에 지구는 인간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질 것”이라고 언명한다.
한 번 멸절한 종의 재출현은 불가
다윈의 주장에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통찰은 종의 멸절에 대한 언명이다. 그가 인구문제를 종의 문제 이해의 한 전거로 삼았다면 우리는 거꾸로 그의 종의 멸절 설명을 인구문제로 다시 갖고 올 수 있지 않나 싶다. 『종의 기원』의 많은 분석이 ‘종의 멸절’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종의 멸절’이 ‘종의 기원’ 못지않은 핵심 논지라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그는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오늘의 인류와 한국에 가공할 두려움과 충격을 안겨준다. (물론 이하는 종의 멸종에 대한 분석을 인간집단에 유비한 것이라는 한계를 전제해야 한다.)
첫째, 모든 면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은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즉 한 종 내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둘째, 한 종은 멸절된 이후에는 절대로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과 자연선택의 결과 패배하여 한 집단이 사라지면 다시 출현하는 일은 없다. 세대 간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이다. 셋째,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세한 차이의 선택이 반복되면서 종의 멸절은 진행되며, 생물 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갑작스러운 물리적 조건보다는 생물 상호 간의 관계이다. 다윈의 생물학적 주장을 듣고 나면, 태어나서 관에 들어갈 때까지 죽음을 향한 최악의 생존경쟁에 빠져 허덕이는 대한민국 인간공동체가 지금 당장 뭔가 특단의 조치를 결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인간’ 공동체가 다시는 회복·소생·지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애덤 스미스 “후한 보수가 인구 늘려”
이제 인구문제에 대한 사회적 진단으로 넘어가 보자. 『국부론』을 보면 근대 경제학의 비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인구문제에 대한 통찰에서도 매우 남달랐다. 그는 분명하게 노동에 대한 후한 보수, 즉 고임금은 인구를 증가시킨다고 본다. 높은 보수는 필연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자극한다. 즉 높은 보수는 부의 증대의 결과인 동시에 인구증가의 원인이다. 나아가 인간의 근면을 증대시킨다. 빈곤은 결혼을 억제하지만 저지하지는 못한다. 또한 빈곤은 출산에는 유리한 듯이 보이지만 아이들 양육에는 매우 불리하다.
스미스가 보기에 노동에 대한 후한 보수를 불평하는 것은 나라의 최대 번영의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대해 한탄하는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인구는 식량에 의존한다. 즉 생산물로써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의 수에 비례한다. 무엇보다도 잘 다스려진 사회는 보편적으로 부유하다. 즉 통치가 잘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최하층 국민까지도 보편적인 풍요를 누리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후한 보수와 평등과 풍요, 나아가 인구 문제가 잘 다스리는 정치의 문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는 부분에서의 그의 주장은 이와 상충하는 동시에 보완적이다.) 시장 경쟁의 원리를 주창했다고 알려진 그로부터 우리는 인구문제에 대한 반대 울림을 듣는다. (계속)
※박명림 교수의 인구문제 관련 ‘퍼스펙티브’는 앞으로 두 차례 더 이어집니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