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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스포츠 게시판 '아시아의 거포' 강만수의 스파이크 장면 몇 개
Doctor J 추천 3 조회 2,471 21.04.06 18:12 댓글 7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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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1.04.06 23:16

    @리오타 동의합니다.

  • 21.04.06 23:52

    @리오타 솔직히 전 제일 아쉬운 선수가 양진웅입니다. 진짜 한양대 입학 직후에는 우리나라도 정말 제대로된 2미터 거포를 가지는 줄 알았는데... 어째 그때가 고점이었던거 같아요 지금에 와서 보면

  • 21.04.07 00:06

    @라떼 양진웅 아까운 선수였는데, 나중에 구본왕이라는 200 레프트가 나왔을 때, 아 양진웅이 정말 잘하는 거였구나 하고 느꼈죠. 맨발 202의 아시아 선수가 그정도의 몸놀림이 가능하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중국에도 엄청난 선수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 아시아 선수권대회였는데 유대라는 중국 선수가 205센치였는데 붕붕 날아다녔죠. 그 대회는 건강했던 이상렬이 멱살잡고 우리나라를 결승까지 끌고 갔었습니다. 당시 결승전 이전까지 이상렬 선수의 공격 성공률이 70%에 가까울 정도로 슈퍼맨이었죠. 이상렬 선수의 공에 맞고 실려가고 그랬던 대회였죠.
    결승을 중국하고 해서 졌는데. 중국 블로킹이 대놓고 이상렬만 쫒아 다니는 바람에 받쳐줄 선수가 없던 우리나라가 패했습니다.
    이상렬을 제외하고 멤버가 너무 약했죠. 이상렬 보공이 190의 이재필이었는데 타점이 낮아서 다 막히고,, 하여튼 이상렬이 준우승 만들어줬죠.

  • 21.04.07 14:54

    @라떼 아 저도 양진웅 참 좋아하던 선수인데 2미터가 넘는 선수인데도 진짜 잘 뛰었죠. 2m 넘는 선수중 윙스파이커로 그 정도로 잘 뛰는 선수는 그 후 김요한 정도였다고 생가합니다. (김세진은 198cm) 아쉽게 다른 사람보다 배구를 늦게 시작해서 센스가 조금 부족하고 수비도 다른 레전드 선수들에 비해 약했죠. 전 양진웅을 응원하다가 박종찬에게 3연속 블로킹 셧아웃 되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박종찬은 제가 봤던 선수 중 최고의 블로킹 도사였어요.

  • 21.04.06 23:33

    이경수 선수가 생각나네요.

  • 작성자 21.04.06 23:36

    그래서 선수생활 내내 '제 2의 강만수' 소리를 들으며 뛰었죠. 포텐셜은 분명 그 정도 급이었는데, 거기서 한두 단계 더 치고 올라가질 못해서 항상 아쉬웠던 선수죠.

  • 21.04.06 23:48

    이경수는 중학교때는 농구의 현주엽일 정도로 기대가 컸었고 스포츠면의 전면을 장식할 정도의 유망주였는데 일단 키가 중학교 이후로 크지 않았고, 점프가 평범했 습니다. 대신 윙스팬이 좋았고 공수를 겸비한 만능 선수였죠.기대만큼 커주지 못했습니다. 잘 봐주면 정지섭의 상위 호화 버전이랄까요.

  • 21.04.07 21:12

    @Doctor J 대학시절 상위학년땐
    이경수는 똥볼도 힘으로 스파이크 때려서 블로커 아웃 시키는 그런 힘 좋은 공격수이고 완전 용병급..
    5세트땐 세터가 거의 이경수한테 볼 올리면 거의 다 성공시켰죠 대학시절 국대 주전도 했었고
    왜 lg화재로 갔는지 의문입니다.

  • 21.04.07 21:13

    @리오타 정지섭이라면 대한항공 정지석 말씀하시는거죠? 제 소견으론 정지석 보단 이경수죠 ㅎ

  • 21.04.07 00:03

    와 제가 배구 처음 본 게 징윤창 하종화 마낙길 선수 활약하던 때 였는데 강만수 선수는 감독으로만 봐서 몰랐는데 ㅎㄷㄷ 했군요.

  • 21.04.07 00:10

    중국팀의 에이스가 왕가위(192)라는 중앙공격수인데 중국에서는 아시아 최고 공격수 2명에 꼭 강만수와 왕가위를 놓더군요. 굉장히 빠르고 점프도 준수했고 가름마도 단정했던 선수였지만 강만수에 비빌 선수는 아니었죠. 강만수는 소련의 사빈과 같은 급의 선수로 세계 배구계가 인정한 선수인데 말입니다. 그때부터 중국의 숟가락 얹기는 시작되지 않았나 싶네요

  • 21.04.07 00:12

    @리오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 21.04.07 00:13

    @리오타 왕가위는 신문기사와 중계진들 사이에서만 전설이었던 선수죠. 과대평가의 교과서적인 선수.

  • 21.04.07 00:07

    개인 시간차의 달인 정의탁. 비운의 천재 마낙길. 카리스마 노진수. 재치 만점의 서남원. 공수겸장 강성형. 엄청난 스파이크 서브의 이성희. 고독한 에이스 최천식 등등 기억에 남는 선수들 많네요 정말. 누나와 함께 장충체육관 밥먹듯 드나들었었는데.. 추억은 방울방울.

  • 21.04.07 00:16

    그 해 2개의 주니어급 대회 블로킹 1위가 우리나라 선수였습니다. 한명은 방신봉,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홍익대의 구준회 선수였죠. 정말 깜놀했습니다. 당시에 명지대는 김성채라고 점프스타일이 독특했던 선수가 하드캐리했구요.

  • 21.04.07 00:23

    당시에는 중국과의 경기보다 일본과의 대결이 정말 재미있었죠. 요즘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1960.70년대 까지 여자 배구는 일본이 짱 먹었던 시절이었죠.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이 일본이었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남배 여배 모두 일본에 15연패 하다가, 강만수의 국대가 남녀 통틀어 처음으로 일본을 이겼고, 그 이후 여배 국대도 일본에 첫승을 올렸죠. 일본이 배구를 국가적으로 육성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시간차 공격도 일본이 가장 먼저 개발했구요.

  • 21.04.07 13:40

    80년대 중후반의 말년의 모습만 봤지만, 포스가 정말 남달랐고, 혼자 다른 차원에서 플레이하는 느낌이었죠. 한국 배구의 GOAT라 봅니다.

  • 21.04.08 10:21

    강만수의 당시 위상은 김연경이었습니다. 국대에서 다 망가지고 국내에 현대차 복귀할 때 지금은 김연경처럼 화재가 됐었죠. 신생팀이 단번에 우승후보로 부각됐습니다. 당시 현대차의 에이스는 키 186 의 경기대 출신 김형태 였죠. 이선수도 당시 스카웃 파동이 일 정도로 좋은 선수였죠.

  • 21.04.07 17:55

    이경수선수가너무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선수가될줄알았는데ㅜ

  • 작성자 21.04.07 18:02

    뭔가 최전성기에 돌입하려던 순간에 스카우트 파동이 찬물을 끼얹었던 것 같아요. 강만수 이후 가장 많이 그의 향기가 느껴지던 선수였는데, 참 아쉽습니다.

  • 21.04.07 18:49

    @Doctor J ㅜㅜ 맞습니다
    진짜 와 이게 신진식이후로 시원한선수가드디어나왔구나했는데말이죠ㅜ

  • 21.04.07 20:42

    저는 고려증권 팬이었고
    정의탁의 팬이었는데
    정의탁의 개인시간차가 참 일품이었죠...
    체공력을 활용한 특유의 시간차 공격..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흔치않던 백어택 하는 센터공격수..
    그리고 이재필도 좋아했구요
    190에 점프도 낮은데 펀치력으로 모든걸 커버했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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