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5일 연중 10주간 목요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완성은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력에 의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의로워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다시 강조하심으로써 율법의 완성을 촉구하십니다. 율법의 완성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집을 짓는 사람이 하느님을 모시는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모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염두에 두고 경당부터 먼저 설계를 하겠고, 설계한대로 토목공사를 할 것이고, 토목공사 후 건축공사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에 두고 전기조명시설,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망 시설을 할 것이고, 제대와 마이크 시설까지 인테리어를 하고 마무리 공사를 할 것입니다. 모두 완벽한 공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입주를 해보니 상하수도 공사와 화장실 공사가 전혀 안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일이 아니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옮겨 다녀야 하는 유목민들의 습성에 따라서 주춧돌이나 기반 시설을 하지 않고 그냥 기둥만 밖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이 완성되었지만 부족한 집이 된 것입니다. 더러운 것은 지성소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집은 거룩한 곳이어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고, 용변도 볼 수 없습니다. 그 집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 모셔야 합니다. 하느님은 외롭습니다. 그런 집에서 혼자 아무것도 하시지 못하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시고, 갇혀 계시기 싫습니다. 사람들은 그 집이 불편해서도, 그 집이 어려워서도, 그 집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어서 점점 그 집을 외면합니다. 같이 어울려 음식을 먹을 수도 없어서 사람들은 점점 짜증이 납니다. 이제는 그 집은 무서운 하느님의 집이 되어갑니다. 그 집에는 율법만 있고, 사랑이 없는 외딴집입니다. 그래서 외딴집에는 새들도, 강아지들도, 꽃들도 무서워 가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결단을 내려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외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아무도 자처하지 않는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게 하시고, 목수가 되게 하시어 그 위에 기둥도 다시 세우시고, 목욕탕과 부엌, 그리고 식당과 화장실, 목욕실, 응접실, 사랑방, 침실, 그리고 게임 룸까지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게 하시고 마실 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썩어가는 환자들과 피고름이 흐르는 죄인들을 데려오시고, 목욕탕에 데리고 가셔서 깨끗이 씻어 주시고, 용변을 보게 하시고, 편히 잠을 재워주십니다. 상수도로 단물이 하루 종일 콸콸 쏟아져 나오고, 하수도로는 하루 종일 썩은 물이나 때가 흘러넘치는 더러운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당신을 낮추셔서 아주 낮추셔서 종의 신분까지 낮추셔서 많은 사람들을 당신의 집으로 초대하십니다. 가난한 이들, 헐벗은 이들, 아주 어렵게 사는 사람들, 감옥에 갇힌 이들, 병들어 일어나기도 힘들어 하는 이들을 끌어안고 매일 하느님의 집을 가득히 채웁니다. 그리고 엉터리로 집을 지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에게 간혹 멍청이, 미친놈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율법을 아주 전면적으로 완성하십니다. 본시 아주 복잡하고 어렵게 되어 있는 율법을 요즘 말로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으로 간결하게 완성하십니다.
그렇다고 먼저 주어진 많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집의 골격의 많은 부분을 그 율법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 단단해서 리모델링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는데도 그 후속조치가 잘 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느님의 집이 쓸쓸합니다. 사람들에게 높은 담장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철조망으로 못 들어오게 막아놓은 곳도 있습니다.
가장 작은 하느님의 집은 각 개인입니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하느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그 다음 조금 큰 집이 가정입니다. 대화도 없고, 사랑이 없이 잔소리만 가득 찬 율법의 집입니다. 가정은 다시 쓸쓸해지고 재미가 없고, 하숙생들의 집처럼 전락해졌습니다. 사랑이 점차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조금 큰 하느님의 집이 구역 반모임입니다. 이미 형식적인 율법의 모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소 공동체의 모임에서 하느님께서 떠난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보다 조금 큰 모임인 본당 공동체의 교회입니다. 지금 엄청나게 많이 떠나고 있습니다. 주일이라고 해도 30%도 못되는 신자들이 겨우 모이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물을 바치기 전에 화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율법의 완성은 예수님의 몫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정말 진부한 일입니다. 이제 신약은 그 제자들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제자들의 몫입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