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카토는 집정관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의 부장으로 임명되어 트라키아와 아스테르 지방에 출정하였고, 마니우스 아킬리우스가 그리스에 군대를 보냈을 때는 군단장의 자격으로 전장에 나가 안티오코스 대왕(안티오코스 메가스Antiochus Megas, 셀레우코스 왕조의 6번째 왕인 안티오코스 3세. 생몰 연도: BC 241~187년)과 맞서 싸웠다.
안티오코스는 한니발 이후 로마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왕이었는데, 셀레우코스 니카토르(셀레우코스 왕조의 창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하 장군인 셀레우코스)가 지배하던 아시아를 거의 모두 손에 넣어 사나운 야만족을 잠재운 다음, 자기에게 아직도 싸움을 걸어올 유일한 나라인 로마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기원전 194년 안티오코스 3세가 지배했던 영역을 표시한 지도. 당시 셀레우코스 왕조는 현재의 터키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었다.)
그가 대군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온 것은 그리스의 자유를 되찾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이유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한낱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의 그리스는 로마의 도움으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의 사슬에서 이미 풀려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안티오코스는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왔다. 그리스 전체는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각 도시의 선동가들이 안티오코스를 따르면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민중들을 선동하며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집 1권의 569쪽/ 현대지성사/ 이성규 옮김.
첫댓글 안티오코스가 동방 반란 진압 도중에 죽지 않고 후계 구도만 잘 정리했어도 제국이 그렇게 망하진 않았을텐데..
마그네시아 전투가 제국 자체를 흔들진 못했지만 마그네시아로 인해 발생한 후계구도 분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을 개발살낸..
안티오코스가 민중들을 선동하여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