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은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
글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은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돼 있다. 조선DB.
2018년 11월 로마에서 잠적해 서방 망명설이 돌았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입국해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조성길 부부가) 로마에서 잠적한 뒤 서방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걸어 들어와 망명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은 “조성길 부부가 잠적 이후 서방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망명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작년 7월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조성길이 한국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그의 전임으로 볼 수 있는 김정은의 유럽자금 총책 김명철에 대한 관심이 또 다시 쏠리고 있다.
<월간조선>은 지난 2019년 12월호 기사에서 김명철에 대해 자세히 밝힌 바 있다.(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H&nNewsNumb=201912100016) 당시 월간조선은 CIA·AISE(이탈리아 정보기관)의 ‘北 최대 黨 자금 탈취사건’ 기밀 조사보고를 단독입수해 보도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김명철의 망명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그가 미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한 무렵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AISE와 CIA의 협조 속에 김명철의 국내 망명을 추진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엘리트들이 체제에 회의를 느껴 탈북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김정은 체제가 흔들린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무력 공격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남은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북한 정권을 ‘정상적인 체제’로 바꾸는 것밖에 없는데, 엘리트들이 우리 쪽으로 많이 넘어올수록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 시기가 당겨질 것으로 봤다.
김명철의 국내 망명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김명철은 미국행을 요구했다. 미국은 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큰 김명철의 망명을 미국이 불허한 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게 박근혜 정부 외교 안보 관계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미국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판단하는 ‘통일 방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명철의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행이 무산됐음에도 김명철은 한국행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망명을 선택했다. 이탈리아 정보기관 AISE는 김명철의 망명을 도왔고, 그는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AISE는 김명철의 이탈리아 망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국정원에 신문 내용을 제공했다.
AISE와 CIA가 김씨를 신문, 국정원에 제공한 조서(調書)에 따르면 그는 김정은 비자금 관리 실태에 대해 “김정은 혁명자금 상당액은 당 39호실 및 서기실 금고에 미화 현금으로 보관된다”며 “39호실이 외국인 명의 유령계좌를 통해 돈을 배분 관리하며, 이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실제 김정은 가족은 유럽 국가 은행에 비밀계좌가 있으며, 그 금액은 최소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미국 《워싱턴타임스》)도 나왔다. 미국 정부의 정보 분야 관리는 “김정은 가족은 스위스·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은행에 비밀계좌가 있으며, 최소 10억 달러가 예치돼 있다”고 밝혔다.
김명철은 북한의 대북 제재 회피 방법과 관련해서는 “해외 북한 상사원들은 민간물자를 가장업체, 위조 선적서류, 음어 등을 활용해 구매하고, 중국 다롄항을 통해 북한으로 반입한다”고 했다. 거의 모든 배는 중국 다롄항을 거쳐서 나갔다 거쳐 들어온다. 다롄항이 북한의 민간물자 반입과 무기 수출 등 불법 활동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서에 따르면 김명철은 “북한은 대규모 달러를 직접 중국으로 보내 중국은행 내 다수의 은행계좌에 예치시켰다”고 했다.
김명철은 2016년 4월 이탈리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김명철은 이탈리아로 망명하면서 거액의 ‘김정은 비자금’도 함께 가지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유럽 비자금을 총괄해온 김명철에게 동생 김경철의 처형은 충격이었다. 동생은 김정은의 장성택 잔재 세력 청산 2단계 작업 때 사형당했다.
김명철이 망명하자 그를 대신해 ‘김정은의 유럽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이 조성길 전 주(駐) 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였다. 조성길은 2018년 11월 잠적했다. 격노한 김정은은 조성길 잠적 직후 체포조를 현지에 급파한 바 있다.
한편 조 전 대사대리가 한국에 들어온 시점인 작년 7월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고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대북 소식통은 “조 전 대사대리가 북한에 있는 가족 문제 때문에 한국행이 알려지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안다"며 "정부도 남북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공개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