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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log.naver.com/np9580/221729748772
자세한 설명은 출처의 블로그 글이나, youtu.be/u2OG_0KIrjs 참고!
블로그 글 안에는 중간중간 짧은 영상도 있는데 퍼오는 법 몰라서
글내용이랑 사진 그대로 긁어서 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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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 1월 28일.
구로동의 한 룸살롱에서 10대 청소년 4명이
동시에 참변을 당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당시 룸살롱에서 일하던 여종업원들과
그리고 그들의 남자친구였는데
범행수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수사팀원들조차 현장을 외면할 정도였다고해요.
그리고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은,
일명 ‘샛별 룸살롱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끼리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고, 이 사건의 여파로 여러 명의
경찰 책임자들이 옷을 벗기도 했어요.
또 막판엔 범인의 언론플레이로 엉뚱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경찰을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사건 중의
하나로 꼽히는 ‘샛별룸살롱 사건’
이 사건의 피해자는 총 4명.
10대 남녀 두 쌍이었습니다.
조사결과 피해여성은 샛별룸살롱 종업원으로 일하던
당시 15살의 지은양과 당시 18살의 아름양 이었는데,
시신발견당시, 모두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어요.
그리고 또다른 , 피해 남성은 당구장 종업원과 웨이터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로 모두 16살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피해자인
강양과 이양의 애인사이엿어요
커플 두쌍,, 총 4명이..피해자인거죠
수사팀이 이 사건에 경악한 이유는
피해자 4명을 해한 범인의 수법이 너무도 잔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현장을 발견한 업소 사장은
“바닥에 낭자한 피 때문에 슬리퍼가 떨어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라고까지 진술했어요. 경찰들은요,
“가게 내부부터 출입구까지 벽면에는 온통
사람의 피묻은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었는데
피해자들이 흉기에 찔린 상태에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도망 가려했는지를 짐작 할수 있었습니다.
현장 상황과 피해자들의 상태를 종합해볼 때
"범인은 가게 밖으로 나와 계단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피해자들을 다시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가 끝내...사망케 한걸로....추정됩니다.”
라고 애길했어요
수사팀은 지문과 족적, 머리카락 등 현장에 남겨져 있는
범인의 흔적들을 수집하는 동시에
그 일대 동종전과범들을 상대로 일일이
탐문수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수사팀은
룸싸롱 업소 사장으로부터 짐작이 가는 인물이 있다는
중요한 얘기를 듣게 돼요.. 강력한 용의자로 올라온 사람은,
사건 당일 밤 가게에 왔던 20대 초반의 청년 두 명이 있었는데
본인들이 스스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야기도 했고,
호남지방 사투리를 썼다고 하는데요.
이 문제의 청년들은 지은양과 아름양을 옆에 앉혀놓고
같이 술을 마셨는데, 이 남자들이 지은양이랑 아름양한테
‘2차’를 요구한거에요.
"나가자!"
하지만 이 지은양이 거절을 한겁니다.
"싫어요 저희 2차 안나가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이 남성 두명이
온갖 행패를 부렸다는 거에요.
그래서 보다못한 사장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까부냐고 죽고 싶냐고 지금,"
잔뜩 겁을 줬고., 결국 이 두명의 남성은,
쫓겨나다시피 가게문을 나섰는데 나가면서,
그냥 나간게 아니라,, ,
목을 칼로 긋는 시늉을 하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떄, 사장은,,,오랫동안 구로동에서 ‘물장사’를 해오면서
온갖 못볼 꼴을 다 봐온 사장이었기때문에, 이 당시 남성들의 행동은
그저 풋내기 양아치들의 객기 정도로 밖엔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니까,
사장은 지은양과 아름양 그리고 다른
직원들한테 "가게 정리하고 일찍 들어가"
라고 당부한 뒤 퇴근을 했다고 합니다.
이 업소 사장의 중요한 진술을 바탕으로
경찰들은 수사를 시작했고,
동종전과범들을 상대로 끈질긴 탐문수사를 한 끝에
수사팀의 레이다에 수상한 인물들이 걸렸습니다.
바로 같은 그해 1월 4일 전라남도 광주의 한 술집에서
종업원을 사망케 하고 달아난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져 있었던 당시, 24살의 조경수 그리고 22살의 김태화.
경찰은 곧 이들의 수배전단지를 업소 사장에게 보여줬고,
업소 사장은 ‘저녁에 행패를 부렸던 청년들이 맞다’고 확인해줬습니다..
이 주요 용의자들이 사건 직전까지 머물고 있던 가리봉동의
벌집촌은 샛별룸살롱과 1km 남짓한 거리에 있었고
사건 직후 이들이 행적을 감춘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이에 수사팀은 둘의 동선을 추적해나가는 동시에
이들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실시했어요.
그 결과 조경수가 수원의 '뉴아리랑 호텔' 인근 공중전화에서
친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또 조경수의 애인으로부터
2월 28일 부터,,4박 5일간, 본인도
납치 당하다 시피해서... 함께 대전중심가를 활보하고 다니다가..
3월 2일 서울행 열차를 함께 타게됐고,
이 용의자가, 평택에서 내렸다는 진술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친구였던 본인은,
"서울역까지 타고 와서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됐다."
라는 진술을 확보했어요.
그래서 경찰은 바로 평택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평택에 가보니 범인들이
숨을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는거에요..
그래서 경찰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천천이 뭘 놓친 부분은 없는지...
샛별 룸살롱 사건이 발생할 당시
조경수과 김태화는 ‘벌집’이라 불리는
가리봉동의 다세대주택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벌집촌은 극빈층의 사람들과 공장 노동자들을 포함해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몰랐어요,.
즉, 신원을 숨기고 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던거에요.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한 결과
경찰은, 아무래도 용의자가,
평택혹은 수원에 거주하고 있는것 같은데...그렇다면
가리봉동에서도...벌집..다세대주택에 살았으니까.. 그렇다면
평택, 수원에도 신원을 숨기기 좋은,,, 벌집 다세대 주택같은
곳에 있지안을까...?
그런데 기가 막히게,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는 가리봉동 벌집과 비슷한
셋방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평택보다는 수원에 거주할가능성이 높겠다.
거기에다가, 당시 조경수가 도피 도중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곳 역시 , 수원 세류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오호라.. 수원 세류동 이쪽 어딘가에 있겠구나
수사팀은 세류동 일대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주요 용의자 중에 한명인,
김태화가 평소 자기의 진짜 이름이 아닌,
‘정주연’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김태화는 만화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릴 때도
자신의 본명 대신 ‘정주연’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들이 세류동의 벌집촌에 은신해 있다고 확신한 경찰은,
그 일대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일일이 찾아다녔습니다.
혹시 이런 사람을 본적은 없는지...
최근 계약한 사람중에 정주연이라는 인물은 없었는지...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정주연’으로 계약된 건이 짜짠...?!
중개업자한테, 이 김태화의 사진을 보여주고,.
"정주연이라는 사람이 이사람이 맞아요..?!"
" 네 틀림없이 이 사람이었어요 ”
그리고 마침내 3월 5일. 수사팀이 세류동의 한 월셋방을 덮쳤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조경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고
잠시 외출했다 돌아오던 김태화는 조경수가 검거되는
장면을 보고 그 길로 잠적해버렸어요.
그리고 나흘 정도 지났을떄,
한 언론사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바로 김태화가 건 전화였어요.
자신을 ‘샛별룸살롱 사건의 범인’이라고 소개한 김태화는
자신들의 범행을
‘부자를 향한 사회의 심판이자 민주화를 위한 행동’이었다
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음?! 무슨 소리지 싶죠, 갑자기 무슨 말도안되는...
김태화의 이런 행동은 다 예상하시겠지만 꼼수 였습니다.
“범행동기를 불우한 환경과
사회적 탓으로 돌림으로써 동정심을 받아
조금이라도 형량을 낮춰보려는 얄팍한 수작”
심지어 김태화는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의 총지휘를 맡고 있던 총경과도
직접 통화를 하는 돌출행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수를 하라고 아무리 권유해도 모두 뿌리치고
온니 자기는,,
" 사회때문에 이렇게 한거다"
라고 하면서 합리화를 시키려 하는거에요
나의 모든 범죄는 사회탓이다.
김태화는 결국 소재를 파악하고 급습한 경찰에 의해 검거됐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조사 결과 드러난 이들의 삶은
한마디로 범죄의 연속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범죄인거에요
전남 나주 출신인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고향 선후배로
친하게 지내온 사이였습니다.
가정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들은
10대 후반의 나이에서부터,,,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 3년을 복역하고
1989년 12월 한날 한시에 출소하게 돼요,.
출소 후 이들은 처음엔 ‘각자의 길’을 가다가
"3000만 원을 모아서 술집을 차리자"며 또다시 뭉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어요.
"우리가 배운게 도둑질 강도짓 밖에 더있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3000만 원만 모아서
우리도 장사하자!"
는 계획 아래 강도행각을 시작한거에요,
그렇게 한번 두번 범행을 하던 두사람은,,,
점점 범행이 과감해져서,,,나중에는 단순히 돈을 뺏는 것을 넘어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정말 길가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의 돈이
자기들 돈인것 위협해 뺏고,,
길가에 세워져있는 차또한 훔쳐달아나곤 했다는데...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날은 90년 1월 2일이었습니다.
야심한 새벽 광주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두 사람은
동석한 여종업원이 말이 너무 많은 데다가
‘범죄형으로 생겼다’ ‘마음에 안든다’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격분해서,
옷을 모두 벗기고 흉기로 가슴 부위를 수차례 찔러 사망케 해요...
그리고 이때 피해자 종업원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술집 여사장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히고 달아났습니다.
이때의 사건으로 1월 19일,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떨어지니까,
경찰의 눈을 피해 서울로 올라온 두 사람은 당분간
몸을 사리기로 합의하고,
가리봉동에서 은신생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휴식기’는 오래가지 않았어요.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애인까지 있었던 조경수와 달리,
김태화는 상당히 거칠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경수가 동생 김태화의 외로운 처지를 모를리 없었어요.
이에 결국 1월 28일 밤 두 사람은 집 인근에 위치한
샛별 룸살롱으로 향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한 명씩 종업원을 끼고 앉아서 술을 마셨어요.
그리고 얼마 후 애인이 없던 김태화가 종업원에게 ‘2차’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종업원이 완강히 거절을 하네?!
"아 싫어요!!"
"머야...지금 나를 무시하는거야?"
술집 종업원한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속된 말로 ‘꼭지’가 돌았던거에요.
그렇게 한동안 가게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종업원들이 울고불고 하니까
룸살롱 사장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장의 기세에 눌린 두 사람은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업소를 나왔어요.
씩씩거리며 룸살롱을 나온 두 사람은
화를 삭이지 못한 채 길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화가 안가라앉는거에요!!!
"아 미치겠어~~!!.
내가 진것같애!!! 억울해 못살겠어!!"
결국 택시를 타고 가리봉동의 월셋방으로 간 이들은
회칼을 준비해서 다시 샛별룸살롱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30분경. 당시 룸살롱 안에서
피해자 종업원이었던, 지은양과 아름양이
그들의 남자친구와 함꼐, 총 4명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가게 문이 벌컥 열렸어요.
" 머야?!"
회칼을 들고 들어온 조경수와 김태화는
들어오자마자, 룸 안의 피해자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잔인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
이 모든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화를 삭히지를 못하고 들어오자마자 저지른거에요..
이들의 범행은 4명을 무참히 사망케한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룸살롱 사건 전후에도
여성 손님들만 있는 고급 미용실을 습격해서,
옷을 모두 벗기고 돈을 강탈하는
강도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서울 강남을 포함해 경기도 일대의 미용실에서도
강도행각을 벌여왔는데 도주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전철역과 10분거리 내에 있는 미용실들을
타깃으로 삼았어요.
또 두사람은 경찰한테, 거짓제보를 해서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두사람은요 두 군대의 경찰서에 전화해서,
"새벽 3시 영등포경찰서 뒤편에 있는 중앙로에서
접선하기로 했으니까, 그때 우리 체포하세요"
이렇게 가짜 제보를 흘린거에요
당연히 이 말을 듣고 출동한 , 당시 두곳의
경찰서, 구로서와 남부서 관할 경찰들이
서로를 보고 범인들로 오해한거에요!~!!
그래서 서로 총격전까지 벌어진겁니다.
경찰들인데 범인인지 알고..잡을라고..
총까지 쏜거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의 농간에 당한 경찰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죠..화딱지나는..
경찰을 가지고 논거니까..
체포후 수일동안 묵비권만을 행사하던 이들은,,
심신미약을 미친듯이 주장했지만, 다행히도
받아들여지지않았구요,
5명을 사망케 하고, 1명을 중상 입히고, 38차례에 걸친
특수 강도 행각을 벌인 이들은,
1심 과 2심 모두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1년 12월 19일 10시 사형이 집행되서
그들의 길고도 짧았던 인생이 막을 내렸어요
이들의 끈끈한 우정이라고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이 두사람은, 사형장에서
자신은 신경쓰지 않고 서로를 걱정하는 대단한 우정을 과시하며
형이 집행됬었다고하는데요
흔히 있는 이야기중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라 라는 말이있습니다.
근데 이게 개소리 인것같아요.. 그 죄 자체를
사람이 저지르는건데,
그렇게 치면 아무 죄없는 피해자들은
더 무슨죕니까, 말도안되는 개소리지.
죄송합니다;; 여튼 그래서 오늘은
옛날 지독하고 잔혹했던,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형제도 다시 살려야해
미쳤구만
하.. 하고싶은말 많은데 참는다
저 와꾸가 22,24이라고...?
도둑질 강도질을 배운 것이라고 말하는것부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데...개소름이네 잡것들 ㅡㅡ
숨막히는 여혐..
뒤져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