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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경계 약물과 쾌락의 정신(2부)-인물과 사상(개마고원 간) 32권
약물담론의 두 성향
전면금지론과 자율적 선택론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
전면금지론의 뼈대: 선험적 마약공포론, 절대적 중독론, 마약망국론
분명히 우리사회에는 마약이라고 알려진약물에 대한 통념이 있으며 바로 이 통념에 근거해 약물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한국 약물담론의 주류를 이룬다. 1990년 대중적으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한 불교 포교지의 시평 하나는 바로 이런 통념을전형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그 첫번째 메시지는바로 '마약으느 무조건 무서운 것'이라는선험적 공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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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앞에 새로운 강적이나타났다. '백색(白色)의공포'가 무섭게 인류를위협하고 있다.미국이 마약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메리카에 걸었던 꿈이 마약으로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마약범죄를 측정하는 지수는 인구 10만명당 마약범죄자 숫자로 나타낸다. 이 마약범죄지수로 미국은 328.2에 올라있다. 동남아와 태국이 98.1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마약범이 많은나라이다. 스페인은 65.8, 프랑스는 55.9, 이웃 일본의 마약범죄자수도 18.7이다. 마약범죄지수가 20을 넘으면 공권력의 범위를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 지수 328.2는 미국내에서 새로운 '언터처불(untouchable)'이 생겼다는 뜻이다.(대중불교 88호 서울 대원회 1990.3.안길모 시사평론 ; 마약,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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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험적 공포론의 일차적 근거는 '마약은 사용하기만 하면 바로 중독되어 패가망신한다'는 절대적 중독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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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마약은 아편으로 시작되어 헤로인 대마초 히로뽕 코카인으로 확대돼 왔다. 아편은 앵속에서 얻어낸 진통제다. 6.25직후 아편 중독자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속담에 '아편 두대에 황소 떨어지듯 한다'고 한다. 아편의 위력이 얼마나 강하고 치명적인지를 말해준다.
헤로인은 몰핀성분을 주사제로 만든 것이다. 1805년 몰핀이 합성됐고 1898년 헤로인이 합성됐다. 헤로인을 맞으면 긴장, 배고픔, 성욕, 우울증, 공포감이 억제된다. 그러나 중독될 경우 뇌의 호흡신경을 마비시켜 죽고 만다. 대마초는 일명 '마리화나'라고 한다. 대마나무 잎과 가지 또는 씨앗을말려 담배처럼 핌으로써 환각에 들어간다. 1975년 우리나라 연예가를 강타한 대마초는 시골에 자연서식하고 있어서 피해가 심했다. 정부는 75년 대마관리법을 제정해 대마흡연을 단속하고 있다.
히로뽕은 '필로폰'(philopon)을 일본사람들이 잘못 발음한 이름이다. 정맥에 주사를 하면 황홀감을 느낀다. 그러나 중독자는 탈진상태에서 죽고만다.
코카인은 파나마, 페루, 콜롬비아 등지의 고산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코카나무에서 채취한 환각성분을 원료로 한다. 안데스 산맥 원주민들은 코카나무진을 쉽게 사용해 환각을 즐긴다. 코카인은 국소마취제로 개발됐었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 흡입하거나 주사로 맞아 강한 환각을 맞보는 무서운 마약이 되었다.
-----위의 글.
그리고 이 선험적 공포론은 반드시 마약망국론을 동반한다. 윗글의 필자는 19세기 전반 중국과 영국사이의 아편전쟁과 미국의 파나마 침공을 예로 든다.
--인류사상 마약을 정치와 국제정치의 세력화에 이용했던 때가 있었다. 청나라와 영국사이의 아편전쟁이 한 예다.(...) 전쟁 결과 영국은 홍콩을 조차지로 얻어내는 횡재를 했다. 국내의 마약에 손을 든 미국이 지난해(1989년 필자주) 파나마에 군대를파견해 '마약밀매혐의자'라는 명분으로 노리에가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어 미국은 콜롬비아 근해에 항공모함과 순양함을 배치한 삼엄한 경계 속에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3국의 대통령과 '마약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의 속셈은 내심 마약퇴치를 핑계로 중남미 국가들의 반미 성향에 쐐기를 박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마약을 국제정치 무대의 세력확보 내지느느 세력균형유지에 악용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미국의 마약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중남미의 원산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글
개인과 역사와 실제 정치에서 나타난 이러한 체험들을 증거들로 종합하여 마약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사용을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전면금지론의 핵심내용물이 형성된다. 즉, "무엇보다 중요한 것ㅇ느 마약은 처음 대수롭지 않게 시작해서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약은 곁에도 가지 말아야하고 보지도 말아야한다. 마약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이용해서 안되고 어떤 핑계로도 거래해서 안된다. 마약은 어떤 목적으로도 흥정의대상이 돼서는 안된다."(위의 글.)
자율적 선택론의 권력비판; 마약 효과의 맥락론과 개인주의적 자율성
인하대 철학과의 김진석 교수가 본격적으로 가담함으로써 그야말로 그 이름에 값하는 비평지로 면모를 일신 중에 있었던 계간지 '사회비평'은 2001년 여름호(제28호)에 '통제 권력의 시민길들이기'라는 특집을 마련하고 마약의 경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반적으로 푸코풍이 지배했던 이 기획의 선두 집필문으로 배치되었던 김진선 교수의글은 마약사범으로 구속되어 '9개월 17일'동안의 수감혐을 받고 나온 전력이 있었던 가수 전인권과의 대담과 맞물려 상당히 파격적인 인상을 주었지만, 당시의 정황에서 그 논조들이 가졌던 탈 금기적 충격성에 비해 사회적 파문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것은 마약을 핵심으로 하는 약물문제가 아직은 미국사회에서처럼 -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에 맞먹을 만큼- 전반적 사회과정을 난조에 빠트릴 정도의 교란효과를 발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사회에서 마약문제는 문제로서 가볍게 무시당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약 또는 약물에 대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통념에 정면으로 맞서 "마약을 사용하는 일은 그 자체로 타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범죄)으느 아니다"라고 한다거나, 대마초의 해악이 술의 해악보다 결코 크거나 강력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김진석 교수의 주장은 일단 마약을 절대적 중독론에서 빼어내 우리가 일상적으로 친숙한 약물인 술과 담배, 즉 알콜과 니코틴과 비교하여 보통의 화학적 약물로 환원시킨 다음 그 사용의 효과를 사용맥락에 따라 분별해서 통찰하자는 대단히 온당한 관점 이동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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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마약은 아주 특별한 약물이 아니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결국 술과 담배도 비슷한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어떻게 보면 완화된 환각제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술이 대마보다 훨씬 위험한 면도 있다. 사람을 더 공격적이게 만들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훨씬 더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약에도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어떤 행위를 범죄로 모는 것은 일종의 맹목적 마녀사냥이거나 광신적 준법주의일 것이다. 타인에게 위험을불러 일으킬 가능성은 마약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편리한 다른 문명의이기에 모두 공통된다. 자동차라 다치거나 죽는 사람의 숫자는 얼마이며 그로 인한 물적 피해는 얼마인가? 교통사고 사상자는 하루에 약 960명, 일년에 약 35만명이다.(...)또 담배가 마약보다 실제로 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인다는 통계도 있다. 마약을 사용하는 일이 위험을 불러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런 위험은 다른 식품이나 상품, 더 나아가 문화적으로 편리한 기술과 도구의 사용에도 많건 적건 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마약 자체를단순히 흉악한 유혹으로 보거나마약의 사용자체를 흉악한 범죄로 둘 이유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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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마약복용을 문제시하는,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범죄시하는대부분의 글을 포함하여 마약을 주제로 우리말로 쓴 글 가운데 마약문제를이렇게 명료하게 정식화시킨 주장을 본 적이 없다. 김진석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어떤 사안이 입증되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다.
1.절대적 중독론의 맥락적 상대화와 문명의 산물로서 마약
우선"마약은 위험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제대로 증명된 적이 없다는 것을그는 강력하게 부각시킨다. 즉, 그의 논거에 다르면 , "마약이나 각성제의 위험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성격, 습관적 태도, 절제력, 사회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변수들에 의존하는 것이지,마약이 그 자체로 전적으로 유해하거나위험한 약품은 아닐 터이다." 오히려 그는인간의 생리신경구조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아드레날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성분 자체가약물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인간의 약물사용과 "아마도 뗄 수 없는 상응관계에 있는 듯 하다"고 추정한다. 도파민은 기분좋게 하는 작용을 하는 물질이고 노르아드레날린이나 아드레날린은 화났을 때나 놀랐을 때 분비되는 뇌내 물질이다. 그렇다면 전자는 마약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후자는 각성제와 비슷한 기능을한다. 왜냐하면 마약이나 각성제는 이런 뇌재물질의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마약이나 각성제와 같은 약물을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신경작용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하다. 즉 김교수에 따르면, "뇌내 각성물질의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혹은 강할 수록 우리 정신활동을 자극하기" 때문에, "인간이 마약이나 각성제를 사용하는 것은 정신적 타락 때문이 아니다."
필자가 김진석 교수의 주장에 일단 부화뇌동하는 말을 보태자면, 신체의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소화제나 응급약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상황이나 욕구대상이 된 신체의 신경기관에 진통제나 각성제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문명의 발달에 따라 효능이 좋은 소화제를 가정 상비약으로 비치할 수 있게 되었듯이, 마약의 사용도 "문명의 진행과 같은 관계르르 맺고 있다." 따라서 그 어떤 문명의 산물과 마찬가지로 마약도 "잘 사용하면 유익한 약이요, 잘못 사용하면 유ㅟ험한 독이되는 " '독.약'이다. 즉 단지 마약을 사용(use)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남용(abuse)이나 과용(overuse) 또는 오용(misuse)이 문제라고 한다면, 마약을 술이나 담배보다 더 위험한 물질로 볼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약사용을 선험적 공포론에서 빼내어 사용맥락에 위치시킬 경우 즉각적으로 따라오는 논증적 효과는 마약공포론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 절대적 중독론이 상대화된다는 것이다. 즉 '중독(addiction)'이라는 현상 자체가 마약의 자연적 효과와 반드시 결부된 '불가피한 효능'이 아니라 그 사용량에 따라 나타날 수 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 도 있는 '회피가능한 증상'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김교수의 논증에서 중독성 문제는 아주 가볍게 각주에서 처리된다. 그러나 약물의 중독성이나 의존성(dependence)문제는 필자의 논의에서는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김교수가 각주에 밀쳐버린 것을 전면에 끌어내 인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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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 혹은 '의존성'이란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선험적인 속성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전문위원회가 의존성이 있는 약물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조사는 의존성을 정신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으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나는 정신적 의존성과 비교하면 신체적 의존성은 개체의 차이를 넘어 거의 공통적인 속성(예를 들자면 금단 현상 같은)을 드러내기에 전자보다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그 결과에 따르면 코카인, 대마, 암페타민은 정신적 의존성을 드러내지만 신체적 의존성은 없는 반면에, 모르핀과 헤로인, 그리고 알코올은 정신적, 신체적 의존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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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술에 따르면 술을 마시는 것은 대마초를 피우거나 히로뽕을 맞는 것보다 더 높은 중독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 된다. 따라서 마약법에 의거해 대마초나 히로뽕을 단속하면서도 술은 단속하지 않는 것은아주 불합리한 정책이 되는 것이다.
2. 마약사용의 개인책임론과 시민적 자율성
김진석 교수는마약을 사용하는 사람이 비난받을 행위를하는경우에도 마약 자체가 아닌 "마약 사용자가 한 행위"의 '양상과 그 정도'를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약 사용과 관계된 가능한 경우 전체를 짚어 본다.
첫째, 마약을 먹고 한 모종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끔 의도된 것이 아니거나, 아니면 설사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전혀 처벌할 이유와 필요가 없다. 즉, "어떤 사람은 피곤할 때 술을 몇잔 마시듯이 마약을 하고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없이 안정을 취하거나기분좋은 행위를 할 수 있다. 인간이 술을 금지하거나 추방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는 점이 인정된다면, 그리고 싫건 적건 인간이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식품을 선호한다는 것도 인정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경우에 따라 술보다 적은위험을 안고 마약을 사용할 수 있는기회와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약이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과다한 알콜을 섭취하는데, 이 경우 마약이 불러일으키는 피해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술이 초래한다고 볼수 있다.
둘째, "(마치 술을 마시고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하듯이)어떤 사람은 마약을 하고는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김교수는 이 경우에도 마약은 수면제와 마찬가지로 그 사용자에게 그런 해로운 일을 하게 만드는 부차적 또는 외생 변수 이지 그런 행위의 "전적이고도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본다. 즉 자신에게 자해 또는 해로운 결과를 감수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약이나 수면제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게 만드는 상황의 압박을 견디려고 마약이나 수면제의 힘을 빌면서 그런 결과에 이르게 된다. 또한 이런 자해 또는 자기해악 행위의 결과는 "(사회적 변수를 잠정적으로 배제한다면)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격이나 습관과 연결된 일련의 변수에 의존한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개인을 토대로 시민사회가 작동한다면 우리는 개인들에게 일정정도의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며,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어떠한 행위도 그 자체로 범죄로 여겨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셋째, "만일 마약 사용자가 타인에게 해를 끼쳤다면, 이것도 우리는 술을 마신 사람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와 비슷하게 판단하면 될 터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시민사회의 온당한 존립과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다같이 감안해야 한다고 할 때, 술이나 마약의 사용을 범죄시하여 금지하지 않고도 그것의 잘못된사용으로 인한행위만 처벌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약의사용과 그 결과는 모두 자율적인 개인의 책임 사항으로 간주해야 하며, 거기에 대한일체의 외부적 간섭,특히 국가권력이 동원된 금지와 억압은 시민사회의 기본 전제인 개인적 자율성의 존중과 전적으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약사용이 단속받아야할 범죄로 취급된다고 할 경우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김진석 교수의 논지이다. 즉 바로 이 마약 범죄화 정책자체가 마약 범죄의 원인이라는 반사적 역설이 전면에 부각된다.
3. 마약문제의 한 축으로서 통제권력=치료권력
마약을 전면적으로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마약의 남용이나 오용이 자행되는 것은 " 그 위험을 악의적으로 과장하거나 그것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법이 사람들에게 더욱 유혹을 느끼도록 할 뿐 아니라 계속 유혹적 마약을 개발하게 부추기기"때문이다. 즉 "무조건적 금지에 근거한 처벌이 오히려 범죄자를 양산한다." 김진석 교수에 따르면이런 무리한 금지조치가 계속되는 원인은, 학교 공장 감옥을 만든 것과 같은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통제권력"의 가장 섬세한 형태인 "치료권력"에 기반하여 가부장적 지배를 계속하려는 '국가'와 "거의 종교적 수준으로 거대해진 도덕주의"에 무반성적으로 매몰된 '시민사회'가 단색적 휴머니즘으로 야합하는데 있다. 마약 사용자를 처벌하든 치료하든 그 발상은 "기본적으로여전히 마약사용자를 범죄자에 가까운 환자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런 치료는 우리가 육체적으로 병들었을 때 받는 자발적 치료가 아니라 강제적인 성격의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장된 신체의 자유가 마약사용자의 경우에는 부정된다."
김진석 교수의 논증의 결론은 마약 사용이 의료과학의 측면에서나 시민사회 존립의 기본 원칙 측면에서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 나타나는 마약 문제의 가장 결정적 원인은마약 사용의 확산이 아니라 그것의 무조건적 처벌을강행하는 범죄화 정책에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감탄하여 거의 전문을 인용하다시피 정리한 김교수의 이런 논증을, 마약에 관해 아무런 현장경험이나 전문지식도 없이 포스트모던적 발상에 도취한 철학자가 순전히 관념적 급진성에 매달려 내지른 허구적 상상 정도로 단정하고, 무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김교수가 그 포스트모던적 기풍과는너무나 다르게 아주 합리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논변한 이 마약사용금지 반대 논증은, 마약 사용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에 서 있는 형사정책 전문가가 가장 우려하는 사태와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한국 형사정책연구소의 조병인 연구실장은 "금지논리의 한계성"을 분명히 인지하지 않는 한 "마약류를 술이나 담배처럼 허용할 수 없는 이유"를 명확히 알릴 수 없을 뿐더러 "마약류의 확산을 막을" 방도를 찾기도 힘들다고 지적한다.
--마약 투약의 동기들을 하나하나 상기하면, 마약류를 금지한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해볼 필요성을 한층강하게 느낀다. 예컨대 야간 근로나 접대업무로 인한 피로를 잊기 위하여,해고에 뒤따르는 무력감을 잊기 위하여, 고질 환자가 고통을 잊기 위하여, 배우자의 성적 만족감을 높여주기 위하여, 혹은 미혼남녀가 체중을 줄이려고 마약류를 투약하는 경우 등은 (설령 투약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엄벌대신 동정을 보내는 것이 옳을 듯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예술가가 상상력을 높이기 위하거나,운동선수가 고된 훈련을 극복하기 위하거나, 혹은 무의촌 지역에서 상비약으로 쓰려고 마약 원료를 재배하는 경우도 사정이 같다.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보장)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는 '불행과 고통을 피해갈 권리'도 포함된다고 보면, 나름대로의 행복을 위해 마약류를 투약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한 조치가 부당하게 생각될 여지가 한층 더 크게 느껴진다. 생활이 어렵거나 인생이 귀찮다고 죽어버리는 사람도 많은 상황에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마약류를 투약하는 것이라면 엄벌보다는 보호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행 법률은 함부로 마약류를 투약하면 엄벌로 다스리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론적으로 따져보면 논리적 근거가 견고하지 못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측면때문에 마약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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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용의 전면 금지 논리를 통제권력과 연관시키는 김진석 교수의 논변은 단지 논리적 추론에 그치지 않는다.왜냐하면 이 금지 구조가 권력적 억압으로 작용하는 증거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지역과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인류는 대략 백년전까지만해도 자유롭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아편이나 대마를 사용했는데(예를들자면 진통제로). 갑자기 20세기 들어 많은 국가들은 그것의 사용을 통제하고 금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암을 비롯하여 특히 고통으르 유발하는 병의 경우에 아편이나 모르핀과 같은 마약류가 효과적인데도 점점 현대국가는 그것의 사용을 감시하고 금지하는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친지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의학이 얼마나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게 대응하는지는,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약품의 과잉처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고통에 대해서는 과소처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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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필요한 고통상황에서 의료과학적으로는 아주 불합리하게 행사되는 치료의 실제를 단서로 김교수는 이 치료권력이 결코 "순수하게 의학적인"권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개인들에게 자율적 판단을 박탈하는 정치적 통제와 같은 궤적이 있다"는 결론에까지 이른다.그에 따르면,"마약사용자는 위험하여 병들었다고 판단하는 의학적 권위는 그를 치료시설에 강압적으로 치료하게 하는정치적 권력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마약에 관한 의학적이고 약학적인 통제는 필연적으로 범죄적 병을 생산해낸다."
4. 마약 근절 불가능성의 사회적, 문명적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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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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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그만 돌파구로서 대마초합법화운동; 김문주, 네덜란드, 독일의 사례
논리의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김진석 교수가 마약사용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현재의 법규정과 사회 관습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마약사용을 전면 허용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김교수는 단지 담배나 알코올, 심지어 커피보다도 의존성이 약한 것으로 입증되어 있는 대마초(cannabis)정도는 규제에서 풀어도 되지 않느냐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할 뿐이다. 그리고 마약정책에서 대마초와 관련된 이런 제안은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다.
2004년 3월 23일 오전 11시 30분, 독일 쾰른 행정법원은 한국계 독일여인 김문주(Kim Mun- Ju)를 소환해 그녀가 주도하고 있는 '대마초 흡연 합법화 운동'에 대한 구두 심리를 벌였다. 1969년 슈투트가르트에서 한국인 양친에게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을 졸업하고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는 김문주씨는 "대마초 흡연은 사회악이라는사람들의 천편일률적인 생각을 바로잡고 싶다"는 동기에서 대마초 합법화 운동을 시작하여 독일사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김문주씨와 이운동에 관한 정보는 www.KIMwillKiffen.de에서)
독일에서 "처음으로"대마초 흡연자라고 커밍아웃한 그가 이 운동을 벌이게 된 것은 자신의 생리적 체질 때문이었다.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그의 하루 일과는 퍽 고단한 편이다. 퇴근 뒤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였다. 다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맥주병을 따는 대신 대마초를 말아 피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듯, 전 대마초를피우죠."일단 술은 그에게 쓰고 맛이 없다. 맛은 그만두고서라도 그 취기를 견딜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아시아인의 유전자적 특성에서도 기인한다."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아이사인 중 절반가량은 출생부터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하는 '엔자임효소'가 부족하다는 독일 의학 연구소의 견해서가 행정법원에 제출한 그의 소장에 첨부되어 있다. 여기다 김문주씨는 "(독일-필자)헌법이 보장한 '자아발전에 대한 권리'와 이와 연관된 '행복추구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여기서 행복추구가 '완전한 마취(환각)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겨레21 2002.1.24.강정수통신원 '너희는 마셔라 나는 피운다'-술은 되고 대마초는 안된다는 금기의 영역에 도전한 재독 한국인 2세 김문주씨)
독일은 2002년 2월부터 7개 도시에 정부주도로 마약공급소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서는 오직 자진해서 신고하고 치료를 요청한 중독자급 마약사용자만이 등록후 일정량의 마약을 무상으로 배급받는다.그러나 김문주씨는적어도 대마초 차원에서는 자유로운 유통과 사용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 실시되고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미 1976년에 마약을 강성과 연성으로 분류하고,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강성마약'은 엄격하게 금지하는 대신 대마초 같은 '연성마약'은 합법적인 소비와 판매를 허용했다. 여기서 합법적이라 함은 개인적 소비를 위해 대마초를 하루 5g 한도안에서 정부가 지정한 커피숍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가 이런 대마초 사용합법화정책을 취하게된 이유는이미 앞에서 김진석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마약엄금정책에 실효성이 없다는 데 있었다. 즉 "마약류의 소비와 판매를 금지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암시장에서의 거래까지 막을 수 없고, 나아가 암시장의 확대는 마약관련 범죄의 증가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그러므로 차라리 일부 연성마약의 합법화를 통해 암시장과 마약관련범죄의 증가를 막고, 거래와 소비 뿐만 아니라 마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공중영역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그 소비를 억제해 보겠다는 것"이 마약자유화정책의 기본취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약사용합법화의 중요한 동기는 약물을 투여하기 위해 오염된 주사기를 사용하는 관행을 근절함으로써 AIDS의 확산을 막는다는데 있었다. 어쨌든 네덜란드 모델은 마약 남용 사례와 마약 사용자수를 줄이고 AIDS의 확산을 방지하고 있는 효과를 냈다고 평가된다.(Ethan A. Nadelmann, "Commonsense Drug Policy", foreign affairs Vol.77, No.1(1998)을 조성권, '21세기 국가 반 마약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21세기 한국 마약정책의 새 방향'[서울 한성대학교 국제대학원 2002.5]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