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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지방직 최종 합격발표가 난 지금에서야 합격후기를 남깁니다. 면접 후에 개인적으로 후기를 써보지도 않았고 한달이 지난 지금에서 후기를 쓰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부분과 제 개인적 생각을 바탕으로 기술하겠습니다.
우선 저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말씀드리면(그리 간단하지는 않지만)... 저는 OO공전 토목과를 98학번으로 입학하여 2005년 2월에 졸업하였습니다. 98년 9월 7,8,9일 3일을 학교에서 쓰러지고 휴학을 한뒤 여의도 성모병원 신경외과 나형균 과장님께 수술을 받았습니다. 종양은 아닙니다. 그냥 머리 속에 혹이났을 뿐이고 인공물관을 삽입하여 뇌수를 빼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는 지금 처음하는 것입니다. - 병원에서도 간단한 수술이라고 말했고 수술한 것으로 끝이라고 보는데 99년 1학년 2학기를 다니면서 몇 번 자취방에서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월 중순(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며칠동안 등교를 하지 않자 조교님이 집으로 연락하셨고 이후로 병원에 입원하여 1학년 과정은 수료로 마쳤습니다.(수업일수가 2/3선을 넘은 관계로..) 퇴원한 후 어머니께서 학교를 한해 쉬라고 하셔서 또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안심이 안 되시는 부모님은 그 이후 복학을 허락을 못하셔서 미복학제적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1학년 과정을 마치면 토목산업기사를 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퇴원 후 휴학상태에서 2000년 저는 자격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3월 초 또 병원에 실려가게 되어 자격증은 포기하였고 4월 어느날 또 병원에 실려가 재수술(물관교체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를 자퇴하려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퇴원 후 저는 ‘적어도 내가 토목과를 나왔으면 토목산업기사 하나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비록 토목을 하지는 않을 지라도) 7,8,9월 3개월을 다시 시험준비를 하여 2000년 10월 1일 필기시험에 1차로 합격하였습니다. 실기(토목설계)는 한번 낙방하였고 이듬해에 합격하여 2001년 6월 자격증을 발급 받았습니다.(그렇게 작은 성공 하나가 지금껏 살아오는 데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지금까지 제가 받아온 많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고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기위해 2004년 토목과에 재입학하여 졸업 후 2005년 OO대 사회복지학과(학점 100%로 모집하였음)에 편입하였는데 편입 직후 또 한해 휴학을 하고 이듬해 복학하여 2008월 2월에 졸업하였습니다. (졸업하면서 1급도 받았습니다.)
토목과에 재입학하면서 제 목표는 ‘졸업만 하자!’ 였습니다. 또 쓰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건강히, 무사히 졸업만 하자!... 그런데 1학기를 마치고 토목과, 남학생들만 있는 과에서 평점 4.5점으로 전액장학금을 받았으며 나름 교수님들에게도 인정받는 학생이었습니다. 편입 후에도 3학년 1학기 때 일부 장학금도 수여하였고...이하 중략...
스무살 때 수술을 받는데 정확한 양력 날짜로 1998년 9월 14일 월요일(이 날의 음력 날짜는 7월 24일) 제 어머니 생신이었습니다. 그 전부터 그 날이 어머니 생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어렴풋이 눈이 떠졌는데 시야도 흐릿하고 의식도 또렷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서 제일 먼저 눈이 떠졌을 때 했던 말이..."아빠.. 오늘이 엄마 생신이세요." 였습니다. 저는 이 말만 남기고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는데, 그래서 부모님이 63빌딩에 가셔서 식사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아침 깨어나서 저는 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정신력 하나로 버텨온 것 같습니다.
저는 2009년 9월부터 시험준비를 하였습니다. 졸업 후 사회복지 관련 업무가 아닌, 아버지 일을 조금 도와드리다가 제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물론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우선 부모님 입장에서는 31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려운 시험준비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겠냐는 말씀을 하셨고, 이제까지 제가 이뤄낸 성과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못 미더우신 부분도 있었습니다.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우겨서 시험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부모님은 지금도 제가 고시원에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다. 고시원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시는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아는 언니네 집에 있다고 거짓말(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제가 모아 놓은 돈이 조금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시험준비를 하겠습니다.’ 말씀드리고 시작하였는데 얼마뒤부터는 부모님께서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처음엔 행정직으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 세무직을 하자고 하여 2010년 1월 세무직 종합반을 등록하였는데 저는 세무직이 제 체질에 맞지 않았고 그러던 중 사회복지직이 있다는 것을 알고 3월 오완섭교수님 수업을 듣고 5월 지방직 시험을 보았습니다. 1,2월 수업은 세무직 종합반에서 국사와 영어만 듣고 행정법은 인터넷수업(박준철 교수님)을 들었고 국어는 2009년 11월 강경욱 선생님 수업들은 것으로 준비하였습니다.(참고로 저는 한교에서만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후 제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수업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준비하였고 이번 지방직 시험에서는 제가 지원한 파주에서 컷보다 10점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아침 특강 등 여러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저는 제게 맞는 선생님을 찾아 공부를 하였습니다. - 저는 아침 5시면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학원에서 아침특강을 들었으며, 아침특강 자료 및 무료특강 자료를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아침특강 꼭 들으세요.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습니다. - 문제풀이 과정에서도 패스원 행정직 종합반 수업을 신청하고 행정학 수업은 안들으며 오완섭 교수님 사회복지학 문풀을 따로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물론 면접도 오완섭교수님께 신청하였는데 거기에서 짜여진 조원들을 통해 김형준 선생님 면접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7월 11일 면접일 당일.....
저는 9조로, 제가 속한 조에서는 면접을 보고 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인성위주의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 같은 파주 지원자 중 앞 수험자가 나오면서 하는 말이, 죄다 인성이었다고, 어렸을 때 뭐했고, 뭐했고, 죄다 인성이었다고.. 그런데 제 경우.. 제가 제 이야기를 하긴 하였지만 굳이 인성에 대한 질문만 받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인성은 물론이거니와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그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끄집어내는 역량면접 위주였던 것 같습니다.
면접실 입장하면서...
안녕하십니까? 수험번호 57150038번 신범아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름 뒤에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이렇게 하면 제가 웃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였고 제 스스로 긴장을 풀고, 또 제 의지를 표현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면접관(중앙) : 네 수험표 이리로 주시고요.(수험표는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지도원의 말에 따라 제출준비를 안 하고 있다가 제출하였습니다. 많은 수험자가 그러하듯이 저도 컬러 프린트 후 수험표를 코팅하였습니다.)
면접관(중앙) : 집이 김포인가요?
나 : 네. 김포에서 나고 김포에서 자랐습니다.
면접관(중앙) : 그런데 주소가 인천으로 되어 있는데...(주민등록증에는 인천 주소임)
나 : 제가 원래 OO공전 토목과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 학교를 오랫동안 휴학하게 되었는데 사회복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하기위해 2004년에 토목과에 재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학교를 다니면서 자취를 하여서 주소가 그렇게 되어 있었고 현재는 김포로 되어있습니다.
면접관(중앙) : 그런데 후에 김포 주소가 없는데..(주민증 뒷면에 주소 이전으로 인하여 김포주소와, 인천주소 두가지가 기재되어 있었음.)
나 : 현재 주민등록등본상에는 김포로 되어 있습니다.
면접관(맨 오른쪽) - (제가 보는 입장에서) : 원래 그런거 일일이 다 안 나옵니다.
(참고로 자소서에는 토목과 입학 및 사회복지학과 편입 내용이 빠져 있었고, 저 스스로도 주민증에 인천 주소로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좌우명에 그런 내용을 적었습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저는 제가 하고 싶어서 전공을 버리고 사회복지의 길을 선택하였고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토목과를 자퇴하려고까지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하고자 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반드시 그 길은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옛 선인들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면접관(맨 왼쪽) : (사전조사서를 보고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전조사서 내용에, 자신이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와 극복방법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 - OO공전 토목과에 재입학하여 OO동에서 방을 얻어 통학하였는데 OO동에 ‘OO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불사하신 절로 그 당시 그 절은 스님과 저, 두 사람의 공동 명의로 되어있었습니다. 이하 내용 생략... 그때 절에서 어린이 법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OO대에 다니는 저와 동갑인 남학생이 지도교사로 있었고 어린이법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스님께 ‘제가 참여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리고 한 차례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부터 전적으로 제가 맡아서 운영하게 되었는데(그 학생이 중국 어학연수를 떠나는 관계로) 아무런 기초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어 힘들었는데 책을 참고하고 주변분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불교협회에서 운영하는 레크리에이션 강좌에 참여하여 많은 지식도 습득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으로 ‘아동심리분석사’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토목과 공부를 하며 자격증도 취득하였는데 후에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보육교사 1급 자격도 받았다는 내용을 기술하였는데, 모두 자소서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저는 교육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원동기 및 포부에서도 아동에 관련된 업무를 맡고 싶다는 내용을 기술하였습니다.)
면접관 : 그러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나 : 제가 예전에 몸이 좀 아팠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에서 주워들은 풍월이나, 사람들의 많은 조언들.. 그런 것들이 절대 제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닌데.. 저는 그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이 말을 제가 면접 내내 준비했던 말이었는데 실제 면접에서 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면접을 위해 준비했던 말들을 실제 면접장에서 다 말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스티마 실장님이 자신의 병력 말하는 것이 안 좋다고 하셔서 자소서에 아팠던 내용은 모두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건강에 관심이 많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평상시 조깅을 했으며 실제 축제 때 마라톤에 참여하여 사회복지학과내 여학생 부문 2위를 하였다는 사항을 기술하여 건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어서 인지 아팠다는 얘기를 한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2008년 한국요가연수원(낙성대)에서 요가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여 지도자자격이 있으며, 수험준비 중에도 틈나는 대로 요가원에 가서 요가를 하였습니다. 요가를 통해 심신의 안정도 찾고 머리도 맑아져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며칠전 (최종합격 이후) 원장님을 찾아뵙고 합격소식을 말씀드렸습니다. 매일 김포에서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서 요가원을 가곤 하였는데 열심히 하던 아이가 드문드문 나오니까.. 원장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고 혹시 오해를 하시지는 않았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공무원 합격했다고 말씀드리니까.. 원장님이 무척 좋아하시더라구여.. 나중에 근무중에도 토요일 오후에는 요가원에 가서 지도자수업을 청강할 생각입니다...
면접관(맨 오른쪽) : 인상이 후덕해 보인다는 말을 했는데 여자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지..(자소서에 장점으로 인상이 후덕해 보인다는 점을 기술하였는데 면접관은 자소서를 보며 의문 나는 사항을 밑줄 긋고 질문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성면접, 역량면접이 강화되면서 자소서를 잘 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원서접수 당일 김형준선생님께서 자소서를 잘 퇴고해 주셔서 문장이 훨씬 매끄럽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 : 어렸을 때는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싫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들의 그런 말씀이 좋은 뜻으로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면접관(맨 왼쪽) : (사전조사서를 보시고...) 아동심리분석사.. 어쩌구 저쩌구.. 아동에 대해서 어쩌구 저쩌구..(내용이 기억이 잘 안납니다.)
나 : 아니 그게 아니구여.. 이것입니다.(잘 기억이 안납니다.)
그러자 면접관 : 아니 그거 물어 보는 게 아닌데...(면접 준비하며 O교수님께 제가 너무 아동에 관련해 강조한다고 지적을 받아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었던 터라 면접관이 또 아동에 대해 언급하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면접관 말씀이 다 끝나기 전에 먼저 말을 한 게 탈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 : (속으로) 아니.. 그게 아닌데... 면접관들 표정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어.. 내가 실수했구나...(수험생들 주의하셔야 할 사항이 절대 면접관 말씀이 끝나기 전에 먼저 말씀하지 마십시오.)
면접관(맨 오른쪽) : 그러면 토목과를 졸업을 하였는데 아동에 대해서 하려고 했던 것이냐.. 아동 정책이나...(질문 내용이 정확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 : 아니요. 저는 아동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학과 편입을 위해 토목과에 재입학 하여 공부 하던 중 어린이법회 지도교사가 되었고 계기가 되어 아동심리분석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면접관(맨 왼쪽) : 그러면 본인이 공무원이 되면 힘든 점이 뭐가 있을 것 같은지...
나 :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있기 때문에, 나이어린 공무원 선배님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괜찮은데 혹시라도 그 분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그게 좀 조심스럽습니다.
다시 면접관 : 그러면 그럴 땐 어떻게 할 건지...
나 : 제가 형제가 좀 많습니다. 1남 5녀 중 셋째입니다. 밑으로 동생들이 3명이 있고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돌보고 하다 보니 학교에 다닐 때에도 나이 어린 동생들과 생활하는 데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선 선배님이 나이가 어리다고 하더라도 업무면에서나 여러면에서는 저보다 경험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그 분들에게 배우겠습니다. 그런데 사석에서는 제가 언니로서, 또 인생 선배로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의 많은 경험이나 업무 노하우 면에서는 제가 배우겠습니다.
다시 면접관 : 그러면 나이 어린 후배들과 잘 생활했던 경험 중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 : 사회복지학과에서 3학년 수업으로 사회복지조사론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원들이 팀을 구성하여 주제를 정하고 설문조사를 한 뒤 결론을 도출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저희 조는 타과생들로만 구성된 조였습니다. 저도 편입한 입장에서 잘 모르지만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또 전공자가 저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제가 조장을 맡아 팀을 이끌어서 저희조가 1등을 하였습니다.
다시 면접관 : 그러면 나이 어린 상사랑도 잘 지낼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고개 끄덕끄덕)
나 : 네.
중간에 어떤 질문 내용이 있었는데 잘 기억은 안 나고... 제가 또 나이 많다고 얘기하자 오른쪽에 계시는 면접관께서 웃으시면서... 나이 별로 많지도 많은데 나이 많은 것 강조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면접관(중앙) : 자격이 안 되는 수급자가 왔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나 : 우선 관계법령을 꼼꼼히 살펴보고 왜 수급자격이 안되는지 설명을 해서 이해시킨 뒤, 다른 쪽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연계해 드리겠습니다.(대다수의 수험생들은 모범답안을 준비합니다. 저 또한 모범답안을 이야기 하였는데, 면접관은 좀 더 구체적인 내용, 그 사람에 대한 역량을 알고 싶어합니다. 구체적으로 준비하시는 것이 좋으실 듯...)
다시 면접관 :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 : 식품이나...
다시 면접관 : 그러면 본인이 본인 돈으로도 줄 수 있다는 말이냐.. 본인이 공무원 월급을 받아서 본인 돈으로도 줄 수 있다는 말이냐..
나 : 제가 공무원 월급을 받아서, 제 월급의 일부를 떼어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 드리겠습니다.(천진난만하게 밝게 웃으며.. 쾌활하게 말하였습니다. - 실제 면접준비를 하며 상황질문으로 공무원 월급의 일정부분을 떼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쓴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솔직히 그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실제 면접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굳이 답변 내용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답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답변을 듣고 질문을 하신 가운데 면접관과 오른쪽 면접관이 웃으시네요.. 그러면서 오른쪽 면접관이 혼잣말씀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하시는 말씀이..“공무원 월급이 많지가 않은데...”
면접관(오른쪽) : 상황을 조분조분 말씀하셨는데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남) - 그러면 그럴 땐 어떻게 할 것인지...(면접관 말씀이 참 느리십니다. 느리게 상황을 조분조분 설명하시는데 면접을 충실히 준비한 학생이라면, 면접관 말씀을 다 듣고 나면 질문의 핵심이 보입니다. 면접관이 말씀하신 내용은 복지사각지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자소서 내용에 지원동기 및 포부에서 빈곤문제를 언급했습니다. - 현재 사회문제 중 빈곤문제가 참 심각한 것 같다. 빈곤을 못 이겨 3살 된 아기와 8개월 된 아기를 여관방에 버리는 부모들, 소년소녀범죄, 가정폭력 등, 이런 것은 모두 빈곤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빈곤으로 인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다시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 힘이 돼 드리고 싶다. 수급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그 분들에게 보다 정책적인 지원이 돼 드리고 싶다. 그래서 사회복지공무원에 지원하게 되었다는 내용 등 - 저도 빈곤문제를 언급하며 복지사각지대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고 면접관도 굳이 그 단어를 언급하진 않았는데 면접관 말씀을 들으면서 순간 복지사각지대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예전에 봤던 기사 내용과 그때 그것을 보며 잠깐 생각했던 내용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사건의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제 또래의 30대 초반의 어떤 여성이 혼자 생활하며(췌장암 환자였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살았는데 그 때도 이웃집 대문에 ‘밥과 김치 남는 것이 있으면 제 방문 좀 두드려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겼는데 나중에 집에 가보니 빨아서 널어놓은 수건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정도로 집안에는 온기도 하나도 없고 여성은 먹지 못해서 뼈만 앙상히 남은 채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 : 자격이 있어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그런 걸 복지사각지대라고 하죠?...그러자 면접관 고개 끄덕끄덕... 제가 예전에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 또래의, 30대 초반의 어떤 여성이 있었는데 작가인지..(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기억을 더듬기 위해 눈을 한쪽으로 치켜뜨며 고개 갸우뚱 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때 면접관 세분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의 답변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답변할 때 거의 질문한 면접관 위주로 그 분만 바라보고 말했었는데 이때는 질문하신 면접관 위주로 보되 다른 분들에게도 시선을 안배하며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췌장암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이웃들의 신고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떨지...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 인력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주변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이웃들의 신고 제도를 도입해서.. 보상금을 굳이 고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소액이라도 보상을 해 줌으로써 이웃들의 신고 제도를 도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러자 면접관 세분이 크게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속으로 ‘ 아! 됐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도 ‘복지사각지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면접 직전, 김형준선생님 홈피에서 경남 등 기출문제에도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답변내용을 준비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저 예전에 그 기사를 보고 한 번 생각해 보았던 것이 답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면접관(왼쪽) : (다른 면접관에게) 됐습니다.
면접관(오른쪽) : 수고하셨습니다.
나 : (목례 후 일어나서) 감사합니다.
면접후.. 제가 나름대로 제 이름으로 3행시를 멋있게 준비했었는데 미처 하지 못한 점이 좀 아쉬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면접관 말씀이 다 끝나기 전에 먼저 얘기를 해서 면접관 기분이 상하지 않았나하고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면접관 호응도 좋으셨고 마지막 질문에서, 현 사회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생각해 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한 번 생각해 보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최종합격 이후 그 전보다도 오히려 시간이 더 촉박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마무리가 돼고 이제야 후기를 올립니다. 면접을 준비하며 저에 대해 다시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항이 있어 찾아갔을 때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조언 해 주신 오완섭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현 사회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고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 음지에서 힘겹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스무살 때 죽음의 공포에 대해 처음 느꼈습니다. 아! 내가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모든 것이 붙잡고 싶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와서 방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데 시월의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더군요. 세상이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아!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한 곳이구나.. 생명의 소중함도 깨달았습니다. 삶을 너무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 지금도 어디선가 살고 싶어 생명의 끈을 부여잡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통 없이 행복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셋째 딸, 저 때문에 맘 고생 많으셨을 부모님께 이제야 효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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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합니다 ㅠㅠ 고생하셨슴돠 ㅠㅠ 부러움
글내용으로만 보더라도 님은 충분히 자질이 있으시네요. 합격축하드립니다.
님... 이제 꼭 행복해지세요. 지금보다 더... 그리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좋은 날들만 님한테 찾아가길 바랄께요. 합격 정말 축하드려요.
글읽으며 건강한 저의 모습에 감사하게 되네요.. 건강하게 즐겁게 공무원 생활 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여성분이지만.. 멋있네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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