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시골의사 박경철
우리병원은 안동시내 태화동 5거리에 있다..
이곳은 서울로 치면 종로쯤 되는 곳이다,
새로 개발된 옥동과 구도심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어 차량통행이 많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주변이 상권이 발달 된 곳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저 지나치는 차량만 많고 괜히 분주해 보이기만 하는 그런 동네다,
병원은 오거리에 마주하고 있는데. 병원 현관에서 길 건너편이 노동자 대기소다,
노동자 대기소란 문자 그대로 하루 일당을 받고 일하는 분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 , 일꾼이 필요한 사람들이 차를 몰고와서 " 미장 5만원" "중국집 주방 4만원" 이런식으로 부르면 그에 해당하는 분들이 차에 올라타고 일하러 가는 그런 곳이다,
그곳은 대개 새벽부터 시작해서 오전 9시경까지 흥정이 이어진다.
경기가 한참 좋던 재작년에는 내가 출근하는 여덟시반이면 아무도 없었다, 그랬는데 작년부터 아홉시가 다 되어도 남아 계신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요사이는 그 수효가 점점 늘어간다, 그리고 최근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고 부터는 아예 그 수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었다.
그까지는 그렇다 치자..
경기가 어려우면 가장 타격을 받는 분들이 그분들인것은 자본주의 논리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한다면 도리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요새 병원 유리문 너머로 그분들을 유심히 보면서 철학을 배운다,
그분들은 삶의 고단한 때가 정말 너무나 깊이 찌들어 계신다, 그중에는 아홉시까지 기다리시다가 일자리가 도저히 없으면 아예 병원에 자리를 옮기는 분들도 많다, 그중에 많은 수가 생활보호 대상자이기 때문에 병원비는 2종의 경우 하루 1000 원, 일종의 경우 무상으로 진료를 받는다,
때문에 병원에 오시는 분들중에 정말 편찮은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는 분들도 많다,
후자의 경우에는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물으면 "찜질" 하러 왔다고 하신다. 물리치료실에 가면 핫팩을 하고, 초음파치료 전기치료를 하는데, 그것을 가리켜 찜찔이라 하시는 것이다, 특히 1종 대상자분의 경우에는 일이 없으면 무조건 병원에 오시는 경우도 있다.
물론 노동을 하시는 분들이라 근육통이 많으시지만, 이 경우는 통제가 필요하다,
병원입장에서야 무조건 진료를 해서 의료보험공단에 청구를 하면 수입이야 되겠지만, 그래도 병원이란 곳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설득을 해서 의료재정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아침 나절에 그분들을 길 건너로 관찰하고, 진료실에서 최근에 자주만나다보니 한가지 특별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분들의 웃음의 양이 나보다 훨신 많다는 것이다.
길건너를 보면 일자리가 없는 분들이 아홉시경 까지 남은 분들인데 이분들은 담배를 피면서 , 일자리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삼사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다, 그리고 병원에 와서도 두세분이 같이 오시면 예외없이 대기실에서 서로 재밌는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있고, 진료실에 들어서면서도 웃으시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분들은 특히 그런 편차가 심하다,,
고학력에, 생활 수준이 높을 수록 표정이 심각하다,,
오히려 소외되고 어려운분들이 병중에도 웃는다,
그리고 바람이 제법 찬 가을날 아침에 일자리가 없어도 그래도 울기보다는 웃는다,, 값비싼 까페에서 꼬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은 스스로 고상하다고 생각은 할지 몰라도 대개 표정들이 심각하다,. 그러나 안동 막창골목에 소주 한병 시켜놓고 돼지막창을 굽고 계신분들은 항상 떠들썩하고 유쾌하다,,
이것도 분명 인간에게 주어진 정신적 엔트로피의 문제일 것이다..
엔트로피는 (열역학법칙에 따르면) 닫힌 폐쇄계에는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면 결국 그만큼 쓰레기가 쌓이므로, 외부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자체로서 수명을 다한다는 것인데.. 예를들어 지구에서 자체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언젠가는 그 쓰레기만 쌓여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그런것이다,,
그럼 인간의 감정도 그런 것일까..
소위 이성으로 해결해야 할 뭔가 대단하고 복잡한 문제들의 포로가 되어 "고상한 척"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 에너지의 고갈로 뇌 속에 찌꺼기만 쌓인 것은 아닐까.. 솔직하게 노동하고 사는분들은 차라리 "이성적"이라는 이름의 "어색한 노동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함으로서 뇌속의 기쁨의 센서가 낮게 세팅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뇌를 소모하면 할 수록 웃음의 센서는 점점 단위를 높여가고, 비등점이 점점 높아지면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웃음이 터지지 않는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의 총량은 과연 어느쪽이 더 나은 것일까..
물론 이런 이야기들을 그분들께 드리는 것은 모욕이다.. 정말 따귀라도 맞을지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도 현관 너머로 보이는 그분들의 웃음은 여전히 내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