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잠이 깨어 10층의 바다를 면한 객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본다. 깜빡이는 등대 불, 일찍부터 출항하는 작은 어선들, 파도가 모래톱에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데 아슬아슬하게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곳을 따라 달리는 사람, 아까부터 웬 젊은 남녀가 껴안고 먼 바다를 보고 있고 저 멀리엔 정박하고 있는 큰 배. 해변을 따라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날아오르는 하얀 갈매기 사이에 잿빛 깃털의 저 새들은 무슨 새들일까? 이제 가로등은 꺼지고 날은 희뿌옇게 밝아 온다.
모처럼 느긋하게 bath salt까지 풀고 목욕을 즐기고는, 호텔은 이런 것이 좋다. 화장대에 붙어 있는 확대거울을 쳐다보니 웬 늙은이가 나를 보고 있네. 축 쳐진 눈두덩, 주름진 피부, 희끗희끗 보이는 흰머리까지. 집에 돌아가면 얼른 처에게 뽑아 달라 그래야지. 90년대 중반 보스턴의 미국 신장학회에 갔다 처음으로 아침 샤워 후 난 흰머리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나도 해변의 산책에 나선다. 아까 본 잿빛 새는 비둘기였구나. “까악”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모래사장에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내려앉는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모래를 뒤지고 있고. 젊은 스님 한분이 바랑을 긴 의자 옆에 내려놓고 바다 저쪽을 하염없이 쳐다보는데, 아니 묵상 중인가? 부산만 하여도 식생이 서울과 완전히 다르다. 산책로는 붐비기 시작한다. 조그만 애완견을 데리고 나 온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는데 얼굴가리개를 한 아줌마와 선글라스를 낀 젊은이. 눈에 뜨이는 간판이 있어 쳐다보니 “까만 짜장, 하얀 짬뽕, 그리고 빨간 탕슉” 운율까지 맞추어 놓았다.

해운대를 알리는 입간판.

해변에 면하여 설치한 며칠 전에 끝난 부산국제영화제의 가건물을 철거
중이었고.

아침을 호텔에서 간단하게(?) 먹는다. 낫도와 두부, 전복죽과 미소 국에 훈제 연어 조금. 뮈슬리와 토마토 쥬스로 끝을 낸다. 일식과 양식으로.

식사 후 돌아와서 방에서 사진 한장을 찍고. 초록을 다시 읽고, 참고문헌도 또 보아도 나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genetic polymorphism이다.
좌장원고를 손을 보고 일단 끝낸다.
10시의 오전 세션부터 듣기로 하고 BEXCO가는 셔틀버스를 탄다. 버스는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을 경유하여 동백섬 일주도로를 지나 신호대기 중인데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인솔아래 줄지어 건너다 정지신호가 나와 일부는 못 건너고 있는데 한 애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쏜살같이 차 앞으로 위험하게 뛰어간다. 어릴 때부터 질서를 지키는 교육이 필요한데. 사고라도 나면 이 또한 선생님의 책임인가?
부산에 오니까 부산 생각이 난다. BEXCO 자리는 내가 74년 2월에 부산에서 결혼 후 당시 부산 최고의 부자인 “동명목재” 강회장님의 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프로펠러비행기를 타고 출발한 수영비행장이다. 부산이라면 사고가 많았던 동네이다. 50년대 초 아버지가 부산 공군의 기지창에 군의관으로 계실 때 큰 불이 난 걸로 기억하고 있고, 50년 대 후반 시민위안의 밤에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입구로 몰려와 수많은 사람이 압사, 대화호텔로 봉생병원의 원장이 사망하였고, 국제신발 화재, 우리나라 최초의 송도도끼 토막살인 사건은 아직도 범인이 안 잡혔다고.
송도 윗길의 덕성관, 청사포와 청학동의 횟집들. 우 장춘박사의 동래농원, 용두산 공원, 전차, 최 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노래에 나오는 도라지위스키의 대선발효, 한국생사, 흥아 타이어 등등. 나는 부산에 대하여 참 많이 안다. 더구나 처가의 원 고향인 기장군의 멸치회로 유명한 대변항과 일출이 근사한 방파제, 건너편의 섬 죽도는 동백이 좋았었고 내가 결혼할 때만 하여도 처가 부동산이었는데.
학회장에 도착하여 내가 좌장을 할 회의장에서 강의를 듣는다. 점심은 lunchbox로 샌드위치 네 조각, 과일, 그리고 생수한통이다. 배부르면 좌장하며 졸까봐 두 쪽으로 배를 채우고, 나가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는 오후 1시 50분부터 3시 50분까지 호주친구를 채-chairman으로 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Good afternoon, Ladies and Gentleman. I welcome all of you to attend this symposium으로 시작하였고, 마침 일본 시즈오까에서 온 연자에게 We can see a very beautiful Mt. Fuji everywhere, 일본 미에에서 온 연자에게는 미끼모토 진주를 소개하여 박수를 받았다. 끝나고 나니까 우리 전통문양이 들어간 커피잔 세트를 준다. 시간이 있어 전시장에 들렀더니 약간 썰렁하다. 하도 정부가 리베이트니 스폰서니 닥달을 해대니까 부스에 비치된 판촉물이라곤 볼펜과 물티슈 정도.
좌장을 끝내고는 얼른 호텔로 돌아와 어제 냉장고에 넣어 둔 캔 맥주 두 개를 마시고 어제 전화하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6시에 범일동 국제호텔에서 보자고 한다.

호박 극장식 나이트클럽의 선전용 호박.
첫댓글 유교수 머리칼은 자연 머리인가 봅니다. 나는 이미 사십대 초반부터 허옇게 변하더니 얼마 안되어 90 퍼센트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염색하고 사는지도 20여년이 되었는데, 지금에서야 흰머리 조금 있다면, 검은 머리로 태어나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