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해 :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 생명력
* 말갛게 씻은 얼굴 : 생명력의 정화. 재생
* 산 : 역경
* 어둠 : 아픔, 고난(일제치하 현실)
* ∼라 :선동적, 적극적
* 어둠을 살라 먹고 : 어둠을 불태워 먹어 치우고. '살라'는 '사르다' 즉 '불에 태워 없애다'의 부사어
* 달밤 : 절망 혼돈의 시대적 현실
* 눈물 같은 골짜기 : 슬픔이 가득찬 역경 또는 절망과 혼란의 시대
* 늬가 오면 : 네가 오면
* 늬가사 : '늬가'는 ;네가'의 사투리. '사'는 주격조사의 하나로 강조의 뜻을 지님
* 청산 :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 화합과 공존의 세계
* 깃을 치는 : 날개를 털듯 산자락을 터는, 활기찬 청산의 모습을 활유
* 사슴 : 선, 희망
* 칡범 : 갈범의 사투리. 악과 절망의 표상
*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 미추 선악의 존재들이 화합하여 공존하는 모습
* 애띠고 고운 날 : 티없이 맑고 순수한 삶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산문시
* 성격 : 상징적, 원망적
* 제재 : 해
* 주제 : 광명과 구원의 세계 추구
* 특징 1. 강렬한 남성적 어조의 시
2. 4음보의 급박한 리듬을 지님
3. 시어의 상징성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킴
* 출전 : <상아탑 (1946)>
* 바탕 : 기독교 메시아 사상 (성서 이사야서 35장)
* 모티브 : 8 15 광복
* 시상 전개
1연 - 새로운 세계를 향한 소망
2연 - 어둠의 거부
3연 - 새로운 세계와의 친화
4연∼5연 - 자연과의 실제적 친화
6연 - 새로운 세계에의 꿈과 의지
이 작품은 1946년 5월에 발표되었으나 씌어진 것은 8.15 해방 이전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어둠]이란 일제하의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해'가 반드시 조국의 광복을, 어둠은 일제하의 현실을 뜻하기만 한다고 못박을 수는 없다. 그것은 상황을 달리해서 어떤 다른 암담한 시대의 소망에 관한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와 같은 해석의 폭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굳이 이 작품을 민족 해방에의 염원과 연결시켜 보려 하는 것은 작품이 등장한 시기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작중 인물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라고 간절하게 외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어둠이다. 그는 사슴과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노는 세계를 갈망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가 현재 속해 있는 세계는 사람과 사슴과 칡범이 서로를 두려워하며 해치는 공포스런 상황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것을 인간적 의미로 풀이한다면,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고 억압하고 약탈하며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의 모습이 된다. 이 작품의 의미는 이러한 어둠의 시대,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에 있다. 작품의 급박한 호흡은 그 소망의 절실함 때문이며, 반복되는 말들도 또한 그 때문이다.
1연에서는 우선 '해야 솟아라'라는 말이 수식어를 덧붙여 가며 반복된다. 그 해는 산 너머서 어둠을 불태워 먹고 이글이글한 빛과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떠오를 광명의 원천이다. 그것은 자연의 해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한꺼번에 밝히는 새로운 세계의 빛을 의미한다. 이러한 빛을 기다리는 그의 괴로운 모습이 2연에 보인다. 그는 번민과 비애로 가득한 골짜기의 어두운 달밤이 싫다.
3연부터 끝까지는 드디어 해가 찾아 왔을 때 누리게 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때에는 밝은 빛 아래 티없이 맑은 자연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청산'이며, '사슴, 칡범, 꽃, 새, 짐승' 들이다. 청산은 훨훨 깃을 치며 한껏 아름다울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사슴, 칡범 등 온갖 자연물들과 '애띠고 고운 날' 즉, 티없이 밝고 순결한 삶을 누릴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그리는 이상의 세계는 단지 조국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적 상상 속의 낙원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회는 물론 자연의 세계에서까지 일체의 갈등이 해소된 화해로운 경지이다. 이와 같은 이상 세계에의 꿈은 아마도 역사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수 없을 터이지만, 그러한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을 넘어서는 꿈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