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3. 5. 9 (화)
2. 여행지 : 창덕궁. 후원 . 창경궁
(( 조선시대의 5대 궁궐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
가. 창덕궁 : 사적 제122호
o 태조 이성계는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창건했지만
제2대 정종은 옛 도성인 개성으로 다시 수도를 옮겼다.
o 제3대 태종은 개성에 남으려는 대신들의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1404년(태종 4) 다시 한양 천도를 결정하였다. 이 때 경복궁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새로 창덕궁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o 이는 경복궁에서 있었던 정치적 사건에 대해 태종이 꺼려한 이유가 컸지만,
경복궁과 창덕궁 두 개의 궁궐을 동시에 운영하는 양궐체제가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405년 10월에 공사가 끝났으며, 10월 25일 창덕궁으로 이름 붙였다.
o 이 때 완성된 창덕궁의 규모는 외전 74칸, 내전 118칸이었다.
o 특히 임진왜란 이후 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은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나. 후 원 : 창덕궁의 후원으로 왕의 동산
o 후원·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비원이라는 명칭은 일제 때 지어졌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1406년 4월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o 1459년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을 세웠고, 1463년에는 후원을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과 함께 불탔으나 광해군 때 복원되었다.
이후 여러 왕들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o 후원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부용지·부용정·주합루·영화당·서향각이 있는 지역이다.
두 번째는 기오헌·기두각·애련지·애련정이 있는 지역,
세 번째는 관람정·존덕정·승재정이 있는 지역이다.
네 번째 영역에는 옥류천·취한정·소요정·어정·청의정·태극정이 있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인공적으로 꾸며놓아 우리나라 조원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다. 창경궁
o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 태종이 세종에게 선위한 뒤 거처한 궁)이 있던 곳이다.
o 이후 단종도 즉위 1년차에는 누이의 사저에 살다가 이듬해에 수강궁으로 옮겼는데,
여기서 계유정난을 당했다.
o 성종 15년(1484년)에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를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확장하여 세운 별궁이 바로 창경궁이다.
세 사람을 위하여 따로 지은 대비궁, 경복궁, 창덕궁의 남향 배치와 구별지으려고 동향으로 배치하였다.
돈화문 : 창덕궁의 정문
인정전 :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접견. 등.
나라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
선정전 : 왕이 평상시 나랏일을 보시던 편전
희정전 : 왕의 생활공간
작약 꽃
낙선재 :
후원 : 규장각
부용지
영화당 : 영조의 친필 글씨
일제 강정기때 지은 식물원
의두합 :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1809-1830)이 독서와 사생 하던곳
애련지
연경당 입구
연경당 :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둔 사대부 집처럼지었으며
궁궐의 전각이면서도 단청을 입히지 않은 소박한 모습
순조가 어머니 생신 잔치 재연
백당나무 꽃
뽕나무 :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는 친잠례를 거행
불로문
창경궁에서 바라본 남산
풍기대
해시계
양화당
환경전
함인정 : 문무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장소
숭문당 :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한 곳
일월오봉도
명정전 : 임진왜란후 광해군이 창경궁을 중건 할때 지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함
첫댓글 창덕궁, 후원, 창경궁 역사 문화 탐방 하셨네요~
봄의 후원 경치도 정말 아름답네요~ㅎㅎㅎ
조정연 회장님.
감사합니다
조선시대의 5대 궁궐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과 종묘
그리고 한양도성길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5월19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