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새재사랑산악회] ☆… 속리산 묘봉(妙峰)의 절경(絶景)…(2012.06.17) (3)
* [산행]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운흥1리 두부마을(10:20)→ 논밭길→ 진터골(오름길)→ 안부→ 상모봉(772m)→ 통천문→ 비로봉(830m)→ 안부(돌탑)→ 굴바위(개구멍)→ (신정리 이정표) 상학봉(862m)→ 개구멍→ 855m고지-(안부, 삼거리 암릉표지석)→ 묘봉(874m) [조망]→ 북가치(여적암-미타사)→ 묘봉 두부마을 갈림길→ 미타사 임도→ 운흥2리(상주 화북초등학교 용화분교)
▶ 855m 고지의 암봉의 조망
☆… 오후 2시 35분, 점심을 마치고 산행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도 바위능선으로 이어진 청산의 절묘한 풍경과 기암절벽의 산세가 다양하여 곳곳에서 감탄을 자아냈지만, 상학봉에서 묘봉에 이르는 암릉 구간은 그 돌출한 암봉과 기암절리의 형세가 아주 위협적이어서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절경의 연속이었다. 수직에 가까운 암반을 자일을 잡고 올라야 하고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절벽 길도 자일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산행을 할 수 없는 구간이다. 솟구쳐 올라온 암봉에 서면 거대한 속리산 산줄기가 뻗어나가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고 건너편에 보이는 산봉이 위용이 가슴에 와서 안기는 장관을 조망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안다. 순수자연의 본채인 산(山)은 정직하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만큼 그 위에 오르면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쾌감(快感)이 주어진다는 것을.
☆… 그 사이 마지막 개구멍도 통과했다. 그리고 암릉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 다시 가파른 바윗길을 타고 855m 고지의 암봉의 언저리에 올랐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를 통과하는 암벽길이다. 잠시 비껴 서서 전방을 바라보니 문득 오늘 산행 포인트인 묘봉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이제 묘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묘봉 뒤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 뒤에 관음봉과 그 뒤의 문장대도 눈에 잡힌다. 그리고 문장대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바로 백두대간인 것이다. 우리가 산행하는 암릉의 오른쪽은 충북의 보은(내속리면)이요, 왼쪽 경북의 상주(화북면)이니 우리는 지금 도계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다시 급전직하의 절벽을 고정된 자일를 잡고 타고 내린다. 여성대원들이 어려움을 약간의 겪었으나 주위의 도움으로 바위 타는 묘미를 느끼며 무사히 안부로 내려왔다.(오후3:00) 거기에서 묘봉에 바로 오르는 길은 ‘공사 중’이어서 우회로를 이용하여 묘봉에 올랐다. 마지막 구간은 가파른 암벽 길이었다.
▶ 오늘의 산행 포인트, 묘봉(妙峰)에서의 천하(天下) 조망
☆… 오후 3시 20분, 묘봉에 올랐다. 암반으로 된 정상의 길가에 산뜻한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옆에 갖은 풍상의 노송 한 그루가 산봉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이정표 뒤쪽의 약간 높은 암봉이 바로 정상이다. 거기엔 '묘봉 874m' 아담한 정상의 표지석이 있고 그 주위는 널따란 암반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천인단애의 절벽, 온 사방의 시야가 확 트여 있다. 특히 우리가 산행을 시작하고 다시 하산해 갈 화북면 쪽의 산세와 푸름 숲이 싱그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산봉과 골짜기마다 싱그러운 수림이 우거져 천혜의 생명이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동쪽으로는 다가설 듯 건너편 770 고지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관음봉(982m)과 문장대(1,033m)로 뻗어가는 산세가 완강하게 용동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855고지를 위시해서 그 뒤 상학봉-비로봉-상모봉 등의 연봉이 차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창공은 맑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 묘봉(妙峰) 정상의 청정(淸淨)한 기운(氣運)
☆… 산정의 파란 하늘에서 유월 오후의 맑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산정의 바람결은 한결 시원하였다. 시야가 이렇게 깨끗하고 청정할 수가 없다. 세속과는 아주 절리(絶離)된 천하의 심산(深山) 속리산의 산채를 바라보며 청정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다. 문득 여말(麗末)의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읊었다는 시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근래 조영남, 김난영 등의 많은 가수가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제목으로 노래한 시이다. 속리산의 깊은 곳, 묘봉(妙峰)의 산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시상과 세상사 우여곡절과 인생사 덧없음을 잠시 생각하며 나름대로 잠시 묵상에 들었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나옹화상(懶翁和尙)
나옹화상(1320~1376년)은 고려 말기의 이름난 선사(禪師)이다. 속성(俗姓)은 아(牙)이며, 호는 나옹(懶翁)·강월헌(江月軒)이라 했다. 문경(聞慶) 대승사(大乘寺)의 요연선사(了然禪師)에게 가서 중이 되었다. 지공(指空)·무학(無學) 대사와 함께 삼대화상(三大和尙)이라 일컬어졌다. 중국 서천(西天)의 지공화상(指空和尙)을 따라 심법(心法)의 정맥(正脈)을 이어받고 돌아왔다. 공민왕 때 왕사(王師)를 지냈으며, 우왕의 명을 받고 밀양(密陽) 영원사(瑩原寺)로 가다가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에서 죽었다. 이색(李穡)이 글을 지어 세운 비(碑)와 부도(浮屠)가 양주(楊州) 회암사(檜巖寺)에 남아 있으며《서왕가(西往歌)》2편과《심우가(尋牛歌)》 ·《낙도가(樂道歌)》등이 전한다.
▶ 아늑하고 쾌적한 숲 속의 하산 길
☆… 우리 대원들도 남녀 구분 없이 상기된 표정으로 모두 정상에 오른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정상석을 중심으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묘봉에서 북가치(안부)로 내려오는 하산 길도 급전직하의 흙길이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모두들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오후 3시 55분, 북가치에 이르렀다. 선두의 우복 대장과 화영 가이드가 먼저 내려와서 대원들을 기다리며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북가치’는 묘봉과 770고지 사이의 안부로 상주 화북[미타사→2km]과 보은[여적암→2.5km]을 넘나드는 고갯길이다. 미타사로 내려가는 골짜기를 이곳에선 ‘절골’이라고 하는데 바로 우리의 하산 길이다. 오후의 햇덩이가 설핏 서쪽의 산등성이로 많이 기울어졌다. 완만한 이어지는 산록의 숲길이었다. 우리가 미타사로 올라가는 콘크리트 포장의 임도(林道)까지 왔을 때가 4시 10분이니 절골 하산길이 약 40분 정도 걸린 셈이다.
☆… 오후 5시 정각, 용화2리 상주시 화북초등학교 용화분교 앞에 도착했다. 학교 앞 길가에는 다른 지방 산악회에서 온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서 있었는데, 하산한 등산객들이 초등학교의 교문 안이거나 교문 밖의 정자 앞 숲 그늘에서 온통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푸짐하게 술상을 차려 놓고 왁짜하게 마시고 떠들고 장난질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우리 대원들은 숲 그늘에서 조용히 땀을 식히며 뒷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온몸에 실린 거대한 암봉의 산채와 그 뿌듯한 충만감을 음미하며―.
▶ [에필로그] 절묘한 산세와 비경… 아름다운 산행에 감사하며…
☆… 일반적으로 ‘속리산’ 하면 법주사,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를 이야기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파한 상학봉-묘봉의 암릉 길은 그 다기다양한 산세가 정말 아름다운 절경이다. 그 암릉을 타고 오르내리는 산행은 짜릿한 즐거움과 스릴이 아주 그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암절벽과 장송이 어우러진 그 비경은 한 폭 한 폭 아름다운 수채화가 되어 우리들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묘봉은 속리산 전체 산줄기 가운데에서, 꽃봉오리와 같이 절묘하게 아름다운 산봉이다. 그리하여 이름도 묘봉(妙峰)이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산행지를 미리 답사하고 오늘 무사하게 대원들을 인도한 우복 대장에게 깊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 오후 5시 20분, 우리 대원들이 모두 안전하게 하산했다. 인원을 확인한 후 일로 상경 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의 길을 되짚어 가는 길이다. 국도 37번을 타고 증평으로 나와, 증평I.C에서 중부고속도로를 올라타고 상경했는데 막힘이 없는 쾌주였다.…♣
<끝>
첫댓글 묘봉에서의 셈님 포ㅡ즈는 20대 같군요,,,멋지셔요.....ㅎㅎ
이것으로 6월정기산행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