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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비료공장
이 북 명
유안(硫安)* 직장은 언제나 무시무시한 음향과 암모니아 가스의 독한 구린내로 충만되어 있었다.
금세 어떤 불의의 변이라도 생길 것만 같은 우람찬 기계의 소음에서 받는 위압감과 불안감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기를 못 펴게 한다. 새로 운전을 개시한 1백 마력 송풍기만 하더라도 그 나래치는 회전음이 어찌나 기승 사나운지 귀청이 터지고 얼을 잃을 지경이다. 시운전 때에 운전견습공의 왼쪽 팔 하나를 통째로 잘라먹었다는 이 기계 곁을 노동자들은 될수록 피하여 다니는 것이었다.
유안 직장은 철근 콘크리트.로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솟은 완강한 건물이건만 강대한 기계의 힘은 이것을 줄곧 뒤흔든다. 마치 지진 때처럼.
인접한 높은 건물들 때문에 종일 가도 햇빛이라고는 통 구경할 수없는 냉습한 이 직장은 마치 어둠침침한 동굴 속에 괴물들이 모여 제멋대로 용을 쓰며 울부짖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것이 ‘질소비료공장’이라는 딴 세상에 오기는 왔으나 아직 그 생활에 생소한 조선인 노동자들―—그들 중에는 따사로운 햇볕 아래 안목이 모자라게 넓디넓은 정원에서 맑은 공기와 물만은 마음껏 마시면서 자라난 빈농 출신이 많았다―—의 일반적인 느낌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공장 생활에 정을 붙이기란 오랜 시간을 두고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겨울도 아닌데 서릿발이 새하얗게 내돋힌 액체 암모니아 탱크에서 슴새는* 암모니아 가스가 눈, 코, 목구멍 할 것 없이 잔침질하듯 들쑤신다. 그것이 보통 구린내라면 실컷 맡아온 그들이니만큼 대수롭지 않겠으나 이 직장에서 풍기는 냄새는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나 더 심한 것이었다.
포화기(飽和器)에서 뭉게몽게 떠오르는 유산(硫酸)*의 증기와 쇠가 산화하는 냄새에다 기계기름이라는 냄새가 암모니아 가스와 화합(化合)하면서 일종의 독특한 악취를 직장 안 가득히 풍기고 있다. 이 악취 때문에 가슴은 체기를 받은 듯 찌뿌드드하며 차츰 식욕이 줄어져갔다.
그나 그뿐인가? 기침이 생기고 따라서 목구멍이 갈리면서 염증을 병발하였다. 감기도 아닌데 콧물이 흐르고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서 앞을 잘 분간할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신입공일수록 더 심했다.
“적어도 눈물을 두어 바가지는 착실히 짜고야 됩면다.”
이것은 그들이 노상 신입공들에게 농조로 잘하는 말이었으나 그 말은 경험에서 나온 진담이었다.
노동자들은 냄새를 막기 위해서 두툼하고 큼직한 마스크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악취는 겹겹으로 무어서 만든 마스크를 꿰뚫고 속속들이 폐부에까지 스며들었다. 되레 호흡이 더 곤란함을 느끼자 그들은 벗어 팽개치고 말았다. 이 악취는 방지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회사 측이 여기 대해서 돌리는 관심 여부에 달려 있었다.
만일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이 공장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서 다소나마 유의하고 있다면 이미 악취는 훨씬 제거되었을 것이고, 팔을 통째로 잘라먹는 기계에 안전장치를 하였을 것이 아닌가? 이것은 비단 유안 직장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유황철광을 태워 유산을 제조하는 유산 직장에서는 배소로(焙燒爐)가 내뿜는 아황산가수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삼십 분 교대를 실시하고 있으나, 그래도 노동자들은 가스에 중독되어 그 앞에서 철썩철썩 나가쓰러지는 형편이었다.
“유산! 유사안!”
키가 작달막한 포화기 운전공이 유산 탱크 쪽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불과 20∼30미터의 거리도 되나마나한 그곳까지 닿기 전에 기계 소리에 홀랑 삼키어버렸다. 다그쳐 되풀이해 볼 양으로 턱을 쓱 쳐들었다가 그는 기침머리가 치밀자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바꾸어 나섰다.
“어이…… 아차 이 정신 좀 봐.”
유별나게 누덕누덕 기운 작업복에 군대 각반을 무릎까지 걸싸게* 올려친 친구가 목구멍까지 내밀었던 소리를 도로 삼키고 부리나케 주머니에 손을 찌르더니 무엇인가 끄집어내어 입에 물었다. 호로록 호로록 호각을 부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구멍이 몇 개가 있어도 안되겠기에 감독의 눈을 피해가면서 만든 것이었다. 호각 소리를 듣자 친구들이 한바탕 웃어댔다.
“오냐, 보낸다.”
벌둥지처럼 구멍이 뿡뿡 뚫린 작업복 저고리섶을 온통 바지춤에 쑤셔박고 허리를 바지띠 대신 노끈으로 죄어맨 친구가 호각 소리를 웃음으로 받고 돌아서더니만 잽싸게 밸브의 핸들을 틀었다.
농유산이 툭한 연관(鉛管)을 통하여 팽이형으로 생긴 거창한 포화기 안으로 콸콸 흘러들었다. 한편 송풍기로부터 쏴 나오는 바람이 암모니아 가스를 몰아가지고 포화기의 밑구멍으로부터 치쏘는 서슬에 농유산이 무섭게 소용돌이친다. 이 통에 노란 액체가 차츰 우윳빛으로 변하면서 침전한다. 이 침전물을 진공관으로 뽑아 올려서 원심분리기로 유산과 수분을 말짱 뽑아버리면 백색 가루만이 남는다. 이것이 유산암모니아, 즉 유안 비료인 것이다.
“상금 이십분이나…… 제기.”
문길이는 원심분리기 아래의 제자리에 밀어다 세운 빈 수송차에 지친 몸을 의지한 채 기계실 벽에 걸린 전기시계를 바라보면서 하품섞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열한시 사십분이었다. 지금 그에게는 밥보다도 휴식이 간절히 요구되었다. 원심분리기에서 떨어뜨리는 유안비료가 수송차 안으로 푹푹 쏟아져 내렸다.
“이십 분이면 아직 세 축은 더 해야겠군. 쨋!”
전신이 풀주머니처럼 된 문길이는 꽁무니에 찼던 수건을 빼서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으면서 또 입이 째어지게 하품을 하는 것이다. 가슴이 물을 먹고 체한 듯이 갑갑하고 기분이 뜨물처럼 흐리어 있었다. 어디라고 꼭 짚어서 말할 수는 없었으나 몸이 오싹오싹 불편하였다. 그는 주의 깊은 눈으로 사방을 돌라보았다. 요행 현장감독이 보이지 않았다. 좋은 찬스라고 생각한 문길이는 포화기 밑에 감추어두었던 빈 석유초롱을 끄집어내기가 바쁘게 냅다 식당으로 달렸다. 수도가 거기 있었다. 그는 석유초릉에 절반 남을싸하게 물을 받아들고 혈떡거리면서 대장간으로 갔다. 점심을 먹자면 우선 기름때와 유산으로 해서 흡사 까마귀발처럼 된 손부터 씻어야 했다. 그런데 더운물에 가루비누가 아니면 그것은 잘 벗겨지지 않았다. 물을 데우는 당번에 걸린 문길이는 이 일을 아주 재빨리 해치우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현장감독은 작업중에 물을 데우는 것을 엄금했다. 들키면 감봉처분을 받는 판이다. 그러나 그자의 지시대로 싸이렌이 운 후에 물을 데우기 시작한다면 삼십 분은 허양* 달아나고 만다. 삼십 분의 휴식――그들에게 있어서 이 시간이야말로 귀중한 것이었다.
‘돈이나 어디서 한 만 원 생겼으면…… 흥! 만 원은 고사하고라도.’
문길이는 황산과 물로 짙척거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시선을 박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관을 쓰고 수염이 수북한 일본 영감을 그린 지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문길이에게는 돈이 몹시 요구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벌레가 가슴 속의 어딘가를 파먹어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무서운 병을 고쳐야 하겠다는 간절한 일념에서 나온 꿈이었다.
유안을 다 떨구고 난 친구가 원심분리기를 씻느라고 들이댄 호스의 물총을 맞자 소스라쳐 꿈에서 깬 문길이는 눈깔이 빠진 자식이라고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두 팔에 힘을 쏟아 수송차를 밀려고 한다. 그러나 유안을 만재한 차는 얼어붙은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재차 두 다리에 힘을 주어보나, 주면 줄수록 밑바닥이 닳아서 반질반질해진 짜개신발이 쫄쫄 늘겼다. 문길이는 애를 태우다 못해 마지막 수단으로 차에다 등을 들이대고 허리와 발꿈치에 부쩍 힘을 주었다. 이렇듯 승강이 끝에 간신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그는 터져 나오는 기침을 한동안 막을 도리가 없었다.
원심분리기에서 떨구는 유안을 밀차에 받아 엔드레쓰까지 운반하는 것이 수송부의 일이다. 어느 일인들 쉬우랴만, 그중에서도 수송부의 일은 고되었다.
엔드레쓰가 비료를 만재한 차를 통째로 물어 올리면 반대로 빈 차가 내려왔다. 그것을 받아 제자리까지 밀고 오면 이어 위에서 비료가 펑펑 쏟아져 내린다. 그처럼 생각이 간절한 담배 한 대를 피울 짬도 없었다. 맨 아랫바닥에서 작업하니만큼 유산과 물을 가장 많이 뒤집어쓰는 것도 또한 그들이었다. 한 방울의 유산은 작업복에다 동전 한 닢만큼씩한 구멍을 뚫어주었다. 이처럼 독한 유산이 묻은 살은 즉시 물로 씻지 않으면 둥세를 냈다. 문길의 손등과 목덜미에 생긴 흠집은 모두가 유산이 태운 것이었다.
수송부의 노동자들은 열한시만 되면 벌써 허기증이 생겨서 혀를 가로 물고 연방 시계만 쳐다보면서 휴식시간을 기다렸다. 그들은 모두가 ‘직공채용시험’ (이 시험에는 사상 동태를 조사하는 외에 분밀처럼 작은 구멍이 많이 뚫린 널쪽에다 못 꽂기, 모래섬 메고 달리기, 모래섬 밀고 끌기 등이 있었다)에서 적어도 경쟁자를 8, 9명씩은 물리치고 합격된 끌날같은* 청년들이었다. 그중의 한 사람인 한문길이는 이 공장에 오기 전에 촌 씨름판에서 총각상을 탄 적도 있었던 젊은이다.
공장의 기계는 우리 피로 돌고
수리조합 봇돌은 내 눈물로 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바로 문길이의 머리 위에 밑 빠진 쇠바구니처럼 내려 드리운 원심분리기에서 운전공이 유안을 떨구면서 목청을 돋우어 멋들어지게 부르는 아리랑 노래다. 그 노래를 듣자 문길이의 머리에는 퍼뜩 물총을 맞던 생각이 떠올랐다.
‘홍! 저 자식은 뭣이 저리 좋아서 노래를 다 부르구. 듣기 싫어.’
문길이는 올려받아 툭 쏴주고 싶었다. 공기가 빠진 고무공처럼 탄력을 잃은 자기 육체의 이상을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든 일이 귀찮게만 생각되었다. 그러면서 가슴이 괴롭고 기침이 잦아졌다. 더구나 식욕이 줄어가면서 무시로 식은땀이 흐르고 미열이 생기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초기에 겨우 한 번 공장 병원에 뵈어보았으나 일본인 의사는 그저 괜찮다고만 했다. 문길이는 더는 병원으로 가기가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이번에 가기만 하면 아무아무 병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자라는 선고를 받을 것만 같은 예감이 생활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망할 놈의 세상! 될 대로 되라지. 죽는대야 한 번밖에 더 죽겠니―—문길이는 단 몇 시간 동안이라도 마음의 고민을 잊기 위해서 소주를 마시고 자포자기한 때도 있었다.
상금 십삼분.
“밟아버릴 놈의 시계가 안 가기두 한다. 쨋!”
문길이는 죄없는 시계를 향해서 발칵 짜증을 냈다.
“여보, 시계가 빵꾸 나겠네, 그렇게 눈총질하다가는…… 십 분만 더 참게, 참아.”
농 잘하는 용수가 수송차를 제자리에 밀어다 세우고 나서 문길의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마른명태가 어찌된 셈이야? 둥 뜨지 않는데…….”
현장감독의 별명이다. 몸집이 빼빼 마른 데다 멋없이 키만 컸다. 처음에는 ‘록샤꾸(六尺)’ 라고 불렀으나 그자가 알아차렸기 때문에 이렇게 바꾼 것이다. 놈이 현장에 나타나기만 하면 ‘떴다 떴다’로 피차 신호를 주었다.
“오늘은 개가 호랭이 노릇을 하는 모양이야. 계장이 없으니까 사무실에 자빠져 있다네.”
“그래? 진작 알았더라면…….”
문길이는 그새 조금이라도 몸을 쉬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바로 그때 빈 차를 밀고 온 상호가 문길의 곁에 다가서더니 툭한 목청으로 한 곡조 뽑기 시작했다.
“닥쳐라 닥쳐 !”
불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문길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손으로 상호의 입을 막았다. 몹시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다.
“너 이걸―하고 상호의 모가지를 가리키면서―몇 개나 가지고 있다구 그런 노래를 부르니? 하필 내 곁에서…….”
문길이는 수건을 빼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듣던 중 무서운 노래였다.
“참 그렇지. 자네 마누라는 배가 또 남산이더구만. 자식! 몸이 아프다면서 맨들기두 세과지*는 맨든다. 돼지새끼처럼…….”
상호의 말에 문길이는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쓸쓸히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 돼지새끼처럼.’
문길에게는 이 말이 조금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러기다 그런 노래를 함부로 부르지 말란 말이다. 내 밥바가지가 떨어지면 네가 멕여 살려줄 테야? 자식두! 지난번 친목회 사건을 잊어서는 안돼.”
문길의 말을 듣고 그들은 잠시 무엇을 회상하는 듯 침묵을 지켰다.
‘마른명태’가 간밤에 처먹은 술이 여직 밀취해서 사무실에 자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에 일손을 떼고 노래를 부르거나 담배를 피우면셔 ‘사보’*를 시작했다. 이런 일은 노상 있었다.
“아니 그래 친목회를 조직하는 것이 나쁘단 말인가? 친목회의 목적은 노동자들끼리 서로 도와주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지내자는 것이야. 그래 이것이 어째 나쁜가? 외돛처럼 혼자 살고 싶은가? 자네처럼 병들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나뻐는 생각하지 말게. 만약 죽는다구 치세. 과연 회사 측이 손톱눈만큼이래두 생각해줄 것 같니? 어림두없지, 없어. 과부의 설움은 과부래야 아는 법이야. 회사 측은 지내* 신경과민증에 걸려 있네. 친목회의 창립준비위원을 해고시키다니 말이 되나. 다 우리가 아직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한 탓이야. 알겠어?”
상호는 용수의 손가락짬에서 담배를 빼어 서너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 내던졌다. 죄없는 벗들을 빼앗긴 것이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직장에서는 기계 소리가 차츰 멎어갔다.
“옳아! 그런데 친목회 사건도 그렇지만 철식이의 건 (件)을 봐두 반드시 고자질하는 새끼가 있단 말이야. 그 새끼를 잡아 치워야 해.”
용수가 농 대신 심각한 표정으로 하는 말을 듣고 문길이는 다시 한 번 가슴이 선뜩했다.
“아니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문길이는 눈알을 휘번득거리면서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대뜸 가슴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아직 말을 내서는 절대 안돼. 철식이가 친목회를 재조직하고 있다는 혐의로…… 쉬! 떴다 떴다.”
용수는 말을 끊기가 바쁘게 바람처럼 포화기 속에 숨어버렸다. 문길이와 상호는 제 차에 가서 붙어섰다.
“이 자식들, 바리바리 일이나 해라.”
‘마른명태’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제 김에 한바탕 호통을 치고는 입이 째어지게 하품을 했다.
문길이는 가쁜 숨을 토하면서 수송차를 밀었다. 한 절반쯤 밀고 갔을 때 열두시를 알리는 싸이 렌이 목쉰 소리로 짖어댔다.
‘에익! 시간두 참 길기도 하다.’
문길이는 밀고 가던 차를 그 자리에 팽개치고 대장간으로 달렸다. 수송차와 엔드레쓰 간의 거리는 불과 다섯 발자국도 안되었다.
식당 칠판에는 서투른 글씨로 다음과 같은 ‘알림’이 씌어 있었다.
여러분! 점심 이 끝난 후 제품창고에서 유안계와 유산계의 배구시합이 있소. 선수는 물론 유안계의 여러분은 우울한 식당에 남아있지 말고, 전원이 단결의 힘으로 응원합시다.
철식이가 쓴 것이다. “우울한 식당에 남아 있지 말자”는 문구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 본사를 둔 ‘키보우’사(社) 라는 종교단체에서 발간하는 『이즈미노하나(泉之花)』 『키보우(希望)』 등 종교잡지의 애독자들이 마치 저희들만이 공장의 충직한 직공이라는 듯한 낯짝으로 식당에 남은 것을 넌지시 야유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사상 ‘선도’에 이용하기 위해서 회사 측이 직접 지사(支社)가 되어가지고 전체 노동자들에게 이런 종류의 잡지를 강제로 팔았던 것이다.
“단결의 힘으로 응원하자구? 좋은 말인데…….”
“암 하구말구, 해야지.”
이렇게 지껄이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말없이 주린 창자부터 채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빨리 먹기 내기라도 하는 듯 젓갈이 연방 입으로 들락날락한다.
문길이는 간간이 물을 마셔가면서 맥없이 젓갈을 놀렸다. 좁쌀에 감자를 섞은 밥이 굳어져서 목이 메었다. 빠른 친구들은 어느새 두꺼비가 파리 잡아먹듯 먹어치우고 제품창고로 나갔다. 문길이는 그들보다 훨씬 늦게야 젓갈을 놓았다. 먹고 싶지 않은 밥을 몸을 생각해서 억지로 먹었으나 그래도 3분의 1쯤은 남기고야 말았다.
“문길이, 우울한 식당에 백여 있으면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니까. 어서 배구 구경을 가자구.”
문길이를 찾아들어온 상호가 그의 손에서 잡지 『키보우』를 빼앗아 주머니 에 찔렀다.
“책을 이리 보내게. 보내라는데두 그래. 난 몸이 괴로워서 여기서 좀 쉴 테야.”
전번 친목회 사건 때에 겁을 집어먹은 그는―그때 그의 이름도 회원명단에 들어 있었다―그 후부터 『키보우』를 읽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글쎄 몸을 돌봐서두 여기 있으면 못써. 그래 이 책이 자네 병을 고쳐주고 먹을 것을 갖다준다던가? 천만의 말씀이지. 어서 일어나게.”
상호의 억지에 못 이겨 일어서기는 했으나 문길이는 미안쩍은 심정으로 뒤를 돌아다보면서 나갔다. 그러나 만약 상호의 말이 그의 머릿속에 공감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억지가 세었다 한들 그것만으로 쉽사리 따라설 문길이의 심경이 아니었다. 상호는 식당에 남은 육칠 명의 잡지 ‘애독자’의 눈들이 자기의 등을 향하여 총질하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제품(유안)창고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것과는 달리 여러 만 톤의 유안 비료라도 저장할 수 있게 지은 넓고 높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유리창이 있어 채광도 된다. 창고라고 하지만 유안직장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다. 이것만 보아도 회사 측이 노동자보다 제품을 더 귀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임립한 철주만 아니라면 실내체육장으로도 될 것이다.
벽, 철주, 바닥 할 것 없이 온통 아스팔트로 포장한 창고의 서쪽에 큼직한 비료산이 들어앉았는데 뾰족한 봉우리가 일곱 개나 솟아 있다. 슬레이트 지붕의 깨어진 구멍으로 새어든 정오의 태양광선이 비료산에 직사하여 유안의 흰빛을 유난히 돋우어준다. 북쪽 출입구에서는 날삯 인부들이 가솔린 차에다 결박한 10관들이 비료섬을 메어나르느라고 땀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배구장으로 동쪽 구석을 잡았다. 거기는 텅 비어 있었다. 점심을 필한 두 직장 노동자들이 벌써 2백 명도 더 모여들었다. 보매 한 대씩 피워 물지 않은 친구라고는 없는 듯싶었다. 뿌연 연기가 지봉을 향하여 떠올랐다. 유안 직장에서 이 창고의 지봉 밑으로 길게 뻗어나온 엔드레쓰에 비료 수송차 여러 대가 둥둥 달렸는데, 그중 두 대는 위치로 보아 배구장의 바로 위에 멎어 있었다.
황산 직장의 뚱뚱보가 끈을 단 호각을 가슴에 드리우고 뚱기적거리면서 나타났다. 체육을 즐기는 그는 그들 중에서 배구 룰에 밝은 편이어서 이런 시합 때마다 심판관 노릇을 해온다.
뚱뚱보가 호각을 길게 불자 선수들은 연습을 그만두고 자기 위치를 찾아 섰다. 어느새 ¸백 명 이상으로 는 군중 속에서 박수가 터졌다.
“유안! 잘해라. 이기면 쇠주 한 말 사준다.”
이런 땔수록 엿장수 가위처럼 말이 다사한 용수가 마수걸이로 내던지자 장내에서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헹! 또 나발이 시작됐군. 개뿔두 없는 건달이가 큰소리는……”
유산 측에서 누가 받아넘기는 말에 가라앉으려던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군중들은 차츰 응성거리기 시작했다.
유안과 유산은 그 실력이 백중하였다. 점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합이 진행되는 것이 오히려 군중의 홍미를 돋우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응원에 나서게 하였다.
“유안 이겨라!”
“유산 이겨라!”
‘괜히 나왔지, 무슨 재미가 있다고…….’ 문길이는 시들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새엔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 명랑한 분위기에 횝싸여버렸던 것이다. 유안이 득점할 때마다 그는 환성을 올리고 박수를 치면서 신이나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창 일하고 있는 인부들까지 비료섬을 두 개씩 어깨에 겹쳐멘 채 무거운 줄도 모르고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면서 좋아하는 판이니까.
참말로 삼십 분이라는 시간은 귀중한 휴식시간이었다. 지금 제품창고에 모인 노동자들의 감정은 완전히 한 도가니 속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도가니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왼쪽으로 쏠리고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오른쪽으로 쏠린다. 군중 속에 끼어 선 철식이가 아까부터 주의 깊게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도가니였다. 역시 있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속으로 외쳤던 것이다.
친목회 사건이 있은 후부터 얼마나 외로운 철식이였던가! 친목회를 마치 복마전처럼 무섭게 여기고 『키보우』와 『이즈미노하나』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좌왕우왕하는 노동자들 속에서 그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의 정당한 일을 위해서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 우리의 힘을 어떻게 어디다 집중시켜야 할 것인가? 이미 알뜰한 벗들을 놈들에게 빼앗긴 철식에게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철식이에게 지내 아름찬*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는 며칠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끝에 생각해낸 것이 체육이었다. 이것은 감정의 통일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의 노동자들과 긴밀한 연락을 맺는 데도 필요한 수단으로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체육행사를 통해서 ‘알뜰한 친구’를 찾아내자는 것이었다. 그는 벌써 전부터 상호와 용수에게 각별한 주의를 돌렸다. 지금 이 시각에 있어서의 그의 판단에 의하면 용수는 어딘가 가벼운 일면이 있고 게다가 입이 헤픈 데가 있으나, 상호는 그 침착한 행동으로나 사색하는 방법으로나 묵중한 입가짐으로 보아 가히 믿을 만했다. 철식이는 문길이 옆에서 있는 상호의 모얼굴을 바라보면서 내심 적이 기뻤다. 한 사람의 벗이 얼마나 그리운 지금인가!
유안이, 두 점을 앞섰던 유산을 따라잡은 데다 도로 한 점을 리드하자 피차의 응원이 고조에 다다랐다. 넓은 창고 안이 들썩들썩 한다. 합성(合成), 전해(電解), 인산(燐酸) 등 각 직장에서도 구경을 왔다. 승부는 취업 싸이렌이 울 때까지의 득점수로 결정된다. 27 대 24로 유안이 5점을 리드했을 때였다. 유안계의 왜놈 급사 아이가 나와 거듭 호명하면서 철식이를 찾았다.
“경비계장이 오라오. 지금 곧…….”
급사 아이는 간단히 전하고 쪼르르 달려나가버렸다.
시합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으나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철식에게로 쏠렸다. 동시에 어떤 불길한 예감이 그들의 가슴을 찔렀던 것이다.
‘올 것이 왔구나.’
철식이는 이미 각오한 바 있었는지 태연한 기색으로 한번 군중을 돌아보고 떠났다.
“철식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상호였다.
“상호! 앞으로도 체육을 계속해달라구. 부탁하오.”
철식이는 그의 손을 힘 있게 잡아주고 나가버렸다.
제품창고 안은 갑자기 폭풍이 일과한 밀림 속처럼 고요해지고, 노동자들은 서리 맞은 잠자리처럼 풀이 죽어졌다.
얼마나 외로운 우리들인가! 침울한 표정들이 이렇게 '한탄하는 듯 하였다. 한쪽 구석에 굴러간 채 외롭게 멎어 있는 배구공처럼 그들의 심정 역시 외롭고 쓸쓸했던 것이다.
약 일 삭 전 어느 날 밤이었다. 때는 춘삼월 초순이라고 하지만 이곳의 밤은 아직 추웠다. 달빛에도 부드러운 감촉보다 어딘가 쌀쌀한 맛이 있었다. 그러나 밤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이날 밤―—이미 그전부터 계획해왔지만—―동윤이, 영구, 창호, 철식이 외 네 명이 주동이 되어가지고 운중리 막바지에 있는 동윤네 하숙집에서 처음으로 유안친목회 조직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아직 아무런 조직체도 가져보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들 속에서 추려서 회원명 단까지 작성했다.
유안친목회 조직준비위원회―—이것은 더구나 의지할 곳이 없는 자기들이 말할 수 없이 외로운 개개의 존재였기 때문에 응당 찾아야 할 것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에서 깨달은 최초의 단결에로의 맹아였다. 이제까지 그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에고이스트였다. 그런데 그들은 에고이즘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곽 불안한 생활을 가져다주는 해독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많은 비참사를 치르고 희생을 바친 후에야 비로소 공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준비위원회의 노력에 의해서 그 며칠 후에 다시 동윤네 하숙집에서 유안친목회가 조직되었다. 30명 이 모였는데 그중에는 문길이의 얼굴도 있었다. 비록 어리고 연약한 싹이었으나 그들은 얼마나 기쁘고 마음 든든한지 몰랐다. 회원들의 일치한 의견에 의해서 조직준비위원회 위원들이 그대로 유안친목회의 책 임 간부들로 되었다. 동윤이가 회장 겸 문예부를, 영구가 부회장 겸 외교부를, 철식이가 체육부를, 창호가 생활부를 각각 담당했다.
그중에서도 외교부와 문예부의 사명이 중하였다. 이제까지 사회와 격리된 울타리 속에서 돌아가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눌려서만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젠즉 그들도 찾으면 있으리라고 믿어지는 새로운 생활의 탐구를 위해서 외부와 연계를 맺고 그 지도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문예부는 한마디로 말해서 계몽사업에 주력한다는 것이었으나 기실인즉 노동자들이 할 일과 갈 길을 밝힌 서적을 구입해서 회원들에게 읽히며, 강연회, 연구회 등을 통하여 그들의 머리를 깨우쳐주는 것이 목적 이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은 앞으로 친목회 조직이 어느 정도 뿌리를 깊이 박았을 때의 과제이고, 당면한 슬로건은 어디까지나 상호 친목과 상호 부조였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관심이 생활부에 더 많이 쏠린 것은 사실이다. 유안친목회를 본받아 다른 직장들에서도 친목회를 조직 할 데 대한 기운이 높아갔다.
바로 이때 회사 측에서 이것을 알게 되었다. 친목회는 결코 비합법적 조직체로는 될 수 없었으나 회사 측은 이것을 비밀결사로 몰았던 것이다. 놈들은 없는 사건을 고의적으로 꾸며냈던 것이다.
전체 직장에 걸쳐 바야흐로 준비가 진행되고 있던 친목회 조직을 해산시키기 위해서 회사 측은 경찰과 합세해가지고 덤벼들었다. 각 직장에서 도합 아홉 명이 잡혀갔다. 그중에 동윤이, 영구, 창호가 끼여 있었다. 철식이는 그때 염병 같은 독감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겨우 유치장 신세만은 면하였던 것이다.
공장에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동윤이는 H고등보통학교 2학년에서 독서회 사건으로 퇴학당한 새파란 청년이다. 글을 배우지 못한 노동자들 속에 나타난 동윤이의 이론은 어디서나 날이 섰다. 노동자들에 비해서 얼마나 아는 것이 많은지 몰랐다. 그러나 그 반면에 또 그들보다 무식한 데도 있었다. 아버지가 물산객주업을 영위하는 중류소시민 가정에 태어난 그는 ‘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는 데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영구는 지금으로부터 이태 전에 있었던 K군 농조 사건에, 그리고 창호는 3년 전 T평야 야학교 사건에 각각 약간씩이나마 관계가 있었으나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알릴세라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알맹이들을 잡아간 후에도 ‘경비’ (주로 재향군인과 퇴직경관들로 편성된 회사 직속의 경찰이다)와 형사들이 공장 안을 미친개처럼 싸대쳤다. 그 통에 문길이도 한 번 경비실로 불리어갔다. 그때 놈들이 격검채를 휘두르면서 어찌나 으르떽떽거렸던지 문길이는 지금도 ‘경비’ 라면 대뜸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것 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 측은 ‘경비’를 증원하는 동시에 각 직장마다 비밀리에 심복들을 박아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온사상’을 뿌리빼기 위해 종교잡지 『키보우』와 『이즈미노하니』를 더욱 광범히 보급시켰다. 따라서 어느 직장 할 것 없이 그 영향이 차츰 뻗어가고 있었다.
철식이가 지하도를 지나 경비계장실의 도어를 밀었을 때 거기에는 계장 외에 얼핏 보아 알 수 있는 형사 두 놈이 앉아 있었다. 놈들은 철식이를 보자 하던 말을 뚝 끊고 살기를 띤 눈초리로 그의 거동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철식이가 이 방에 들어서보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거기 앉아.”
육군 중좌로 있다가 퇴역한 말상통의 경비계장은 전과 마찬가지로 거만한 태도다.
“이철식이지?”
“그렇소.”
형사 두 놈은 여전히 철식이를 쏘아보고 있었다.
“너를 부른 이유는…… 전번에 이야기했으니까 다시 말하지 않아도 알 테지?”
“……”
철식이는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대답 대신에 ‘말상통’의 어깨 너머로 구석에다 열 개도 더 세워놓은 격검채를 보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나, 엉? 친목회 사건 말이다.”
‘말상통’은 벌컥 역정을 냈다. 그의 관자놀이에서 경련이 일었다. 이것이 조금만 더 심해지면 격검채가 바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친목회는 저…… 상호 친목과 상호 구조를 목적으로 한 것뿐이지 다른 비밀이라구는 아무것도 없지 않소?”
각오를 다진 탓인지 철식이는 꽤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뭐? 아무 비밀도 없다구? 나쁜 자식 같으니라구. 이놈아 그것이 신성한 회사의 규칙, 즉 공장법에 위반된단 말이다. 이 자식 알겠나?”
“그러면 일심회 (一心會) 같은 것도 공장법에 위반되오? 우리는……”
“주둥이 닥쳐! 이 새끼.”
‘말상통’ 대신 왼쪽 볼때기에 칼 맞은 흠집이 있는 형사놈이 돼지멱 찌르는 소리를 질렀다. 일심회라는 것은 일본인들끼리 돈을 모아서 만든 계(契)다. 철식이는 어디까지나 친목회의 정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일심회를 끌어다 대어보았던 것이다.
“이미 너는 각오하고 있을 테지? 네가 지은 죄상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선량한 직공들을 위해서 너를 이 이상 공장에 둘 수는 없어. 알겠나?”
순간 철식이의 가슴속에 슬픔보다도 일종의 조소가 떠올랐다. 한 사람의 노동자를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내쫓기 위해서 이렇듯 면밀히 거미줄을 쳐놓고 밑구멍이 멘 개처럼 놈들이 줄곧 싸대치는 꼴이 도리어 우스웠던 것이다.
‘얼마나 외로운 우리들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다음 순간 철식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길게 뽑았다. 그러나 그 한숨은 그에게 절망이 아니라 되레 비장한 결의를 다져주었다.
바로 그때 철식이의 눈앞에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얼굴이 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아버지는 철공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장골이었다. 철공의 대개가 그러하듯 성미가 사납고 주색을 즐겼다. 철식이는 한때 아버지 밑에서 견습공 노릇을 하다가 암만해도 그 직업이 마음에 맞지 않아서 이 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겼고, 아버지는 계속 그곳―—역시 노구찌 재벌이 건설하고 있던 동 장진수력발전소 공장—―에서 노동하였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의 일로 되었다.
그러나 철식이는 3년이 아니라 30년 뒤까지도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고야 말겠노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철식이가 이 공장에 와서 석 달이 되던 어느 날 밤에 아버지는 작당을 한 왜놈들의 칼에 맞아 죽었던 것이다. 배우지 못해서 무식은 했으나 의협심만은 강한 아버지였다. 조선 사람을 모욕하거나 가해하려는 왜놈을 보기만 하면 그냥 두지 않았다. 죽은 그날 낮에만 해도 그는 젊은 산골 아낙네를 붙잡고 희릉하는 왜놈을 개 패듯 해주었는데 아마 그 사건이 쪽발이들의 앙심을 더욱 유발시킨 것이 분명 했다. 아버지를 잃은 후 철식이는 한동안 주색에 빠졌다가 여러 친구들의 충고로 도정신을 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왜놈이라면 눈엣가시처럼 미워했던 것이다.
이제는 볼 장을 다 보았다고 생각한 철식이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 그는 마지막 판으로 한 번 더 ‘말상통’에게 넌지시 야유를 던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계장님! 오랫동안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오. 그러나 앞으로 또 신세를 질 때가 있을는지 모르니 잘 부탁합시다. 이젠 가도 무방하겠지요?”
철식이는 나갈 양으로 돌아섰다.
“무엇이 어쩌구 어째? 거기 섯!”
아까 그 형사놈이 후닥닥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너 새끼가 상금 나쁜 물을 씻지 못했구나: 엉? 안되겠다. 저기까지 함께 가자.”
철식이는 말이 없이 두 형사놈의 새에 끼여 경찰서로 갔다.
회사 전용의 축항 쪽에서 화물선의 고동이 길게 운다. 여러 대의 트랜스포터가 호상 경쟁이나 하듯 용을 쓰면서 화물선에다 뻔질나게 비료섬을 밀어 나르고 있다. 축항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인부들이 이곳에서는 개미떼처럼 작게 보였다. 일직선으로 하늘과 맞닿은 아득한 수평선상에 점점이 보이는 것은 비료를 만재하고 떠난 화물선들이다. 가슴을 펴고 고함을 치면서 냅다 달리고 싶은 벅찬 의욕이 동하는, 가없이 푸른 동해바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다같이 느끼는 의욕일 수는 없었다.
한 톤에 90원! 화물선 한 척에 5천 톤을 싣는다 치고 그 가격이 얼마나 될까? 문길이는 그 엄청난 금액에 혼자 놀라는 것이었다.
점심을 필한 문길이는 직장 밖 남쪽 벽에 나가 기대어앉아 있었다. 내리쪼이는 정오의 태양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몰랐다. 거기서는 축항과 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었다. 그의 곁에서 4, 5명의 노동자들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문길이는 그 축에도 끼이고 싶지 않았다.
철식이마저 빼앗긴 뒤로는 유안 직장 노동자들은 더욱 풀이 죽었다. 상호가 철식이의 뜻을 이어 그새 두 번 체육경기를 조직했으나 예상했던 바와는 딴판으로 아주 동원이 적었다. 문길이는 푸른 수평선에 시선을 박은 채 어떤 회합을 막론하고 절대로 참가하지 않겠노라고 다시 한 번 자신에 맹세하는 것이었다. 이미 자기의 병명과 병상을 알게 된 그에게는 아무것도 귀찮았다. 친구도 회합도 심지어는 『키보우』까지도 싫었다. 다만 고독과 더불어 벗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길이의 고향은 H평야의 북녘에 있었다. 허허벌판은 끝에서 끝까지 모두가 기름진 전답이었으나 그에게는 한 줌의 흙도 자기의 것이라고는 없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그는 소작과 고용노동 속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손톱이 모지라지게 일을 해도 가난은 독사처럼 그의 몸을 친친 감고 놓지 않았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그는 야학교만은 좋아했다. 글을 배우고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낙이었다.
그런데 그 낙도 오래는 가지 못했다. 단 한 분밖에 없는 야학교 선생이 잡혀갔던 것이다. 이 통에 설상가상으로 문길이는 소작을 떼이게 되었다. 그는 쌓이고 쌓였던 분풀이로 지주네 낟가리에 몰래 불을 지르고 고향을 하직 했던 것이다.
문길이는 지금 일급이 90전이다. 4년 전에 그가 살길을 찾아 이 공장에 왔을 때에 비해서 겨우 30전이 올랐다. 한 달 30일 곧장 노동해야 27원이 생긴다. 그러나 다달이 이틀은 쉬어야 했고, 이외에도 잘리는 돈이 있고 보니 그저 22, 3원이 고작이었다. 이 돈으로 칠순 고개에 오른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어린것 넷을 길러야 했다. 아무리 쪼개어 써도 다달이 모자랐다.
얼마 전에 문길이는 친구들에게서 푼전을 꾸어 모아가지고 H시에서 명성이 높은 한의를 찾아갔다. 진단의 결과 폐환이었다. 그는 한약 열 첩을 지어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달여 먹었으나 차도가 없었다. 문길이는 실망 끝에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여러 친구들이 그에게 쉬기를 권고했으나 그는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쉰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더없이 무서운 일이었다. 하루를 쉬면 온 식구가 하루를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문길이는 때때로 『키보우』 가운데 있는 ‘명구’ (?)를 조용히 읊어보았다.
“노동은 신성하다.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는 신(神) 이 복을 내려준다.”
그는 이 ‘명구’를 외우면서 순간적이나마 어떤 희망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그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후유 하고 내뿜었던 것이다.
자기 병도 병이지만 아내의 산월이 임박했는데 아직 미역 한 꼭지 장만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암담해졌다.
이러다가 해고를 당한다면―—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치면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문길이었다.
‘제에기, 될 대로 되라지.’
문길이는 무엇이 스멀거리는 윗내의를 벗어 뒤집었다.
“여기 있구만,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상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왔다. 문길이는 그를 힐끔 쳐다보았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뭘 하구 있어, 이 친구야! 옳지, 이 사냥을?―—상호는 문길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얘기가 있네.”
“이 얘기 난 안 듣겠네.”
문길이로서는 단호한 태도였으나 상호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그래 한잔할 일인데두 싫단 말인가?”
“한잔? 어데서?”
문길이는 귀가 솔깃해서 얼굴을 들었으나 경계하는 마음만은 늦추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창호하구 철식이가 나왔어.”
상호는 목소리를 낮추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정말이야? 온 모르겠다. 나를 속이자구, 안 속아.”
문길이는 반가우면서도 한편 곧이듣지 않았다.
“내가 언제 자네를 속이던가?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들을 위로할 겸 우리끼리 한잔씩 당겨보자는 거야. 어떤가?”
“그 친구들이 정말 놓여났나?”
문길에게는 그들이 그처럼 쉬이 나오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이구말구. 농두 할 때가 있지.”
“술은 누가 내나?”
문길이는 차츰 구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이전부터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그는 지금 앓으면서도 역시 싫다 하지 않았다.
“그런 걱정은 말고 잔을 당겨만 주게.”
“글쎄! 그런데…….”
“글쎄는 무슨 글쎄야. 주대장이 출석 하지 않구서야 되나.”
“흥! 주대장두 옛날이지. 난 그만둘까 하네.”
“자네 너무 벌벌 떨지 말게. 병 때문이라면 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한 직장에서 날마다 만나지만 두 친구는 어차피 이곳을 뜰 사람들이니까 말하자면 이것이 송별회야.”
상호는 끈기 있게 문길에게 달라붙을 뱃심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한 사람의 벗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랐다.
“그렇다면 가기는 가야 하겠는데 또…….”
문길이는 하까부터 친목회 사건을 생각하고 날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십중팔구는 벌써 송별회 석상에 가 있었던 것이다.
상호는 그들이 공장에 남겨놓고 간 단 한 사람의 후계자였다. 홀로 남은 그는 고독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중요한 임무를 두 어깨에 짊어진 그는 짓누르는 책임감 때문에 장밤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디다 마음을 의지하고 누구에게 지도를 받을 것인가? 이렇다 할 묘책조차 아직 구상하지 못한 상호는 ‘고립무원’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동윤이, 철식이, 영구, 창호 들의 뒤를 이은 그는 우선 알뜰한 벗을 물색하여가지고 그들과 함께 이 중대한 ‘기초공사’블 완수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산업 합리화와 노동강화에 의한 잉여노력의 축소에 따르는 무단해고! 이것은 단지 동윤이나 철식이들 몇몇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 공장의 수천 명의 노동자들의 생활과 생명을 위협하는 마수였다.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N공장’ 이라는 간판이 달린 본사무소 앞마당에서 날마다 욱실거리는 수많은 실업자의 정경을 보라! 비도, 눈도, 욕설도 굶주린 그들을 쫓지 못했다. 그들은 어떠한 불리한 조건 밑에서라도 살기 위해서는 일할 것을 사양하지 않는 무리들이었다.
최저의 생활이나마 부지하기 위해서는 남의 희생을 생각할 여유란 있을 수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전전긍긍―—과연 그렇다, 전전긍긍한 마음으로 고된 노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오후 여덟시 반.
약속한 대로 노동자들이 철식이가 하숙하고 있는 집에 모였다.
유안 직장에서 상호, 문길이, 용수 들 다섯 명이 왔고, 유산 직장, 전해 직장, 합성 직장, 그리고 기타 직장에서 한 사람씩 참가하였다. 도합 열한 명 이었다.
창호와 철식이는 노동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면서 여간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식에게는 혹시나 하던 문길이가 와준 것이 더욱 반가웠다. 역시 문길이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둥그런 밥상을 가운데 놓고 그 둘레에 열세 명이 빼곡히 둘러앉았다. 이어 술이 나왔다. 그들은 술통을 지고 가라면 못 가도 마시고 가라면 선뜻 나설 고래들이었다. 흥들한 소주 냄새를 맡자 좌석에서는 농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주발뚜껑으로 ‘대포’가 한 잔씩 쭉 돌았다.
“자네들이 봉변을 당한 뒤부터 일이 통 손에 붙어야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붙지 않던 일인데…….”
주고받던 농담이 끝나기를 기다려 상호가 화제를 돌렸다. 술은 우정 조심해서 마신 탓으로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벌써 거나한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이지 그 며칠 동안은 맥이 탁 풀리고 정신이 얼떨떨했다니까.”
용수가 눈을 끔벅거리면서 한마디 던졌으나 웃는 사람은 없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가슴은 왜 골풍구*처럼 그렇게 자꾸만 뿟쳐거참…… 그게 다 아직 단련되지 못한 탓이야.”
한 친구가 실토를 하자 그들 중 몇몇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철식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꽁초를 주워 신문지에 말아 붙여 물었다. 그는 거푸 두 모금 빨아들인 연기를 내뿜고 나서 낮으나마 힘 있는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심정은 알 만하오. 그렇지만 일이 손에 붙지 않고 가슴이 뿟는다는 그런 것으로는 일이 해결될 수 없지 않아?”
철식이는 가끔 병적으로 근질거리는 뭉툭한 코를 문지르면서 말을 이었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돼야 해. 이것이 즉 힘이거든. 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보배요. 예를 하나 들어 볼까?”
철식이는 피우다 반쯤 남은 담배를 창호에게 넘기고 계속했다.
“집을 짓고 었던 목수가 부상을 당해서 드러눕게 됐네. 그렇다고 해서 기둥만 세워놓은 집을 그대로 버려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기둥은 비, 눈, 물에 썩거나 바람에 넘어질 것이 아니야? 그때는 부상당한 목수만 세월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다른 목수가 대신 그 집을 완성해야 하네. 그런 의미로 볼 때 우리가 모두 그 목수의 노릇을 해야 하는 걸세. 어서 잔들을 들라구. 술은 아직 많으니까.”
철식이는 사기잔의 술을 단모금에 쭉 들이마시고 빈 잔을 상호에게 건넸다. 술은 상호가 외투를 전당포에 잡힌 돈으로 사온 것이다.
“자네 말이 옳네!”
상호는 잔을 받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는 자기를 비록 솜씨는 없을망정 그 목수로 생각했다. 철식이가 한 이야기에 대한 응대는 그 이상 더는 없었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덤덤히 앉아서 무엇인가 깊이 생각들 하는 눈치였다. 10촉짜리 전등이 천장의 거미줄 속에서 졸고 있었다. 얼마 후 방 안의 침묵을 깨뜨리는 듯 창호가 입을 열었다.
“멀지 않아 대량 해고가 있다는 소문을 못 들었어? 소문이 아니라 사실인 모양인데.”
창호의 말에 놀란 그들은 숙였던 머리를 일제히 쳐들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웅시했다. 그의 말은 누구에게도 초문이었으니만큼 따라서 청천의 벽력이기도 하였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긴장되어갔다. 창호는 말을 계속했다.˙
“동윤이서껀 우리는 친목회 사건으로 희생이 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후회하지 않소. 우리는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소. 그런데 그 일을 끝을 맺지 못하고 이렇게 된 것만은 생각할수록 분하오…….”
그때 문 옆에 앉았던 누가 방문을 비스듬히 열었다. 그는 밖에다 상반신을 쑥 내밀고 두 번 기침 소리를 내고 도로 문을 닫았다. 문길이었다. 기침머리가 치밀어서가 아니라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경계심에서 였다.
“옳네 조심해야 하네.―—창호는 문길이를 보고 머리를 꾸덕거리고 나서—―우리는 공장을 쫓겨났지만 공장을 잊지 않겠네. 친구들을, 벗들을 안 잊을 테야. 아까 철식이두 말했지만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하네. 단결된 힘! 이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밑천일세. 우리가 지금 사람의 대우를 못 받는 것도, 또 하루에 열두 시간 노동을 하면서 삯전을 새 발의 피만큼밖에 못 받는 것두 다 아직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지 못한 탓이라네. 잘 생각해보게, 억울한 일이 아닌가?!”
창호는 술 한 잔을 쭉 들이마셨다. 그는 차츰 흥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까 목수의 이얘기가 나왔네만 우리 모두가 친목회를 다시 조직하는 목수가 돼야 하네. 듣자니까 요새 노동자들 가운데는 친목회 사건 후 풀이 죽어진 사람이 적지 않다는데 이런 태도는 되려 회사 측에 유리한 조건을 주는 거야. 우리에게는 첫째도 단결, 둘째도 단결이라네. 만약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기 제 일만 생각하는 날에는 우리는 더욱더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딴 도리는 없어. 친목회 하나없이 해고 선풍을 만나보게. 어떻게 되는가…….”
흥분 때문에 창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방 안은 담배연기와 함께 다치면 터질 듯한 긴장된 공기로 호흡마저 가쁠 지경이다. 거미줄과 파리똥으로 더러워진 천장을 쳐다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신문지를 더덕더덕 바른 방바닥에 시선을 박은 친구도 있다. 마치 초상난 집 밤을 연상시키는 정경이었다.
창호의 말을 듣고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문길이었다. 그의 놀란 가슴이 대뜸 후들후들 떨리더니만 급기야 그것이 공포증으로 변해갔다.
“대량 해고라는 것은 숱한 노동자의 목을 자른다는 말이지? 그래 그 말이 정작인가?”
문길이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에게는 창호의 말이 그대로 곧이들리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작이구말구, 두고 보게.”
창호 대신 철식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문길이는 더 묻지 않았다. 몽둥이로 골통을 되싸게 얻어맞았을 때처럼 정신이 어리둥절하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철식이가 말을 이었다.
“소위 그놈 산업합리화 때문에 또 모가지를 따는 된바람이 불 것이란 말이야. 실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것이 알기 쉬울 것이네. 유안 직장을 놓고 보자구. 현재 한 대의 엔드레쓰에서 몇 사람이 일하는가?”
“여덟!”
“그렇지, 한 대에 팔 명씩이니까 두 대면 십육 명이 아닌가? 그런데 불과 몇 달 후면 그 엔드레쓰가 콘베어로 변한단 말이야. 한 대에 두 명씩 네 명이면 된다니까 나머지 열두 명이 헌신짝처럼 될 셈이지. 이런 예는 어느 직장에도 수두룩해. 솔직한 말이지 우리가 ‘목대’를 반대해서 싸우지 않는다면 이 H공장 거리에 숱한 거지가 나 헤어질는지 모르지. 자, 한잔씩 들라구.”
철식이는 술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또 코를 비비었다. 코가 가려운 병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해고처분이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행해지니까 잘 모를 수도 있어. 오늘은 합성계에서 한 명, 내일은 인산과 전해에서 각각 두 명씩―—이런 방법으로 이러저러한 구실을 붙여서 그럴듯하게 내쫓으니까 잘 모를 수 있소. 여보! 경덕이! 미안하지만 밖에 나가 한 바퀴 삥 돌려봐주오.”
철식이는 송풍기 운전 견습공인 경덕에게 피켓(망보기)을 부탁했다.
“불원에 춘기 직공 신체검사가 있다는데 거기서도 희생자가 적지않을…….”
“그것두 정말인가?”
문길이는 철식이의 말을 중도에서 가로챘다. 이미 병마의 침노를 받은 그에게는 신체검사란 말이 마치 사형선고란 말처럼 무섭게 들렸던 것이다. 암담한 자기의 전정을 생각할 때 그는 목놓아 울고라도 싶었다. 문길이는 이 회합에 참가한 것을 차라리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철식이나 창호의 말에서 비로소 회사 측의 속통을 알 수 있었다. 『키보우』나 『이즈미노하나』에 씌어 있는 글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철식이들의 말 속에 진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철식이!”
합성 직장에서 온 황이라는 친구의 목소리다. 그러자 뭇 시선이 그의 입가로 집중되었다.
“이 자리에서 말해도 좋겠소?”
“좋소.”
철식이는 끌려가기 전에 이미 몇 개 직장의 친구들에게 일정한 지시를 준 바 있었던 것이다. 그 외의 직장의 알맹이들에게도.
“그저께 밤에 세 명으로 합성 친목회 조직 준비위원회가 결성됐소.”
“수고했소.”
철식이는 춘만이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방 안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그때 열한시를 알리는 공장 싸이렌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우리 직장은 모레 밤에 준비위원회를 만들기로 돼 있소. 네 명으로…….”
전해 직장에서 온 박이라는 친구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고 얼굴을 붉혔다.
“잘 부탁하오.”
철식이와 창호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은 새싹을 본 데 대해서 내심 만족했다. 아직 연락을 맺지 못한 전해 직장에서까지 이처럼 조직의 싹이 돋아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유산 직장과 인산 직장에서 조직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호는 철식이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그는 유안 직장이 아직 준비위원회조차 재건하지 못한 데 대해서 마음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무능한 자기를 속으로 꾸짖기까지 했다. 경덕이가 들어와서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철식이가 친구들의 시선을 자기에게 집중시 켜놓고 제기 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그대로 자기 직장별로 친목회 조직준비위원이 되는 것이 어떻소? 이미 조직된 데는 좋고…….”
“그게 좋아마 싶소.”
상호와 다른 몇 친구가 동시에 찬성 했다.
“무슨 다른 의견이 없소?”
철식이가 따져 묻는 말에, ·
“없소.”
하고 그제야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사실 지금 형편으로는 새로 추린대야 더 나은 사람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철식이가 친목회의 조직 절차와 그 운영 방법을 세세히 이야기하고 나자 이어 창호가 회사 측이 박아놓은 앞잡이에 대해서 충분히 경계할 것과 비밀을 절대로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오. 모두 잘 읽어보오.”
헤어질 때 철식이는 그들에게 팸플릿을 한 책씩 나누어주었다―—
「땅크의 물」이었다.
이튿날 아침.
상호와 용수 외에 4, 5명의 노동자가 유안 계장실로 불리어갔다. 간밤에 있었던 모임이 어느새 벌써 계장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문길이만 쏙 빠지고 그 대신 전연 뚱딴지같은 친구가 둘이나 그들과 함께 걸려들었던 것이다.
“그래 어젯밤 또 무슨 숙덕공론들을 하느라구 뫼였나? 엉? 바른대루 말해봐.”
염소수염의 계장은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을 살피면서 마치 범인을 취조하듯 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소. 소주를 몇 잔씩 마시고 왔을 뿐이외다.”
상호의 말을 따라 다른 친구들도 한결같이 단순한 술추렴이었다고 발뺌을 했다. 가지도 않고 억울하게 걸린 두 친구만은 생사람을 잡는다고 주둥이가 댓 자나 나와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끝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염소수염’은 체면상 그대로 돌려보내기가 면구해서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은 후 다시는 철식이, 창호들과 술추렴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그들을 놓아주었다.
“만약 열세 명 가운데 있었다면……”
상호는 심히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계장실을 나왔다.
“혹시 문길이가…… 아니다.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상호는 친구에 대한 의심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는 열세 명 가운데서 샌 말이 아니라고 단정을 내렸다. 만약 그 가운데서 새었다면 비밀이 전부 탄로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쯤은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 몰라……!”
상호는 외부의 어떤 자가 냄새를 맡고 밀고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간이 콩알만큼 되어 있었다.
수송차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문길이는 자기가 불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으나 한편으로는 역시 불안스러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차라리 안 갔더라면……·그런데 어떤 자식이…….”
그때 엔드레쓰의 인철이가 큰 스패너를 메고 휘파람을 불면서 그의 앞을 지나갔다. 그의 가무잡잡한 얼굴을 보자 문길이는 문뜩 어제 저녁의 일이 생각났다. 낮노동을 필하고 지하도를 통해 공장문을 나선 문길이가 혼자서 구룡리 고개에 막 올라섰을 때였다.
“문길 형!”
누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돌렸다.
“인철인가!”
고급사원 구락부에서 잡부 노릇을 하다가 몇 달 전에 유안 직장에 들어온 그다. 나이에 비해서 조숙한 그는 언행이 일본 사람을 먹고 닮은 데다 됨됨이 간사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좋은 문길이만은 가끔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거기루 가지요?”
인철이가 궐련 한 대를 권하면서 묻는 말이었다.
“거기라니?”
“철식이네 게 말이오.”
“엉! 가볼까 하는데……·갑자기 그건 왜?”
“아니 그저…… 헤헤, 다 알 만한 사람들이 가지요? 몇 명이나 되오?”
“모르겠어. 먹으러 오라니 갈 뿐이네.”
“형님! 몸두 좋지 않은데 조심하시오.”
갈림길에서 헤어질 때 인철은 문길을 크게 생각이나 하는 듯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옳아, 바로 그놈이군.’
문길이는 이 사실을 즉시로 상호에 게 알렸다.
“쨋! 그러기다 사람이 지내 좋아두 못써. 보게! 잡귀신이 자네에게만 침노하지 않는가? 아예 그 자식을 가까이 말게.”
상호는 문길이를 나무랐다.
그날 점심때 식당의 칠판에 한 장의 게시문이 나붙었다.
게시
유안계 직공 제군! 얼마 전에 불온분자의 선동에 의하여 일부 선량한 직공들이 그릇된 길로 나가려던 것을 회사 측에서 사전에 탐지하고 징계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또다시 불온분자의 책동에 속아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음을 탐문하였다. 회사 측은 경찰 당국과 협력하여 충분히 조사한 후 철저한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다.
선량한 종업원 제군은 회사 측의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우리 N비료공장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도록 각자가 주의하며 또 노력할 것이다.
5월 ×× 일 유안계장
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각에 다른 직장에도 이런 내용의 게시문이 나붙었다. 이것을 읽은 일부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다시 동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또다시 검거선풍이 휘몰아치지나 않을까? 하고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이 두 길로 갈라질 것은 전번 경험으로 미루어보아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회사 측의 공세로 하여 위기가 밀물처럼 각일각으로 다가왔다. 대가리도 꽁지도 없는 뜬소문이 각 직장으로 퍼져갔다. 동시에 낙서 사건이 도처에서 빈발하였다. 직장 내의 변소에서, 담벽에서, 식당에서, 나아가서는 가두에서까지.
“회사 측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단결의 힘을 보여줄 때는 바로 지금이다.”
유안 직장의 변소에 연필로 씌어진 낙서다.
“노동대중의 힘은 자본가의 힘보다 더 강하다. 싸우자 싸우자!”
합성 직장 담벽에 백묵으로 씌어진 낙서다. 이밖에도 삯전을 올리라느니 경찰서에 잡혀간 노동자들을 즉시 석방하라느니…… 등등의 낙서가 나타났던 것 이다.
게시
낙서를 하는 자는 발견하는 대로 해고처분과 함께 엄벌에 처함.
3월 ×× 일 경비계장
노동자들의 움직임에 놀란 회사 측은 ‘말상통’에게 지시해서 이런 게시를 정문 앞 게시판에 내붙였다. 동시에 ‘경비’들이 각 직장을 밑구멍이 멘 개처럼 싸대치기 시작했다.
이런 정세에 정면으로 부닥치계 된 상호는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 나갔으면 옳을는지 몰라서 마음을 태우고 있었다. 확실히 그에게는 힘에 겨운 일이었다.
그간 해놓은 일이라면 겨우 유안친목회를 불과 7명으로 재조직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만 되었지 아직 동체나 다리가 없는 조직체였다. 그들은 생각하던 끝에 우선 친목회 회원부터 획득하기로 하였다. 상호는 이틀 건너로 밤마다 사람의 눈을 피해가면서 철식이와 창호를 만나 공장 내의 정세를 보고하고 지도를 받았다.
마침 이 무렵에 영구와 동윤이가 놓여나왔다. 철식이, 창호, 상호들은 그 이튿날 밤 늦게 구룡리 바닷가에서 그들과 다시 손을 잡았다. 이 밀회에서는 N질소비료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를 결성 할 것과 대량 해고를 반대하여 투쟁할 데 대한 방침 이 토의되었다.
각 직장 친목회의 회원(이때는 이미 대부분의 직장에 친목회가 조직되어 있었다)들은 5월 둘째 일요일을 기해서 지구별로 4개소―—구룡 지구는 뱃놀이, 운중 지구는 들놀이, 유정 지구와 천기 지구는 각각 산놀이 형식으로—― 에서 회합하여 ‘N질소비료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 결성회를 가지기로 했다. 일백수십 명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위험할뿐더러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취한 것이었다.
유치장에서 나온 친구들은 통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모든 통화가 교환대를 통하듯 그들은 각 직장과 직접 연결된 ‘줄’을 쥐고 있었다. 이리하여 회사 측이 발광적이라면 그들은 또한 결사적 이었다.
“박××.”
간호부가 한 사람 한 사람 내과실로 불러들였다. 노동자들은 공장부속병원 복도에서 순번을 지리하게 기다리면서 떠들고 있었다.
3월 하순 어느 날! 그날 아침부터 우선 유안 직장 노동자들의 춘기신체검사가 시작되었다.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있다는 노동자들까지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번 신체검사에서 많이 추려내뜨린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 벌써 하루 이틀 전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문길은 박이라는 노동자가 진단을 끝낸 다음에도 다섯 명 만에야 불리었다. 의사를 눈앞에 대하자 그의 가슴이 갑자기 더 두근거려놨다. 그는 의사에게 자기가 건강체라는 인상부터 주기 위해서 애써 가슴을 펴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기침을 유발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으음!”
청진기를 여러 번 문길의 앞뒤 등에 대어보고 난 의사는 무테안경 밑에다 마스크를 하면서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문길이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선뜩하였다. 의사는 다시 손가락 끝으로 그의 가슴을 똑똑 두드려보고 혀를 내밀라고 했다.
“식욕이 있나?”
“괜찮게 있습니다.”
“있어? 오후면 미열이 생기지? 식은땀도 흐르고…….”
“간혹 그런 일이 있습니다.”
“간혹?”
의사가 자기의 가슴속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묻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문길에게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
문길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독수에 손을 씻고 있었다. 그 무테안경쟁이가 초기에 문길이의 병을 진단하고 별일 없다고 말한 바로 그 의사였다.
병원문을 나선 문길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울했다. 해고통지서를 손에 쥐고 큰길가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자기의 비참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으나 그 환상은 찰거머리처럼 머리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황소처럼 건장하던 4년 전의 자신을 돌이켜보고 그는 신작로가 깨어질 듯이 무거운 한숨을 내뿜었던 것이다.
‘종간나것, 될 대루 되라지.’
그는 그날 밤 소주 반 되를 외상으로 받아다 마시고 죄 없는 아내에게 늦도록 실컷 주정을 하였다.
3월 그믐날은 급료날이었다. 노동자들은 다달이 한 번씩 있는 이날은 ‘걱정낱’, 그리고 급료 주머니를 ‘걱정 주머니’라고 한다. 문길이의 사정은 그들 중에서도 딱한 편이었다. 생활비를 줄일 대로 줄이고 잡비를 극력 덜어도 늘어가는 것은 빚뿐이었다. 문길은 생활비 외에 약값과 아내의 해산 준비만으로도 돈이 형편없이 모자랐다. 빚을 갚을 염은 바이 낼 수도 없었다. 이날 석양 무렵이었다.
문길이가 유안을 잔뜩 실은 수송차를 엔드레쓰에 밀어가고, 대신 빈 차를 밀고 막 원심분리기 아래 왔을 때 급사가 그를 사무실로 불러갔다.
‘염소수염’은 문길에게 의자까지 권하면서 전에 없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염소수염’은 궐련을 한 대 붙여 물더니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입을 떼었다.
“한군! 자네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얘 찻물을 가져와. 둘을…….”
심상치 않은 그의 태도에서 문길은 벌써 불길한 징조를 엿볼 수 있었다. 왈칵하고 가슴에서 불안증이 치밀어올라 그대로는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급사 아이가 가져온 찻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계장은 말을 이었다.
“군은 만 삼 년간 공장을 위해서 아주 착실히 일해주었네. 에, 그런데…… 군에게 이런 말을 해서 안됐네만 사실인즉 신체검사의 결과 군의 건강상태가 대단히 좋지 못하네.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그 몸으로 도저히 공장노동을 할 수…….”
“아니, 계장님!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아직 일할 수 있습니다.”
문길이는 질겁해서 ‘염소수염’의 말을 가로챘다. 그대로 듣고 있는 것이 무서워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군의 그 심정을 알겠네만 회사 측의 결정이고 보니 할 수 없네. 공장을 나가주게. 군의 건강을 위해…….”
대뜸 눈앞이 캄캄해진 문길에게는 바로 코앞에 앉아 있는 계장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계장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언도했던 것이다. 한동안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 있던 문길이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대들었다.
“그건 너무 심한 말이오. 나는 지금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어린것 넷을 내 주먹으로 벌어먹이고 있소. 내가 공장을 쫓겨나면 가족의 형편이 어떻 게 되겠소. 생각해보시오.”
문길이의 가슴속에서는 불안과 공포가 차츰 하나의 목적을 가진 불같은 결의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표현의 하나로 그는 방금 전까지 ‘염소수염’에 대해서 쓰던 경어를 집어치웠던 것이다.
“군의 사정이 딱한 것은 짐작되네만 그저께 간부회의에서 결정한 일이니까 할 수 없어.”
“싫소, 나는 그대로 일할 테요. 튼튼하던 내 몸이 어데서 이렇게 못쓰게 됐는지 당신은 잘 알면서두 모르는 척하지요? 다 이 공장에서……”
“듣기 싫어. 그런 소리를 하면…….”
‘염소수염’은 말을 맺지 않고 암시만 주었다. 위협으로 상대를 누르는 상투적인 수단이었다.
“내가 만약 공장을 쫓겨나면 회사에서 내 가족을 멕여 살려야 하오. 그렇지 않고서는…….”
문길에게는 이것이 가장 절박한 요구였다. 그는 무척 망설이던 끝에 죽을 셈치고 이 말을 입 밖에 냈던 것이다. 그로서는 전력을 다한 투쟁이었다. 비록 이만큼이나마 그로 하여금 싸울 수 있게 한 힘이 어디서 왔는가? 그것이 친목회라는 조직에서 온 것임을 누구보다도 한문길 자신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은 나는 몰라. 간부회의 일이니까. 나삐 생각 말고 정양이나 잘하게.”
“어데 보자! 어떻게 되는가……”
해고통지서를 쭉쭉 찢으면서 사무실을 나선 그를 먼저 상호가 맞아주었다.
“어떻게 됐어? 무슨 이얘기가 그렇게 많았어?”
퍽 기다린 듯한 상호가 문길이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물었다.
“……”
양 어깨가 축 처진 문길이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이 상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광채를 잃은 그의 두 눈이 분명 구원을 청하는 듯하였다.
구태여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상호의 가슴이 뻐개지는 듯했다. 그는 문길이의 어깨에다 묵직한 손을 얹었다.
“눈물을 닦으라구! 울어서 될 일이 아니야. 투쟁이네, 투쟁!”
문길이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본 상호는 비참한 얼굴로 그를 격려하고 피가 지도록 자기의 입술을 깨무는 것이었다.
이곳 운전면(雲田面) 사아래에 이처럼 대규모의 근대적 공장을 건설한 노구찌 재벌은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의 생명과 생활예 대해서 전혀 무관심 했다. 그들에게는 노동자의 생명보다 유안비료―—뿐 아니지만―—가 더 소중했다. 한 가마니의 비료라도 더 제조해서 동해 건너에 있는 본국으로 실어 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인간보다 이윤의 획득에만 정신이 환장한 무리들인 것이다.
그들은 조선인 노동자를 위해서 안전보호시설이나 생활개선에는 더는 투자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호언에 의하면 모든 길이 H읍으로 통하게 된 오늘 값싼 노력의 후비 같은 것은 무긍무진하다는 것이다.
구태여 유리창문을 열 필요조차 없이 얼핏 내다보기만 해도 길가에 ‘산업 예비군’ 이 우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태 맞고 골병이 들어 쓸모없이 된 자들을 내쫓고 그 대신 황소 같은 자를 골라서 갈아 채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바다 건너 본국에서 보통 노동자 한 명을 데려온다면 그 수지가 어떻게 되는가? 노임을 배로 올려주는 동시에 재선수당(在鮮手當)까지 붙이게 된다. 그뿐인가? 가족을 합친 전근비가 막대하게 지출되고 사택을 제공해야 했다. 잇속이 밝은 회사 측의 계산에 의하면 보통 일본인 노동자 한 명을 불러오는 비용이면 조선인을 열 명도 더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필요한 수의 일본인 노동자 외에는 전부 조선 사람으로 채우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유리한 조건’ 때문에 오늘까지 적지 않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퇴직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났으며, 이번에는 한문길이라는 노동자에게 또 그 차례가 온 것이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떠나와서 문길이를 겹겹이 둘러쌌다.
“사 년을 하루같이 일하던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 하다니. 글쎄 이런 법이 어데 있어.”
“그러기에 말이지. 이러구서야 어떻게 마음 놓고 일하겠소?”
“회사 측이 너무해. 무슨 방책이 없이는 안되겠어. 조선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노동자들은 제각기 회사 측의 부당한 조치를 비난하면서 웅성거렸다. 상호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인철이를 찾아보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옳은 말들이오. 이것은 비단 한문길이라는 일개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무슨 방책이 있어야 하겠다고 방금 누가 말했지만 그 말이 옳소. 무슨 방책이 없이는 안되겠스. 그러자면 우리가 우선 한마음 한뜻이 돼야 하겠소…….”
상호는 이 자리를 우정 조직하려야 할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마음에 불을 달아주기 좋았고 또한 그 속에서 참된 친구를 찾아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자면 먼저 우리는…….”
상호가 예까지 말하였을 때,
“이 자식들게서 뭣들 하는 거야?”
불시에 ‘마른명 태’가 서슬이 시퍼레서 나타났다. 노동자들이 동요하기 시작 했다.
“모두 까딱 말구 서 있자.”
용수가 말하자 흩어지려던 그들의 대부분이 도로 그 자리에 발을 멈추었다. 그러자 다가오던 ‘마른명태’도 딱 서버렸다. 노동자들의 기세에 위압을 당한 모양이었다.
“바리바리 제자리나 가라 가, 오소오소 일이나 해라.”
‘마른명태’는 속이 안달나서 돼지 멱 찌르는 초리를 질렀으나 뭇눈동자가 그를 쏘아볼 뿐 노동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군중을 혜치고 누가 쑥 앞에 나섰다. 문길이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불꽃이 튀고 있었다. 감히 범접하지 못할 엄한 기색이었다.
“얻다 대구 큰소리야? 이 사람들은 지금 나하구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것도 안된다는 말이냐? 이놈아! 네게 마지막으로 말해둔다만 조선 사람을 업신여기구 천대하다가는 재미가 적다 적어. 알겠니?”
문길이는 대범하게 말을 던지고 ‘마른명태’의 낯짝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황겁해놓은 그놈은 눈알을 희번덕거리면서 분주히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응원자가 없음을 알자 천방지축 사무실 쪽으로 냅다뛰었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들의 얼굴에 통쾌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면 누가 문길이에게 이런 용기를 주었던가? 아까 계장실에서 보여준 용기가 친목회에서 얻은 것이라면 이번 것은 바로 지금 한마음 한뜻으로 한자리에 모여 선 친구들에게 얻은 힘인 것이다.
“마른명태가 왜 쫓겨갔는지 알겠소? 우리의 힘이 무서웠기 때문이오. 우리가 진작 힘을 합쳤더라면 문길 형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소. 우리는 우리의 힘을 소중히 간직해야 하겠소. 우리의 밑천은 다만 무쇠뎅이 같은 힘뿐이요, 이만 혜어집시다.”
상호는 이외에도 할 말이 많았으나 섣불리 내놓을 수가 없어서 철식 이들과 상의한 후 다시 좋은 기회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노동자들은 제각기 문길이의 손이나 어깨를 잡아주지 않으면, 위로와 격려의 말을 던지고 뿔뿔이 헤어져갔다. 상호는 큰일이나 성공한 듯 내심 기뻤다. 그들의 마음에다 약간의 불이나마 달아준 것은 사실이고, 다른 한 가지 소득이라면 친목회 회원으로 받아도 무방하겠다고 생각되는 적지 않은 노동자들을 점찍어놓은 것이었다.
한문길은 대낮에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던 길에 선술집에서 마신 열 잔의 ‘대포’가 지내 과했던 것이다.
“아니 공장은 어떡 허구 대낮부터 이태백이오? 이건 뭐유?”
몸이 무거워서 씨근거리는 아내가 간신히 남편을 방 아랫목에다 부축해 들이고 신문지 꾸러미를 헤쳐보았다. 빈 ‘벤또’와 길가에 내던져도 주워갈 사람이 없을 거덜난 작업복이었다. 기름때가 까맣게 밴 위에 흰 구두약 같은 유안의 모액이 더덕더덕 묻은 작업복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피! 이 잘난 것 갖다 뭘 하자구―—찡그린 얼굴로 작업복을 문밖에 내어놓으면서―—옷이 이 모양 이 꼴이 됐으니 아무리 무쇠 같은 몸인들…….”
아내는 남편에게서 얻어들은 그 무시무시한 직장 광경을 상상하면서 가슴 아파하는 것이었다.
“흥! 술장사(갈보) 십 년에 깨진 주전자만 남는다더니 내사 사 년 동안 죽두룩 일해서 남은 것이 그것뿐이라네. 제에기, 자네두 팔자 사나운 계집이야! 후유.”
문길이는 방고래가 꺼질 듯 한숨을 내뿜다가 기침머리가 치밀어서 매감 조감했다. 아내는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헌 수건으로 닦아주고 작업복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방금 남편이 한 말이 명치 끝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남편 이 물을 청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오소! 이걸 마시고 말이나 좀 하우.”
대접에 떠온 냉수를 권하면서 아내는 차츰 심상치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 언제나 변치 않는 건 물맛뿐이군! 어머니는 어디 갔소?”
“가긴 어디루, 마을루 나갔지요.”
아내는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인즉 허리가 활처럼 휜 어머니는 구룡리 바닷가로 파도에 밀려드는 파래(해초의 일종)와 부스러기 미역을 주우러 나갔던 것이다. 오늘이 벌써 사흘째다. 며느리는 처음부터 한사코 말렸으나 노인은 종시 우기고 나섰다. 파래는 찬거리에 보태고 부스러기 미역은 말려두었다가 며느리가 몸을 풀면 쓰자는 것이었다.
“시장하겠는데 뭘 좀 잡수시우. 국…….”
아내는 ‘국수’라고 말하려다가 돈이 없음을 깨닫고 몰래 한숨을 지었다.
“싫소, 싫어…… 술, 술이 먹구퍼. 자 걱정 주머니가 여기 있소. 술을 반 되만 사오라구 제에기.”
“몸두 좋지 않는데 또 술이요? 암만해두 무슨 곡절이 있는가보오.”
아내는 웬일인지 손맥이 풀려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허리춤에 꽂았다. 그의 머릿속에 차츰 못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길이는 또 냉수를 들이켜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을 껌뻑거리면서 정주를 내다보았다. 어린것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보니 두 살내기 봉칠이와 다섯 살내기 봉삼이, 게다가 일곱 살짜리 봉남이가 입을 것을 못 입고 세상없이 자고 있었다. 열 살짜리 봉덕이는 그 짬에 엎드려서 헌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봉덕이는 사립보통학교 일학년이었다.
문길이는 언제인가 상후가 농조로 돼지새끼 같다던 말을 생각하면서 얼굴을 아내에게로 돌렸다. 아내가 마치 어미돼지로 보이자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여보! 이젠 아이를 제발 좀 작작 맨들라구.”
“흥, 누가 할 말을 누가 하구 있는지 모르겠소. 사내라는 것은 염치두 없는가봐? 쯧쯧!”
남편의 심정을 알리 없는 아내는 뾰로통해서 톡 쏴주고 혀를 찼다.
“그런데 이번은 쌍둥이가 아니야? 저 올챙이 같은 배를 보지·…….”
아내의 배는 여느 아이 때보다 유독 불룩했다.
“듣기 싫소. 나보다두 맨든 사람이 알겠지. 나종에는 별소리를 다…….”
아내는 남편의 말이 마음에 아니꼬워서 눈을 흘겼다. 아무리 취중이라 해도 저이는 오늘따라 왜 저런 말만 할까? 아내는 슬며시 마음이 서운해지기도 했다.
“그것을 낳구는 제발 낳지 말라구. 여보! 나는 오늘 공장을 쫓겨났소…….”
문길이는 무너지듯 방바닥에 쓰러졌다. 뜨거운 것이 뭉클하고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그는 간신히 도로 삼켜버렸다.
“엣? 아니 그게 정말이오?”
아내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불시에 천변이라도 만난 듯 온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어느새 그는 마른벼락에 넋을 잃은 사람처럼 남편의 손목을 으스러지게 붙잡고 있었다.
“내가 못난 녀석이었소. 사 년을 내려오면서 그놈들한테 속았단 말이오. 후유.”
문길이는 아내의 손목을 마주 꽉 잡아주었다. 역시 아내밖에 없다는 듯이.
“글쎄 이게 무슨 변이우? 이런 변두 세상에 있소? 그래 우리 집 사정 이야기를 해봤소? 메두 좀 써보구…….”
“사정이구 떼구 막무가내야.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라구. 허가 맡은 살인강도라니까.”
“그래 그 육시를 할 놈들이 무슨 때문에 생사람을 내쫓는답데까?”
“병이 났으니 소용이 없다는 거지. 어디 나뿐인 줄 아오? 아마 수십 명은 될 거요. 천하에 악독한 쪽발이 새끼들이라니까.”
“글쎄 세상에 이런 변두 있소? 그놈의 공장이 밀물에 칵 떠내려가기나 하지. 여보! 늙은 어머니하구 잔새끼들을 데리구 어떻게 살아가겠소? 아이구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아이구.”
아내는 여직 꾹 참고 있던 울음을 끝내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 흐느꼈다. 봉덕이는 문전에 붙어 선 채 눈물을 짜면서 부모의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그때 선잠이 깬 두 살내기 봉칠이가 울음을 내었다. 그 통에 또 잠을 깬 봉삼이와 봉남이는 어머니와 형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자 덩달아 코를 클쩍거리면서 울었다. 마치 초상난 집처럼 어수선한 광경이었다.
“울긴 왜 울어? 그놈의 공장이 아니면 입에 거미줄 쓸까봐? 헹! 걱정 마오, 말아…… 거 시원한 냉수나 한 그릇 더 떠오라구.”
문길이는 아내가 떠온 냉수를 단숨에 반 대접이나 쭉 들이켜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 인데, 혀 꼬분 소리로 뒤죽박죽이었다. 눈치 밝은 봉덕이는 아버지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벌써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아내는 싸리바구니를 들고 장마당으로 생선을 사러 갔다. 빚도 갚을 겸.
이미 글러진 일은 하는 수 없거니와 내일부터 살아갈 일을 생각해서라도 극력 남편을 섬겨 날래 병을 고쳐드려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허구한 날을 숱한 식솔 때문에 기름진 음식을 한번 배불리 먹어보지도 못하고 하루를 편안히 쉬지도 못하다가 이 모양 되고 보니 남편에 대한 측은한 정 이 전에 없이 얼마나 간절한지 몰랐다. 남편에게서 큰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오늘까지 살아온 아내였다. 말하자면 남편은 그에게 있어서 하늘이자 땅이며 ‘온 세상’ 이었던 것이다.
방에 혼자 남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문길이는 갑자기 입을 닫고도정신했다. 그러자 그는 무서운 눈초리로 맞은켠 벽을 쏘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박혀 움직이지 않는 곳에 ‘노동은 신성하다!’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문길이의 눈에는 그 글자 한 자 한 자가 차츰 사람의 얼굴로 변해 보였다. ‘염소수염’ ‘형사’ ‘마른명태’ ‘말상릉 등등 미운 놈들의 얼굴만 나타났다.
‘뭣? 노동이 신성해? 에익! 종간나것.’ 문길이는 후닥닥 뛰어 일어나는 서슬로 팔을 내밀어 그 종이를 쪽쪽 찢어치웠다. 이젠즉 그에게는 노동이 신성하다는 말이나 글은 듣기도 싫었고 보기도 싫었다. 좌우명으로 하던 글이 이제는 도리어 문길이의 가슴에다 회사 측 즉 일본 사람에 대한 원한의 불길을 일으켜주는 작용을 놀게 된 것이다.
방 아랫목에 팔베개 삼고 누운 문길이는 신문지로 바른 천장에다 괴로운 생각을 그려보고 있었다. 차츰 맑은 정신이 들어가자 그는 짓누르는 고독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 친구가 그립구나.’
문길이는 넓은 세상에서 홀로 버림을 받은 고독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어 몸부림을 쳤다. 그가 알뜰한 친구들의 구원의 손길을 이처럼 고대한 적은 일찍 이 없었다. 동시에 일개 노동자의 힘이란 참으로 보잘것 없다는 것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내가 미친놈이었지.’
그는 알뜰한 친구들을 따를 대신 한때 『키보우』나 『이즈미노하나』를 믿으려고 했던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뼈가 저리도록 뉘우쳐지는 것이었다.
‘이런 때 철식이가 와줬으면…….“
문길이는 자기의 심정을 알아주는 벗이 이 세상에 수없이 있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철식이, 동윤이, 창호와 같은 벗들이 많았더라면 그 뭉친 힘으로 하여 자기가 쫓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언제인가 동윤이가 하던 말대로 대우도 개선되고 떳떳이 모임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날을 하루속히 맞기 위해서라도 수천 수만의 벗이 있어주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었다.
“한형계시오?”
문길이가 무거운 생각에 잠겼을 때 누가 방문을 열고 상반신을 쓱 들이밀었다. 문길이는 철식이를 생각하던 끝이라 혹시나 하고 다그쳐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찾아온 사람은 인철이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문길이의 얼굴에 대뜸 노기가 떠올랐다. 그것을 눈치 채자 인철이는 눈을 말똥거리면서 계면쩍어했다.
인철이는 직장 내의 긴장된 공기가 육신을 짓누를 뿐 아니라 냉랭한 뭇 시선이 자기를 총질하고 있음을 느끼자 은근히 등이 달아났다. 휴식시간에 노동자들은 식당에 모여 회사 측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한편 생쥐(밀고자)를 없애치워야 한다고 기세를 올렸다. 그 통에 발이 저려놓은 인철이는 그 기세에 압도되어 종시 식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격으로 또 문길네 집으로 살금살금 냄새 맡으러 온 것이다.
“형님의 일이 참 안됐소. 대관절 무슨 때문이랍데까? 형님처럼 착한 분을…….”
“그게야 나보다두 네가 더 잘 알 겐데·……”
인철이의 낯짝을 보자 불쑥 울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문길이는 직판 ‘너’라고 하대질하면서 빈틈을 주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도사렸다.
“그 무슨 말씀을…… 그런 말씀도 하오? 형님두. 너무 속상해 마시오. 화가 변해서 복이 되는 수도 있잖소? 형님은 마음씨가 고와서 꼭 그렇게 될 거요. 더러 찾아오지 않았습데까? 친구들이…….”
인철이의 주의깊은 시선이 정주방에서 무엇을 찾아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 얄미운 태도를 보자 문길이는 끝내 천둥같이 노기를 터뜨리고 말았다.
“썩 가거라. 이 생쥐야!”
문길이는 목침을 잡기 무섭게 옜다 받아봐라 하고 냅다 던졌다.
“앗! 저 저 저 사람이 밥바가지가 떨어지더니 정신이 환장을 했나봐. 어디 내 몸에 털끝만치래두 상처를 내기만 해라. 당장에 없다, 없어.”
목침은 인철이의 오른쪽 귓전에 바람을 일으키면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대번에 진땀을 쑥 뺀 그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면서 뺑소니를 쳐버렸다. 문길이가 비운에 빠진 것을 기화로 그를 낚아볼 계책을 품고 왔으나 틀렸던 것이다.
“이 망종아, 알구 한 번이구 모르구 한 번이지.”
문길이가 시궁창에 빠진 목침을 바라보면서 분기를 참지 못해 씨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큰길가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길이는 문선*을 붙잡고 받돋움으로 그쪽을 내다보았다.
십여 명의 노동자들이 흔솔 바로 자기 집으로 올라오는데 귀에 익은 상호와 용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춘기 신체검사의 결과, 합성 직장에서 두 명, 유산 직장에서 세 명, 전해 직장에서 한 명…… 이렇게 해서 전 공장에서 도합 50여 명의 태 맞고 골병이 든 노동자가 쫓겨났다. 그런데 원체 직장 수가 많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단번에 50여 명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 진행된 해고선풍은 노동자들이 미처 알기도 전에 이미 끝났던 것이다.
유안친목회는 상호, 용수 들의 활동으로 4월 초순―— 이미 예정된 날짜까지 ―—에 노동자들의 5분의 2(목표는 3분의 1이었다)를 회원으로 획득했다. 전 공장적으로 보아 네댓 직장이 잘 움직여주지 않는 외에는 회원수로는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되었다. 이 보고를 받은 공장 밖에 있는 동무들(동윤이, 철식이, 창호, 영구 들이다)은 ‘생쥐’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나 날카로운 눈초리로 감시 하라고 지시를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철식이, 창호 들과 동윤이, 영구 들 간에는 춘기 신체검사와 관련된 무단 해고를 반대하는 투쟁 방침에서 이론적으로 의견이 대립되어 있었다.
‘N 질소비료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 를 결성한 후에 전 공장적으로 힘을 집 결하면서 시기를 노리다가 삐라 투쟁으로부터 전개해야 한다는 철식이와 창호의 이론에 대해서 동윤이와 영구는 이미 대부분의 직장이 노동자의 5분의 1 이상씩을 획득한 것과 각 직장에서 회사 측에 대한 불평이 높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이라도 아지프로(선전 선동)만 잘한다면 능히 군중적 시위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저녁부터 첫닭이 홰칠 때까지 토의가 계속된 끝에 결국 철식이와 창호의 주장이 채택되었다. 그런데 동윤이는 철식이보다 책으로 읽은 것이 많았으나 공장 생활에 경험이 짧은 데다 젊은 혈기가 불길처럼 왕성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자기 자신을 지내 과신하며 제기되는 문제를 자기 개인의 주관으로만 해석 해버리려는 경향이 있었다.
철식이의 경우는 그와 달랐다. 철식이는 배운 것은 없지만 공장 생활에 경험이 많았다. 그는 어떤 문제가 제기되면 우선 노동자들과 상의했다. 많은 노동자들의 의견 가운데는 참말로 좋은 것들이 많았다. 철식이는 그런 의견을 듣기를 좋아했고 또 거기서 배우고 있었다. 채택된 철식이의 투쟁 방침도 결국은 노동자들의 머리에서 짜낸 좋은 의견을 참작한 것이었다.
고고*의 소리도 없이 탄생한 지 불과 며칠밖에 안되는 친목회를 당장 폭풍 속으로 내몬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야 위험천만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윤이는 각 직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낙서 사건’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앙양된 기세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 실례로 삼으려 했으나 철식이는 동의할 수 없었다. 만약 이런 판단 밑에 노동자들을 섣불리 내몰았다가 세찬 바람에 휩쓸려 조직체가 한 모퉁이로부터 무너지기나 한다면 재건은 그야말로 피투성이의 공사가 되어야 했다. 강적과 맞서기 위해서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전체 노동자
들의 힘과 의사를 통솔할 수 있는 모체가 필요했다. 그 모체인 ‘N질소비료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가 결성된 후에도 어느 기간 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훈련을 주는 것이 현재 공장 실정에 알맞은 투쟁 방침 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조직될 대표자회의를 누구에게 맡기겠소? 이론적으로 무장된 동무가 반드시 앉아야 하잖겠소?”
그날 밤 동윤이는 끝으로 이런 의견을 내놓으면서 특히 ‘이론적으로 무장된 동무’라는 말에다 힘을 주었다.
“글쎄, 그러나 배울 길이 없어 못 배운 노동자들 중에 그런 유식한 사람이 어디 쌀의 뉘만큼이나 있겠소? 그러지 말구 이론이 아직 어려도 진실하고 잘 싸울 줄을 아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 좋겠소. 이론은 동무가 가르쳐주면 될 거구 우리가 한 부서 한 부서씩 나눠서 맡읍시다. 잘 싸울 줄을 아는 사람은 잘 배울 줄도 아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철식이의 의견은 창호와 영구의 지지를 받았다. 동윤이는 벗들이 자기를 몰라주는 것만 같이 생각돼서 내심 불만스러웠으나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말한 ‘이론적으로 무장된 동무’는 바로 동윤이 자신이었는데 이것을 철식이가 모를 리 없었다.
4월 10일 밤 열시―—바로 이 시간에 ‘N질소비료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를 결성하기 위한 모임이 예정대로 네 개 지구에서 동시에 열리었다.
이날 밤 문길이는 구룡리 지구에서 열린 모임 (철식이가 지도했다)에 참가하였다. 처음 예정했던 뱃놀이 형식을 바꾸어 산비탈에 외따루 있는 노동자의 집에 모였다. 파도가 센 데다 축항에 산적한 물자를 경비하는 회사의 퐁퐁선이 써치라이트를 비치면서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옳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벗이 제일이야. 벗을 태산처럼 믿어야 해. 그들이 한마음 한뜻이 돼서 나가는 길로 나도 따라갈 수밖에 딴 길은 없다.―—며칠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이 이것이었다. 문길이는 그새 두 번 철식이를 찾아갔는데 매번 새롭고도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철식이의 진실한 말에서 기운을 되살리게 된 문길이는 그날 밤 모임에서 자진해 피켓에 나섰던 것이다.
아름드리 백양나무 그루에 착 붙어 선 그는 충혈된 눈으로 박쥐 한 마리 놓칠세라 어둠 속을 웅시하고 있었다. 백양나무 가지로부터 회장까지 약 70미터 구간에 가느다란 철사를 늘이고 회장에 들어간 철사 끝에다 불알이 있는 깡통을 달아매었다. 철사를 다치기만 하면 깡통이 절렁하고 소리를 내게 됐다. 신호는 간단하였다. 백양나무 가지를 한 번 당겼다 놓기만 하면 수상한 그림자가 떴으니 주의하라는 것이고, 세 번 이상 계속되는 것은 해산하라는 위험신호였다.
문길이는 이 며칠 두고 울울하던 심정과는 달리 기분이 통쾌했다. 외롭던 자기에게 많은 벗이 생겼다는 기쁨으로 해서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는 앞서 친목회 사건 당시에 어물어물했던 자기의 태도를 돌이켜보고 픽 웃기까지 했다. 그때 비한다면 자신이 자신을 의심하리만큼 마음에 여유와 침착성이 생겼다. 긴장한 초소에서도 그는 대범한 기분으로 제련소의 높은 양회 굴뚝을 쳐다보기도 하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신시가의 등불을 세어보기도 했다. 이런 것은 피켓으로서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으나 문길이는 그만큼 마음에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지금쯤 철식이가 그 뭉툭한 코를 문질러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는지 몰라. 또록또록한 눈동자들이 그의 입만 지키고 있을 거야. 내가 여기서 지키니까 마음 놓고……앗!’
회장의 광경을 그려보는 데 정신이 팔렸던 문길이는 소스라쳐 놀라는 바람에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등골에 진땀이 솟도록 겁에 질린 그는 나무그루에 몸을 숨기면서 팔을 뻗쳐 나뭇가지를 쓰윽 당겼다 놓았다. 다시 한 번 당기려다가 아차 하고 손을 떼었다. 분명히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기는 했으나 오솔길을 올라오는 기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아랫 배에 지그시 힘을 주자 재수없게 기침머리가 일었다. 그는 가슴을 마구 쓰다듬으면서 피가 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마에 진땀이 솟는 것이 알렸다. 그때 바다에서 비치는 화경 (써치라이트)의 불빛이 사위를 밝혀주었다. 순간이었으나 문길이는 그 광선으로 해서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안경이 번쩍하고 개화장을 짚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N경찰서 고등계 형사 길가가 아니면 형사 물림인 회사 경비 김가의 두 놈 중 한 놈에 틀림없었다.
백양나무를 향해서 다가오던 놈이 갑자기 발을 멈추고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 필시 무엇을 냄새 맡고 온 결음이 분명 했다. 문길이가 어둠을 뚫고 놈의 일거일동을 놓칠세라 지키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놈은 끝내 밭머리의 오솔길을 찾아 들어섰다. 바로 현재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외딴집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이젠즉 일순도 더는 참을 수 없어 마음이 안달이 난 문길이는 연이어 다섯 번도 더 나뭇가지를 당겼다 놓았다 했다. 이 순간처럼 간이 팥알만큼 되고 사지가 얼어붙듯 떨려본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한편 해산 신호를 받자 회의 장초에서는 등불부터 껐다. 동시에 깡통을 잡아떼고 철사를 끊었다.
“어서 뒷문으로 빠져 산에 오르오. 덤비지 말구, 소리를 내지 말구…….”
철식이는 노동자들을 먼저 다 내보내고 맨 나중에 상호와 함께 어둠 속에 몸을 감추었다.
애당초부터 신발을 신은 채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27명이 감쪽같이 몸을 숨기는 데 불과 1분도 안 걸렸다. 그런데 이때에는 벌써 철식이가 책임진 구룡리 분구에서는 ‘N질소비료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 분회 결성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해당한 수의 위원을 선출한 뒤였다. 산으로 피한 철식이와 상호는 뿔뿔이 흩어지려는 노동자들을 간신히 노송 아래에 모여 앉혔으나 그중 6, 7명은 어느새 간 종적이감감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해고반대투쟁위원회’ 분회를 조직하고 세 명의 위원을 선출했는데, 그중에 상호가 들어 있었다. 끝으로 철식이가 낮으나마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회의는 끝났소. 우리는 오늘 밤 두 개의 조직을 내놨소. 다른 세 곳에서도 아마 지금쯤은 끝냈을 게요. 이제는 우리의 힘을 외길로 이 조직에서 뭉쳐야 하겠소. 이밖에 어디 더 좋은 방법이나 길이 있거든 말해보오. 다른 길은 없소, 없다니까·…….”
철식이는 뭉툭한 코를 긁적거리면서 캄캄한 사위를 휘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오. 천대 천대 해도 우리 노동자들처럼 개천대를 받아온 사람이 어데 있겠소? 기계는 우리의 피와 땀으로 돌아 회사놈들의 배통만 불리고 있소. 그런데 우리는 굶주리기를 부자놈 밥 먹듯 하니 이런 놈의 세상이 어디 있소?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생활과 권리를 도루 찾아야 하오. 해고를 반대해서 일어나야 하오. 겁낼 건 조금도 없소. 전번에도 잠깐 말한 일이 있지만 황제나 자본가나 지주놈 할 것 없이 때려부시고 나라의 주인이 된 쏘비에트 로씨야의 노동대중을 본받아야 하오. 강철같이 단결된 힘이란 그처럼 무서운 것이오. 이젠즉 우리의 힘두 적지 않게 자랐소. 뺨을 맞구만 있을 것이 아니라 마주 냅다 갈길 줄도 알구, 제 것을 뺏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찾아낼 줄도 알아야 하오. 싸움이 없이 공짜로 생기는 것이란 세상에는 하나도 없소. 자, 그럼 우리의 힘을 합쳐가지고 싸워나갑시다.”
철식이는 앉은걸음으로 돌면서 노동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흔들어 주었다.
깡통 소리에 되싸게 놀란 가슴들이 가까스로 안정됨에 따라 그들은 부드러운 봄의 촉감과 함께 어디선가 새 희망이 나래를 펼치고 있음을 느꼈다. 철식 이의 말은 그들의 가슴에다 새로운 결의와 함께 앞날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바로 이 무렵에 문길이는 백양나무에서 얼마 멀지 않은 흙구덩이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어떤 연놈이 뒤를 봤는지 구린내가 코를 찔렀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번두 잘 세웠지만 철사를 늘인 것은 정말루 잘한 생각이야. 천만다행이지, 철식이가 시키는 대로 안했더라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어. 그렇지만 모두 무사히 피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무사히 빠졌을 거야.’
문길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가 인차 사라졌다. 미소하기에는 아직 빠르지 않느냐고 자신이 자신을 나무랐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꾸만 샘솟는 기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문길이는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밤하늘에서 분명히 햇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뿐인가! 캄캄한 동해바다 쪽을 바라보노라니까 희망이 춤을 추는 푸른 지평선이 고함쳐 자기를 부르는 듯했다. 이렇듯 그는 사람다운 일을 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이다.
문길이는 할 노릇은 했노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한편으로 벗들의 안위가 자못 궁금해서 더는 그대로 숨어 있을 수가 없었다. 흙구덩이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온 그는 이미 약속해둔 노송을 찾아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가 간신히 그 장소에까지 갔을 때 거기에는 철식이와 상호만이 남아 있었다.
“수고했네.”
철식이가 문길이의 어깨를 잡아 흔들어주었다.
“다들 무사한가?”
“무사했네. 자네가 아니었더면……”
“참말이지 십 년 감수했어. 글쎄 말이야·…….”
문길이는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
“모두 되게 놀라기는 했네만 이것두 역시 큰 경험의 하나야. 가볼까?”
상호는 성큼 일어섰다.
“알겠지? 대담하고 민첩하게 하라구.”
철식이와 문길이는 번갈아 상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었다. 둘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상호의 모양을 묵묵히 지키면서 마음속으로 성공을 빌었다.
철식이는 문길이에게 회의의 경과를 대충 이야기한 다음,
“그래 어떤가? 요즘은…….”
하고 화제를 돌렸다.
“말해 뭘 하겠는가! 답답한 투전엔 꼭자만 나온다구. 문 돌쩌귀가 불이 날 지경이라니까. 빚쟁이 때문에…… 글쎄 다섯 놈이 눈깔이 시퍼레서 달려들었다면 알잖겠는가?”
“그러니 쌀두 없겠구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구 어떤 가게에 외상 거래를 터놓기는 했네만, 모르지 어떻게 될려는지.”
“여하튼 잘했네. 살구야 볼 일이니까. 이게 모두 쪽발이 새끼들 때문인 것만 잊지 말게.”
“나는 자네 말을 명심하구 있어. 그놈들을 미워할 줄 알며, 뭉친 힘, 뭉친 주먹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던 그 말을…….”
바다에서 화경이 면바로 비치자 둘은 황급히 엎드렸다가 도로 어두워지자 허리를 들었다. 신시가 쪽에서 술 취한 왜놈들의 어지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 신시가의 중심지에 유곽과 까페가 들어앉았던 것이다.
“아까는 혼났지?”
잠시 묵묵히 앉았던 철식이가 다시 화제를 돌렸다. 문길이의 마음을 괴롭히는 이 야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혼났어. 그렇지만 직접 봉변을 당해보니 기왕과는 달리, 내가 여간 대담해진 것이 아니야. 내 눈에는 지금 저 하늘에서 햇빛이 보이는 것만 같네. 그런데 자네는 어느새 그렇게 책공부를 했나. 부럽네 부러워.”
“짬짬이 읽었지. 동윤이게서두 배우구. 속에 든 것이 없으면 소아들이나 다름없어. 그럼 내일 저녁 아홉시에 만나자구. 줄 책두 있으니까. 안녕히……”
둘이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졌을 때 열한시를 알리는 공장의 싸이렌이 길게 울려 퍼졌다.
‘경비’가 세 놈씩이나 눈을 부라리고 서서 감시하는 지하도를 무사히 빠져들어간 상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착한 태도로 원심분리기 앞에 앉아 있었다. 유안을 수송차에 떨궈주고 나서 다시 스위치를 눌렀다. 정지했던 원심분리기가 기동을 시작하자 그는 침적조(沈積槽)의 문을 들었다. 흥건하게 찼던 모액이 쏟아져 나왔다. 원심분리기가 이 모액을 받아 유산과 수분을 깡그리 제거하고 유안 비료를 내는 데 8분 내지 10분이 걸렸다. 상호는 눈부시게 회전하는 원심분리기를 응시한 채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서는 처음 제품창고, 다음은 하조계, 그다음에 식당. 그러나 형편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것도 무방하오. 시간은 두시부터 네시 사이. 대담하고 민첩하게…….”
상호는 철식이의 말을 외우면서 슬며시 가슴에 손을 얹어보았다. 두툼한 종이몽치가 손바닥에 감촉되었다. 바로 그때 하품을 하면서 다가오는 ‘마른명 태’를 보고 가슴이 철렁해진 그는 잽싸게 두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아당겼다. 원심분리기의 회전 속도가 차츰 떠져갔다. ‘마른명태’는 상호의 곁에 잠시 발을 멈추고 섰다가 트집 잡을 데가 없었는지 그냥 가버렸다. 상호는 막혔던 숨을 후유 하고 내뿜었다.
상호는 쇠기둥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두시 이십분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지금이 졸음으로 해서 눈덕이 내려 덮일 무렵이나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정신이 더욱더 밝아만 갔다. 그는 세 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열 번도 더 시계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정각 세시! 상호는 원심분리기를 가동시켜놓은 채 뒤 보러 가노라고 슬쩍 밖으로 나갔다. 모든 일을 십 분 이내에 감쪽같이 해치워야 했다.
상호는 경우에 따라 순서를 바꾸어도 무방하다던 철식이의 말을 생각하면서 식 당의 출입문을 비스듬히 열고 들여다보았다. 10촉짜리 전등 한 개가 희미한 불빛을 뿌리고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식당에 들어서자 가슴에서 삐라를 끄집어냈다. 대담하고 민첩하게 하라던 철식이의 말이 거듭 머리를 스쳤다. '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다섯 장―—상호는 마치 목욕탕의 그것과 같은 의복상(衣服床)의 문으로 삐라를 한 장 한 장 집어넣으면서 나갔다. 읜손이 문을 열기가 바쁘게 오른손의 삐라가 날아들어갔다. 자물쇠가 잠긴 것은 문짬을 이용했다. 젖은 재료로 날려서 만든 것인데 마르고 보니 이제는 그 짬으로 새끼손가락쯤은 넉넉히 드나들만 했다. 신문배달부였던 그에게는 짬으로 신문을 들어 던지던 솜씨가 아직 남아 있었다.
서른셋, 서른넷, 서른다섯 ―— 이렇게 속셈에 맞추어 넣어나가면서 상호 눈과 귀는 줄곧 두 출입문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지내 긴장한 나머지 이마에서 땀이 솟는 줄도 몰랐다.
시간이 어떻게 됐을까? ―—상호는 차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곁눈질해보니 아직 30매는 더 넣어야만 필할 것 같았다. 대담하고 민첩하게―—철식이의 말소리가 또 그의 귓전에서 속삭이는 듯했다. 한창 잽싸게 넣어나가던 상호는 갑자기 인기척 같은 소리를 귓결에 듣고 소스라쳐 놀랐다. 대뜸 등골에서 진땀이 쭉 빠졌다. 어느새 그는 삐라를 가슴에 감추고 의복상과 의복상 짬에 가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신경을 바늘끝처럼 날카롭게 해가지고 잠시 하회를 기다리고 있던 상호의 콧구멍에서 흥 하고 콧방귀가 새어 나왔다. 강아지 같은 쥐 한 놈이 밥상다리를 널고 있었다. 의복상 짬에서 몸을 뺀 상호는 작업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되는대로 닦고 다시 삐라 넣기를 계속했다. 쥐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날만 밝으면 공장 안이 발칵 뒤집힐 게라―—이런 생각을 하면서 식당 북문을 나선 상호는 잠깐 발을 멈추고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요란스러운 기계 소리가 지축을 흔들어줄 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철도 선로를 따라 종종걸음을 쳤다. 싸늘한 밤공기가 얼마나 시원한지 몰랐다.
상호는 그길로 제품창고로부터 하조 직장까지 한 바퀴 힁허케 돌았다. 잔업(殘業)을 끝낸 두 직장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그가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두 직장에는 무수한 삐라가 뿌려져 있었다.
잠깐 변명 삼아 변소에 들렀다가 바지띠를 도로 매는 시늉을 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와보니 기계는 여전히 혼자서 돌고 있었다. 때는 3시 12분이었다. 상호는 손에 브레이크를 잡고 앉아서야 비로소 막혔던 숨을 후유 하고 길게 내뿜었다. 생각하니 12분 만에 해치운 일이 꿈 같았다. 눈앞에 여러 마리의 쥐가 동시에 나타났다. 긴장이 갑자기 풀린 징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일하는 친구들의 동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으나 자기에게 쏠리는 의심찍은 눈초리는 있는 듯싶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때가 바로 졸음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시각인지라 입이 째어지게 하품을 하거나 브레이크를 지팡이 삼아 군둑군둑 졸고 있는 친구들에게 남의 동정을 살필 정신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기에 또한 이때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시각이기도 했다.
어서 날이 밝기만 해라―—상호는 유안 비료를 떨구면서 빙긋 웃었다. 삐라를 읽은 노동자들의 가지가지의 표정을 상상만 해도 기쁜 일인데, 왜놈들이 경풍을 일으킨 듯 미쳐 날뛸 꼴을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통쾌한지 몰랐다.
N공장 종업원들에게 알린다! 종업원 여러분! 지금 우리는 형편없이 싼 삯전에 목을 매고 하루에 열 시간 내지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다.
이 공장의 지독한 악취는 황소 같던 우리의 신체를 병신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처럼 무서운 일이 또 어디 있느냐 말이다. 지난번, 춘기 신체검사의 결과를 아는가? 50여 명의 노동자가 한 푼의 퇴직금도 못 받고 공장을 쫓겨났다.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는가! 이것을 남의 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회사 측의 학대에 대해서 이 이상 더는 이대로 참을 수 없다. 참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여러분! 우리는 당신들에게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알린다. 당신들이 항상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던 N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가 결성되었다. 이 조직은 다름 아닌 여러분의 것이다. 당신들이 굳게 뭉친 힘으로 건전하게 키워가야 한다. 만약 당신들이 빼앗긴 권리와 생활을 찾으려거든 모두 다 친목회에 가입하라!
우리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회사 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구하자!
첫째, 무단해고를 절대 반대한다.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라.
둘째, 임금을 인상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라.
셋째, 춘기 신체검사의 결과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틔직금을 지불하라.
넷째, 징계, 처벌, 감봉 제도를 철폐하라.
다섯째, 우리의 친목회 조직을 승인하라.
N공장친목회 대표자회의
각 직장 친목회
“삐라? 정말이야? 어디 어디, 빨리 나를 좀 주게.”
“안돼, 글쎄 안된다니까. 제 몫은 찾지 않구…….”
“어데?”
“저걸 열어보게.”
아침 교대시간을 전후해서 유안 직장 식당은 흥분한 노동자들로 웅성거렸다. 이 구석에 대여섯, 저 구석에 예닐곱씩 모여 서거나 앉아서 삐라를 읽고 피차 소감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또 난리가 나겠군.”
“나겠으면 나라지. 무서울 게 없어. 죽기는 매일반인데…….”
“그런데 누가 이랬을까?”
“쓸데없는 소리 말게. 그건 알아 뭘 해. 누가 목을 내걸구 한 일을…… 그것보다두 우린 ‘생쥐’ 사냥이나 하세, 하하.”
처음 친목회 사건 때와는 달리 노동자들의 태도에 대범한 데가 있었다.
“이 요구조건은 신통하게두 내 생각 그대로군.”
“모두 지당한 요구야. 이만한 요구쯤은 회사 측이 응당 들어줘야해.”
“사실 그래, 그러기다 우리두 얼음에 소 탄 녀석처럼 어물어물할 때가 아니야. 어제는 문길이의 일이요, 내일은 우리의 일이니까.”
이렇듯 식당 안의 마음들은 대체로 삐라의 정신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쏠리고 있었다. 이것은 방금 읽어본 삐라에서 받은 일시적인 공감이 아니라 평소부터 가슴 깊이 품어오던 생각이 삐라의 내용과 공통된 데서 용기를 얻어 비로소 집단적으로 표면화된 것이었다. 상호는 아까부터 밥상 위에 팔을 베개 삼고 누운 채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이런 때 그 친구가 있었더라면 손이 맞으리라고 생각해보는 용수(전야근이었다)는 간밤 자정 가까이 공장문을 나섰으나 여태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지 않다. 그는 영구의 지도 밑에 모처에서 맡은 바 일을 열성 있게 꾸며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고비를 지난 듯 어느 정도 뜸해지자 상호가 일어나 앉았다. 그는 밥상머리에 드리운 두 다리를 건들거리면서 한마디 끄집어냈다.
“이러나저러나 간에 불집은 이미 터진 불집 이오. 우리 손으로 꺼버릴 수는 없소. 지금 우리에게 남은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구 생각하오. 다 알겠지만 이 삐라의 정신을 받드는 길뿐인데 나두 절대로 찬성이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아까도 누가 말했지만 문길이의 신세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모진 바람이 불 수가 있으나 이 세상에 어디 싸움이 없이 되는 일이 있소? 우리 수천 명 노동자가 한마음 한뜻이 된다면 회사 측이 우리의 요구를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 없을 것이오. 글쎄 생각해보시오. 유안비료를 위시해서 60여 종이나 되는 제품을 누가 만들어내오? 바루 우리란 말이오. 그런데 우리의 형편이 어떻소?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형편이 아니오? 벌레두 밟으면 꾸물럭거리는데 사람인 우리가 어찌 이대루 있겠소. 피차 마음을 단단히 먹읍시다, 마음을……”,
침통한 표정으로 묵묵히 듣고 있는가 하면 머리를 끄덕거려 공감을 표시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이미 교대시간이 지났으나 그들은 작업에 붙을 염도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때 긴장된 공기를 피하듯 불과 5, 6명의 노동자만이 식당 북문 밖에 나가 머리를 맞대고 서서 무엇인가 수군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같은 뭉치에 얻어맞은 듯 기를 못 펴고 불안에 떠는 표정이었다.
“경비계에서는 뮐 하구 있는가?”
“보나마나 또 검거선풍이 불 게요.”
“글쎄 천하에서 큰 회사를 어떻게 상대해서 싸우겠다구, 하늘에 대구 장대질하는 격이지.”
“우리는 아무 쪽에도 통 비치지 맙시다.”
“그 말이 옳소. 굿이나 보구 떡이나 얻어먹기루 합시다.”
그들은 이야기의 결론을 이렇게 지었다. 그들이란 다름 아닌 『키보우』와 『이즈미노하나』 의 애독자였는데 그 가운데는 인철이의 가무잡잡한 얼굴도 있었다.
이날 아침 삐라는 교대작업을 하는 직장에서 예외없이 발견되었다. 그러고 보니 삐라는 이 공장에서 노동하는 전체 조선인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뿌려진 것이 틀림없었다. 이리하여 바야흐로 폭풍이 엄습하려는 공장 안은 몹시 뒤숭숭하였다.
‘경비’가 ‘사복’ (형사)의 응원을 얻어 총동원한 것은 여덟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우선 그들은 지하도의 출구를 차단하고 퇴근하는 후 야근자들을 도로 제 직장으로 몰아보냈다. 금족령이 내린 것이다.
살기가 등등한 놈들(무장을 한 놈도 있었다)이 넷, 다섯씩 패를 짜 가지고 직장을 뜯어맡았다. 귀족 명문의 후예라는 공장장이 H경찰서 고등계 주임을 데리고 각 직장을 순시하면서 정형(情形)을 들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해서 바이 무관심했던 그는 왜말로 번역한 삐라를 읽고 당황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사람은 예로부터 태만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평생 눌려서 살아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대우(?) 그대로 앞으로도 해나가면 그만이라는 것이 이자의 소신이었는데, 그것이 일조에 뒤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쁜 종이쪽지나 바리바리 내놔 해라. 나쁜 새끼들 아니나 내노무용소(용서)나 없다.”
조금 전까지도 노동자들의 기세에 눌려서 꼬리 대가리를 내밀지 못하던 ‘마른명태’가 ‘경비 세 놈에 ‘사복’ 한 놈을 데리고 식당에 나타나서 으르딱딱거렸다. 공장장과 고등계 주임의 지시까지 받고 보니 ‘감격’ 해서도 ‘용기’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의 위협과 발악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동요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무기미한 침묵이 계속되는데 뒤에서 누가 놈들을 향해 종이공을 냅다 던졌다. 삐라를 형체도 없이 꾸긴 것이었다. 뒤이어 이런 공이 빗발치듯 하였다. 이미 다 머릿속에 간직한 것이니 종잇장을 내준들 무슨 손해가 있으랴! 옜다 여기 맞아서 칵 뒈지기나 해라! 이런 감정이 대부분인 듯싶었다.
놈들은 허리를 굽혀가지고 그것을 줍는 데 정신이 없었다. 줍는 대로 연방 양복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다섯의 주머니가 차츰 올챙이 배때기처럼 되어가는 것이 우스웠다.
노동자들 속에서 냉소가 떠올랐다. 죽을 때까지 ‘개’ 노릇밖에 못할 가엾은 인간이란 어떤 자인가를 그들은 다섯에게 똑똑히 보았다. 종이공은 많았으나 그것은 전부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후야근자에 대한 금족령이 해제된 것은 열한시가 조금 지나서다. 거의 같은 시각에 통행이 해금(解禁)된 지하도 일대에는 거미줄처럼 경계망이 포치되었다. ‘경비’ 와 ‘사복’들 20여 명이 퇴근하는 후야근자 하나하나를 껍질을 벗기다시피 검색하는 것이었다.
주머니란 주머니에는 모두 손을 찔러보고 그래도 미심해서 기운데까지 뜯어보았다. 온몸을 샅샅이 주물러보고 모자까지 뒤집어보았다. 벤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지하족(신발)을 벗겨서 구린내가 코를 찌르는 그 속까지 들여다보는 데야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놈들이 제아무리 눈에 쌍심지를 내고 발악해도 그것은 성복날* 아침의 약방문밖에 되지 않았다. 첫번 친목회 사건 당시와는 달리 노동자들은 그다지 떨지 않았다. 이만해도 그새 어느 정도 단련되었기 때문이라고 상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긴상! 저기 좀 함께 갑시다.”
상호가 막 큰길에 나섰을 때 누가 그의 곁에 착 붙어 서면서 말했다. 얼핏 보아도 알 만한 식당에서 종이공을 줍던 ‘사복’이었다. 거미줄에 걸린 것이다.
“어디루요? 난 지금 갈 시간이 없소.”
상호는 걸음을 멈추고 우정 생낯을 떨었다.
“그러지 말고 가면 알 테니 어서 갑시다.”
김상호는 이미 ‘요시찰’ 명부에 올라 있었다. ‘사복’은 아까 벌써 그를 식당에서 끌어가려고 생각했으나 섣불리 건드렸다가 벌집을 터뜨릴까보아 여태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각 직장에서 끌려간 노동자의 수는 20명이 더 되었다. 유안직장에서는 상호와 경덕이 외에 두 명, 유산 직장에서도 뚱뚱보 외에 두 명이 끌려갔다. 한 명 내지 두 명 정도 끌려가지 않은 직장은 거의 없었다. 용수의 안위는 알 수 없었다. 선풍은 공장 밖에서도 휘몰아치고 있었다. 동윤이, 영구, 창호가 끌려가고, 저녁에 문길이가 또한 그물에 걸렸다. 문길이는 간밤에 철식이와 약속한 데로 그를 찾아갔다가 그 집 개자리*에 은신해 있던 ‘사복’에게 꼼짝 못하고 잡혔던 것이다.
이것은 문길이보다 철식이의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조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일에는 어떤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쯤은 가히 짐작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문길이와의 밀회시간을 그처럼 경망하게 정했던 것이다. 철식이 자신이 여기 대해서 뼈저리게 후회 했으나 선풍이 지내 빨리, 그리고 지내 세차게 휘몰아치다 보니 미처 연락선을 잇지 못한 채 간신히 어디론지 몸을 피했던 것이다.
“봉삼 아부지! 식기 전에 어서 좀 마시오.”
문길이의 아내가 미음 사발을 들고 들어와서 남편의 머리맡에 앉았다.
“또? 속엣것이 채 꺼지기나 해야지?”
눈맥이 탁 풀린 그는 얼굴이 아주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문길이는 잡혀간 지 열이틀 만에 네 명의 노동자와 함께 석방되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나는 모른다’는 이 한마디로 끝까지 내밀었기 때문에 물고문을 당하고 각혈까지 했다. 매도 많이 맞았다. 노동자들의 주선으로 리어카에 앉아 집에 돌아온 그는 그대로 병석에 누워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서 마시려무나. 사아래 무당 말이 산천기도만 잘 드리면 날래 머리를 들겠다더라. 그 무당이 알아맞히는 데는 신통하니라.”
늙은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문길이는 속으로 웃었다. 아내는 남편의 앞에서 무당 이야기를 통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안속*은 역시 시어머니의 편이었다. 구걸을 해서라도 그 일만은 하겠노라고 그 여자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때 죽은 듯이 누웠던 문길이가 갑자기 쿨룩쿨룩 기침을 터뜨렸다. 이제는 혼자서 기동할 기운조차 잃은 그는 아내의 손목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나려다가 왈칵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에구 이게 웬일요? 여보! 어머니!”
아내는 겁이 덜컥 나서 비명을 질렀다. 다그쳐 정주에서 어머니가 들어왔다. 검붉은 피가 한 공기가 잘 되게 베갯가에 흘렀다.
“세상에 이런 변두 있니? 문길아! 글쎄 이게 무슨 일이냐? 아이구 산천두 무심하지. 이 늙은것이 죽지두 않구……”
아들의 손목을 한사코 잡은 어머니의 여윈 손이 달달 떨렸다. 걸레로 피를 훔치고 있는 아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방울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희망도 기쁨도 모두 잃은 듯한 쓸쓸하고 외로운 가슴이었다. 얼마 후에 어머니는 며느리에게서 동전 열 닢을 마련해가지고 지팡이를 끌면서 이번에는 주머니무당을 찾아 떠났다.
“엄마, 밥을!”
얼굴과 손에 온통 흙탬*을 해가지고 달려든 봉삼이가 아버지의 머리맡에 놓은 미음을 보고 못 견디게 굴었다. 늦은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시래기죽 반 사발이 벌써 다 꺼졌던 것이다.
“안돼. 저기 나가 애들하구 놀아라.”
“싫어 싫어. 저 밈을 먹구퍼. 엄마!”
“새끼두 썩 나가지 못하겐?”
아내는 어린것의 어깨를 철썩철썩 두 번 갈겨주었다. 하늘이 무너지려는 판인데 자식인들 귀할 리 없었다. 봉삼이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주라구, 난 안 먹겠소.”
“그런 소리 말구 어서 마시오. 마시구 날래 일어나야지요.”
“글쎄 주라는 데두.”
“옜다, 이 간나새끼, 칵 처먹어라.”
어머니는 미음을 3분의 1쯤 보시기에 따라주면서 눈을 흘겼다. 봉삼은 두 손으로 받아든 보시기를 입에 갖다댄 채 정신없이 마시고 있었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문길이는 보아서는 안될 것을 본 듯이 술며시 이불로 얼굴을 가리었다. 지그시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슴새어 흘렀다. 나는 살아야 한다―—삶에 대한 다함없는 애착의 정이 이때처럼 가슴 뿌듯이 용솟은 때는 일찍이 없었다. 죽음과의 투쟁의 결의라도 다지는 듯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문길이가 죽는다는 것은 노모를 비롯해서 만삭이 된 아내와 어린 자식들까지 온 식구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외상 거래를 하던 가게마저 죄다 끊어지고 보니 병보다도 우선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어떻게 눈을 감으려야 감을 수 있겠는가! 이런 비참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문길이는 자기가 잡혀간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안할 뿐만 아니라 되레 왜놈하고 싸웠다는 자랑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문길이보다 사흘 뒤에 유치장에서 나온 용수가 철식이가 보낸 돈 10원에다 자기 돈 5원을 보태가지고 찾아왔을 때 문길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반가워했다. 한때 모진 바람에 끊어졌던 줄이 다시 이어졌던 것이다. 그 줄에 의한다면 몰래 H시로 뛴 철식이는 앞으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선배와 손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번갈아 문길네 집으로 문병을 와주었다. 유안 직장의 벗들은 물론 얼굴조차 모르는 타 직장의 벗들도 여럿이 찾아왔다.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이미 그들의 심정은 서로 통해 있었다. 각 직장 친목회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이 한 푼 두 푼씩 거둔 구제금이 전달되었다. 친목회 대표자회의가 각 직 장 친목회에 호소했던 것이다.
왜놈들에 의한 암담한 생활이 가져다준 참을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신음하던 문길이는 얼마나 감격 했는지 몰랐다. 역시 벗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벗이구나―—문길이는 벗이 귀함을 다시 한 번 뼈가 저리도록 느꼈다. 벗이 있음으로 해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몰랐다. 만약 벗이 없었더라면 문길이의 일가에 이미 비극이 벌어졌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벗들의 기원과는 반대로 문길이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그새 신의와 한방의를 보이고 좋다는 약을 써보았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구제금이 들어온 것을 다행으로 사아래 무당을 데려다가 산천기도를 드리고 또 주머니무당이 시키는 대로 대감제를 지냈으나 병은 나날이 더해만 갔다. 경찰서에서 당한 고문이 그에게 치명상을 주었던 것이다. 각혈의 분량이 늘어가면서 그 도수 역시 잦아졌다. 의식은 맑았으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하고, 허리의 구슬뼈가 방바닥에 내려앉아 손이 들어가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문길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나 황소 같은 그의 근력은 이미 간데온데없었다. 모조리 왜놈들에게 빼앗겼던 것이다. 4월 하순, 자세히 말해서 28일 아침에 문길이는 벗들에게 둘러싸인 채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놈들 때문에 죽는 것이 억울하오. 내 가족을 잘……”
이것이 문길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었다.
그날 밤 자정 가까이 문길이의 주검 곁에서 친목회 대표자협의회가 진행되었다. 몇 개 직장의 친목회원들까지 합쳐서 모두 여남은 명밖에 되지 않았다. 용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자전거로 H시(50리가 되나마나하다)에 가서 철식이를 만나 합의해가지고 왔던 것이다.
장례는 친목회의 이름으로 하되 메이데이 시위와 결부시키기로 결정했다. 비통한 가운데서도 그날의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는 그들의 얼굴에 비장한 결의가 아롱져 있었다. 장례 준비와 각 직장과의 연락 때문에 그들은 이틀 밤을 꼬빡 뜬눈으로 새웠던 것이다. 이번 투쟁에서는 삐라는 그만두기로 하였다. 그것은 전번에 삐라 투쟁에서 친목회의 조직이 적지 않은 지도부를 빼앗기고 미처 자기의 대열을 정비하지 못한 것과 친목회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더는 놀래지 않기 위해서였다.
4월 30일 늦은 아침 때―—벗들이 멘 상여가 구룡리 고개를 서서히 넘어오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남풍에 수백 장의 만문이 나부끼는 모양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상여의 바로 뒤채에 붙어선 소복 입은 미망인과 맏아들 봉덕이의 정경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뒤를 수십 명의 호상객인 노동자들이 묵묵히 따르고 있었다. 모두가 비장한 얼굴 표정이나 속으로는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상여는 신작로를 흔솔 바로 공장의 정문을 향해서 다가왔다. 오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고 왜놈들이 유리창으로 내다보았다. 바로 이때였다. 유안 직장의 북문―—두터운 철판을 용접해서 만든 철문―—이 두 쪽으로 찍 갈라져 열리면서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밀려 나왔다. 동시에 함성이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다. 뒤이어 제품창고와 하조 직장의 철문을 박차고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아우성치면서 쏟아져 나왔다. 전해에서도, 합성에서도, 유산에서도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나오지 말아, 나오지 말아.”
겁을 집어먹은 ‘경비’ 몇 놈이 지하도의 출입문을 잠그려고 했으나 무릿주먹 이 냅다 미는 바람에 허양 나가 뒹굴고 말았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지하족’ 이 놈들을 짓밟으면서 밀물처럼 큰길로 밀려 나왔다. 문길이의 상여는 노동자들에게 비애와 함께 회사 측에 대한 분노를 일으켜주었다. 황소처럼 건장하던 문길이가 저 관 속에 누워 있다니 너무 허무한 일이었다. 회사 측이 생각을 돌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상여는 끝이 없을 것이다. 낸들 언제 어떻게 되려는지 누가 안다더냐? 이것은 참말로 무서운 일이었다. 이 무서운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 그들의 마음이 한 도가니 속에서 들꿇고 있었던 것이다.
“해산해라. 해산! 해산!”
급보를 받고 동원한 기마경관대가 시퍼런 칼을 휘두르면서 군중을 헤치려고 말을 내몰았으나 그때뿐이지 벌어졌던 공간은 인차 군중으로 아물어 붙었다.
상여는 서서히 떠났다. 수백 명 노동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지하도가 차단되어 나오지 못하게 된 노동자들은 철조망 안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때 상여의 뒤에서 누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선창했다. 노래는 삽시간에 군중 속에 퍼지더니 급기야 우렁찬 합창으로 변했다.
들어라 만국의 노동자
천지를 진동하는 메이데이를
…………
칠조망 안에 진을 친 노동자들이 일제히 다음을 받았다.
시위장에 맞추는 발걸음 소리
메이데이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
…………
연년이 5월을 맞을 때마다 으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리운 노래였다. 자기들의 명절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처럼 부르고 싶으면서도 여태 부르지 못한 「메이데이의 노래」를 그들은 오늘에야 목청껏 부르는 것이었다.
비상소집을 받은 ‘경비’와 경관들이 헐레벌떡거리면서 몰려왔다. 그들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악을 쓰면서 군중을 해산시키려고 미쳐날뛰었다. 그러나 그자들의 힘은 노동자들의 거세찬 흐름 앞에 너무나 보잘것 없었다.
문길이의 아내는 상여의 뒤채에 붙어 서서 이 광경을 하나 놓칠세라 지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왜놈들이 통 무섭지 않고 오로지 밉게만 생각되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죽인 놈들이 죽은 남편의 영구에 대해서까지 못되게 구는 꼴을 보았을 때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살을 점점이 찢어 죽여도 남편의 원수를 다 갚을 수는 없었다.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이 참말로 좋은 사람이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온 공장이 들고일어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그럴수록 남편의 죽음이 애통하기만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진작 들고일어나주었더라면 혹시 남편의 목숨을 구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놈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경관의 증원부대를 태운 트럭 한 대가 싸이렌을 울리면서 달려들었다. 얼마 후 그자들이 20여 명의 노동자를 경찰서로 실어가고 다시 빈 차를 몰고 왔을 때는 절반밖에 남지 않은 호상객들은 스크럼을 짜가지고 질서정연히 행진하고 있었다. 철조망 안에 집결한 노동자들은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이미 유명을 달리한 한 노동자와 고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광경을 뒤에 남겨둔 채 문길이의 상여는 으리으리한 경계리에 서서히 공동묘지로 향했다. 공장 안에서 여전히 들려오는 비장한 「메이데이의 노래」 들으면서.
『분가꾸효오론(文學言平論)』 (1935. 5); 『질소비료공장』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7)
* 「질소비료공장」은 조선일보에 1932년 5월 29일부터 연재되다 일제 당국의 검열 때문에 31일로 중단되고 말았다. 1935년 이 작품은 일본 잡지 『분가꾸효오론(文學評論)』에 「초진(初陣)」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실렸다. 그러나 애초의 원고를 잃어버린 이북명은 북한에서 「초진」을 대본으로 다시 우리말로 고쳐 써서 발표하였다.
이 북 명
본명 이순익(淳翼)인 이북명 (李北鳴)은 1908년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함흥고보를 졸업한 후 흥남비료공장에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질소비료공장」을 1932년 『조선일보』 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에 가담했고 그 후 북한에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 위원 등 문화계 요직을 두루 거쳤다.
「출근 정지」 「정반」 「암모니아 탱크」 「민보의 생활표」 「댑싸리」 「칠성암」 「로동일가」 등의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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