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철마산 정상에서 바라본 화악산과 남산 일대 파노라마 사진. 아래 마을은 한재미나리로 유명한 한재골.
경북 청도는 근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이다. 동쪽 지역은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을 비롯해 운문사 주변의 운문산, 범봉, 억산, 쌍두봉 등 이름만 들어도 산꾼들을 설레게 하는 산들이 즐비하다. 또 남쪽으로는 화악산과 남산, 철마산, 오례산이 위세 당당하게 버텼고 서쪽 끝에는 비슬산이 넉넉하다. 그 뿐인가. 북쪽으로는 영남대로의 주요 고개인 팔조령과 선의산 용각산 등이 산꾼들의 추억을 머금은 채 청정한 기운을 뽐낸다. 서쪽 비슬산 자락에서 발원한 청도천과 동쪽의 문복산에서 첫물을 쏟아낸 동창천이 이들 산들 사이로 휘어지고 꺾어지면서 깔대기 모양을 그리며 남쪽으로 흘러 만나 밀양강을 이룬다. 청도천과 동창천의 합수지점에서 터 닦은 마을이 바로 유천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청도읍 유호리와 내호리로 나눠져 있지만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이 마을은 그냥 '유천'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그리고 이 마을은 한국 현대 시조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오누이 시인인 이호우(1912~1970), 이영도(1916~1976) 선생이 나고 자란 곳으로서 '시인의 마을'(별도 박스기사 '떠나기 전에' 참조)로도 불리고 있다.
■동창천 청도천 합수점에 솟은 옹골찬 명산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경북 청도 철마산 정상 부근 바위전망대에 올라 한재골짜기 주변의 화악산, 남산 등의 산세를 살피고 있다.
바로 이곳 유천을 내려다보며 마을 서쪽에 볼록 솟아있는 산이 바로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답사한 철마산(鐵馬山·634m)이다. 정상부의 북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남쪽 자락은 치마폭처럼 넓게 퍼져나가는 이 산은 크게 봐서는 화악산(930.4m) 자락에 잇닿아 있지만, 독립된 산으로서 산이 많기도 한 청도 땅에서도 당당히 '청도 10대 명산'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기도 하다. 특히 동쪽인 유천마을에서 봤을 때 마치 한껏 먹물을 머금은 붓끝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름을 얻은 '문필봉(627.3m·지형도 상 정상)'과 실질적인 정상(634m)에 이르는 구간의 짜릿한 암릉길에서 즐기는 재미와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탁월한데다 한재미나리로 유명한 상리, 음지리, 양지리 마을까지 끼고 있어 나들이 산행지로는 그저그만인 곳이다. 청도와 밀양의 접경지이자 밀양강 최상류인 밀양시 상동면 옥산리 옥산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이곳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 전체 거리는 12㎞가량이다. 그 중 약 4㎞는 도로 구간이어서 순수하게 산행로만 따지자면 8㎞ 남짓하다. 그러나 기종점의 고도가 해발 50m 정도에 불과해 짧은 거리에 비해 표고차 600m가량을 극복해야 하는 만큼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한 산행이라고 볼 수 있다. 옥산버스정류소~유호교 입구~한재치안센터 삼거리~초현리버스정류장(김해 김씨 묘)~안동 권씨 묘~갈림길~주능선 삼거리~옥단춘굴~전망대~문필봉~정상~문필봉~주능선삼거리~음지마을삼거리~음지버스정류장~옥산버스정류장 순. 산행시간은 식사와 휴식시간을 합쳐서 5시간 정도다.
■남동릉 올라 북쪽 하산… 12㎞ 원점회귀
청도 철마산 산행의 백미인 옥단춘굴 입구.
옥산버스정류장에서 유천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가다가 유호교 앞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마을길을 통과하면 25번 국도와 합류하고 5분 후 한재치안센터앞 삼거리에서 한재 방향 왼쪽 도로(902번 지방도)를 따른다. 7분 후 초현리버스정류소 앞에서 원적암 표지석이 있는 김해 김씨 묘 뒤쪽 능선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완만한 오르막. 솔향기 그윽한 솔숲길이다. 몇 차례 무덤을 지나며 30분쯤 오르면 작은 봉우리 위에 안동 권씨 묘가 있다. 계속 직진, 능선길을 따른다. 10분 뒤 좌우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는 왼쪽 방향을 택한다. 작은 너덜지대를 통과해 짙은 숲그림자 속으로 계속 비스듬히 오르면 40분 후 큰 나무 아래 샘터. 이곳에서 주능선삼거리까지는 5분이면 족하다.
정상 가는 길은 왼쪽 오르막이다. 그런데 약 30m쯤 가면 시선을 하늘 쪽으로 향해야 겨우 끝이 보일만큼 거대한 바위를 만나는데, 이곳에는 철마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옥단춘굴'로 찾아 드는 샛길이 있다. 별도 표지판은 없으니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일단 산행로를 잠시 벗어나야 한다. 큰 바위 오른쪽으로 살짝 들어서서 10m만 가면 능선을 넘는다. 각종 산악회의 리본이 다수 부착돼 있는 곳을 따라 7, 8m만 내려가면 옥단춘굴이다. 입구 너비 3m, 높이 3m, 깊이 3m의 아담한 자연동굴이지만 그 내력과 전설이 만만찮다.
■선녀·철마전설 품은 옥단춘굴 길 찾기 유의
유천 동창천변 이호우 이영도 시인 오누이 시비.
옛날 선녀가 옥단춘굴로 철마를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에서 철마산이란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은 대략 이렇다. 선녀가 옥황상제의 심부름으로 철마를 타고 산을 넘어가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정신을 잃고 쉬는 사이 나무꾼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나무꾼과 사랑을 나누는 사이 철마는 산을 넘어가 버렸다. 이것도 모르고 사랑을 나누던 선녀는 옥황상제의 노여움으로 옥단춘이라는 기생으로 환생하여 이 굴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때 옥단춘은 지난 일을 반성하고 음욕을 줄이는 풀만 평생 먹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에 선녀가 타고 온 말이 넘어간 곳이라 하여 동굴 북쪽 아래에 '넘으말(越馬)'이라는 지명이 전해진다. 옥단춘이 먹었다는 풀은 지금도 철마산성을 중심으로 음지리 양지리 등에 자생하고 있다. 옥단춘나물로도 불리는 이 풀은 둥굴레와 뿌리 모습이 비슷하다. 다른 지방으로 이식하면 생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상부 철마산성 암릉길서 본 풍광 좋아
현대 시조 시인 이호우·이영도 오누이의 생가.
옥단춘굴에서 다시 산행로로 돌아와 계속 정상쪽으로 오르면 큰 바위 상단 전망대에 닿는다. 한재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화악산과 청도남산을 비롯해 오례산 선의산 용각산 등 주변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3분 후 삼각점이 있어 지형도 상 정상으로 표시돼 있는 문필봉에 닿는다. 청도산악회에서 세운 작은 정상석이 앙증맞다. 이곳에서 실제 정상까지는 10분쯤 걸린다. 철마산성 흔적이 역력한 칼날 능선길. 큰 정상석이 있는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독짐이고개를 거쳐 화악산으로 이어 갈 수 있다. 취재팀은 주능선삼거리까지 되돌아 간 후 올라왔던 우측 길 대신 직진길을 택해 하산한다. 7분 후 음지마을삼거리에서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내려선다. 한동안 급경사를 이루다 서서히 완만해진다. 30분 후 밤나무밭 속 임도를 만나면 우측으로 좀 더 내려선다. 음지마을 돌담을 타고넘는 담쟁이가 정겨운 인사를 건낸다. 뒤돌아보니 철마산 문필봉과 정상 부근의 거대한 바위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음지1길 35번지 민가 앞에서 우측으로 꺾어 3분만 가면 음지버스정류소다. 이곳에서 오후 4시15~20분에 오는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갈 수도 있고. 2.5㎞가량 걸어서 갈 수도 있다.
◆ 떠나기 전에
- 이호우 이영도 태어난 '시인의 마을' 유천
1941년에 세워져 73년째 운영되고 있는 방앗간.
청도 철마산 산행에 앞서 꼭 들러볼 마을이 바로 유천이다. 일명 '시인의 마을'. 청도천과 동창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형성된 이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시계를 1960~1970년대로 돌려놓은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골목 분위기가 호젓하다. 특히 지금은 문을 닫은 옛 극장 건물과 그 옆 일흔 살이 넘은 방앗간(1941년 완공), 일제강점기 때 건물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구멍가게 등을 기웃거리다 보면 방문객들은 이내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 가운데 '시인의 마을'이라는 별칭을 얻은 계기가 된 시조시인 이호우·이영도 남매의 생가는 남다르다. 한때는 두 오누이시인의 문학과 삶의 자취를 찾으려는 문인과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등록문화재 제293호로 지정되기도 한 생가는 1910년대에 건립된 오랜 가옥이다. 하지만 요즘은 찾는 이 뜸하고, 이호우 시인의 후손들이 대구 등 타지에 거주하는 탓에 관리가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대문이 닫혀 있어 이웃 주민의 협조를 구한 끝에 반쯤 허물어진 담장을 넘어서 겨우 마당에 발을 디딜 수 있었을 정도다. 매화나무 감나무 은행나무 등이 잘 자란 아늑한 집이지만, 관리가 부실한 듯해 마음 한쪽이 아린다. 마을 앞에는 두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며 시비를 나란히 세워 놓은 오누이 공원이 있다.
청도군은 유호리와 내호리를 아우르는 유천마을과 옛 경부선 부지, 영남대로 구간 등을 엮는 '유호공원' 조성 사업을 올해부터 벌이고 있다.
◆ 교통편
- 열차 이용 밀양 상동역 하차 후 15분 걸어야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하루 5회·요금 4300원)를 타고 상동역에 내린다. 오전 7시50분, 10시 27분 출발. 상동역에서 산행 기점 옥산버스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는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청도 방면으로 좌회전 하자마자 긴늪사거리에서 청도 방면으로 우회전 25번 국도를 탄다. 약 7분가량 가서 상동역을 지난 후 신곡삼거리에서 좌회전, 상동교를 건넌다. 곧바로 옥산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옥산버스정류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