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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조영찬 나사렛대학교 장애학생
현대인에게 TV와 핸드폰은 삶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시각장애인도 화면 해설 서비스를 통해 TV프로를 감상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TV와 휴대폰이 필요 없는, 아니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중증의 시청각장애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리 고 내가 바로 그 중 한 사람이다. 즉 헬렌켈러처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 를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시각은 밤과 낮을 겨우 구별할 정도로 사실상 전맹이고 청각은 가까이에서 하는 말소리가 외계어로 들리고 조금 더 멀 어지면 아무 소리도 포착할 수 없는 고도난청이다. 사람의 존재 여부는 악수 등 촉각적 접촉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으며 손을 놓으면 상대의 존재는 나의 감각세 계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학령기가 되었을 때 처음에는 일반학교에 보내졌다. 거기에서는 시각장애 때문 에 도저히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이듬 해에 맹학교로 전학했다. 이번에는 청각장 애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 고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다. 나는 매우 호기심이 많고 성취욕이 강한 소년이 었지만 나의 신체조건은 마음껏 꿈을 꾸거나 공부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다행히 점자를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점자책을 벗하며 나름대로 꿈을 품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는 시간은 책을 읽는 시 간이었다. 책을 최대한 많이 읽고 공부를 해 나가면 언젠가는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점자로 제작된 책은 극히 드물었고 그나마도 대부분 우편으로 대출 받아야하는 등 접근성이 열악한 상태여서 실제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은 매우 한정된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두들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장애인 시설을 전전하며 방황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그렇게 십 수년 이 흐르는 동안 그간 품어왔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작가에 대한 꿈마저 시들고 사 위어갔다.
그러던 중 2006년에 지인의 소개로 일본의 헬렌켈러라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 시 교수로부터 초청을 받아 일본의 시청각장애인 대회를 참관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시청각장애인들이 통역 보조인의 도움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 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한 후쿠시마 교수님을 비롯해 여러 시청각장애인들 이 대학을 나와 당당한 사회인으로 역량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큰 힘을 얻 게 되었다.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좋다! 나도 한 국의 헬렌켈러가 되어보자!
그 이듬해 나는 나사렛대학교에 입학했다. 의사소통에서부터 등하교에 이르기 까지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나로서는 학교에도 아내와 함께 다녀야했다. 처 음 입학하고 얼마간은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남녀 규율이 엄격한 기숙사의 규정 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정을 참작한 학교 측의 배려로 아내와 함께 독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나사렛 대학교에는 장애학생 고등교육 지원 센터가 운영되어 장애학생들 의 학습 활동을 위해 다양한 지원서비스가 실시되고 있었다. 점자단말기 대여, 대 필, 이동도우미 지원, 교재 점역 등 예전에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서비스들이 지원 되고 있었고 그것들을 통해 무리 없이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나 같은 중 복장애 학생의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대학 캠퍼스를 누릴 수 있게 해 준 것은 보조공학의 발달과 장애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서비스의 위력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누리고 있는 정보기기와 지원서비스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자 한다.
먼저 학교에 입학했을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된 서비스가 한소네 대여였다. 이것 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극히 요긴한 기능을 제공하는 기기이지만 수 백만원에 달하 는 고가품이어서 대학생이 스스로 장만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센터에서는 그것을 장만하여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대여해 줌으로서 그들의 학 습활동에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소네는 점자정보단말기로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PDA의 일종이다. 이것은 문 서작성, 파일 및 폴더 관리, 웹브라우저 등을 포함하여 각종 유틸리티와 콘텐츠를 점자와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 일반 문서파일 을 복사하면 내용이 점역되어 출력되고 작성한 문서 또한 컴퓨터에서 열어볼 수 있다.
컴퓨터에 스크린리더의 일종인 센스리더를 설치하고 한소네를 연결한 다음 점자 디스플레이 기능을 작동시키면 컴퓨터의 화면 정보가 점역되어 한소네로 출 력된다. 이 기능을 통해 컴퓨터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인터넷 검색과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는 방법도 이 기능을 이용한 것이다. 노트북에 센스리더 를 설치하여 한소네와 연결한 다음 메모장을 실행하면 도우미 학생이 입력한 내 용이 곧 바로 한소네로 출력된다. 반대로 한소네로 입력하는 내용도 노트북으로 보내진다. 이를 이용하여 강의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를 도우미 학생이 받아 적으 면 나는 그것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고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내가 한소네로 질 문을 입력하여 해답을 받기도 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능은 학습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했다. 도우미 학생과 1대 1로 대 화를 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말을 조금 천천히 하도록 부탁을 하고 도우미 학생이 그것 을 입력해 줌으로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지원한다. 또한 live 메신저나 네이트 온으로 채팅을 할 수도 있고 이메일 송수신을 할 수도 있어 오랫동안 나만의 세계 에만 갇혀 있던 나의 혼을 현실로 이끌어주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제 한소네 는 나의 신체의 일부가 되었고 어디를 가든 이것을 반드시 지참하고 있다.
한소네는 학습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했다.
위에서 강의시간에 도우미 학생이 노트북으로 강의 내용을 입력해준다고 했는 데 이것이 바로 대필 서비스이다. 대필 서비스란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등 필 기가 여의치 않은 학생들을 위해 센터에서 도우미 학생을 파견하여 강의를 대필 하도록 하는 서비스다.
한편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해서는 문자통역 서비스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노 트북을 이용해 강의 내용을 입력하여 보여주는 서비스이다. 이 문자통역은 입력 속도가 상당히 빨라야만 수행 가능한 기술이다.
앞서 말한 대필 서비스는 요점 위주로 필기를 해주면 되는 것이지만 문자통역 은 강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다. 나는 시각파트에 속해서 대필서 비스를 받았지만 나의 특성상 문자통역이 필요한 경우이기 때문에 도우미 학생들 이 문자통역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대학 공부에서 교재가 없다면 학업을 소화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시 각장애인들은 일반 교재를 활용할 수 없으므로 활자를 시각장애인이 인식할 수 있는 점자와 단말기용 파일 등으로 변환하여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센터에서 이 러한 서비스를 실시해주고 있다. 나사렛 대학교에는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각 장애인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학기 초에 시각장애학생들이 맡긴 교재를 입력 하느라 센터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다. 맡겨진 도서들은 각각 도우미학생들에게 맡겨지거나 센터의 직원이 맡아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입력하여 학생들에게 공급되어 진다.
교재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주교재로 사용되는 각 학과의 교재들과 과제용 으로 읽고 서평 등을 써야하는 도서들, 그리고 영어, 컴퓨터, 전공어휘사전 등의 전문 서적, 각종 교양도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서비스 되어지고 있다.
나는 신학과와 사회복지를 복수로 전공하고 있어서 다른 학생에 비해 의뢰하는 도서가 두배 가까이 된다. 그렇게 입력된 책들은 나의 대학생활을 성공적으로 이 끌어 주고 있다.
해마다 12월 초 무렵이면 점역, 교정사 국가 자격시험이 실시된다. 센터에서는 이 시험에 대비하여 한 학기동안 대비반을 구성하여 점역·교정 교육을 실시한 다. 나도 2007년도 2학기 때 이 수업을 들었다.
학과 과제와 수업 진도 따라잡기에도 벅차서 수업을 받을 것인가 여부를 결정 하는데 적잖이 망설였었다. 대필 서비스도 다른 시각장애학생들은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간에만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모든 과목에서 대필 서비스를 받 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비정규 점역·교정 수업까지 도우미를 지원받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센터 점역선생님의 권유로 수업에 참석하니 도우미까지 지원해주셔서 무리 없이 수업을 소화할 수 있었다.
점자 교정에 대해 공부했고 어렵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맞춤법도 달달 외울 정 도로 공부했다. 문제를 풀다가 잘 풀리는 것은 그냥 넘어가고 생소하거나 난해한 부분은 따로 갈무리해서 반복 학습을 했다. <헤어지다>와 <해어지다> <며칠>과 <몇일> <삼가다>와 <삼가하다>... 이런 수많은 헷갈림 속에서 맞춤법의 윤곽을 명 확히 각인시키기 위해 한글 맞춤법규정도 여러 번 읽었다. 그렇게 준비를 한 보람 이 있어 어렵기로 소문난 국가시험에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센터에서는 매 학기마다 성적이 우수하면서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장애학생을 두 명 가량 선발해서 장학금을 지원한다. 아무런 수익원이 없는 나로서는 매학기 등록금을 오로지 각종 장학금에 의존해야 했다. 복지 장학금, 성적 장학금, 외부 장학금 등을 받으며 매학기를 이어가야 했다. 그러다 어떤 때에는 복지 장학금 외 에 아무런 장학금도 받지 못해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매우 난처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센터에서 나를 장학생으로 선발해 주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손가락 점자란 일본의 시청각장애인들이 통역을 받을 때나 서로 의사소통을 할 때 자신의 손가락으로 상대방의 손가락에 점자를 터치하여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나는 이것을 점화라 부른다. 센터에는 점역·교정사 자격시험을 위해 공부한 학생과 직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 탁월한 점자 실력으로 내가 센터를방문할 때마다 점화로 안내를 해주고 말벗도 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시 청각장애인은 늘 대화에서 소외되고 주변에서 대화를 하고 싶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마땅한 대화방법을 찾지 못해 가족들마저 방치해버리는 경우가 많 다. 그런데 내가 매번 센터에 갈 때마다 점자를 아는 직원이나 학생을 만나 손에 다 점자를 터치해서 인사도 하고 농담도 하며 시험을 볼 때에도 열심히 보라고 격 려의 말도 해준다. 물론 이것은 점역·교정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신 점역사 선생 님의 공로가 크다. 내가 센터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바로 점자를 아는 이들과 대 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배움을 꿈꾸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우선 부딪쳐 보기를 권하고 싶다.
장애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장애학생을 위한 영어반을 구성한 적도 있었다. 미국으로 영어 연수를 다녀온 시각장애학생을 교사로 하여 후배들 을 가르치게 했는데 장애인 교사가 장애인을 잘 알기에 반응도 좋았고 학습효과 도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간이 특별 세미나가 있을 때에도 대필 도우미를 지 원해주어서 다양한 교양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밖에도 원하는 파일을 점자로 출력해주기도 했고 각종 장학금 정보와 자료에 관한 정보 등을 전달해주는 등 참으로 풍성한 혜택과 배려를 듬뿍 받으며 4년간 을 달려왔다. 중복장애 때문에 방황하고 자포자기했던 시절에는 삼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세계가 나에게 열린 기분이었다. 물론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공부하 는 이상 전혀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손가락으로 읽어야 하고 정해 진 기한까지 과제를 하기 위해 헉헉거리기도 하고 아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결 석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예전에 상상도 못했던 온갖 보조기기와 지원서비스 들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었듯, 지금의 불편도 언젠가는 더욱 개선된 환 경으로 발전해 가리라 믿는다. 또한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의지와 열 정만 있으면 얼마든지 꿈과 비전을 위해 달려갈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기에 이제 는 극히 부정적이던 나의 사고방식마저 매우 긍정적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예전의 나처럼 절망과 좌절 가운데서 자포자기하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절망과 방황은 어떠한 유익도 없다. 그러한 태도는 자기 속에 풍 부히 살아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마저 멍들게 하고 인성과 삶을 피폐케 한다.
예전에 내가 절망과 자포자기와 방황으로 얻은 것은 더 한층 깊은 상처와 쓰라 림뿐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암담하던 나의 삶에도 여러 방면에서 빛이 비쳐왔고 따뜻한 사랑의 태양이 미소를 지었으며 희망의 태양이 욱일승천하는 광경을 목도 하게 되었다. 내가 일찍 마음을 잡고 감사와 희망의 자세로 살았더라면 나의 재활 과 자립의 시기는 훨씬 빠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한소네가 없었던 시절에도 나는 영어 참고서와 일본어 교재를 1~2권 정도 점 역해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공부해서 나에게 어떠한 희망이 오겠는 가라는 허무적이고 염세적인 생각 때문에 도저히 공부에 전념 할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40대에 들어선 지금에 와서야, 나는 모든 공부를 한꺼번에 하느라 숨이턱에 차 있다. 엄청난 양을 짧은 시간에 공부해야 하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일들이 보람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숨 막히는 과제도, 스트레스도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시간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공부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어릴 때 품다 포기했던 작가의 꿈도 다시 되살리고 있으며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둑, 조형 미술 등과 같은 취미 생활도 알차게 해나갈 것이며 방학이 되면 수영 과 운동을 통해 체력도 다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두고 죽는 순간까지 배움 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배움을 꿈꾸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마음 을 굳게 먹고 우선 부딪쳐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지 않 은 사람은 결코 말할 자격이 없다. 우선 온몸으로 부딪쳐 보라. 대부분의 경우 의 외로 길은 수월하게 열린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이 아닌, 자신이 만든 관념과 비합리적인 신념체계였을 뿐임이 드러날 것이다. 그처럼 비합리적이 고 마이너스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살 바에야 단호히 마음의 감옥에서 박차고 나 와 무한한 꿈과 비전이 열리는 참된 희망을 가슴에 품기를 권하고 싶다.
나에게 이러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장애학생 고등교육지원센터의 지원 시스템과 선생님 및 도우미 학생들의 숨은 노력 덕분이었다. 이제 장애학생 들이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자 하는데 환경이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자기 자신 이 걸림돌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장애학생을 위한 고등교육 지원 시 스템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출처 : 특수교육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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