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를 아시나요?
오래전에 가입해 두었던 seri, 즉 삼성경제연구소 싸이트에서 장기 미접속 휴먼 회원이라며
10월초까지 미 접속시에는 자동탈퇴 처리될 것임을 메일로 알려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접속한 싸이트의 경영 노트 부분을 살피던 중 발견한 단어가
바로 세렌디피티입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뜻밖의 발견이나 발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제195호, 김동철 연구원이 제 196호 소 논문을 통하여 설명한 자료에 의하면
세렌디피티는 우연이지만 준비된 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세렌디피티가 발생하는 조직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합니다.
1.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라
직원들이 고유 업무 이외의 관심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때 이러한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2. 우연한 소통을 늘여라.
구글이나 픽사 같은 앞서가는 기업들은 신사옥을 설계하며 임직원들이 2분 30초 이내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고 서로간에 교차되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3. 발견을 실행으로 연결하라.
우연히 발생하는 결정적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을 확보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구축할 때 세렌디피티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끈질긴 실행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2021년 현재는 종료된 게임이지만,
지난 2015년까지 많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게임인 엥그리버드는 로비오가 52번의
도전 끝에 만든 게임이라 합니다.
< 또한 고어텍스로 잘 알려진 고어(W. L. Gore and Associates)는 직원들이 업무 시간의
10퍼센트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장난 시간(Dabble Time)’을 운영한다.
이 시간에 합성수지를 잡아당기는 실험을 하다가 물 대신 공기만 통과시키는 섬유를 발견했고,
음색을 세 배나 유지하는 기타 줄을 개발해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다양한 시도와 실패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장난 시간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신사업이 다수 탄생한 것이다.
*<나는 왜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을까?>(오상진, 비즈니스북스, 2016)
[출처] 빌게이츠의 '생각 주간'과 고어의 '장난 시간'|작성자 제빵왕Bakeryu에서 인용)
우연한 기회에 세렌디피티 개념을 알게 되면서 목회자와 교회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 사무엘상 30장 말씀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다윗과 그의 일행들이 시글락을 정복했을 때 정작 자신들의 본거지는 아멜렉 사람들에 의하여
쑥대밭이 됩니다.
모든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주거지는 불에 탄 상황이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따르던
백성들이 이성을 잃고 다윗을 돌로 치자 할 정도로 군급(窘急)한 상황이 됩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윗은 해법을 땅에서 찾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께 묻습니다.(삼상 30:8)
우여곡절 끝에 추격대를 편성하여 아멜렉 군대를 뒤쫓게 됩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식으로 도전하던 다윗 일행이 버림받은 병든 애굽 사람 한명을
광야에서 구해주면서 추격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과 가축들을
구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삼상 30장 참조)
장기간의 코로나 시국으로 수많은 교회들이 백척간두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지만 교회의 교회됨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주어진 현실의 상황에서 그 어떤이라도 주님께 대하듯 하는 기본적 마음가짐을
잃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세렌디피티의 기회를 허락하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1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14.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15.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사무엘상 30“13-15)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