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떻게 만나야 할까?
돌이켜봅니다. 선배들은 어떻게 만났는가? 나는 어떻게 만났는가?
내다봅니다. 어떻게 만나고 싶은가?
아이를 만날 때 빨리 친해지는 기법이나 기술은 없습니다.
대학 시절에 잠깐 어설피 배운 적이 있지만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설피 배운 기법과 기술을 사람에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와 친해지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친하다고 잘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 반대는?
친하다는 게 무엇일까?
물을수록 ‘친함’이라는 개념은 흩어져 사라집니다.
선명한 것에 힘을 쓰겠습니다.
친하게 대하기 보다 예를 갖춰 대하고 싶습니다.
귀한 어른 만날 때처럼 긴장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더욱 민감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이의 작은 외형에 메여 자칫 '어린애 취급' 할까 두렵습니다.
예를 갖춰 대한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이들과 회의를 앞두고 펜과 종이와 음료를 준비합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때 문 밖까지 배웅합니다.
아이가 부르면 몸을 아이 쪽으로 향합니다.
키 차이가 나면 자세를 낮춥니다.
잘 못 알아 듣는 사람에게 하듯 처음부터 큰 소리로 과장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아이라고 묻지도 않고 알아서 해줘버리지 않습니다.
묻지 않아도 될 말을 떠보듯 묻지 않습니다.
물었던 것 확인하듯 자꾸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이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반응합니다.
만나고 헤어질 때 안아줍니다.
아이 눈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아이와 이야기 할 때 전화나 문자가 와도 무시합니다.
아이와 대화할 때 문소리가 들려도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이면 먼저 아이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침묵을 우스운 말로 서둘러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잠잠히 기다립니다.
제 가치관과 신념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라고, 아이 의견이라고 ‘그래 넌 아이니까’ 하고 다 수용하지 않습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의논합니다.
어른으로서 어른답게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이의 시선'(?),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시선을 안다 한들 그 시선은 '내가 생각하는 아이의 시선'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문화, 안다고 잘 돕고 모른다고 잘 못 돕는 건 아닙니다.
어설피 아이들 흉내 내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자리를 살펴 함께하거나 물러납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서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재미없다고 돌아섭니다.
미안하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저는 아이를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크게 마음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의 문제나 어려운 점은 어떻게 도울까.
아이에게 말로써 교훈이나 가르침을 주려는 마음,
충고 조언하고 싶은 충동을 잘 다스립니다.
대신 본을 보입니다.
아이의 어려움과 문제, 당장 저부터 문제 덩어리입니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 마음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문제
보는 사람 가치관과 지식의 종류와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문제
진단하는 사람마다 다른 문제
꼭 형체가 없고 이리저리 변하는 도깨비 같습니다.
아이 문제와 씨름함은 마치 도깨비와 밤새 씨름하는 모습과 같을지 모릅니다.
전심을 다 해 치열하게 싸워 문제를 이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너무 큰 기회비용을 치루는,
상처뿐인 승리일 수 있습니다.
아마 상처는 아이 거
승리는 내 거
문제보다 강점에 집중 하고 싶습니다.
아이의 강점은 놀랍습니다.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엄청난 작용이 일어납니다.
추동에 와서 도서관을 하겠다고 동네 인사를 다닐 때 준일이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으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 번 만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다고 하니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런데, 어려움 말고 다른 이유로 준일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재개관식 공연팀을 찾던 가운데
우쿠렐레를 독학하는 아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 아이를 소개 받았습니다.
준일이었습니다.
준일이가 재개관식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자 중앙시장만큼 시끌벅적하던 도서관에 잠잠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준일이의 그 맑은 울림이 전율케 했습니다.
게임 중독, 따돌림, 대소변 실수로 점철된 문제 덩어리 아이는 온 데 간 데 없고
온 마을 사람들 마음에 맑은 공명을 일으키는 연주자가 한 명 서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의 일부 문제가 아이 전체가 되는 현상
문제가 존재를 덮어버리는 현상
이는 문제에 집중하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아이의 강점에 집중해 보면 어떻게 될까요?
문제가 많은 아이 어려움이 큰 아이일수록 강점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관계로써 돕고 싶습니다.
아이의 관계에 관심 있습니다.
아이와 친구와의 관계
아이와 형제와의 관계
아이와 부모님과의 관계
아이와 학교와의 관계
아이와 자연과의 관계
나아가 아이와 아이 자신과의 관계
아이의 관계를 돕고 싶습니다.
적어도 헤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살이의 근본은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기쁜 일과 슬픈 일이 관계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하.
잘 모르면서 또 순진한 말만 잔뜩 늘어놓았지요?
'나 하나쯤이야' 하고 도망갑니다.
정말 저 하나쯤 그런다고 별 일 나겠습니까?
문제와 어려움이 덕지덕지 붙은 아이,
그런 아이를 만날 때도 아이의 좋은 것만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
한 사람쯤이야 괜찮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이 글을
여러 단기사회사업팀 실무자가 학생들과 공유했지요.
고맙습니다.
최선웅 선생님 글을 읽으며, "최선웅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나왔지.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마음에 담아 놓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분들과 나누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를 둔 부모로서 반성하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웅 선생님, 제 가슴속 깊이 잔잔한 울림을 남겨주시네요. 이렇게 해야지, 또 이렇게 해야지..정말 고맙습니다.
부모가 되며 아이들이 달리 보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우주입니다
어른들은 가끔 망각하며 행동하지만요
지역아동센터를 내일 갑니다. 거절할까 하다가 생각이라도 보태고 싶어 승락했습니다.
선생님 이야기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가져갑니다. 교회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나누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 뿐만 아니라 마을의 청소년과 청년을 만날 때도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로 만나야지 다짐합니다. 돕고싶고 거들고 싶은 마음에 당사자의 문제와 해결방법에만 몰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청과 걸언, 그리고 둘레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집중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몇년 전 아이의 우주를 생각하며 읽었던 글이 이제는 아이를 넘은 보편적인 마음가짐으로 보이네요. 고맙습니다.
최선웅 선생님 삶을 담은 글이 제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