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원망할 수 있느냐?” 나아마 사람 소발은 강력하게 욥을 책망하면서, 욥을 정죄합니다. 소발은 욥이 지금까지 한 말들과 원망과 탄식들을 들으면서 “도대체 너는 정말 말이 많구나. 네 말을 듣자하니 도무지 잠잠히 듣고만 있을 수 없구나”라고 핀잔을 줍니다(2절, 3절). “넌 너 스스로 의롭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구나”라며(4절),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셔서 욥의 죄악을 깨닫게 해주시길 원한다고 말합니다(5절, 6절). 6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라는 말씀은 욥이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가벼워서 욥이 지은 죄를 스스로 깨닫기에는 부족했다는 표현입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심을 열거합니다(7절~9절). 하나님은 너무 깊고 광대(廣大)하셔서 인간이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운 분이심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시고 그 죄에 맞게 징계하신다면 누가 그것을 막겠느냐고 훈계합니다(10절). 하나님은 안 보시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 샅샅이 살펴보고 있으시다고 말합니다(11절). 어리석은 사람은 마치 들나귀처럼 정신을 못 차린다고 표현하면서(12절), 마치 욥이 그러하다고 꾸짖습니다. 그러면서 욥에게 악에서 돌이켜서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책망합니다(13절, 14절).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다시 평안함의 희망이 있게 될 것이라고 교훈합니다(15절~19절). 그렇게 돌이키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악한 자들은 결국 죽음밖에는 얻을 게 없다고 강하게 책망합니다(20절).
소발은 욥이 억울하다고 하나님께 원망하며 호소하는 말을 듣고, 욥을 정죄하며 꾸짖습니다. 소발의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굽어살펴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해서 그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모두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소발이 간과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을 무조건 멸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할 때 아무런 말씀도 없이 무작정 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도 들으시면서, 우리와 말씀을 나누길 원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고통과 고난에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고통과 고난을 겪게 되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욥이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단면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흑백논리로만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왜 그러한 아픔과 고통을 주셨는지를 하나님께 물으면서 깊이 묵상하는 태도가 있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판결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맞는 진리여도 인간이 당하는 고난이나 고통의 이유를 기계적으로 대입(代入)하여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결론이 내려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욥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진지하게 묻는 과정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한 진지한 묵상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