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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가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수도회] 어린이성의 회복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 제1독서 에제 18,1-10ㄱ.13ㄴ.30-32
† 복음 마태 19,13-15
★ 에제키엘 예언자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명백히 밝힌다. 주님께서는 각 개인이 정의와
관련하여 걸어온 길에 따라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다가오는 어린이들을 기꺼이 맞으시며 그들을
축복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은 한국 교회의 124위 순교자들이 복자의 반열에 오르는 경사로운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몸소 이 땅에서 집전하시는 시복식은
우리 신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에게 잊히지 않을 모습으로 남을
것입니다. 시복 미사에 참여하고자 전국에서 수많은 교우들이 새벽부터
모여들어 번거로운 입장 절차도 감수하며 여러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이렇게 많은 이가 땀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다는 감격 때문만이 아닙니다. 시복식은 인간적 영광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순교자들의 삶을 되새기고 그분들의 순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자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복식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도 국가적 지원과 온 국민의 주목을 받으며 거창하게
준비한 시복식이 ‘일회적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사실 시복식의 의미와 가치는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보이는
신앙생활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복식에 함께하는
열정 이상의 노력으로 순교자들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칭송하지만 그분들의
삶에 무관심하기 십상입니다. 순교자들은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살아 있는 상징’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현대 철학자 폴 리쾨르는 “상징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우리를 깊이 고뇌하게 합니다. 그분들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따라서 시복식은 순교자들을 화려하게 ‘박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분들과의 생생한 만남의 시작이어야 합니다. 시대의 고민을 안고
순교자들과 만나 그분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고,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와
‘싸워 이기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순교자 현양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크나큰 은총의 시복식을 맞아 이러한 생각이 가슴속
깊이 새겨집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좋은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014년 가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텔레비전에서 청소년 범죄에 대한 뉴스가
나옵니다. 이 뉴스를 들은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요즘 아이들 정말로 무서워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저의 학창시절에도
그런 청소년 범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거든요. 하긴 지금은 사라진
도시인 고대 폼페이의 화장실 벽에도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하지요.
“요즘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한 결 같이 예의도 없고, 사고도 많이 치고, 여기에
무섭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요즘 아이들을 혀를 차면서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어른들 역시 요즘 아이들의 나이 때에 당시의
어른들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수치상으로 현재의
폭력성이 더 증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바라보는 차가운 어른들의 시선이 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른들은 얼마나 아이를 위해 사랑을 쏟고 있을까요?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우리나라 남성이 하루 동안 아이를 비롯한 가정을 돌보는
평균 시간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될까요? 자그마치 10분이더군요. 하루
24시간 중에서 아이를 비롯한 가정을 돌보는 시간이 단 10분이라는
것입니다. 참 긴 시간이지요? 아무리 바깥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10분이라면 너무나 짧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정적인 말로서 아이들 전체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 주어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과 단순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이들에게 기도해달라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꾸짖지요. 제자들은 군중 때문에, 특히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로 인해 스승님이 피곤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얹어 기도를 해주십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덕목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덕목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일까요?
바로 어른들 때문입니다.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않고 또 어린이들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덕목인 순수함과 단순함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어른들 역시
그 좋은 덕목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린 하늘 나라를 접할 수 있으니까요.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
지수가 2% 떨어진 것은 뉴스가 된다(프란치스코 교황).
교황님의 말씀과 행동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국 땅에 오신 지 벌써 삼 일째가 되는군요.
특히 어제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었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보여주신 교황님의 모습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더 많은 신자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 특히
카퍼레이드를 하는 차를 세워서 아이들을 축복해주시는 모습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날 주교님들과의 만남에서 희망의 지킴이가 되기 위해서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어르신의
기억과 지혜와 경험, 그리고 젊은이들의 열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교황님의 이 모든 말씀에 힘이 있는 이유는 당신께서
직접 어린이들을 축복하시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만나주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은 서울 광화문에서 124위 시복식이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미사에서는 어떤 말씀으로 또 어떤 행동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실
지가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행동을 듣고 보면서, 철저하게
살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반성합니다.
Viva il Papa, Francesco!!
- 인쳔 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어린이성의 회복 - 이수철 신부님 (요셉 수도원)
2014년 가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에제18,1-10ㄱ.13ㄴ.30-32 마태19,13-15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어린이성의 회복
어린이성을 잃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천진한 동심을, 꿈을 지녀야 합니다.
끝까지 어린이성을 잃지 않고 살아내기란 얼마나 힘든지요.
몇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전 세계인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던
희극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이 큰 충격입니다.
그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기에 그 충격이 너무 큽니다.
주변에서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이들의 무겁고 어두운 표정을 보면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순례준비로 어수선한 방안에 난데없는
그윽한 향기에 깜짝놀랐습니다. 정다운 지인이 선물한 작은 세수비누
한개의 향기였습니다. 이런 영혼의 향기를 지닌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산티야고 순례에 갈등도 자못 컸습니다.
가지 못할 이유도 많았고, 갈 이유도 많았습니다.
새삼 긍정적, 적극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어제 형님집 방문 때의 충격도 생생합니다. 15년 전에는 그토록 귀엽고
활발했던 애완견이 아주 노쇠해 있었습니다.
"개도 사람과 똑같아요. 사람 나이로 하면 90은 넘었을 거예요.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해 냄새 맡고 알아요. 먹고 자는 것뿐이 없어요. 그저 보기만
하면 밥 달라고 짓습니다. 불쌍해서 버릴 수도 없어요."
형수님의 말에, 꿈을 잃은 노쇠한 인생도 이와 흡사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화들의 결론은 단 하나, 아무리 나이 들어 늙어도
어린이성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연성, 적극성, 유연성, 개방성입니다.
꾸밈이, 편견이 없고 호기심이 많습니다.
자유롭고 자연스럽습니다. 순수하고 천진합니다.
이런 노년인생을 대하면 그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하게 됩니다.
'무지개'를 보고 감동했던 시인 워드워즈가 바로 그런 분입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보노라면 내 가슴은 뛰네
내 삶이 시작 될 때에도 그러했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다네
나 늙어서도 그러하리다
아니면 죽어도 좋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내 생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배로 이어지기를,.,.
어떻게 하면 이런 어린이성을 키울수 있을까요?
바로 1독서가 답을 줍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깨어, '지금 여기'를 사는 것입니다.
"회개하여라.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에제18,30-32참조).
어린이성의 회복에 유일한 처방은 끊임없는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기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연을 새롭게 하소서."
"하느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참 은혜로운 시편 51장 기도입니다.
회개를 통해 선사받는 마음의 순수와 겸손, 순종의 영으로 어린이성의
회복입니다. 이런 회개한 영혼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꿀보다 달기에
영육의 건강은 더욱 좋아질 수뿐이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어린이성을 선물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 [청주]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2014년 가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
반모임 미사에 가면 어린이들은 따로 한 방을 차지하고 자기들만의
놀이에 열중합니다. 어른들‘미사에 시끄럽게 굴지 말라.’하면서 특혜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사참례는 어른이나 하는 줄로 압니다.
시끄러우면 좀 어떻습니까? 좀 더 거룩한 분위기에서 미사봉헌 하기에
앞서 어린이들에게 거룩한 미사참례의 기회를 빼앗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19,1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을 통해 그들의 순수성을 배우려면 그들 곁에 있어봐야 합니다.
진득하게 오래 견디지는 못할지라도 ‘기도손’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진정, 어린이들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는 할머니가 데려온 어린 아이도 참석합니다.
모임을 갖는 동안 말썽 없이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헤어질 때는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에 모으고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합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면 십자고상을 가리키고 성모상을 바라보며
성호를 그을 줄도 압니다. 어린이는 어른과 달리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을 계산하지 않고 잘 받아들입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금방 따라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기도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어미 새의 소리를 듣고 노래를 배우는 어린 새들과 같이 어린 아이들도
세상에서 그들을 가르치기로 되어 있는 아주 열심한 부모 곁에서 하느님
사랑의 숭고한 노래와 덕행의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성녀 소화 데레사).
또한 우리도 어린이의 온전히 의탁하는 단순함을 배워 자기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선뜻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린이가 부모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듯이 우리도
주님의 가르침을 그렇게 받아들일 때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어미 품에 안긴 젖 뗀 아기”(시편131,2) 같이 주님의 품에
안겨 평온함을 누릴 수 있길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말씀 묵상 -
새 마음과 새 영으로 태어나라
2014년 가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독서 : 에제 18,1-10ㄱ.13ㄴ.30-32
< 새 마음과 새 영으로 태어나라>
[CBS노컷뉴스]에서 이강국 기자가 이번 교황님 방문 때 성모승천
대축일날 오찬을 교황님과 함께 하게 된 거식증을 앓았던 한 소녀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감동적이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소녀는 이전에는 키가 153cm, 몸무게가 27kg인 고3학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뼈와 가죽만 남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즉 거식증이라고 하는데 음식을
억지로 먹어도 몸이 받아주지 않아 토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병입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도 받아보았으나 자해소동 끝에
병원을 나와야만 했습니다. 물론 학교도 휴학해야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청소년 담당 신부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신부님은 모든 사정을 다 듣고는 자신이 의사가 아니어서 어찌 할 수는
없으나 먼저 친해져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몰래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다가가려 했는데 대인기피증까지 있던 소녀는
끝내 신부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는 신부님을 가정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조금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신부님은
그 소녀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내년(2011년)에 스페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데, 너 거기 갈래?”
하지만 거식증에 대인기피증까지 앓고 있던 소녀로서는 불가능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지만 점차로
세계청년대회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임을
직감했고, ‘꼭 가고야 말겠다’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 신부님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몸무게를 40kg로 만들어 오면 데려갈게.”
이 말을 들은 소녀는 제 발로 병원에 입원하여 약속한 대로 몸무게
40kg을 넘겼습니다. 소녀의 기대대로 세계청년대회는 소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루에 수 km씩 걷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자신과
같은 많은 세계의 청년들과 어울리면서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복학한 소녀는 교내 마라톤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이젠 전공을 바꿔 의사가 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은 제가 가장 잘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황을 만나 식사를 할 때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년에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지금 돈을 모으는 중인데 로마에서
교황님을 찾아가면 ‘점심 한 끼 사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볼 겁니다.”
같은 사제로서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기사이고 또한 그런 신부님과
같은 사제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부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답답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진실도 밝혀지지 않고, 살기는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고 하고, 신앙보다는 세상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거식증이 걸려있는 것은 아닐까요? 먹어도 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그런 답답함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탓하는 것들보다는
참으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해 줄 그 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주님께서 “너희는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다시는 이
속담을 이스라엘에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어렸을 때 포도서리를 해서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가 셔서 며칠 통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아버지가 포도를 먹으면 자식도 이가 시다’는 속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죄와 축복의 ‘연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민족 한 나라로써 하느님께서 함께 구원해주시거나
잘못했을 때는 함께 벌하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첫 조상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까지 그 원죄를 물려받는 것도 같은 개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 사람을 판단하실 때, 아버지는 아버지의
행실대로, 아들은 아들의 행실대로 심판하실 것이지, 아버지가 잘
살았다 하여 아들을 구원해 준다거나, 아들이 잘못했다고 하여
아버지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버지가
포도를 먹으면 아버지만 이가 시고, 아들이 먹으면 아들만 이가 신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이지만,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와 맺으신 계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의 무리 안에 끼어있다고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잘 살지 않으면 구원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신약은
그래서 우리 ‘각자’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그렇습니다. 새 마음과 새 영은 ‘한 개인’이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또 새로 나기 위해서는 성령을 주시는 분을 만나야 하는데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소녀도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해 준
신부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 신부님을
통해 문제가 가족이나 세상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있었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내 자신도 우리나라도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으면 절대 새로 날
수 없습니다. 나의 처지가, 혹은 우리나라의 처지가 이 모양인 것이
조상의 탓이나 남의 탓이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식증 걸렸던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각자가 참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줄 분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이나 정치인이나
조상이나 다른 사람들을 탓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다른 이를 치유하고 새로
태어나게 하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담당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2014년 가해 8월16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오늘은 교황님 한국방문의 가장 큰 목적인 ‘시복식’이 있는 날입니다.
교회는 신앙의 별이 된 분들을 위해서 두 가지 공경의 예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시성식입니다. 이는 전 세계 교회가 성인이 되신 분들을 공경하고,
그분들의 전구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가 행하는
시복식입니다. 이는 복자가 되신 분들을 지역교회에서 공경하고,
그분들의 전구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인들과 복자들은 모두 신앙을
증거하였고, 우리들에게 하느님께로 가는 이정표를 보여주셨습니다.
시복식을 통해서 복자들에게 더 큰 하느님의 영광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복식을 통해서 복자들의 명예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시복식은 명예를 회복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복식을
거행하는 것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재물을 버려야 했고, 벼슬도 포기해야 했고, 가족들과
떠나야 했고, 이웃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기도 했고, 소중한 목숨까지도
바쳐야 했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유한 것보다 가난한 것을 택할 수도 있고,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도 택할 수 있고, 건강보다 질병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간다는 것은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 기쁨, 자유를 얻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현실의 삶에서 이미 천상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들 역시 영원한 삶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참 매력적인 분이십니다. 소탈하시고, 겸손하시고, 틀에
억매이지 않으시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시고, 복음적이시고,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십니다. 이 순수함이 모든 불신과
갈등을 허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순수함이 이념, 율법, 체제라는
견고한 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교황님과
함께 지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 교황님께서 한국을 찾아주신
것도 어쩌면 순교자들의 희생과 뜨거운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어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수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국왕
2014년 가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국왕
우리 가운데 오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국민, 아니 더 나아가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표정 하나 하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한 행보
한 행보가 모두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시는지,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셨으면 아마도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해서든 낮은 곳으로 내려가시려는 교황님의
파격적인 모습,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더 상처입고 슬퍼하는 한국의
양떼를 따뜻이 품어 안으시려는 교황님의 자상한 모습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걱정꺼리 한 가지는 그 또래의 노인들 살펴보십시오. 장거리 여행은
물론이고 거동조차 힘겨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겨우 한 가지 스케줄을 소화할 그런 연세입니다. 그런데 너무
빡빡한 스케줄, 그리고 너무 큰 부담을 안겨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안 그래도 걱정되는 그분의 건강에 무리가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큽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고통 받는
양들을 위해 좀 더 오래 계셔줘야 할 착한 목자이십니다. 너무 지나친
요구로 교황 할아버지의 건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끝도 없이 밑으로 내려만 가시는 교황님, 어떻게 해서든 가난한 이웃들의
친구로 서계시려는 교황님의 모습과 그와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서있는 이 땅의 지도자들의 모습이 겹쳐져 참으로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물론 다양한 집단, 다양한 이익단체,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을 소유한
수많은 국민들의 지도자로서 한 나라 전체를 통치한다는 것 너무나
부담스런 일이라는 것 확실합니다.
그래서인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지만 훌륭한 통치자,
성왕(聖王)으로 역사 안에 칭송되는 지도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믑니다. 지금 현 세계를 돌아봐도 독재자, 장기집권자, 불통의 지도자로
유명한 리더들은 눈에 띄지만 존경받는 리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통치자로 살기가 힘든 시대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과 우리 모두가 주목할 만한 국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헝가리에 가면 얼마나 성 스테파노가 존경받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 스테파노인 헝가리 사람이 많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많은 부모들이 스테파노로 이름을 짓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지금 우리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계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무척이나
청빈했습니다. 왕으로서 화려한 복장을 피하고 아주 소박하고 단출한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왕으로서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예식들을 간소화했습니다.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왕실의 곳간을 열어
아낌없는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앙과 삶, 기도와 활동을
자신의 삶 안에 잘 조화시켰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헝가리 왕국 안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가 왕으로 활동하던 시절, 각별히 모신 주보성인은
성모님이셨는데, 스테파노는 전 국민에게 성모님을 공경하도록 적극
권장했으며 성모승천대축일을 국경일로 정했습니다.
성모님을 향한 신심이 남달랐던 스테파노였기에 1038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선종했으며, 1083년에 그레고리오 7세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부다페스트 성모 성당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가 후왕이 될 아들에게 남긴 편지
일부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평신도이자 정치인으로서 그의 신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이
성왕 스테파노의 유언에 귀를 잘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될 때 교만해지지 말고 역경에 처할 때 실망하지
않도록 굳건한 사람이 되어라. 하느님께서 현세와 후세에 너를
높여주시도록 네 자신을 낮추어라. 중용지덕을 지니도록 하여라. 어떤
사람이간 너무 지나치게 처벌하거나 단죄하지 말아라. 온유한 사람이
되어 정의를 거스르는 것을 피하여라. 성실히 처신하되 누구에게도
수모를 주지마라. 정결한 사람이 되어 죽음의 충동인 사악한 유혹을
피하라. 이와 같은 것들이 왕관을 씌워주는 덕행들이다. 이런 덕행이
없다면 이 지상에서 제대로 왕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영원한 나라에
도달하지 못한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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