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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稿를 넣는 붉은 비단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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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사회/잡문 스크랩 ?하버마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흑곰 추천 0 조회 39 11.05.09 22: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하버마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국내-외를 막론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도권을 장악한 듯이 보이는 상황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이를 정면으로 반격한 역작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이 국내모더니즘계열의 문인과 학자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을 반격할 수 있는 든든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혁명" "진보" "이상" "시대정신" "이성"... 불과 몇년 전만해도 학계는 물론 현실정치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이 "진보적"인 단어들이 어느새 곰팡이내나는 낡은 단어가 돼버렸다. 이렇다할 "호응"을 얻지 못한 결과다. 때문에 지금 이런 어휘들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시대적착오"이라는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진보주의 어휘 사라져
시대를 앞서간다는 "진보 주의자"들의 어휘가 갑자기 "시대착오"를 판별하는 바로미터가 돼버린 시대. 지난 몇년간 이런 역설적 상황을 목청높여 대변한 것은 넓은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교리는 "이성 - 주체 - 진보 - 혁명 등 역사의 진행을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모더니즘 (학계에서는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고 한다)이 만들어낸 용어는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 역사의 단선적 진행이라고 하는 관념 자체가 종지부를 찍었기 대문"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찰학 담론"에서 헤겔, 마르크스, 미체,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하이데거, 데리라, 바타이유, 푸코 등은 18세기부터 최근까지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사조를 이끌었거나 이글고 있는 대사상가들을 대거 동원, 포스터모더니즘을 공략한다.


하버마스가 18세기를 살았던 헤겔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가 현대에 속하는 최초의 철학자는 아니지만 역사적 시기로서 현대를 문제삼은 최초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헤겔은이성개념을 극한까지 확대해 "절대이성"이란 개념으로 세상의 "모든것"을 "설명"하려 했다. 극단적 이성주의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에서 모든것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자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새롭게 철학의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이 영역의 성격과 접근방향법을 둘러싸고 마르크스와 니체의 대비는 뚜렸하다. 마르크스는 설명 이외에 실천을 끌여들여 "모든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총채성"노선을 취한다. 이 노선은 몰이성적이고 반이성적인 영역은 설명되지 않는다고해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이석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니체는 다르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이성적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몰이성적이고 반이성적인 영역이 존재하며 오히려 이 영역이 인간의 삶에 더욱 본질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마르크스를 경유하는 길과 니체를 경유하는 길. 하버마스는 이 두 길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크게 봐서 "모든/포스트모던"이 갈린다고 본다.


마르크스의 길을 간 인물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르로노 정도다. 물론 이들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으며 쇼펜하우어와 니체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 나머지 모두는 니체의 길을 갔다. 하버마스는 "포스트모던으로의 진입을 이끈 선구자"라고 부른다. 서구합리주의의 종말을 선언한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도움을 받아 하이데거의 철학을 "해체"하고 20세기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풍을 일으킨 데리다, 서양 학문의 계보적인 탐구를 통해 이성주의의 환상을 파괴한 푸코 등 이 책에서 다루어진 대부분의 사상가는 분명 "니체"적이다.


하버마스는 니체-하이데거-데리다, 니체-바타이유-푸코식 배열을 통해 하이데거가 니체를, 데리다가 하이데거를 치게한다. 데리다와 푸코 등 맨 마지막에 위치한 사상가 하고만 대결해 종국적 승리를 도모하겠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수법이다. 자신의 트레드마크인 이같은 전략을 통해 그는 다시금 이성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바탕을 둔 모더니티(근대성, 현대성)를 성공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님즘의 발생과 응전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 사상적으로 반합리주의, 비이성주의이다. 이는 서구의 오랜 이성주의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의 형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성/비이성, 정상/비정상, 선/악 등의 이항대립구조의 사유를 통해 이성이 비이성을 배체하고 정상이 비정상을, 선이 악을 단죄하며 이를 통해 진리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식의 근대적 사유가 가지는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에 쟈그 데리다, 미셸푸코, 리오타를 등 포스트모던 철학사상가들의 주된 노력을 기울여져 왔다. 이같은 생각들은 일찌기 니체에 의해 개진된 것들이다. 선악을 초월한 디오니소스적 축제의 세계를 추구한 니체로부터 오늘날 포스트모던 철학의 계보가 삭터왔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니체의 철학이란 사실, 당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그리고 노동계급의 역사적 형성과 사회적 진출이라는 저 거대한 근대화(모더니티)의 도도한 물결을 타고 흘러가던 유럽의 역사적 진보상황에 뒤쳐져 있던 독일의 정신적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처럼 산업혁명도 성공시키지 못하고 프랑스처럼 시민혁명을 성공시킨 것도 아니며 여전히 봉건군주제의 낡은 틀과 낙후된 경제 상황에 처해 있던 독일의 상황에서 니체는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의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및 노동계급 의 진출을 욕망과 탐욕과 허위와 위선의 산물로 매도함으로서 후진민족이라는 열등감에 쌓여있던 독일민족을 열광 시켰다. 여기서 니체는 지상의 권력은 모두 본질적으로 사제권력이라고 주장하였다. 어벗는 천국을 내세워 지상의 권력을 누리는 "사제"처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그리고 기독교도 모두 해방이나 물질적 풍요와 부, 또는 구원이라는 "큰 이야기(메타담론)"를 각각 내세워 지상의 권력을 얻고 있는 사악한 것 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이 "사제권력"을 심판할 진정한 초인의 권력이 도래한다고 주장했고 그 연장선에서 히틀러의 병사들은 전투베낭 속에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경전처럼 넣고 다녔던 것이다.


이같은 니체철학이 다시 크게 부활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70년대말 또는 80년대 유럽진보세력에 의해서이다. 68년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이른바 88세대라는 유럽의 진보세력들은 70년대 자기들의 투쟁이 실패하자 니체와 더불어 "모든 큰 이야기를 해체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변혁이라는 진보라는 해방이라서 또는 구원이라는 모든 큰이야기는 '전체주의' 또는 '아우슈비츠'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적, 사회적 함의 또한 분명해졌는데 그것은 다원주의 또는 미시정치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큰 이야기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곧 거대한 단일 정치적 결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통일단결의 사상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유럽 진보세력들은 과거 진보세력이 단일전망주의(Monoperspectivism)에 갇혀있었다고 비판한 데에서 그 발단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계급혁명 외에 다른 모든 것은 개량이라는 식의 사고가 곧 단일전망주의의 오류라는 것인데 그 결과 정치투쟁에서의 다양한 분화와 일상화가 극대화되고 그람시의 진지적 개념역시 새롭게 부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적 정치가 발생하는 데에는 이외에도 또 다른 측면이 고찰된다. 그것은 미국의 레이거니즘, 영국의 대처리즘으로 잘알려진 진보수주의 정치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다.


70년대 오일쇼크를 외적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선진자본주의의 구조적 불안은 급기야 축척위기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이에 80년대 미국은 기존 축척 체제의 생명이 고갈되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기존의 축척체제란 생산에 있어서의 대량생산, 소비에 있어서의 대량소비를 특성으로 하는 이른바 포드주의 생산방식과 하폐에 의한 국가의(경제에 대한)개입, 풍요로운 소비를 보장해줌으로써 수요를 고갈시키지 않는 동시에 "지배의 동의"를 얻어내는 계급타협구조 등의 수단을 텅해 생산과 소비와 지배를 가능케하는 축척이를 흔히 포드주의 생산방식과 케인즈주의식 조절양식의 결합에 의한 축척체제 즉, 포드주의 축척체제라고 한다. 여기서 케인즈주의 조절양식이란 이른바 수요중심의 경제학을 기본바탕으로하는 것으로서 생산중단의 가능성을 봉쇄할 유효수요의 창출에 목적이 있다. 또한 국가는 자본이 거둬들인 잉여가치를 사회복지, 사회간접자본 등에 쏟아부음과 동시에 임금협상을 제도화할 생산성 증가에 비례하는 실질임금을 상승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공황의 가능성을 억제할 뿐 아니라 지배의 동의 및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일쇼크라는 돌출적 계기는 이같은 축척체제의 불안한 틈새를 확대시켜나갔고 여기서부터 포드주의 축척체제의 거대한 생명이 고갈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표적이었던 케인주의식 조절양식은 특히 냉전적 질서아래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결합돼 군사적 케인즈주의 성격을 노골화 하였는 바 그것은 거대한 군수산업체의 등장이었다. 미국 공장을 가동시키는 주된 동력은 시장이 아니라 냉전질서로 전환돼버린 결과는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였다.


레이건에게 떠안겨진 역사적 상황은 바로 이것이었으며 결국 레이건은 변화를 시도해야만 했다. 그것은 우선 냉전적 질서의 붕괴부터였다. 미국이 80년대 초반에 구소련에게 전략핵무기의 감축 등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름의 속사정은 이런 것이었는데 가령,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거대한 군수산업체들을 미간경제화하지 않고서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클린턴에 이르러 이같은 민간경제화는 일정한 성과를 보게된다)
아뭏던 레이건은 군축을 실시함과 동시에 사회복지비용을 대폭 축소하는 등 케인즈주의식 조절양식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공급 중심의 경제학 즉 노동-수요 중심에서 자본-생산중심의 정책전환을 한 것이다. 그 과정을 필연적으로 대량감원과 대량실업, 부익부 빈익빈을 확대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신보수주의라는 이름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신보수주의는 과거 대량생산 소비시대의 "소비이데올로기"대신에 "경쟁이데올로기"를 지배이데올로기로 전환해낸다. 경쟁이데올로기는 공공연히 옹호되는 부익부 빈익빈 논리와 함께 개인의 내면적 욕망을 극도록 자극해내고 이를 통해 사회 전 영역에서의 경쟁을 부추킨다. 때문에 신보수주의 아래에서는 개인주의와 욕망이 극대화, 절대화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같은 신보수주의의 개인주의에 기초하며 또한 역으로 그것의 강화에 작용한다. "모든 큰 이야기에 저항하라"는 포스트모던 담론은 각 개인들로 하여금 타자(L'autre)와의 차별화에서 자기 존재를 찾도록 만들며 이것이 당대문화 형태도 그대로 나타남은 말할 것도 없다. 즉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거한 타자와의 차별화는 곧 비이성적인 차별화일 수 밖에없다. 다시말해 그 차별화에는 정당성이나 논리적 합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포스트모던 문화의 특성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비이성적 차별하는 상품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포스트모던 문화는 주로상품의 형태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 할 수 있다. 어느 TV광고 처럼 "왜?...그냥!"라는 식의 담론! 또는 "X세대"라는 담론은 상표이자 상품이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이들 포스트모던 문화상품들은 사실 포스트문화를 현실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통로다.


한편, 신보수주의로 인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은 또 하나의 측면에서 고찰돼야 한다. 신보수주의가 유발시킨 경쟁이데올로기는 생산에서의 경쟁과 마찬가지로 소비 나아가서는 삶에서의 경쟁에로 모든 존재를 몰고간다.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경쟁적 소비란 곧 개성적 소비와 연관된다. 이는 생산 그자체가 대량생산을 지양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을 전환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다품종소량생산아래에서 사람들이 경쟁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는 개성적 소지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개성은 타자와의 차별화라는 점에서 동시에 그 차별화로부터 발생할 소외 역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때문에 차별화는 일정한 선 안에서만 이뤄지게 되는 데 그것은 곧 세대, 계층 따위를 근거지로 한 차별화인 것이다.
그러면 이같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나 대응은 어떠했는가?
그 답은 매우간간하다. 없었다. 왜?


우리는 언젠가부터 사회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려는 적극적 자세를 놓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소련-동구의 위기 때문에 그 속에 역사적 간직돼있던 사회과학적 이해와 분석의 틀마저 금기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큰 이야기를 해제하라"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큰 이야기"임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그것 역시 객관적으로 전면적인 즉 총체적 분석대상에서 제외되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몇년간 의식의 불확실성에 대한 반성의 첫 출발점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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