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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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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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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29. 주일밤예배 설교문
본 문 : 베드로전서 4 : 1 - 8
제 목 : 육체의 남은 때
찬 송 : 95, 371, 450, 481.
복음송 : 내 평생 살아온 길(찬미예수2000. No,1045)
할렐루야!!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벌써 7월이 다 가고 7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옛말에 7월은 빨리 간다고 해서 ‘어정7월’ 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지루하던 장마도 끝이 나고 다음 주일은 8월이 됩니다. 그래서 다음주간에는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立秋)가 들어 있습니다. 8월이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더위가 가시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세월이 빠릅니다.
그래서 욥은 말하기를 욥기7:2절 말씀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상황들이 쉴 새 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천재지변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생각하여야 합니까? 바로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가 되면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21:10-11)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실로 주님의 심판이 문 밖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2절의 말씀대로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19세기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는 28세 때에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어서 사형 선고를 받고 영하 50℃의 추운 날에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있는 시간이 앞으로 5분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그 5분을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였습니다. 2분은 아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인사를 하고, 2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1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는데 쓰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2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려고 하니까 문득 “3분 후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그리고 28년이란 세월을 한 순간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순간순간을 아주 값지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형 집행하는 군인들의 총알 장진 하는 소리가 ‘철컥’ 하고 들려왔습니다.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이때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눈을 떠보니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병사는 황제의 특사 령을 가지고 달려온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후 4년 반 동안 시베리아에서 감옥 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60세에 죽을 때까지 언제나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한순간 한순간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과 ‘백치’(白痴) ‘죄와 벌’ 등 유명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고
7절 말씀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하였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직시하면서 자기 자신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 가를 생각하여 자신의 인생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는 말씀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우주적인 종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다”(딤후4:6) 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끝날 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하여도 언젠가는 병들어 죽을 날이 있고, 아무리 재산을 모아 움켜쥐어도 언젠가는 내어놓을 날이 있습니다.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늙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려고 하였어도 결국에는 그도 늙고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잘 선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16:9)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죽어 없어질 인생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남을 도와주고 믿음으로 살면 복된 인생이요. 죽은 다음에 남의 것이 되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인생의 종착점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가야할 인생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시작도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기에 끝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릴레이 코스를 달리는 경주자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종착점에 다다르면 미련 없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나야 합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사는 날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신이 죽을 때를 압니다. 그래서 코끼리는 죽을 때에 아무도 모르는 자신들만이 아는 죽는 곳으로 가서 죽고, 호랑이는 자기가 태어난 굴에 가서 죽는다고 합니다. 강원도 동해안의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태평양에서 몇 년 동안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남대천에 와서 알을 낳고 죽습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신의 죽을 때를 알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남은 때를 알지 못하고 허랑 방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의 삶을 깨달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제목처럼 우리들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아 멘>
1. 우리들은 육체의 남은 때를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믿음으로 살자”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는 말씀은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어떠한 환경과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고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그가 바로 정신 나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믿음의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몇 푼 벌겠다고 주일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창세기의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 권에서 밀려나 저주받은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 때문에 은 30냥에 자신의 선생이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 예수를 팔았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돈 때문에 신앙 양심을 팔아먹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일하느라고 주일 범하고, 잔치 집 가느라고, 계모임에 가느라고 주일 범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저녁예배 빠지고, 새벽기도는 아예 잊어버린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여도 믿음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 속에 던져져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말세가 되면 죄악이 관영하고 모든 사람의 심령이 타락해서 육신의 정욕을 쫓고 안목의 정욕과 자랑만 생각하고(요1서 2:16)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시대가(딤후3:5) 될 것임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 나 자신도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지 모릅니다.
초대교회 집사인 스데반은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옆에 자신의 자리가 예비되어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하였습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근신합니다. 근신한다는 말은 조심한다는 말입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선 사탄의 유혹에 해와가 넘어지고 아담도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넘어져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지금은 사탄들이 더욱 악랄하고 간교하고 끈질기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신을 차릴 때입니다. 근신할 때입니다. 우리의 남은 육체의 때를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킬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라고 근신한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바르게 합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1차 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고 사탄의 이용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밤새워 철야기도 하셨고, 날이 밝기 전 새벽 미명에 새벽기도 하셨습니다. 40일씩 금식 기도도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계속 기도하므로 십자가의 구속 사업을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서,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육체의 남은 때를 뜨겁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뜨겁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본문 8절 말씀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완전케 하는 것이 기도라면 수평적으로 완전케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가장 올바른 의미와 감정은 사랑하는 순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뜨겁게 사랑하기 바랍니다. 뜨거운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큰사랑이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고 있으며 그 큰사랑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시32:1-2)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의 사랑은 허물을 가리워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상대방의 허물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가리워 줄줄 아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서 노출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창9:20절에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수치를 보였을 때 함은 아비의 수치를 공개하였지만 셈과 야벳은 아비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 결과, 함은 저주를 받아 대대로 저주받은 민족이 되었고 셈과 야벳 족속은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허물 많은 죄인들이 서로 가려주고 덮어주고 용서해 주고 또 용서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가려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상대방을 뜨겁게 사랑할 때 그 사랑은 메아리가 되어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먼저 받은 다음에 보내려고 합니다.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불신앙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우리가 받은 사랑을 갚을 날도 짧아집니다. 우리 인생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에 우리 성도들은 육체의 남은 때를 더욱 더 뜨겁고 진실 된 사랑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선한 청지기로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선한 청지기로 충성을 다하자”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나 권사 집사 모두가 주님의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오직 주인의 뜻을 따라서 봉사하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본분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라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도록 앞으로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주님을 위해서 육체의 남은 때를 봉사하며 충성하는 청지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마태복음 8장24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예수님은 피곤한 몸을 누이시고 잠이 드셨는데 풍랑이 몰아쳐 배가 곧 뒤집히거나 파선할 것 같아서 제자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애써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할 수 없어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노 젓는 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모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과 기술보다는 주님께 맡길 때에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 졌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아 잔잔하고 고요 하라” 고 하시자 바람이 멎고 물결은 잔잔해 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의 돛을 높이 달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바람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이 목숨 다하도록 충성을 다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